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감리교 신도회의 규칙

감리교 신도회의 규칙: 

“선을 행하라, 악을 피하라, 모든 성회에 참석하라”




19세기 초 감리교 캠프 모임(Camp Meeting). Image from http://global.britannica.com/EBchecked/topic/378415/Methodism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91)가 이끌었던 초기 감리교 부흥 운동의 동인(動因)으로 ‘전격적 회심을 강조하는 열광적인 부흥 집회’를 꼽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는 초기 감리교 운동의 단편적인 모습일 뿐이다. 웨슬리가 옥외 설교(“field preaching”; 교회 건물이 없는 곳에서 열리는 대중 집회)를 중시했던 것은 사실이다. 공장 지역과 탄광 지대의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던 당시 상황에서, 옥외 설교는 지역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웨슬리는 이렇게 대중 집회를 통하여 회심한 사람들을 신도회(Methodist societies)라는 공동체에 가입시켜 영적으로 돌보고 신앙적으로 훈련하도록 하는 일을 옥외 설교 이상으로 중시하였다. 그렇게 돌보지 않으면 모처럼 신앙적으로 각성한 사람들 대부분이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 버린다는 것이 거듭 드러났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웨슬리가 이렇게 대중 집회와 공동체 운동을 결함시킨 것이 초기 감리교 성장의 중요한 동력이었으며, 신도회는 감리교 영성 형성의 중요한 장(場)이었다고 평가한다.[각주:1]


     웨슬리는 늘어나는 신도회들을 체계적으로 지도하기 위해 이들을 지역 단위로 묶어 연합신도회를 만들고, 1743년 5월 1일에는 이들을 위한 통일된 규칙을 발표하였다. “연합 신도회의 성격, 형태 그리고 규칙”(The Nature, Design and General Rules of the United Societies, 이하 “신도회의 규칙”)이 바로 그것이다.[각주:2] 오늘날 한국 교회에 소그룹 운동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대중적인 집회와 함께 훈련·규칙·공동체를 중시한 웨슬리의 통찰이 담긴 “신도회의 규칙”을 살펴보는 일은 의미가 있다.



속회(Class)에 참여하라


“신도회의 규칙”은 신도회의 목적에 관해서는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이 모임은 규칙적으로 모여서 함께 경건의 능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사귐으로서, 함께 기도하며, 함께 권고의 말씀을 받으며, 사랑 안에서 서로를 돌보고 지켜주어 (to watch over), 서로의 구원을 함께 이루어 가기 위해 모이는 것이다….


즉, 신도회는 친밀하고 온정적인 신도들 간의 유대를 경험하는 곳이었으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회원들은 서로 자신의 삶을 고백하고 함께 격려하고 위로하는 “상호 권면”(mutual accountability)을 실천했다. 이를 위해, 웨슬리는 모든 신도회원들이 12명 단위(지도자 1인과 11명의 회원)로 된 속회라는 소그룹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하였다. 나아가, 보다 높은 수준의 신앙 훈련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밴드(Band)라는 소그룹을 별도로 두었다.


신도회는 또한 규율을 정하고 함께 훈련하는 공동체였다. “신도회의 규칙”은, 회원들은 


“첫째로, 악을 피함으로”(By doing no harm)

“둘째, 선을 행함으로”(By doing good)

“셋째, 모든 성회에 참여함으로”(By attending all the ordinances of God)


자신들의 “구원을 향한 열망을 지속적으로 확증해야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세 가지는 큰 원칙들로 각 원칙 아래에는 구체적인 실천 덕목들을 두어 회원이 삶의 지침으로 삼도록 하였다. 

 


모든 악을 피하라


첫 번째 원칙은 신도회원이 된 사람은 “모든 종류의 악을 피하는(avoiding evil in every kind)”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지침이다. “신도회의 규칙”은, 이 원칙과 관련해서, 회원들이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피해야 하는 항목들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일(출20:7)

평일에 하는 일들, 물건을 매매하는 일을 주일에 함으로써, 주일을 더럽히는 것.

