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의 회복 : 한 해의 마무리와 시작을 위한 기도 안내

   대림절을 시작으로 신앙력은 이미 한 해가 시작되었어요. 새해인 것이죠.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의 시간은 한 해의 끝자락을 향해 달려갑니다. 신앙력과 세상력의 사이에서, 우리는 전자에 의한 고요한 기다림과 출발보다는 후자가 주는 힘에 더 압도되는 것 같아요. 모임도 많고 마음도 분주합니다. 커다란 박스를 꺼내놓고 1231일까지 한 해의 모든 것을 다 쓸어 담고 테잎으로 서둘러 봉인해 버리는 듯합니다. 그리고 11일을 장모가 사위 맞듯 그렇게 가슴만 두근거리는 채 일거리에 쌓여서 정신없이 맞아들입니다. 지난 한 해를 음미할 시간도, 새해를 조용히 가늠해볼 시간도 빼앗긴 채, 우리는 고속도로를 그저 질주합니다. 지나온 길에 대해 조용히 생각하며 방향과 속도를 조정하는, 즉 성찰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위협하는 이 강력한 힘, 저는 이 힘을 악마적이라고 느낍니다.

    우리의 지난 한 해는 자기 자신의 구체적인 역사입니다. 시간과 공간과 인물, 즉 사건으로 구성된 나 자신의 역사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영혼 구원이라는 말은 나란 사람이 존재하며 경험한 이 구체적 사건이 구원받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체없이 막연하고 모호한 것이 아니지요.

    이 세상의 인간 실존은 흙으로 와 흙으로 돌아가는 소멸 속에서 허무감을 끌어안고 삽니다. 이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보상받기 위해 인간은 온갖 것에 집착합니다. 건강, 젊음, 미모, 물질, 권력. 거기다가 신앙인들은 한 걸음 더 하여 교리를 맹신하는 종교 활동과 자기중심적 기복 신앙, 막연한 내세 만능주의를 움켜잡습니다. 그러나 소멸에 대한 두려움은 한 번도 건드려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삶에서 자꾸 건조한 모래 바람이 이는 까닭은 집 지은 기초가 모래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이 두려움으로부터 구원해 주지 못합니다. 우리는 두려움에 이끌려 울부짖을 일이 아니라, 그저 차분한 시선으로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 근거 없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을 뿐입니다. 성탄의 메시지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입니다. 그러하다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 온갖 흔적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흔적을 구체적인 내 삶의 역사에서 발견할 때, 우리는 구원과 사랑, 거룩함에 대해 구체적인 감각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일관된 방향과 그 방향을 향해 가속되는 안정된 힘을 느낍니다. 소멸에 관한 막연한 두려움은 근거 없음이 드러납니다. 이 근거 없음에 쫓겨 다녔다는 생각이 들면 어이가 없어지고 다시는 그렇게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전전긍긍하며 살고 싶어지지 않습니다.

    대림의 상징인 성모 마리아와 세례 요한의 특징을 생각해 보세요. 한 분은 생각하시는 분이었고, 한 분은 광야로 물러나신 분입니다. 성탄의 시기와 한 해의 끝자락을 보내면서, 그것이 시·공의 물러남이든, 마음의 물러남이든, 좀 차분히 물러나고픈 갈증을 많이 느낍니다. 모래바람을 피하고픈 마음이요.

    그래서 지난 1224일에 저는 교회 식구들과 함께 하루 피정을 보냈습니다. 사역한 지 3년 반 만에 하루 피정을 열었으니, 저도 참 느리고 게으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함께 기도하시는 분들께 성탄 선물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맨 날 받기만 하다가 저도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사람을 기쁘게 하는지 예전엔 잘 몰랐습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되다는 것은 기쁨의 차원에 관한 말이 분명합니다. 주는 것은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줄 수 있음이 얼마나 기쁜지요! 하나님께서도 성탄에 자기 자신을, 독생하신 성자를 우리에게 주시고 이렇게나 기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한해의 끝자락을 저와 함께 하나님 앞에 고요히 앉아 보시겠어요? 하나님 앞에 고요히 앉아 자기 존재를 들여다보는 모습, 저는 그것이 가장 인간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함께 인간다움을 회복해 보시면 어떨까요?




