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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묵상

믿음의 눈 (노리치의 줄리안)

그리고 나서 나는 (마음의 눈으로) 한 순간 하나님을 보게 되었는데, 그 비전에서 나는 그분께서 만물 안에 계신 것을 보았다......만사는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죄는 없다......(따라서) 죄란 그저 없는 일이다(sin is no deed). 


노리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 1342 – c.1420),《하나님 사랑의 계시 Showings》, LT, ch. 11.


'계시' 중에 줄리안은 '순간' 하나님을 보게 되었다("I saw God in a point"). 

줄리안이 보니, 모든 것에 하나님이 계셨고("He is in all things"), 모든 일은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었다("there is no doer but He"). 


'궁극적 실재'를 일견하게 된 줄리안은, 그 순간, 말이 안 되는 말을 한마디 한다: "죄/악은 없다." Sin is no deed. 


말이 되는가? 이 세상에 차고 넘치는 것이 죄와 악이건만. 

말(logic)이 되지 않는 말이다. 

'말씀'을 만나 놀라 자빠진 말(theo-logic)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신비를 만난 영성가들의 말은, 우리가 흔히 하는 말꼬리를 잡는 식으로는 캐치할 수 없다. 

죄/악은 물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헛' 것(no-thing)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every-thing)은 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지으신 좋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악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악은 '선의 부재'일 뿐이라고 말했던 어거스틴처럼, 줄리안도, 죄라는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죄는 '헛' 일(no deed)일 뿐이라고 말한다. 모든 '일'은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죄는 '일'이 못된다. 죄는 '짓'일 뿐이다. 헛짓. 


죄악 천지인 세상을 살았으면서, 죄와 악을 마치 아무 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던 그들 영성가들은 분명 우리와 다른 세상을 보고 살았던 것 같다. 이 세상과 다른 세상 말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 '다른' 세상은 바로 '이' 세상 속에 숨겨져 있으며, 믿음이란 바로 그 다른 세상--"하나님 나라"--을 보는 눈이라고 가르쳤다. 


우리에게도 그 눈이 있다면 어떨까? 

무엇보다, 눈이 반짝반짝 빛날 것이다. 이 죄악 세상에 찌든 눈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보고 벌써부터 그 안에 들어가 뛰노는 어린아이의 눈을 갖게 될 것이다. 인간들이 하고 있는 일들--짓들!--에 기가 죽고 의가 꺾이고 풀이 죽기 보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켜 살리신 하나님께서 지금 이 세상 가운데서 하고 계신 일--"새창조"의 일!--을 찬양하고 그 일에 동참하는 영광과 기쁨에, 세상 사람들 눈에 마치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처럼 보이는 이들이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그 눈이 있는가? 그 믿음이 있는가?  / 이종태


 al shal be wel

 and al shal be wel

 and al manner of thyng shal be wele

 - The Shewings, LT, 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