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을 고쳐라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한 줄 묵상 2013.11.27 07:57

"프란치스코, 가서 내 집을 고쳐라. 내 집이 완전히 폐허가 되어 가고 있단다."

 

-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Francis of Assisi, 1181-1226),  Francis and Clare: The Complete Works, Classics of Western Spirituality (New York: Paulist Press, 1982), 3.

 

유학을 와서 제일 처음 들었던 수업이 바로 프란치스코의 삶에 대한 수업이었다영성 전공으로 왔지만 기독교 영성의 역사에 문외한 이었던 나에게 그나마 들어본 이름이 프란치스코였다그러나 그의 삶그의 회심그의 영성어느 것 하나 난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 19:21)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 9:3)"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 16:24) 


프란치스코는 항상 이 세 가지 본문을 마음에 새기고끈기 있고 한결같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았다그의 영성은 단순하게 말하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었다. 프란치스코에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곧 자원하여 가난을 택하여 겸손히 교회와 이웃을 섬기는 삶이었다

 

     프란치스코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가난"을 자원한다는 그의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 가난해야 한다는 소리를 한국에서 들은 적이 있었던가? 가난은 죄의 결과이며 게으름의 결과로 듣지 않았던가! 가난함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을까점차 프란치스코를 이해하게 되면서도 여전히 남는 걱정은 과연 그의 영성이, 물질적인 축복이 곧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개신교인들에게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프란치스코가 살았던 세계는 자본주의의 태동기라 할 수 있는 시대였다봉건제도가 균열되고 화폐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신분제도도 변화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물질적인 추구가 점점 극렬해지는 시대에 교회는 점점 타락해가면서 프란치스코가 경험한대로 폐허가 되어 가고 있었다성 다미아노 성당의 십자가 아래에서 기도하던 중 프란치스코는 "내 집을 고쳐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그는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가 입던 옷과 가진 것들을 팔아 폐허가 된 교회를 수리하기 시작한다이것이 그의 수도자적 삶의 시작이었다그는 평생 '가난'을 외치며 교회를 '수리'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본받기 위해서 교회가 아닌 그에게로그가 속한 공동체로 모여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프란치스코가 외친 가난을 통해 물질과 성공과 욕심으로 폐허가 된 교회들을 수리하는 데 동참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라 하는 한 노 목사님의 헌금으로 네 믿음을 증명해보라는 식의 외침과 가난을 통해 폐허가 된 교회를 고쳐라하는 프란치스코에게 들린 하나님의 음성이 묘하게 귓가에 맴돈다. /정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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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 되어버린 기독교의 왕관 (막데부르크의 메히트힐트)

한 줄 묵상 2013.02.27 17:25

 

“저주 있으리라. 거룩한 기독교의 왕관이 얼마나 많이 훼손되었는가! 당신으로부터 보석들이 떨어져 나온 것은, 당신이 거룩한 기독교인의 신앙을 갉아먹고 위반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금이 육체의 냄새 나는 웅덩이 속에서 색이 바래졌는데, 그것은 당신은 초라하며 참된 사랑이라고는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순결은 탐욕이라는 음탕한 불 가운데서 타 버렸습니다. 당신의 겸손은 당신의 육체라는 늪 속에 묻혀 있습니다. 당신의 진실함은 이 세상의 거짓말 가운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감소되어 버렸습니다.”


막데부르크의 메히트힐트  (Mechthild of Magdeburg, 1207-1282), 

The Flowing Light of the Godhead, VI, 21.




12세기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사회여서, 오직 사회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는 소수의 여성들만이 수도원이나 은둔 처소 같은 제한된 범위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던 시기였다. 이때에 어떠한 종교적 교단에도 소속되지 않고, 자발적인 가난과 청결과 헌신의 삶을 추구하는 전혀 새로운 여성들의 무리가 형성되는데, 이들이 이른바 ‘베긴회’(Beguines)이다. 메히트힐트는 12세에 처음 성령의 방문을 경험한 뒤에 20세에 베긴회에 들어갔다. 


제도권 밖에 있었기 때문일까? 메히트힐트의 사회에 대한, 교회에 대한, 성직자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비판은 제도권 안의 어떤 거센 자기성찰보다도 훨씬 더 솔직하고 가혹하고 절실하다. 그리고 탁발수도회나 베긴회와 같은 교회 개혁을 위한 다양한 소리들이 모여 이삼 백 년 후에 일어나는 종교개혁의 토대를 형성하였다.


한국에서, 미국에서, 정말 부끄러운 목사들이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오히려 그들의 몸부림들은 신앙인이기를 포기하는 듯하다. 아마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해서이거나 진실을 인정할 수 있는 겸손이 "육체라는 늪 속에 묻혀" 있기 때문 일 것이다. 이런 소식들을 들으면 한국 교회가 정말 늪에 빠져 버린 것만 같은 그런 절망이 든다. 또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우리에겐 얼마의 시간이 있어야 또 다른 종교개혁과 같은 신앙의 회복이 일어날 수 있을까? / 소리벼리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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