기도 안내


    제가 안내하려는 주제는 한 해 동안 구체적인 내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함께 하셨는지를 깨닫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속에 머물며 2016년을 가늠해 보기입니다.


* 먼저, 첫 번째 기도 자료를 준비합니다

    한 해 동안 내게 일어난 사건을 기록해 보세요. 예배와 영성 생활, 이웃 사랑(봉사), 교회 봉사, 가정, 직장, , 그리고 사회적인 부분까지 항목을 생각하며 크게 크게 적습니다. 특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는지,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는지를 생각하면서 적어 보세요. 월별로 적는 것도 도움이 되어요.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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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 기도할 때는요. 각 사건들을 기억하세요. 공간들, 상황들, 사람들을 떠올려 보세요. 거기서 올라오는 느낌들을 깊게 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려 보세요. 성경 말씀은 호세아 111~4절 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린 아이일 때에내가 그를 사랑하여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냈다. 2 그러나 내가 부르면 부를수록이스라엘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갔다짐승을 잡아서 바알 우상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치며온갖 신상들에게 향을 피워서 바쳤지만, 3 나는 에브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었고내 품에 안아서 길렀다죽을 고비에서 그들을 살려 주었으나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4 나는 인정의 끈과 사랑의 띠로 그들을 묶어서 업고 다녔으며그들의 목에서 멍에를 벗기고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기도하시면서 다음 요점으로 도움을 삼아 보세요.

1) 내 삶의 방향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깊게 보세요.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세요? 아니면, 뭔가 잘 못 된 것 같으세요? 이 질문과 더불어, 기도 중에 내면에서부터 올라오는 나의 느낌을 인식하면서, 성경 말씀으로 하나님과 대화(교제)하세요.

2) 한 해 동안의 사건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내 삶을 어떻게 이끄셨는지를 바라보세요. 하나님께서는 내 삶의 각 사건들을 통해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셨는지요? 나는 성숙해졌나요? 나는 자유로워졌나요? 나는 고요해졌나요? 사랑이 많아 졌나요? 관대해 졌나요?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해졌나요? 신앙심이 깊어졌나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자라났나요? 부르심에 민감해졌나요? 만일 그러하다면, 하나님께서 구체적인 나의 사건 속에서 나를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가르치셨는지 묻고 대화해 보세요. 아버지 같으셨나요? 엄마 같으셨나요? 선생님, 연인, 친구? 봄볕 같으셨나요? 시원한 소나기? 곡식을 익게 만드는 가을 햇살? 사람을 고요하게 만드는 한겨울 깊은 밤?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말씀을 떠올리면서 기도해 보세요.

3) 만일 그러하지 않은 여러 마음들이 든다면, 과연 하나님은 나의 지금 이 느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내가 바라보고, 판단하고, 느낀 이 감정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은 어떠 하신지를 물어보세요. , ‘나의 느낌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과 뜻과 마음을 알려 달라고 하세요. 말씀을 떠올리면서 말씀의 내용을 붙들고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기도임을 기억하세요. 자기 분석이 아니예요. 하나님의 말씀에, 그리고 하나님 당신께 초점이 가 있어야 해요.


다음 사항을 주의하세요. 

1. 기도 주제를 잃어버리거나 분심(잡념)이 올라와서 딴 생각으로 흘러갔어도, 다시 기도하던 지점으로 돌아가시면 되요.

2. 어떤 느낌에 깊이 함몰되거나 압도되어 기도를 놓치지 마세요. 기도는 대화요, 교제예요. 즉 오고 가야 해요. 인내하지 말고, 말씀을 붙들고, 사건을 기억하고, 위의 1),2),3)을 알려고 하나님께 간절히 집중하세요. 그렇다고 욕심을 내라는 것은 아니구요. 하나님께 반응하라는 말이예요. 감정을 견디지 말고. 특히,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거나, 지루하다 거나, 하는 것도 느낌이예요.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과 대화하세요. 지루함, 당황스러움을 인내하지 마세요.

