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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생활/수필 한 조각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

고통에서 건져 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라, 그 분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하나님 사랑을 위해 결연히 감당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구하십시오. 


- 로렌스 형제 (1605-1691) 지음, 오현미 옮김하나님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좋은 씨앗, 2006), 114.


남들이 들으면 이상하다고 하겠지만 난 군대 생활이 좋았다. 무질서 하던 대학 새내기 생활을 뒤로하고, 규칙적인 삶과 규칙적인 식사 속에서 난 내 몸이 처음으로 건강해져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처음 몇 주간은 죽을 것처럼 힘들었다. 눈동자 하나라도 흔들리면 바로 장교들이나 고참들의 소리와 물리적인 압박이 가해져 왔다. 훈련소에서 처음 행군 나가서 몇 주만에 전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던 바깥 세상의 가게며 마을이며, 집들을 보았을 때, 난 처음 탈영을 하고 싶은 강한 유혹에 시달리기도 했다. 참아서였는지 용기가 없어서였는지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사격 훈련에 앞서 군기를 잡기 위해서 심한 얼차려를 받았다. 속된 말로 구르고 또 굴렀다. 군복은 흙투성이가 되었고 머리며 코는 흙먼지로 뒤범벅이 되었다. 육체의 한계라는 말이 오래간만에 생각나는 날이었다. 무사히 하루 일과를 마치고 땀투성이, 먼지 투성이가 된 훈련병들을 향해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한 소대장이 한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그 말이 내 군생활을 건강하게 했던 힘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루 하루 즐기며 견디었고, 제대할 때에는 난 정말 건강해져 있었다. 


그런지가 어언 20여년이 흘렀다. 신앙의 여정은 언뜻 보면 지루하고 더딘 여정 같지만, 어찌 보면 군대보다 더 힘들고 더 농도 깊은 고통의 시간일 때가 있다. 사람을 알고 세상을 알고 그 속에서 말씀을 붙잡고, 교회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군인보다 더 강한 훈련이 필요하다. 여전히 느끼는 내 모습은 될 수 있는 대로 고통을 피하고 싶고, 두려움에 맞서기를 꺼리는 그런 소심한 나다. 군대에서는 군기가 견딜 수 있는 힘이었다면 세상은 사랑으로 이겨야 한다. 여전히 피하지 말고 감당해야 한다. 그 분을 사랑한다면 기꺼이 맞서야 한다. 그래서 또 무릎 꿇고 그 분 앞에 엎드린다. 


"주님,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  / 소리벼리 정승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