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깊이 뉘우치며 간구한 아빠 (김교신)

한 줄 묵상 2016.12.28 12:10

1932년 3월 31일 목요일.

…… 젖먹이 정옥(正玉)의 기침병이 점점 심하여 적십자의원에서 진찰을 받았으나 별 효과 없다. 나 자신의 신앙인답지 않은 생활을 깊이깊이 뉘우치다.


1932년 4월 1일 금요일.

…… 젖먹이의 병의 원인은 나의 영적 나태함에 있는 듯하여, 그 병이 심할수록 깊이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 김교신 지음,《김교신일보》(서울: 홍성사, 2016), 46-47.


김교신 선생은 당시 소사역 앞의 감리교회(지금의 부천제일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던 중인 1932년 1월 30일 넷째 딸을 얻었다. 당시 그는 그 기쁨을 그날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태모(胎母)가 염려되어 7시 반 차로 소사를 출발하여 집에 오니, 오전 5시 20분경에 일녀(一女)를 더하니, 이것으로 제4녀가 생겼다. 이제는 4부 합창이 가능하구나." 


그런데 태어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은 어린 딸이 심하게 아프게 된 것이다. 당시의 신식 의료기관인 적십자의원에도 가보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작고 연약한 갓난아기가 심하게 기침을 하며 고생하는 것을 보는 부모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그렇지만 그가 아버지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별로 없었다. 그렇게 무력하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그는 자신을 돌아보았다. 혹시 자신의 영적 나태함으로 인해 아이가 아픈 것은 아닌지 돌아 보며 깊이 뉘우쳤다.


성경에는 다윗과 밧세바의 죄악으로 인해 그들의 첫 아이가 앓다가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죽은 이야기가 있다(삼하 12장).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시는 부모의 죄로 자녀를 징벌하지 않으시겠다는 말씀도 기록되어 있다(겔18:1-4). 그러므로 아이들의 질병의 원인을 부모들의 죄로 돌리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렇지만 그 때에 김교신 선생이 자신의 영적 나태함을 반성한 것은 무력한 부모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는 사람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님 앞에 자신을 겸손히 낮추며 도우심을 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며칠 뒤인 1932년 4월 3일 일기에 다음과 같이 쓴다. "정옥의 기침병이 조금 차도가 있어 안심." 이 추운 겨울, 가족의 질병으로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도 김교신 선생에게 임한 주님의 은총이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 / 바람연필 권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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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을 성서조선으로!

한 줄 묵상 2015.10.29 16:12

우리는 다소의 경험과 확신으로써 금일의 조선에 줄 바 최진최절(最珍最切)[가장 귀하고 가장 간절함]의 선물은 신기하지도 않은 구·신약 성서 한 권이 있는 줄 알뿐입니다. … 〈성서조선〉아, 너는 … 조선 혼을 소지한 조선 사람에게 가라. 시골로 가라. 산촌으로 가라. 거기에 초부[나무꾼] 일 인을 위로함으로 너의 사명을 삼으라.

 - 김교신 지음(1901-1945), KIATS 엮음, 《김교신》(서울: 홍성사), 167, 168. 

교회는 민초들이 나무뿌리만 먹으며 지냈던 조선말기와 일제강점기부터 사람들의 혼을 책임지는 의식 공동체였다. 춥고 배고픈 시절이지만‘조선을 성서 위에 세우겠다’고 일갈하던 김교신, 함석헌, 유동식 같은 어르신들이 있었기에 지옥과 같던 ‘헬조선’은 ‘성서조선’이 되었다. 교회가 변질되었다고 매도하는 목소리들이 더 큰 요즘이지만, 그래도 대다수의 목회자들은 건강한 ‘작은 교회’를 꿈꾸며, 육참골단(肉斬骨斷)의 마음으로 아픈 부위를 도려내며 갱생하려 몸부림친다. 그 일이 조선 혼을 소지한 조선 사람을 성서 위에 세우는 교회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들어  우리 나라가 ‘헬조선’이 되었다고 아우성이다. ‘5포, 7포, 9포’ 시대의 넉두리와 원한이 곳곳에서 비등하다. 왜 성서조선이 헬조선이 되었는가? 게다가, 이 정부는 조선의 혼이 가득한 조선 사람의 역사를 제 입맛에 맞게 재단하려한다. 꽃보다 더 고운 중고생들이 촛불을 들고 저 푸른기와집, 담벼락을 향해 애절하게 외친다. 왜 성서조선이 헬조선이 되었는가? 