3. 기도를 아마 여러 번 반복해야 할 거예요. 각 항목으로, 아니면 시간 순서로, 한 해의 사건으로 충분히 기도하세요. 그리고 각 기도를 성찰하시고요.

이렇게, 한해가 점점 하나의 메시지로, 하나의 경험으로 감지가 되기 시작하면, 2016년 새해에 대한 기도로 나아갑니다.


* 두 번째 기도는요, 이렇게 해 보세요.

    성탄절을 보내면서 참 빛이신 주님이 오셨어요. 빛 되신 주님을 기억합니다. 그 빛 아래서 고요한 마음으로 2016년을 떠올려보세요.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모습으로, 어떤 마음으로, 어떤 뜻, 어떤 말씀을 가지고 다가 오실지를 기대해 보세요. 그 기대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조용히 품고, 또 품으세요. 깊게 깊게 말씀을 고요히 품고 응시합니다. 이번 기도에서는 생각을 펼쳐가거나 느낌을 떠올리지 않도록 하세요. 그저 빈 마음에 말씀을 품고 품어 말씀 자체에서 오는 기운과 힘과 느낌에 고요히 머무세요. 분심이 올라오고 생각이 많아지고 집중이 흩어지면, 다시 말씀을 기억하고 품어 보세요. 그 끝에 내면에서 올라오는 통찰이나 느낌이나 하나님과의 일치된 교제를 거부할 이유는 없어요. 마음 열고 받아들이시면 됩니다말씀은 이사야 4319~ 21절입니다.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전체를 천천히 반복해도 되구요, 기도 중에 품을 말씀 구절을 선택하시면서 기도 시간 내내 품고 계셔도 되어요. 저는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이라는 구절로 이끌림을 받았어요이 글을 쓰는 오늘은 1226일인데, 저도 일주일 내내 첫 번째 기도를 하면서 보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새해엔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반드시 내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 속에 머물면서 시작하려구요.

   이 기도 안내가 2015년을 애쓰면서 살아오신 여러분들에게 작은 선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요, 2016년에 뵈어요. / 해'맑은우리 주선영


posted by 해'맑은우리

희망과 사랑처럼 : 대림절 그리고 윤동주의 〈사랑스런 추억〉

대림절(Advent). 기다림의 계절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일 기다린다. 버스나 지하철을 기다리고, 누군가의 전화나 편지를 기다리고, 용돈날이나 월급날을 기다리고, 학교나 직장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은 합격 통보를 기다린다. 그 외에 모든 이들은 어떤 좋은 소식을, 또는 그리운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런데 특히 한 해의 마지막이 되면 그 어느 때보다 기다림과 그리움이 깊어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성탄절이 있다.


저마다 성탄절을 기다리는 이유가 다양하겠지만,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대림절과 성탄절을 과거에 사람의 몸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장차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때로 삼아 왔다. 그러다보니 ‘오늘’은 ‘어제’와 ‘내일’ 사이에서 늘 소외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성탄 절기 속에 새겨진 기억과 기다림은 마치 급행열차 같아서 ‘과거’에서 출발해서 ‘미래’를 향해 달릴 뿐, ‘현재’라는 역은 요란한 소리와 먼지만 남긴 채 무정차로 통과해 버리는 때가 많은 것 같다. ‘과거에 이미 오신 그리스도’와 ‘미래에 장차 오실 그리스도’ 사이에서 매년 반복되는 대림절과 성탄절은 올해도 바쁜 연말의 일상 속에서 연말 풍경의 하나로만 지나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교회와 백화점에는 성탄 장식이 화려하게 반짝이고 있는데, 대강절은 별다른 감동 없이 내 삶을 스쳐지나가고 있다.



Photo by Gustavo Ampelio di Borgogna



기차를 기다리던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윤동주 시인이다. 그가 일본 유학 시절에 쓴 작품 중에 〈사랑스런 추억〉이라는 시가 있는데, 1연이 이렇게 시작된다.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1연의 시간적 배경은 초봄이고, 공간적 배경은 서울이다. 이 부분만 보면 시인이 서울에 있는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아니다. 5연에 이르면 시인은 동경에 있고, 계절 또한 봄이 끝나는 때임이 나타난다.


