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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묵상

겨울 나무를 마주함(잔느 귀용)

당신이 겨울나무로 서 있다고 해서 갑자기 악해진 것이 아니다. 다만 당신의 실제 모습을 그대로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겨울나무 내부 깊숙한 곳 어딘가에는 지난 봄, 아름다운 잎들을 틔워냈던 생명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잔느 귀용(Jeanne Guyon:  c. 1648-1717),영적성장 깊이 체험하기(Final Steps in Christian Maturity), 22.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은 나무가 자신의 겉모습을 치장하기 위해 애쓰는 시기다. 그 대가로 줄기와 뿌리 깊숙한 곳의 생명 에너지를 소모한다. 겉은 화려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실상 나무의 생명력은 점점 소멸되어 간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나무는 치장한 모든 것이 떨어져 나가고 앙상한 모습이 된다. 겨울은 지난 계절 겉치장 속에 가려져 있던 나무의 참 모습을 모여주는 계절이다.  


지난 몇 달간 육체적, 정신적으로 몹시 나약해진 내 모습을 보며 실망하고 낙심하고 우울해했다. 마치 '나 답지 않은 나'를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낯설고 불편했다. 그러나 내가 겨울나무로 서 있다고 해서 갑자기 약해진 것도, 악해진 것도 아니다. 다만 나의 실제 모습을 그대로 만났을 뿐이다. 귀용 부인의 영적 안내를 통해 나는 나의 앙상한 겨울나무를 묵상한다. '진짜 나'인 겨울 나무는 오히려 위안을 주며, 머지 않은 봄을 기대하게 한다. 나의 겨울나무에도 여전히 새로운 꽃을 피워낼 생명이 존재하고 있기에.

 

작금의 한국교회도 앙상한 겨울나무다. 화려한 잎들이 벗꽃잎처럼 우수수 떨어지자 어떤 이는 탄식의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아예 얼굴을 돌려버리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귀용 부인은 "새로운 결함이 생겨난 것이 절대 아니다."라고 조언한다. 우리는 드디어 겉치장 뒤에 숨어 있던 실제 한국 교회의 모습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겨울이라는 계절은 교회라는 나무를 죽이는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생명력을 복원하는 계절이다. 겨울은 겉치장에 생명력을 쓸 필요가 없기에 나무는 그 때 가장 생생한 생명력으로 복원된다. 겨울은 생명의 원천과 원리가 나무 줄기와 뿌리 깊이까지 흘러 넘쳐, 겉으로 드러난 실제 결함들을 치유하는 계절이다.  / 김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