술에 취하는 일, 독한 술을 팔거나 사는 일, 그리고 그것을 마시는 일

싸움, 언쟁, 소란을 피우는 일, 신자들 간의 법적 다툼(고전6:6), 악을 악으로 갚는 일(벧전 3:9), 욕을 욕으로 갚는 일, 물건을 사고팔 때 많은 말을 하는 것(지나치게 흥정을 하거나, 값을 깎는 행위를 말함)

밀수품을 판매하거나 매입하는 행위

고리의 이자를 취하는 행위

무자비한 말이나, 무익한 대화, 특히 관리나 목사들에 대한 험담

내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시키는 행위(마7:12)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아닌 것, 예를 들면, 금이나 다른 귀금속을 몸에 걸치는 일,  값비싼 옷을 입는 것.

주 예수의 이름으로 사용될 수 없는 오락

하나님을 아는 일과 사랑하는 일에 적절치 않은 노래를 부르거나, 그런 책을 읽는 행위

세속적인 것에 쉽게 타협하는 행동이나 방종(self-indlugence)

땅에 보물을 쌓는 일.

갚을 수 없는 액수의 돈을 빌리는 일 혹은 갚을 수 없는 외상을 지는 행위.


웨슬리는 이와 같이, 십계명, 산상 수훈 등 성서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경건 생활의 덕목들을 회원들의 신앙 실천의 기본으로 삼도록 하였다. 또한, 회원들이 사회 속에서 신앙인으로서의 품격을 지키며 사는 데 지침이 되는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의미 있게 보인다.   



선을 행하라


     두 번째 원칙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능력을 다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능한 모든 종류의 선을, 모든 사람들에게 행하라.”는 원칙이다(갈6:10). 이를 위한 세부 규정들은 이웃 사랑과 선교적 삶에 관련된 지침들을 포괄하고 있다.  

이웃의 몸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대로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벗은 사람에게 입을 것을 주고, 병든 사람과 옥에 갇힌 사람을 찾아가 도와주어라.

이웃의 영혼을 위하여서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가르치고, 바르게 인도하고 권면하라. “우리의 마음이 죄로부터 온전히 벗어나 전에는 우리가 어떤 선도 행할 수 없다”는 열광주의자들의 사악한 가르침을 철저히 배격하라.


여기서 열광주의자들의 주장을 비판하는 것이 이채롭게 보인다. 하지만 이는 웨슬리가 평생 목회 활동 내내 열광주의자들의 주장을 경계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웨슬리가 그들의 주장들 중에도 가장 우려한 것은, 그들이 개인의 내적 주관적 변화의 체험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이웃 사랑과 선교적 삶에 관계된 신앙 덕목들의 중요성을 경시한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주장들은 내적 경건과 외적 경건의 조화, 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의 조화를 깨뜨리고, 올바른 신앙적 성숙을 저해한다는 점을 웨슬리는 간파한 것이다. 그는 이런 점을 “신도회의 규칙”에 반영함으로써, 신도회원들이 열광주의자들의 지나친 주장들을 분별하고 균형 잡힌 신앙인으로 성장하도록 돕고자 하였다.  


또한 이 두 번째 범주에는 공동체 생활에 관련된 아래와 같은 지침들도 들어 있다.


무엇보다도 믿음의 가족들과 믿음의 가족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라(갈6:10). 그들을 고용하고, 그들의 물건을 사주고, 그들의 사업을 도우라…. 


마지막으로 여기에는 회원들이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제자직에 부합한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는 다음과 같은 지침들을 포함하고 있다.  


할 수 있는 대로 부지런히 절약하여 복음이 비난받지 않게 하라. 

인내로써 앞을 향하여 달려 나가고, 자신을 부인하고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라. 그리스도가 당하신 고난을 당하고, 세상에서의 모욕과 비난을 감수하라.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갈 때, 사람들이 온갖 거짓말과 악한 말을 하리라.”는 것을 잊지 말라. 



모든 성회에 참석하라


     세 번째 원칙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려고 그분께서 친히 제정하신 모든 규례들(all the ordinances of God)에 참여함으로 “구원을 향한 열망”을 지속적으로 입증하라는 것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공적 예배에 참석하라. 