봄은 다가고 ―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실제로 윤동주 시인은 동경의 릿쿄(입교)대학에서 공부할 때에 이 시 〈사랑스런 추억〉을 썼고, 시의 제일 마지막 줄에 “5월 13일”이라고 시를 쓴 날을 분명히 적어 두고 있다. 이처럼 시적 화자는 현재 일본 동경의 조그만 하숙방에 있다. 그러면서 과거 어느 이른 봄 아침에 서울의 한 정거장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자신을 추억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시에는 낯선 남의 나라에서 지내고 있는 시인의 외로움과 그리움이 깊이 배어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시인의 추억 속에 “옛 거리에 남은 나”가 현재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6, 7, 8연은 아래와 같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까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시인의 몸은 이미 서울을 떠나 동경에 있다. 그런데 시인은 “옛 거리에 남은 나”가 있어, 그가 오늘도 정거장 가까운 언덕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서성거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리적인 세계에서는 비논리적인 진술이지만, 시의 세계에서는 가능한 상상력이다. 그것은 시인이 지금 과거의 나를 추억하고 있고, 과거의 기다림이 오늘도 계속 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1연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다리던 ‘초봄의 나’를 5연에서 ‘늦봄의 나’가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하고 있다. 곧, “희망과 사랑”이 ‘과거의 나의 기다림’과 ‘현재의 나의 그리움’을 이어주고 있다. 그래서 과거의 기다림은 과거로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의 그리움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 기억과 기다림은 현재를 무정차로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그리움과 기다림 속에서 현재라는 역에 분명히 정차하고 있다. 그래서 “옛 거리에 남은 나”는 빛바랜 사진 속의 인물이 아니라, 오늘의 추억 속에서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면 청년 윤동주가 기다리던 것은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그는 기차를 기다렸지만, 기차가 아니라 기차를 타고 올 “누구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 “누구”가 어떤 존재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그는 그 “누구를” “희망과 사랑처럼” 기다렸다. 그 희망과 사랑이 얼마나 간절한지 시인은 자신을 희망과 사랑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희망이란 언제나 현재에는 부재하는 어떤 대상을 바란다. 그리고 사랑이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나도 모르게 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희망과 사랑처럼” 기다렸던 “누구”는 현재에는 부재하지만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그리워하는 대상이다. 그래서 이 시에서 “누구”는 어떤 특정인물에 한정되지 않는다. 현재 함께 있지 않은 가족과 친구도 될 수 있고, 암울한 시대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근원적인 그리움은 어떤 특정한 인물을 만난다고 해서 완전히 충족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가 《고백록》의 첫 부분에 쓴 것처럼, 우리의 모든 그리움의 종착역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각주:1]





벌써 대림절도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이 천여 년 전에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신 아기 예수를 생각한다. 예수께서 탄생하시던 날 밤, 천사는 들의 목자들에게 오늘 구세주께서 너희에게 탄생하셨다[각주:2].”(눅 2:11)라고 전했다. 물론 사람의 몸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이미 아버지께로 가시고 육체적으로는 이 땅 어디에도 계시지 않는다. 마치 〈사랑스런 추억〉이란 시를 쓸 때, 일본에서 공부하던 윤동주의 몸이 서울이나 북간도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번 성탄절에도 우리의 그리움과 기다림 속에서 우리에게’ 다시 태어나실 수가 있지 않을까? 오신 주님, 그리고 오실 주님을 향한 깊은 그리움 속에서 마굿간과 같은 우리의 마음과 삶에 아기 예수를 위한 작은 공간을 마련해 놓고 기다린다면 말이다. 그렇게 한다면, 그리스도는 과거의 아기 예수, 미래의 재림주가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에서 임마누엘의 하나님, 곧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태어나시지 않을까? 우리의 삶과 인격 속에 그리스도를 출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가 서로의 모습 속에서 태어나신 그리스도를 알아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희망과 사랑처럼” 그분을 그리워하고 기다린다면 말이다. / 바람연필 권혁일


  1. 《고백록》, Book I, i (1). [본문으로]
  2. born to you / ἐτέχθη ὑμῖ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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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비처럼 내리게 하라 (Roráte Caéli-대림절 찬송)

 하늘들아, 위로부터 이슬을 내려라. 그리고 구름들이 정의를 비처럼 내리게 하라!

