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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묵상

말 기계와 앵무새 (길선주)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간절히 원하고 바랍니다. 행실을 말하는 바에 합당하게 하여 능히 사람의 마음을 감화시키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고, 말 기계와 앵무새가 되지 마십시오." 


길선주 (1869-1935), <그리스도신문> 1906. 2. 15.




어느 날 길선주 목사가 한 외국인의 집 앞을 지나다가 사람들이 떠들고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호기심에 들어갔다가 깜짝놀랐다. 그곳에는 한 사람이 홀로 "나팔통 같은 기계"를 틀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축음기'(record player)였다. 이후 그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신문에 실은 글 또는 강단에서의 한 연설에 감동되어 그들을 만나보았으나, 실제 그들의 행동이 그말과 글에 조금도 일치하지 않는 것을 보고 실망하고서는 그가 축음기에 속았던 경험을 생각해내었다. 


"말 기계"는 사람의 목소리를 재생하지만, 실제로는 사람의 말을 알아 들을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다. 비슷하게 "앵무새"는 사람의 말을 흐르는 물같이 따라 하지만 그 뜻을 이해하지도 스스로 생각해내지도 못한다. 길선주 목사는 이처럼 조선의 그리스도인들이 지식과 말재주만 배워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고 개탄하였다. 그는 "성령의 신령한 은혜"로 변화되어 바른 행실을 갖춘 자에게 교회의 중대한 직분을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혀와 머리만 변화받은 "말 기계" 또는 "앵무새"인지, 아니면 아니면 성령으로 마음이 변화 받은 "그리스도인"인지 스스로 살펴보자. 우리 교회가 '말 기계'를 틀어 놓은 '앵무새들'의 모임이지는 않은지, 그래서 소리를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속았다'고 느끼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하자. 매일 밤 자신이 오늘 하루 동안 맺은 행실을 돌아보자. 나무는 그 열매를 보고 알 수 있다. (마태복음 7장 15-20절) / 바람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