성경 말씀을 받는 모임, 즉 말씀을 읽거나 강해하는 모임에 참여하라.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라. 

가족 기도와 개인 기도를 지켜라. 

성경을 탐구하는 일에 참여하라. 

금식과 절식을 지켜라.


이러한 신앙생활의 근본적 실천 덕목들을 명시적으로 규정해야 했던 데에는 앞에서 언급한 것 과 같은 열광주의에 대한 경계가 들어 있다. 열광주의자들의 사적·주관적 체험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교회가 전통적으로 가르쳐온 신앙 실천들—예를 들면, 공적 예배, 성례전, 말씀 선포, 성경 묵상 등과 같이 공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마저 경시하는 경향을 띄었다. 웨슬리는 이러한 그릇된 가르침을 경계하면서, 올바른 신앙 성장은 교회가 전통적으로 가르쳐온 신앙 실천들의 토대 위에서, 그리고 신앙 공동체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여기서 분명히 하였다. 


     또한, 세 번째 원칙에는 신자들의 영적 성숙과 이웃 사랑의 실천과 같이, 첫째와 둘째 원칙에 속한 신앙 실천들이 인간의 독자적인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은혜와 성령의 능력에 응답하는 순종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확증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에 더하여, 웨슬리는 감리교인들이 영국 국교회의 모든 예배에 참석해야 하고, 거기서 베풀어지는 성찬에 반드시 참여해야 함을 의무로 규정함으로서, 감리교 신도회가 영국 국교회에 속한 하나의 단체(evangelical order)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감리교의 개혁 운동이 분파주의나 분리주의 운동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신도회의 규칙”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신도회의 규칙”은 모든 신도회원들이 이 규칙을 철저히 준수해 줄 것을 당부하는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는다.


만일 우리 가운데 누가 이를 지키지 않는다면 또는 습관적으로 위반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경고하여 알려줄 것이고 권면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우리들 가운데 더 이상 남아 있을 수가 없다.


이와 같이 모든 감리교 신도회원들이 규칙에 동의하게 하고 이것을 지키도록 서로 권고를 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자들의 모임을 영적으로 건전하게 유지하고, 그들의 지속적인 영적 성장을 돕는 일에는 온정적이면서도 적절한 규율을 유지하는 공동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웨슬리는 목회 경험을 통하여,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는 회심의 체험을 한 사람들에게는 영적으로 성장하려는 열망이 자리 잡게 된다는 점을 확신하였다. 그는 회심을 단지 ‘죄 사함을 확증하는 순간’으로만 보지 않고 거듭남으로 보았다. 다시 말하면, 회심을 성령의 인도에 응답할 수 있는 존재로의 새로운 탄생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거듭난 사람들이 올바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지와 격려와 영적 지도가 오가는 공동체가 필수적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신도회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영적 성장을 돕는 공동체였다. 웨슬리는 “혼과 몸이 사람을 만든다면, 성령과 훈련은 기독교인을 만든다.”는 말을 자주했다. 그는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대중 집회를 통해 회심한 사람들이 올바른 기독교인으로 성장하게 하는 일을 돕기 위해, 성서에 바탕을 둔 규율을 가지고 서로 권면하는 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일에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신도회의 규칙”이 내적 경건과 외적 경건의 조화를 강조하였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웨슬리는 개인의 사적이고 주관적인 체험만을 강조하는 것은 사람들의 신앙이 올바르고 조화롭게 성장하는 일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직시하였다. 그래서 그는 “악을 피하라, 선을 행하라, 모든 성회에 참석하라”는 규율을 가지고 공동체 속에서 훈련하게 함으로써, 신자들의 개인적 경건의 추구가 공동체의 상호 돌봄과 지도 속에서 행해지게 하였고, 또한 신앙인으로서 사회의 성결에 책임을 다하는 것을 훈련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조화를 강조한 감리교 부흥 운동이 근대 영국 사회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깊이 되새겨볼 점이다. 