Roráte caéli désuper, et núbes plúant jústum.

- 대림절 찬송 "Rorate Caeli"에서



지금 미국 캘리포니아에는 오랜 가뭄 끝에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수 년 동안 가뭄을 겪으니 이 노래에 담긴 기다림이 얼마나 간절한지 좀 더 마음에 와닿는다. 이 노래는 아주 오래전부터 독일어권의 교회들을 중심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그레고리안 성가(Gregorian chant)이다. 주로 대림절(Advent)에 가톨릭 교회에서 불려졌으며 메시야의 오심을 대망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모두 4절로 이뤄져 있으며, 이사야 45장 8절의 라틴어 번역(Vulgata)에서 가져온 첫 구절(위의 인용구)이 후렴구로 반복된다. 1절과 2절에서는 노래를 부르는 이들(기도자들)의 죄를 고백하고,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었음을 호소한다. 3절에서는 메시야에 대한 기다림이 절정에 이르고, 4절에서는 하나님이 백성들의 호소에 대답하신다. 3절과 4절의 가사를 의역해서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3. 오, 주님! 당신의 백성이 겪는 고통을 보소서. 그리고 당신께서 약속하신 그를 보내어 주소서. 땅의 통치자, 어린양을 보내소서. 사막의 바위로부터 시온의 딸의 산으로 보내소서. 그래서 그가 포로된 우리의 멍에를 벗기게 하소서.


4. 위로를 받으라, 위로를 받으라, 나의 백성아. 너의 구원이 속히 임할 것인데, 왜 슬픔 속에서 쇠약해지겠느냐? 왜 슬픔이 너를 사로잡았느냐? 내가 너를 구원할 것이다. 두려워 말라. 왜냐하면 내가 너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너의 구원자이기 때문이다.


수천 년 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을 슬픔과 고통에서 건져낼 메시야를 간절히 대망하였다. 그리고 과거에 그리스도께서 오심을 기념하고, 미래에 다시 오실 것을 기대하는 대림절에, 그리스도인들은 이 노래 "Rorate Caeli"를 부르며 주님이 현재적인 고통에 있는 이들을 건져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해왔다. 오늘날도 우리는 정의가 메마른 고통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하늘을 향해 "너 하늘들아, 위로부터 이슬을 내려라. 그리고 구름들이 정의를 비처럼 내리게 하라!"고 명령하시는 주님의 목소리가 하늘과 땅에 울려퍼지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  권혁일




posted by 바람연필

기다리는 즐거움 (마르틴 루터)

한 줄 묵상 2013.12.09 13:09

마음을 준비하여 

그리스도의 오심을 

즐겁게 기다리기 위한 기도


사랑하는 주님, 
저희를 깨워 주시옵소서. 저희들을 준비시켜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주님의 아들께서 오실 때에 그분을 기쁘게 맞게 하소서. 그분을 순결한 마음으로 섬기게 하소서. 자비를 베푸셔서 그날이 속히 오게 하소서. 저희에게 은총을 베푸사, 저희가 지혜와 힘으로 준비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날이 올 때까지 저희로 지혜롭고 올바르게 걷게 하소서. 저희로 주님의 친애하시는 아드님의 오심을 즐겁게 기다리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 슬픔의 계곡을 벗어나는 은총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각주:1]


-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Luther’s Prayers (Minneapolis, MN: Augsburg, 1994), 106.


