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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생활/수필 한 조각

한 사람

한 사람



새벽 4시. 어김없이 알람이 울리면 습관적으로 눈이 떠진다. 잠시 동안 잠자리에 누워 씨름하다 간단하게 세면을 하고 후다닥 옷을 입고 교회로 향한다. 교회에 도착하면 4시 15분. 두 시간이 채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난 말씀을 준비한다. 하루 동안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만나를 섭취하는 영의 식사 시간. 그런데 6시가 가까울수록 만나를 통한 기쁨을 뒤로 하고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마음 속 깊은 구석에서부터 꿈틀대기 시작한다. ‘오늘은 혹시 못 오시지 않을까? 오늘도 또 오실까?’ 언제부터인가 마음속에서 성도를 기다리는 한편의 마음과 성도가 안 오기를 바라는 또 한편의 마음이 치열하게 대립한다. 나의 기대를 비웃기나 하듯, 6시가 되면 한 영혼이 계단을 올라온다. 오늘도 늘 그렇게 어김없이 찾아온 한 사람의 성도. 


결국은 논문을 쓰지 못하는 나의 게으름에서부터 나오는 생각이다. ‘목사가 새벽예배 나오는 성도를 귀찮아하다니…….’ 하루 종일 마음이 영 죄스럽고 부끄러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또 다른 마음 한편으로는 여기저기서 충고랍시고 해 주었던 사람들의 음성이 뒤섞여 웅성거리는 듯하다. “논문 마칠 때까지만이라도 그 분께 양해를 구해야지! “주일날 출석하지 않는다면 결국 다른 교회 교인인데, 그 사람 때문에 논문을 못 마친다면 나중에 누구를 탓하겠나?” “자기 몸도 생각하고 돌보면서 목회를 장기간으로 보아야지.” 등등. 


박사과정 종합시험을 앞두고, 전임 목사님의 갑작스런 사임으로 의도치 않게 출석하던 교회의 담임이 되었다. 목사님의 권유와 교회의 급박한 상황이 그 자리를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작은 교회였지만 그중 다섯 명의 권사님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새벽예배를 지키시는 분들이셨다. 그 열심과 신앙을 알기에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매일같이 나와 새벽예배를 인도했다. 1년 쯤 뒤에는 교회 근처로 이사까지 했다. 하루하루가 바쁜 삶의 연속이었지만 공부를 하면서도, 이런 목회의 기회를 얻고 열심 낼 수 있다는 것이 흥에 겨웠다. 


3년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점점 무력감이 왔다. 몸의 여기저기에 문제가 생기고 건강의 악신호가 울렸다. 공부와 목회를 병행한다는 것, 늦둥이 딸마저 태어나 세 자녀를 둔 가장으로 산다는 것. 목회도, 공부도, 산다는 것 자체가 큰 짐처럼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성도는 늘지 않고 오히려 이사를 가시는 권사님, 병상에 누워 예배 참석이 어려우신 성도님들, 다섯 명이던 새벽예배 참석이 세 명으로, 세 명에서 두 명으로…….


그러다가 어느 날 한 낯선 집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회사에 나가시는 집사님인데 출석하시는 교회가 멀어 새벽예배는 우리 교회에 나오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힘을 주시는구나!’ 그분을 생각하며 또다시 식은 열정을 되살렸다. 그런 기쁨도 잠시, 한두 명 나오시던 권사님들마저 새벽예배 출석이 어렵게 되었다. 80이 훨씬 넘으셨음에도 가장 열심히 기도하시던 권사님의 남편이 쓰러지셔서 새벽에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것이고, 또 다른 권사님은 딸이 출산하여 아이를 봐 주느라 어렵단다. 그때부터 그 집사님과 나, 둘이서 한 사람은 설교자로, 한 사람은 성도로 새벽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렇게 둘이서 새벽예배를 드린 지 어느덧 1년이 넘었다. 가끔씩 손녀를 보시던 권사님이 나오시기라도 하면 집사님 하시는 말씀이 “와, 오늘을 출석률이 두 배가 되었어요.”하며 기뻐하신다. 2년 여를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나오시는 집사님을 보며 언젠가 우리 교회 출석하면 큰 일꾼이 되리라는 기대도 점점 사라지고, 정작 내가 담임하는 교회의 교인은 한 사람도 새벽예배에 참석하지 않게 되니 점점 마음속으로 불평이 쌓였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새벽예배를 드리기 위해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오늘은 그분이 안 왔으면 좋겠다’라는 불손한(?) 기대를 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교회에 도착해서 시간이 되면 여지없이 나타나는 집사님을 보면서 하나님께 회개를 드리고……. 이런 사이클이 몇 번 반복되었다. 마치 그 시간을 내가 마음대로 사용하면 써지지 않던 논문도 빨리 쓸 수 있을 것 같고 여기저기 일어나는 안 좋은 건강의 신호도 금방 회복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어오니까 새벽예배 시간이 점점 고통스런 시간이 되어갔다. 


그날 새벽도 그런 모습으로 교회에 왔다. 사무실에 들어와 설교문을 프린트 해서 올라 가려는데 벽에 걸린 한 액자에 눈이 멈췄다. 그곳에 있은 지 한참 된 액자인데, 사실 걸려 있는지조차 잊고 있었던 내 취임예배 신문기사 스크랩이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목회!” ‘한 영혼’이라는 글귀가 갑자기 액자 전체보다 크게 튀어나와 보인다. 이 말은 내가 신학교를 졸업할 때 존경하던 교수님이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이요, 평생을 목회하시다 은퇴하신 어머니가 내게 늘 하던 말씀이요, 내가 교회의 담임이 되었을 때에 당연스레 가장 먼저 떠 올린 글귀다. 한 성도를 앞에 두고 갈등했던 나에게 하나님이 비춰주신 내 첫 마음의 기억! 언제까지일지, 혹은 평생이 된다 하더라도, 한 사람을 위해 말씀을 준비하고, 전하고, 또 기도할 수 있는 그 시간이, 나에게 그 어떤 인생의 순간보다 더 순결하고, 빛나는 그런 감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한 영혼을 위해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믿음이 일상에 빠져 시들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천사처럼 느껴졌다. 


무릎 꿇어 기도하는 내 모습 위로 우뚝 서 있는 십자가가 그날은 무겁지 않고 가볍고 친근히 느껴졌다.  / 소리벼리 정승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