18세기 영국의 상황과 오늘의 한국 교회 상황은 같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회심한 사람들의 신앙 성장을 돕고자, 공동체를 만들어 개인적 경건과 사회의 성결을 훈련하도록 한 웨슬리의 통찰은 오늘날  한국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글쓴이 : 남기정. '산책길' 기독교영성고전학당 연구원, 새열매연합감리교회 목사, GTU 기독교 영성학 Ph.D Candidate.


'산책길'은 2015년 한 해 동안 기독교 월간지 <목회와신학>에 '영성 고전에서 배우는 영성 목회'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목회와신학>의 양해를 얻어 이곳 산책길 팀블로그에서도 매달 글을 게재합니다. 위의 글은 2015년 5월 호에 실린 다섯 번째 글입니다.


  1. T. 런연, 《새로운 창조》, 김고광 역 (1999), 4장; 김진두, 《웨슬리의 실천신학》 개정판 (2004), 5장; Richard P. Heitzenrater, Wesley and the People Called Methodists (1995), Ch. 3; David Lowes Watston, “Methodist Spirituality,” in Protestant Spiritual Traditions, ed. Frank C. Senn (1986). [본문으로]
  2. John Wesley, “The Nature, Design, and General Rules of the United Societies (1743),” in The Methodist Societies: History, Nature, and Design, The Bicentennial Edition of the Works of John Wesley, vol. IX (1989), 67-75; 김진두, 《웨슬리의 실천신학》, 159-66. [본문으로]
posted by 바람연필

4. 제자공동체로서의 교회

제자공동체로서의 교회: 

디트리히 본회퍼의 신도의 공동생활과 

누르시아의 베네딕트의 규칙서



  교회는 본질적으로 공동체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기독교인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2천년의 역사를 넘어서 지금까지 교회가 존속할 수 있었던 원인들 중 하나는 교회가 공동체성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 교회는 교회가 공동체인가라는 질문 앞에 고개를 떨구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를 새롭게 하려는 목회자들의 고민은 어떻게 해야 교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성경적 공동체에는 어떤 특징들이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 전파와 동시에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열두 명의 제자공동체를 세운 일이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믿음 위에서 열두 명의 제자들이 형성한 공동체가 교회의 초석이 되었다. 그러므로 교회는 본질적으로 공동체이다. 그렇다면 성경적 공동체가 지닌 특징은 무엇인가? 공동체와 관련해서 신앙의 선배들이 영성사적으로 성경에서 가장 많이 참고한 두 개의 본문은 복음서에서 ‘열두 제자 파송’(마태복음 10:1-15)과 사도행전에서 ‘오순절 초대교회의 모습’(사도행전 2:42-47, 사도행전 4:32-37)일 것이다. 


  먼저, ‘열두 제자 파송’ 본문에 나타난 제자공동체의 특징을 살펴보자. 첫째, 제자공동체의 비전은 하나님 나라 복음의 선포이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7). 둘째, 예수님은 제자공동체에 치유와 회복의 능력을 주신다.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1). 셋째, 제자공동체는 복음 선포를 위해 여행하는 공동체였다. 넷째, 제자공동체는 복음 전도 여행 시에 돈으로부터 최대한 자유롭다. 치유와 회복이 일어났을 때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8). 또 여행과 숙박에 필요한 것들을 미리 준비하지 않는다.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9-11). 다섯째, 병행본문인 마가복음 6:7에 따르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할 때 둘씩 둘씩 보내셨는데 이 역시 전도 여행의 공동체적 특징을 내포하고 있다. 


  부가적으로 ‘주기도문’(마태복음 6:9-13)은 일차적으로 제자공동체에 주어진 기도문이라는 사실 역시 명심할 필요가 있다. 주기도문에서 제시된 제자들의 기도제목은 제자공동체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효과적으로 선포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주고 환경을 마련해달라는 요청이다.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뜻에 대한 간구들은 제자공동체의 비전과 방향을 기억하고잘 따르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기도제목들이고, 일용할 양식, 죄의 용서, 그리고 시험과 악으로부터의 보호는 제자공동체가 그 비전을 잘 실천할 수 있는 내적이고 외적인 환경을 마련해줄 것을 요청하는 기도제목들이다.