다시 헬조선에서 성서조선이다. 교회는 조선의 혼을 책임지는 의식 공동체다. 교회는 잘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궁전이 아니라, 더 많이 갖기 위해 충혈된 눈이 모인 시장이 아니라, 시골로, 산천으로… 그분의 위로에 굶주린 이들과 함께하는 곳이다. 이제 이 조선은 최진최절(最珍最切)의 선물인 성서 위에 다시 서서 조선의 혼을 깨우고, 민중을 살리고, 역사를 새롭게 써야할 것이다. 그 때, 한반도는 지옥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를 맛볼 것이다.

타말파이스 이경희



김교신 선생이 발간한《성서조선》 창간호 (1927.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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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은 기술이 아니다 (김교신)

한 줄 묵상 2015.08.30 08:20

신앙생활이라 하여 복술자[점을 치는 사람]처럼 길흉화복을 예측하거나 특별한 청탁으로써 하나님의 총애를 편취[치우쳐 취함]하는 것을 능사로 아는 것은 대단한 오해입니다. 신앙생활은 기술이 아니라, 천하의 대도, 공의를 활보하는 생활입니다.‘망하면 망하리라는 각오로써. (성서조선 63, 1934. 4.)

- 김교신 지음(1901-1945), KIATS 엮음, 《김교신》(서울: 홍성사), 40-41.

예나 지금이나 '기술자'가 대우받는 모양이다. ‘대우받음을 꼭 돈에 비유하는 자본주의식 발상이 맘에 들지는 않지만, '기술자'들이 늘 연봉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또한 교회에서도 '종교적인 기술자'가 더 대우받는 모양이다귀신 잘 쫓아내는 권사, 본당 쩌렁쩌렁 울리게 기도하는 목소리 큰 집사, 전도사보다 더 잘 가르치는 고등부 부장 장로, 어찌 평신도 뿐이랴! 기술자를 찾는 교회 흐름을 간파한 목회자들 역시, 찬양인도 기술, 설교 잘하는 기술, 새신자 정착 프로그램 기술, 상담 기술을 배우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김교신은, 신앙생활은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신앙생활은 하늘 문이 열리는 은혜에 취해(천하의 대도), 그 은혜가 주의 백성들에게 고르게 흘러가게 하는 것(공의)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곧, 죽으면 죽겠다는 각오로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아무 것도 의지하지 않고, 신 앞에 홀로 바로 선 존재]로 사는 것이 신앙생활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우리는 기술자를 꿈꾸는가? 아니면 단독자를 꿈꾸는가?

타말파이스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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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탄생과 가치의 전복 (김교신)

한 줄 묵상 2014.12.20 13:18

성탄일은 벌써 조선에 있어서도 명절화하였습니다. 신자도 이 날을 축(祝)하고 불신자도 이 날을 하(賀)합니다. …… 이 날을 축하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저의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를 흩으셨고 권위 있는 자를 그 지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낮은 자를 높이셨고..." (눅 1:51-52).


마리아가 그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미한 것은 단지 평화의 신, 자비의 신인 연고가 아니었습니다. …… 예수의 탄강은 인간 가치의 총 전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 인생의 갈구하던 행복의 표준이 전도되었습니다. …… 그리스도의 탄강으로 말미암은 이 변혁과 이 척도의 전도(거꾸로 넘어짐)에 능히 견딜 자가 누구입니까? 성탄을 축하하는 자에게 깊은 생각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 김교신 지음 (1901-1945), KIATS 엮음,《김교신》(서울: 홍성사), 47-49.


