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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묵상

아버지의 권고 (베네딕트의 규칙서)

들으라, 나의 아들아, 네 스승의 가르침들을.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마음의 귀를 열어 주의를 기울여라. 이것은 너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권고이다. 그러므로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신실하게 실행에 옮겨라.


누르시아의 베네딕트(Benedict of Nursia, 480-ca.547), 《베네딕트의 규칙서》 

권혁일, 김재현 옮김, 서론, 7. (서울: KIATS, 2011), 13.


위의 인용문은 수도 공동체의 정체성, 생활 원리, 구성원들의 관계 등을 안내하는 베네딕트의 규칙서의 가장 처음에 나오는 구절이다. 베네딕트는 영적 스승을 아버지(abba) 또는 어머니(amma)로 부르던 수도 전통을 따라서 규칙서에 수록된 가르침들을 "아버지의 권고"로 소개한다. 독자에 따라서는 "아버지의 권고"가 가부장적인 권위에서 나오는 부당한 강요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적 아버지의 권위는 '가부장제' 또는 '연령'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앞서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그의 삶과 자녀(제자)를 향한 사랑에서 나온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한번씩 약주를 드시고 집에 오시면, 어린 우리 남매를 불러 모아 앉히고는 수염이 난 까끄러운 얼굴로 우리 얼굴을 부비기도 하셨고,  이것저것 훈계를 하기도 하셨다. 당시에는 늘 똑같이 반복되는 아버지의 훈계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 시절이 매우 그리운 때가 되었다. "아버지의 권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후회하거나 아쉬워할 때가 오기 마련이다.


《베네딕트의 규칙서》 뿐만 아니라 다른 영성 고전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읽을 때 "마음의 귀"를 열고 들으며, 그것을 신실하게 실행에 옮기려는 자세를 가지는 것, 그것이 수도원 안에서든지 수도원 밖의 일상에서든지 '수도 생활'을 실천하는 첫걸음이다. / 권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