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열매 1 : 자신과의 만남 (컬른의 브루노)

한 줄 묵상 2013.06.12 18:00

실제로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은 이곳[사막]에서 자기 자신에게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만큼 그곳에 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덕의 씨앗들을 부지런히 재배하고 낙원의 열매들을 기쁨으로 먹으면서 말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눈(eye)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눈은 신성하신 신랑을 명료하게 바라 봄으로써 그로 하여금 사랑으로 상처입게 한 그 눈입니다. 그리고 그 눈은 맑아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쁜 여가를 보낼 수 있으며, 조용한 활동 속에서 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전투의 고생스러움으로 인해, 하나님의 운동 선수들에게는 간절히 기다리던 보상이 주어집니다. 그 보상은 세상이 무시하는 평화와 성령 안에서의 기쁨입니다.


른의 브루노(Bruno of Cologne, c. 1030 - 1101), Ep 2.2; Sch 88:82-85.



카르투시오회(Ordo Cartusiensis)를 창설한 컬른(또는 쾰른)의 브루노는 사막의 고독과 침묵 가운데서 얻을 수 있는 유익을 위와 같이 설명하였다. 


먼저 첫 번째는 '자기 자신에게로 들어가서 자기 자신과 함께 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막은 하나님 외에는 의지할 데가 없는 고독한 장소이다. 그곳은 도시가 제공하는 각종 유흥(entertainment)이 미치지 않는 메마른 땅이다. 그래서 사막을 탈출하지 않고 그곳에서 버티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까지 외부의 즐거움(안목의 정욕)을 쫓던 눈을 돌려 자기 자신을 바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막은 자기 자신을 대면할 수 있는 만남의 장소이다. 자신의 외적 자아(가면)가 벗겨지고, 대신 자신의 깊은 내면 속에 존재하는 진정한 자아가 나타나는 곳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가르친다(고린도전서 3:16). 그래서 자신의 내적 자아와의 만남은 곧 그 내적 자아를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지금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자기 자신에게로 들어가 자신과 함께 거하는 삶은 자신 안에 계신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삶, 곧 관상 생활(contemplative life)이다. 그러므로 관상 생활은 거창하거나, 복잡하거나, 일반 사람들이 엄두내기 힘든 '신령한'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로 들어가 자신과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매우 단순한 삶이다. 또한 이것은 내적인 기쁨과 만족을 누리는 삶일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뿌려진 선한 씨앗들이 자라서 외적으로도 아름다운 열매들을 맺는 삶이다. 


브루노는 이러한 풍성한 삶이 황량한 사막에 들어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오늘날 사막은 지리적인 장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막의 고독은 오늘날 분주한 도시 생활의 한 가운데에서도 가능하다. 문제는 내 안에 이러한 메마른 고독을 통해서 자기 자신에게로 들어가 자신과 함께 거하고자 하는 갈망과 강한 의지가 있냐는 것이다. / 권혁일

posted by 바람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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