그리스도의 탄강(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 오후.

김교신은 그리스도의 오심이 단순히 '평화와 자비'를 주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가치를 '뒤집기'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오늘 내가 꿈꾸는 것이 예수님으로 인해 전복되어야할 것은 아닌가?

오늘 우리의 교회가 추구하는 것이 예수님으로 인해 무너져야 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성탄은 떠들석하고 분주하게 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탄강(탄생)을 두려워하고 자기가 믿는 그 가치를 분별해야 할 시간이다.  


그리스도의 탄강(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 오후, 

그 전복을 견뎌낼 수 있을까? 심히 무겁다. /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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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弔蛙, 개구리의 죽음을 애도함) (김교신)

한 줄 묵상 2014.06.20 02:12

봄비 쏟아지던 날 새벽, 오래간만에 친구 와군(개구리)들의 안부를 살피고자 담 속을 구부려 찾았더니 오호라, 개구리의 시체 두세 마리 담 꼬리에 부유(죽어서 물위에 떠다님)하고 있었습니다. 혹한에 동사한 개구리 시체를 모아 매장하여 주고 보니, 담저에 아직 두어 마리 기어 다닙니다. , 전멸은 면했나 봅니다!

- 김교신 지음 (1901-1945), KIATS 엮음,《김교신》(서울: 홍성사), 174.[각주:1]



이 글은 신사참배를 강제하는 일제강점기에서도 변절하지 않는 신앙인이 남아있음을, 전멸하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이 글로 인해 김교신이 발행하던 <성서조선>이 폐간당하고, 그는 일본경찰에 의해 취조를 받는 고초를 겪었다. 선생은 이러한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민족독립정신을 일깨운 지사였다. 그렇게 세운 나라가 이 땅이요, 그렇게 피흘려 건져낸 복음이 이 땅의 기독교다. 


그런데 요즘 소위 보수적 신앙인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기독교는 이런 복음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라, 일본 명치유신의 대부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과 같은 사회적 진화론에 뿌리를 두고, 조선 정복을 정당화하는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하는 듯하다. 그래서 그들은 입을 열면 게으른 국민을 깨운 일제치하’, ‘일제 36년은 경제 번영의 기초를 세운 하나님의 기회라는 말을 운운하며 박정희의 유신과 조국 근대화론을 옹호하고 있으며, 또한 뉴라이트의 세계관의 초석을 제공하는 망언을 쏟아내고 있다.

 

과연 혹한을 이겨낸 개구리()는 정한론을 기다려온 생명들일까과연 민주화의 대열의 최전선에서 민족의 아픔을 같이 한 기독교는 일제강점기부터 기득권을 누려온 이들을 옹호하는 그네들의기독교에 뭍혀야만 하는가어찌 이런 저속한 횡포에 어렵게 살아난 개구리가 다시 죽음에 방치되도록 내버려 둬야 하는가그러나 김교신의 말처럼 아직 다 죽지 않았다!’ ‘전멸은 오지 않으리라비록 더 엄혹한 시간이 온 다 할지라도, 우리의 기독교가 어떤 사명을 가지고 이 땅 위에 존재하는지를 안다면 그네들의 기독교와 다른 우리의 기독교의 생명은 꺼지지 않으리라! / 이경희 








  1. *1942년 3월호에 실린 글, ‘조와弔蛙’는 <성서조선> 폐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총독부 당국은 김교신이 이 글에서 조선인을 개구리에, 일본의 조선 지배 정책을 혹한에 비유하여 민족의 독립을 암시했다하여 김교신을 비롯하여 함석헌, 송두용 등 13명을 투옥하였고, 독자 400여 명까지도 취조하였다 (173면의 각주에서 인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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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사실대로 합시다 (김교신)

