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이 거룩한 기간에 (누르시아의 베네딕트)

한 줄 묵상 2014.03.17 10:27

수도자의 삶은 사순절의 연속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할 수 있는 강인함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사순절 동안만이라도 공동체의 모든 형제[자매]들이 지극히 순결한 삶의 방식을 유지하고, 이 거룩한 기간 동안 평소 가지고 있던 태만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한다. 


- 누르시아의 베네딕트(Benedict of Nursia, 480-ca.547), 《베네딕트의 규칙서》 

권혁일, 김재현 옮김, 제49장. 1-3. (서울: KIATS, 2011), 94.


사순절은 “거룩한 기간”이다. 그것은 이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묵상하는 예수의 삶과 고난,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사랑이 거룩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기간은 우리가 “지극히 순결한 삶의 방식을 유지”하고 게으름을 벗어 버리면, 거룩하신 주님을 좀 더 닮아 갈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베네딕트의 규칙서》8세기 사본

누르시아의 베네딕트는 사순절에 사용할 수 있는 적절한 훈련 방법으로 (1)악한 습관에 빠져드는 것을 거부하는 것, (2) 참회의 기도, (3) 독서, (4) 마음의 성찰, (5) 자기 부인, (6) 음식물과 수면의 절제 등을 들고 있다. 물론 이것들은 베네딕트의 수도원에서 일상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들이지만, 그는 사순절에는 정해진 의무에 좀 더 추가하여 실천하고 이에 전념할 것을 가르친다. 하지만 수도자들은 이러한 훈련들을 의무감에서 억지로 하기보다는 “성령의 기쁨”을 가지고 자신의 의지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또한, 과도한 ‘고행’을 통해 자신을 남에게 드러내고자 하는 허영심을 경계하기 위해, 이 훈련들은 수도원장의 영적 지도 아래 행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와 같은 베네딕트의 ‘규칙’은 수도원에 사는 수도자들뿐만 아니라, 세상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이정표를 제시해 준다. 사순절 기간 동안 마음을 새롭게 하고 영성 훈련을 평소보다 한두 가지 더 추가하여 성실하게 실천한다면, 다가올 부활절이 감격이 없는 ‘연례 행사’가 아니라 기쁨과 소망이 생생한 잔칫날이 되지 않을까? 올해의 사순절이 이미 사분의 일정도가 지났지만 아직 한 달이나 남아 있다. 이미 사순절을 특별하게 보내고 있는 이들은 다시 마음을 새롭게 할 때이고, 아직 사순절을 평소와 같이 평범하게 보내고 있는 이들은 지금이라도 분별력 있는 영적 지도자(또는 형제, 자매)와 상의하여 적절한 훈련을 시작할 때이다.  / 권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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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원하시니 (하나님 임재 연습)

한 줄 묵상 2013.09.28 15:37

오직 하나님과 끊임없이 대화하기를 연습하고 경험하는 이들만 이 교제가 얼마나 달콤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기쁨을 얻기 위해 하나님 임재를 연습하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이 연습을 통해 자기 위안을 추구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분이 이 끊임없는 대화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원해야 할 것입니다.

- 로렌스 형제 (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  c. 1614-1691), 《하나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Second Letter)



기도의 맛과 경험은 소중하다. 많은 이들에겐 '그때처럼'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시점과 경험이 있다.
 과거의 그 경험은 때론 영적 열망을 일으키는 동기가 되기도 하고 때론 현재의 영적 나태를 발견하게 만드는 하나의 기준적 경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론 그 '경험'을 내 것으로 삼고, 그 자체에 매여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는 이들도 만나게 된다. 


로렌스 형제는 그 맛을 위해 기도하지는 말라고 권면한다. 기도 안에서 초점은 대화의 자리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현존이 우리의 기도 행위를 '대화'가 되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기도의 행위 안에 하나님을 분명 모신다면, 그분이 우리의 대화를 그리고 그 모든 '나머지'를 인도하실 것이다. 작은소리찾기 박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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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열매 3 : 바쁜 여가, 조용한 활동(컬른의 브루노)

한 줄 묵상 2013.07.18 16:08

실제로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은 이곳[사막]에서 자기 자신에게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만큼 그곳에 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덕의 씨앗들을 부지런히 재배하고 낙원의 열매들을 기쁨으로 먹으면서 말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눈(eye)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눈은 신성하신 신랑을 명료하게 바라 봄으로써 그로 하여금 사랑으로 상처입게 한 그 눈입니다. 그리고 그 눈은 맑아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쁜 여가를 보낼 수 있으며, 조용한 활동 속에서 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전투의 고생스러움으로 인해, 하나님의 운동 선수들에게는 간절히 기다리던 보상이 주어집니다. 그 보상은 세상이 무시하는 평화와 성령 안에서의 기쁨입니다.