  두 번째 본문인 사도행전 본문들은 ‘오순절 초대교회’ 모습에서 어떤 공동체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가? 첫째, 초대교회 공동체는 한 지역에서 생활하는 “믿는 무리”의 공동체였다. 둘째, 초대교회 공동체의 영적지도자들인 사도들은 치유와 회복을 일으키는 영적 능력(“기사와 표적”(2:43)을 소유하고 있었다. 또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신자들의 교육을 담당했다. 셋째, 초대교회 공동체는 함께 교제, 성만찬 및 공동식사, 기도에 참여했다. 넷째, 초대교회 공동체는 공동소유와 나눔을 실천했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2:44-45, 4:32-35 참고). 성경적 공동체는 위에서 살펴본 두 개의 본문 외에도 성경 전체에 걸쳐서 그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제자공동체의 대표적인 특징은 위에서 열거한 항목들 안에 잘 담겨져 있다.


영성고전에서 공동체 배우기

  교회의 역사는 성경적 공동체를 실현하려고 노력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복음서에 나타난 제자공동체의 모습을 가장 가깝게 실현한 공동체는 12세기에 아씨시의 프란치스코(Francis of Assisi: 1181-1226)가 이탈리아에서 세운 탁발수도회였다. 프란치스코는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가난 영성을 가장 잘 따른 제자라고 알려져 있다. 무너져가는 교회를 다시 세우라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프란치스코는 마태복음 10:1-15의 제자공동체를 본뜬 탁발수도회의 설립으로 응답한 것이다. 그런가하면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 공동체의 모습은 3-5세기 사막의 수도공동체와, 그 영향을 받아 설립된 6세기 유럽의 정주수도회 베네딕트 수도회들을 비롯해서, 한참 후인 근대에 설립된 메노나이트(Mennonite) 공동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우리에게는 전혀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한국을 포함해서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지역교회들 가운데에도 나타났을 것이다.


  영성고전 가운데 공동체를 잘 가르쳐주는 대표적인 책으로 누르시아의 베네딕트(Benedict of Nursia: 480-c.a.547))의 《베네딕트 규칙서》[각주:1]와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1906-1945)의 《신도의 공동생활》[각주:2]을 들 수 있다. 《규칙서》는 서방교회 대부분의 정주수도회가 사용하는 규칙서가 되었고, 다른 수도회 및 공동체의 규칙서에 영향을 끼쳤다. 20세기 초 독일 고백 교회의 중심인물이었던 본회퍼가 쓴 《공동생활》은 현대 개신교 교회의 교회론 연구 및 공동체 운동에서 필독서가 되었다. 이 두 권의 영성고전이 천착하는 제자 공동체의 특징들 가운데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이 참고할만한 내용들을 요약해 보자.



공동생활이 왜 필요한가?

 

첫째, 《규칙서》와 《공동생활》은 왜 공동생활이 필요한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먼저, 《규칙서》는 수도원에 입회한 수도자들을 위한 규칙을 모은 책이다. 베네딕트는 수도원을 “주님을 섬기기 위한 학교(schola)”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수도자란 주님을 위해 자기의 “의지를 완전히 그리고 단번에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고, “진정한 왕이신 주님 그리스도를 위한 전투에 임하기 위해 순종이라는 강하고 빛나는 무기로 무장”한 사람이다. 《규칙서》에 나오는 규정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거룩한 순종이라는 전투를 수행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준비”하는 영성 훈련들이다. 베네딕트는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의지를 포기하고 순종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고 그 훈련장으로서 수도원장의 지도 아래 규칙을 따라 공동생활을 하는 수도원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순종은 《규칙서》 총 73장의 내용 중 가장 앞부분인 다섯 번째 장에 배치되어 있다. 베네딕트는 수도원장에 의해 순종이 남용될 가능성도 예견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2장 수도원장의 자질”에서 수도원장에게 다음과 같은 자세를 특별히 주문한다. “수도원장은 결코 주님의 교훈에서 벗어난 것을 가르치거나, 결정하거나, 명령해서는 안 된다.” 수도원장은 “제자들에게 선하고 거룩한 모든 것들을 말보다는 행실로 보여주어야 한다.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는 제자들에게는 말로써 주님의 명령을 알려주고, 고집스럽거나 어리석은 제자들에게는 삶의 모범으로 하나님의 교훈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또 “수도원장은 수도원에서 편애를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베네딕트는 “제3장 조언을 얻기 위한 형제들의 소집”에서 수도원장이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 전에는 반드시 공동체의 모든 형제들을 소집해서 그 사안에 대해 설명한 후에, 형제들의 조언을 듣고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순종을 요청하는 수도원장과 순종해야 하는 형제들 사이에는 이처럼 상호 책임과 상호 신뢰가 밑바탕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규칙서》는 한국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국 교회는 이런 순종을 배우고 훈련하는 제자공동체로서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가?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는 순종을 배우고 훈련하는 제자공동체인가? 지역교회는 순종을 배우고 훈련하는 제자공동체인가? 이 질문들이 경감식을 일깨운다고 느끼는 목회자들에게, 《규칙서》는 순종을 배우고 훈련하는데 도움이 되는 좋은 지침들을 많이 담고 있다.