한 줄 묵상 2014.05.17 05:14

모 연석에서 타교 신자인 청년 문학사가 권주하여 말하되, “우리는 술을 술로 마시지 않고 반야탕이라 변칭(變稱)하여 마신다. 너희 기독 신자가 만일 계명에 주저하는 바가 있거든 우리를 모방하여 술의 명칭을 변경함이 양책(좋은 계책)이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 술을 마시면 불가한 줄로 알았던 것이 반야탕이라 변칭하면 양심의 가책 없이 마실 수 있는 겁니까? … 술은 술이라하고 물은 물이라 합시다. 종교 신자가 되기 전에 정직한 학도가 되고 충실한 시민이 됩시다 사실을 사실대로 합시다.”

- 김교신 지음 (1901-1945), KIATS 엮음,《김교신》(서울: 홍성사), 35-7.



김교신 선생은 종교인(신앙인)이 종교 이전에 충실한 시민이 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술을 변칭하여 물이라고 하는 것은 욕심 때문에 자기를 속이는 것이요 사실을 거짓으로 바꿈으로 하나님에게 득죄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물론 이 글을 요즘 우리의 아픔에 적용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겠지만, 김교신 선생의 '충실한 시민' '사실을 사실대로'라는 개탄이 지금 이 시대의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다. 

마치,

"뭐가 그리 두렵소뭐가 그리 두려워서 공무원들과 언론은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 그 '골든 타임'에 한 명의 잠수부도 보내지 않고 "오백여 명의 잠수부가 투입되고, 수십여 척의 선박이 구조에 동참하고 있다"고 거짓을 말하였소. 대통령이 그리 두렵고, '데스크'가 그리 두려워서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였소? 나는 사실 두렵소간교하고 눈치 빠른 언론은 정부의 지침대로 북풍과 경제풍으로 이 조문 분위기를 덮으려고 할 것이고, 불쌍한 서민들은 다시 바쁜 일상의 궤도에 지쳐, 이 '만행'을 잊을까 두렵소. 그러면 그들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몇 명의 '희생양'(해양경찰, 구원파, 선장 등 선박직 직원들)의 핏 값으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대낮에 대로를 활보할 것이기에사실이 다 가려지기에  나는 정말 두렵소!!" /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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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주인 (김교신)

한 줄 묵상 2014.03.14 00:00

"생명이 그 귀중함을 망각하고 그 자존심을 투기(내던져 버림)할 때에 그 생명은 일단(계단의 한 층계)을 비약한 생명이요, 한 층 더 고귀한 생명입니다. 우리는 그 생명의 극도의 완성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봅니다. 말씀이 육으로 되사 세상에서 생활하셨으나 저는 보내신 이의 의사에 반하여서는 한 가지도 한 것이 없었고, 보내신 이의 뜻에 순종하였기 때문에 십자가에까지 무능한 자처럼 달려 버렸습니다."

- 김교신 지음(1901-1945), KIATS 엮음《김교신(서울: 홍성사), 46









맨 날 죽으란다! 예수님처럼 또 죽으란다! 투기한(내 던져진) 생명이 고귀한 생명이란다! 휴! 힘들다. 그 길을 걷기가 참 벅차다.


김교신의 글을 읽다가 같은 맥락의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보게 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나니…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리고 궁금해진다. 김교신이 그리고 바울이 날마다 죽을 수 있는 힘이 무엇이었을까?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때문이란다. 난 역시 믿음이 없어….


그럼 그 믿음이 뭘까? 난 아무리 예수를 믿어도 내가 좋을 때만 예수의 ‘내’ 믿음이 나오지, 내가 죽고 깨지는 순간에는 ‘내’ 믿음이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이 믿음의 주체가 ‘나’일까? ‘내 믿음’일까? 그러면 내가 종교생활을 잘하면 내 안에 꽉 차 있고, 그렇지 않으면 없어지는 그런 ‘내 믿음’일까?