른(쾰른)의 브루노(Bruno of Cologne, c. 1030 - 1101), Ep 2.2; Sch 88:82-85.



컬른의 브루노는 사막에서의 수도 생활을 '바쁜 여가'와 '조용한 활동'으로 묘사한다. 보통 '여가(leisure)'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한가로움을 즐기는 시간을 말한다. 그런데 '바쁜 여가'라니!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가(otium)에 대한 고대 사람들의 생각을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대 로마 공화정 시대에 때에 여가란 공적인 활동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벗어나거나 완전히 은퇴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공공의 선을 중시하던 이들에게 이런 여가는 결코 한가함 속에서 늘어지는 '게으름'이어서는 안 되었다. 고대의 작가들에게 있어서 '명예로운 여가(otium honestum)' 또는 '품격있는 여가(otium liberale)'는 공공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문학적, 철학적 탐구를 의미했다. 그래서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106~BC.43)는 용납 가능한 여가는 역설적으로 활동적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공적인 일'과 '여가' 사이의 긴장이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의 시대에도 흘러 들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긴장을 기독교적인 바탕에서 풀어내면서 여가는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데에 쓰여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여가는 관상(contemplation)과 성경 연구를 위한 선행조건이었으며, 하나님 나라 추구를 위한 환경이었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는 동시대의 기독교 작가인 놀라의 파울리누스(Paulinus of Nola, c.354~431)와 비슷하게 여가를 수도생활과 관련시키기도 하였다. 그는 수도생활을 '성스러운 여가(sanctum otium)'로 묘사하였으며, 수도자들이 게으름과 한가한 잡담에 빠지는 것을 경고하였다. 그러므로 키케로와 마찬가지로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서 여가는 활동적이다. 


컬른의 브루노가 말한 '바쁜 여가(otium negotium)'는 이런 배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세상에서의 일들을 모두 내려놓고 사막으로 들어가 고독과 관상에 속에 사는 수도자들의 삶이 한가하고 게으른 삶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바쁜 여가이며 조용한 활동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브루노가 말하는 조용한 활동은 외적인 수도 생활 뿐만 아니라, 기도 안에서 정점을 이루는 내적 활동을 의미한다. 실제로 브루노는 당대의 매우 뛰어난 지성인이며 행정가였지만, 거의 오십 세가 되었을 때에 대학과 교회에서의 모든 직책들을 내려놓고 몇 명의 지인들과 함께 사막으로 은거하였다. 그리고 위의 인용문에서 자신들의 물러남이 세상으로부터의 이기적인 도피나 열매 없는 게으름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지금 한국은 휴가철이다. 굳이 휴가를 운운하지 않아도, 속도가 빠르고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요소들이 많은 오늘날의 사회 속에서 여가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많은 이들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평균 수명의 연장과 더불어서 우리가 은퇴 후에 보내야할 시간도 더 길어 졌다. 여가 시간 또는 휴가 기간 동안 아우구스티누스가 추구한 것처럼 성경을 연구하며 바쁘게 보내라고 한다면, 많은 이들이 질색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우구스티누스 또는 브루노와 오늘날의 현대 그리스도인은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여가, 휴가, 은퇴가 게으름 속에서 낭비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우리의 여가는 좀 더 깊이 있게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데에 사용되어져야 한다. 사막이 거룩한 여가를 보내기 위한 적당한 장소인 이유는 다른 일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추구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추구한다는 것이 고립 속에서의 성경 읽기와 기도만으로 제한되어서는 안 되지만, 실제적으로 우리 삶에서 열매맺는 공적 활동을 위해서도 사적인 고독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그 고독은 게으름이 아니라 '바쁜 여가, 조용한 활동'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여가, 휴가 또는 은퇴 계획 속에 고독 속의 독서와 기도를 넣어 보면 어떨까?  다시 말해 지리적인 사막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사막을 찾아 가는 여행을 해보면 어떨까? 또는 평소에는 일상에 매여 하지 못했던 하나님과 이웃들을 위한 일을 실천하는 계획을 세워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와 같은 품격 있는 여가 속에 사막의 열매인 '쉼'이 있다. / 권혁일 

posted by 바람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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