 

다음으로, 본회퍼의 《공동생활》은 공동생활이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사실을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믿는 무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전을 중심으로 보이게 모일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다 이 은총에 참예하는 것은 아닙니다. 갇힌 사람, 병든 사람, 뿔뿔이 흩어져 있는 사람, 이방 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홀로 서 있습니다. 그들은 보이는 사귐(fellowship/koinonia)이 은총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본회퍼는 2차 세계대전 당시에, 히틀러의 서슬 퍼런 통치 아래서 히틀러를 주님처럼 섬기고 협력하는 교회들을 잘못되었다고 용기 있게 비판하는 고백교회를 이끈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핑켄발데(Finkenwalde)라는 시골에 세워진 한 신학교에서 3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3년여 동안 공동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공동생활》을 기록하였다. 본회퍼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 사귐을 갖는 것은 영성 생활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이며 하나님의 은총의 대표적인 경험이었다. 공동생활처럼 기쁘고 은혜로운 것은 없다. 본회퍼의 핑켄발데 신학교 공동체는 다음과 같은 시편 133:1의 말씀을 경험하는 현장이었다. “보라, 형제끼리 한마음으로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좋고 즐거운고!”(공동번역). 또한 본회퍼는 기독교인의 공동생활은 자연인의 사귐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부름 받은 사람들의 영의 사귐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자연적인 사랑은 자신을 위해서 남을 사랑하는 것이지마는, 영적인 사랑은 그리스도 때문에 남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공동체에서의 사귐은 반드시 나와 남 사이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간의 자연적 욕망이 어느 틈에 스며들어와 기독교인의 사귐에서 “영의 힘을 박탈하고 교회에서 활동력을 거세해 버림으로 분파주의에 빠지게” 된다. 본회퍼는 공동생활이 하나님의 은총이며, 그리스도를 통과한 사귐만이 기독교 공동체의 본질을 지속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공동생활》은 한국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 교회 공동체는 예배와 교제를 포함한 공동체 만남의 기회들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닫고 감격하고 있는가? 우리 교회 공동체는 자연적인 욕구에 기초해서 서로를 직접 만나려고 하기 보다는 그리스도를 사이에 둔 만남을 지향하고 있는가? 