헬라어로 갈 2:20을 찾아본다. 이 믿음의 주체가 누구인지 알고싶다. 헐! 이 믿음이 내 것이 아니란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이란다. 믿음이라는 단어가 여격이기에 여격이 이 믿음의 주인인데, 20절의 여격은 하나님의 아들밖에 없다. 그 믿음의 주인이 가 아니란다.


그렇다!! 이 믿음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많게 보이거나 적게 보이는 내 믿음이 아니었다. 이것은 그분이 전폭적으로 내게 넣어주신 선물이요,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게 하는 생명이다. 내가 삼층천에 오를 때에도 교만하지 않으며, 내가 스올에 머물 때에도 낙담하지 않는 것은 이 믿음이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맨날 죽으란다. 그리고 또 죽으란다. 그래도 죽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죽을 때 내 믿음이 아닌 그 분의 믿음이 날 살리기 때문이다. 예수님처럼 투기한(내 던져진) 생명이 되면 고귀한 생명이 되기 때문이다. /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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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가졌는가? (김교신)

한 줄 묵상 2014.02.14 11:16

"우치무라 선생은 여하간 위대한 선생입니다.  마침 우치무라 선생 일생의 대 사업인 로마서 강의가 시작되어 초회부터 비상한 열심으로써 참석하였습니다.  당시에 우치무라 선생의 저서를 읽은 것은 독서하였다기보다 기갈(굶주림과 목마름)하였던 자가 몰체면하고 음식물을 탐식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노니 저는 선생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치무라 간조란 인간의 지도를 통하여 복음의 오의(義/깊은 뜻)를 가르침 받았다는 것입니다."

- 김교신 지음(1901-1945), KIATS 엮음《김교신(서울: 홍성사), 120, 127, 131







     우리에게 '무교회주의자'란 주홍글씨로 폄하되어 알려진 김교신은 사실, 한국교회가 세계에 내세울 만한 탁월한 교육가이며, 민족운동가요, 독교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그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 중 우리에게 익숙한 사람들이 여러 명 있다. 농학자이며 사회운동가이며 수필가인 유달영, 한국의 슈바이처인 장기려, 《태백산맥》과 《아리랑》의 작가 조정래, 그리고 영원한 마라토너 손기정이다. <성서조선>을 통한 그의 삶과 사상은, 암울했던 일제침략기의 민초들이 민족적 정체성을 깨닫고 '조선산 기독교'를 만들수 있도록 도와준 토양이 되었다.

     그가 그렇게 '선생'될 수 있었던 이유, 그렇게 가르쳐 사람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그에게 우치무라 간조라는 스승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먼저 스승되기보다 오히려 '더 많이 배우는' 제자가 되었다. 그런의미에서 히브리어에 '가르치다'라는 단어가 없다라는 점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히브리어는 '배우다'(라마드)라는 보통형 동사(칼)가 '더 많이 배우다'(리미드)라는 강조형 동사(피엘)이 되면 '가르치다'라는 뜻을 만들어낸다. 즉 히브리어에서 '가르치다'라는 단어는 없고, '배우다'라는 단어의 강조형태인 '더 많이 배우다'가 '가르치다'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다시 말해서 가르치고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먼저 '더 많이 배우라'는 말이다.

     이미 모더니즘적인 패러다임이 종언을 고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더니즘적 자기 관리와 자기 강화의 기술로 세상에 영향을 주기위해 '일만 스승'(고전 4:15)이 되려 한다. 그러나 먼저 배움이 없이는, 그리고 더 겸손히 자신의 기갈한 상태를 점검해주고 꾸짖어주는 스승 앞에 더 많이 배우지 않고는, 참 선생이 될 수 없다. 김교신이 먼저 그의 스승 우치무라 간조에게 몰체면하고 복음의 깊은 뜻을 더 많이 배운 것처럼 이 땅의 가르치려 하는 자들이 먼저 '더 많이 배울' 스승을 가져할 것이다. 

지금 너의 상태를 물끄러미 봐주고 그 기갈을 채울 스승을, 그 사람을 가졌는가? /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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