공동체를 세우는데 도움이 되는 영성 훈련들

  둘째, 규칙서와 공동생활은 기독교 공동체 구성원이라면 반드시 경험해야 할 영성 훈련들을 소개하고 있다. 먼저 《규칙서》가 제안하는 영성 훈련들을 살펴보자. 규칙서는 형제들의 일상생활과 관계의 원칙들을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규칙들은 다음과 같다. 제8장에서 제20장까지는 “성무일도”와 관련된 규정들을 다룬다. 성무일도는 “하나님의 일”(Opus Dei)이다. 시편 119:164,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이 하루 일곱 번씩 기도했다. 새벽기도(Lauds), 제1시(Prime), 제3시(Terce), 제6시(Sext), 제9시(None), 저녁기도(Vespers), 그리고 마지막 기도(Compline). 그리고 새벽 2시 또는 3시 이후에 일어나서 드리는 야간기도(Vigils)까지 합하면 하루 여덟 번의 기도를 드렸다. 기도 시간에는 다수의 시편을 암송하고 성경을 봉독했으며 중간 중간에 찬송을 부르고 다른 기도문들도 사용했다. 제48장은 육체노동 및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를 위해 배정된 시간과 방법을 안내한다. 규칙서  따르면 형제들의 일상은 계절에 따라 시간 분량이 다르긴 하지만 크게 여덟 번에 걸친 기도, 여섯 시간 가량의 노동, 그리고 두 시간 이상의 독서로 이루어져있었다. 규칙서에 나오는 일상생활 규칙들은 일차적으로 6세기에 봉쇄 수도원에서 정주 수도생활을 하던 수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만, 현대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영적 성장을 위해서 일상 속에서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준수할 영성 생활 규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메조리 톰슨(Marjorie J. Thompson)이 《영성훈련의 이론과 실천(Soul Feast)》에서 영성 생활 규칙을 리듬으로 이해한 것처럼 우리의 영성이 자라가는 데 필요한 영성 훈련들을 시간과 결부시켜서 리듬화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본회퍼가 《공동생활》에서 제안하는 영성 훈련들을 살펴보자. 그는 영성 훈련들은 다음과 같은 네 종류로 구분하고 있다. (1)공동생활 훈련, (2)개인적인 훈련, (3)섬김의 훈련, 그리고 (4)죄의 고백과 성만찬. 제2장 “남과 함께 사는 하루”라는 제목 아래에 제시된 공동생활 훈련에는 아침 경건회, 식탁 교제, 노동, 정오기도, 그리고 저녁기도가 있다. 특히 아침 경건회 또는 아침 예배의 구성 요소들인 시편 기도, 성서 읽기, 찬양, 그리고 공동 기도에 대하여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제3장 “홀로 있는 날”에서 제시된 개인적인 훈련에는 고독과 침묵, 묵상, 그리고 중보기도가 있다. 제4장 “섬김”에서는 혀를 다스리기, 자기를 낮추기, 경청, 적극적으로 돕기, 서로 참고 용납하기, 하나님의 말씀 증거하기, 그리고 참다운 권위의 근거는 섬김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기 등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제5장 “죄의 고백과 성만찬”은 죄고백의 중요성을 설명함과 동시에 죄의 고백이 어떻게 성만찬을 준비하는 효과적인 도구가 되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본회퍼의 영성 훈련은 20세기 초반에 그가 실천한 경험에서 나왔기 때문에 더욱 우리 시대에 가정과 교회, 그리고 신학교 공동체에 적용하기가 용이하다. 특히 한국 교회 목회 현장에 도전이 되는 부분은 시편 기도, 침묵, 경청, 죄의 고백과 성만찬과 관련된 부분들이다.  성경과 영성고전에 나타난 기독교 공동체의 특징들을 살펴볼 때마다 우리는 대단한 도전을 받는다. 철저하게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소유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공동체의 모습은 인간의 노력으로 설립한 공동체들 안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믿음으로 따르는 무리들 안에서만 가능한 공동체의 모습이다. 목회자들이 베네딕트의 《규칙서》와 본회퍼의 《공동생활》을 자주 읽고 목회자 자신과 목회 현장에 적용함으로써 교회에 공동체의 본질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글쓴이 : 이강학. '산책길' 기독교영성고전학당(spirituality.co.kr) 대표연구원이며, 횃불트리니티 신학대학원에서 기독교 영성을 가르치고 있다. 역서로 《영적 분별의 길》이 있다.


'산책길'은 2015년 한 해 동안 기독교 월간지 <목회와신학>에 '영성 고전에서 배우는 영성 목회'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목회와신학>의 양해를 얻어 이곳 산책길 팀블로그에서도 매달 글을 게재합니다. 위의 글은 2015년 4월 호에 실린 네 번째 글입니다.



  1. 이하 인용은 다음의 번역서를 사용하였다. 《베네딕트의 규칙서》, 권혁일/김재현 역 (서울: KIATS, 2011). 이하 《규칙서》라고 표기한다. [본문으로]
  2. 이하 인용은 다음의 번역서를 사용하였다. 디이트리히 본회퍼, 《신도의 공동생활》, 문익환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4). 이하 《공동생활》,이라고 표기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바람연필

원수와 함께 사는 삶 (디트리히 본회퍼)

한 줄 묵상 2014.08.28 14:17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시 133:1) …… 그가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원수들에게 평화를 주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도 홀로 수도원적인 은둔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원수들 가운데 살아야 한다.


-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정지련, 손규태 옮김, 

《신도의 공동생활》(Gemeinsames Leben),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1.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이 아름답고 즐겁다고? 정말?

난 반댈세!! 


형제자매, 공동체로 함께 산다는 것은 죽기보다 힘든 일이다. 그런데 왜 성경은 아름답다 했는가? 그것은 공동체를 그리고 나를 힘들고 아프게 하는 자들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마치 습지가 땅의 공해와 더러운 먼지를 흡수해 정화시켜주듯이,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의 공동체가 아름답다고 한 것이다. 


본회퍼는 그런 원수들을 품는 사람들을 '제자'라 부르고, 그런 제자들이 있는 곳을 '공동체'라 부른다. 내게 편한 사람, 내게 잘해 주는 사람과 함께 누가 못 지내겠는가? 말씀을 이루는 것은 우리 안에 원수를 품을 때 가능하다.


그래서 오늘도 다짐한다. 내 원수를 품기 위해 원수들 가운데 살아갈 것을. 그것은 그들도 나의 원수된 모습을 품고 지금까지 살아주었기 때문이다. / 이경희



posted by 비회원

내가 무너져야...(디트리히 본회퍼)

한 줄 묵상 2014.03.24 20:33


기독교 공동체 삶에 처음 들어오게 된 그리스도인은 종종 그리스도인의 공동생활에 대한 특정 형상을 갖고 들어와 그것을 구현하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은 이같은 꿈들을 곧바로 깨뜨려 버린다. 다른 사람에 대한 커다란 실망, 그리스도인 전반에 대한 실망,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한 실망이 우리를 짓누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참된 기독교 공동체를 알아가도록 인도하신다.  

-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정지련, 손규태 옮김, 

《신도의 공동생활》 (Gemeinsames Leben),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31.


서울에 있을 때 몸 담았던 교회는 기존 교회들의 구조와 행태에 문제의식을 갖고 소위 평신도들이 모여서 시작된 공동체 였다. 자연스레 각 성도들의 가슴에는 하나님의 교회는 최소한 이렇게 되어야 한다라는 특정 형상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들은 그 형상을 이루고자 소망과 꿈을 지닌 채 교회생활에 헌신을 하였다. 시간이 흐르자 꿈들이 더디 이루어지고 또 깨어지면서 실망과 불만이 쌓여 갔다. 사람에 대한 실망, 교회에 대한 실망, 더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실망감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반응은 교회를 떠나는 것이었다. 소위 더 나은 교회로……. 심지어 기독교를 등지는 이도 있었다. 지금 이들을 조금이라도 나쁘게 생각하거나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깊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다. 당시 어려웠던 국면들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더라면…….

본회퍼는 이야기 한다. 이러한 실망과 좌절을 통해서라야만이  참된 공동체를 알게 된다고. 우리 자신들이 무너져야 만이, 목숨처럼 중요시하는 우리의 어젠다가 내려져야만이 비로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활동만이 유일하게 우리 사이에서 역사하실 수 있기에……. 그는 덧붙여 말한다. 

"그리스도교적 공동체보다 공동체에 대한 자신의 꿈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 자신을 정직하고 진지하며 희생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 결국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파괴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31쪽) 

한국 개신교가 피폐해 짐에 따라 그 어느 때보다 대안적인 교회와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와 움직임들이 활발하다. 본회퍼의 《신도의 공동생활》전반부에는, 이런 움직임에 관계되신 분들이 새겨 볼 말씀이 많다./ 오래된오늘 임택동


posted by 오래된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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