기다림이 즐거울 때도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기다리는 일은 매우 힘들고, 많은 인내를 요구하지요. 특히 우리가 "슬픔의 골짜기"를 걷는 것과 같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성탄절을 기다리는 4주간을 대림절(Advent)이라고 하지요. 대림절은 또한 마지막 날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소망하며 기다리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예로부터 박해나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기다려 왔습니다. 아마 어려운 환경 가운데에서 교회를 개혁해 나갔던 마르틴 루터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고통이 쓰라릴수록 기다림도 더욱 깊어지는 법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또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나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주님의 약속이 이미 낡고 희미해져 버렸다고 느껴지나요? 순결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내는 데에 스스로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나요? 이 대림의 기간에 루터의 기도를 드릴 때에, 주님께서 주시는 소망과 기쁨이 여러분의 기다림을 힘껏 붙들어 주기를 바랍니다. / 권혁일






  1. *<b>For Preparation to Await Christ’s Coming with Joy</b> </br></br> Dear Lord, awaken us that we may be prepared to receive your Son with Joy when he comes and to serve him with a pure heart. Graciously hurry the coming of that day. Bless and prepare us with wisdom and strength that in the meantime we may walk wisely and uprightly. May we joyfully wait for the coming of your dear Son and so depart blessed from this valley of sorrow. Amen. [본문으로]
posted by 바람연필

크리스마스의 기적 (W.H. 오든)

한 줄 묵상 2013.12.06 13:19

죽을 인생에 절실한 건 기적. 

영원이 시간 속 사건이 되고

무한이 유한한 사실이 되는 것이 어찌 가능할까. 

가능한 일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나니. 

죽을 인생에 절실한 건 기적. 


We who must die demand a miracle.

How could the Eternal do a temporal act,

The Infinite become a finite fact?

Nothing can save us that is possible:

We who must die demand a miracle.


W. H. Auden, FOR THE TIME BEING, 'A Christmas Oratorio'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기적. 


그래서 주신

'크리스마스의 기적'.


예수님은 '기적'이시다.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신 기적. 


이 기적을 믿고

영의 눈이 열려

이 세상을 있게 하고

너와 나를 있게 하는 

사랑의 기적을 알아보고 

오늘도 다시 살게 하소서. 

기적처럼.


/ 대림절 첫째 주. 이종태

posted by 산처럼

내 마음, 주님이 장사(葬事)되신 곳 (마카리우스)

한 줄 묵상 2012.12.07 05:53
  • 마음에 대한 신랄한 묘사가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이 사람을 더럽힌다'는 주님의 말씀(마태복음 15:18-20)을 생생하게 이해하도록 하네요.

    BlogIcon 바람연필 2012.12.07 06:06 신고
  • "그들이 나를 부르고 있다"-- 지옥이 되어 버린 내 마음의 신음 소리, 비명 소리를 우리가 당신을 부르는 소리로 들어주시는 주님...

    BlogIcon 산처럼 2012.12.07 13:17 신고

무덤에 관해 말하는 것을 들을 때, 눈에 보이는 무덤만을 떠올려서는 안 됩니다. 왜냐햐면 그대의 마음이 곧 무덤이요 묘지이기 때문입니다. 사탄과 그의 졸개들이 당신의 마음과 생각에 요새를 건설하고, 또 그 안에 길을 내고, 고속도로를 뚫어 여기 저기에서 활개치고 다닌다면, 그대는 지옥이며, 무덤이며, 묘지요, 하나님에 대하여 죽은 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 마음과 생각 속에서 사탄은 위조지폐을 찍어내고, 쓰디쓴 잡초의 씨를 퍼뜨리고 있으며, 옛 누룩으로 그것들을 부풀리고 있습니다. 이제 인간의 마음은 탁한 진흙탕물을 토해내는 구덩이가 되었습니다.

 

- 이집트의 마카리우스(Macarius of Egypt)c.300-390) 『신령한 설교』 (은성), 11. 11.

 

마카리우스가 여기서 그리고 있는 인간 현실, 아프고 슬프지만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나의 마음은 무덤과 같이 어둡고 불결하고 죄가 넘쳐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만들어 내는 생각들은 참으로 지옥을 방불케 할 때가 많다!


그런데 그 지옥 같은 마음의 가장 깊은 곳으로 주님께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죽음에게 명령하십니다. “네가 억류하고 있는 영혼들을 풀어 주어라, 그들이 나를 부르고 있다.” 이렇게 주님은 단단히 둘러싸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돌덩이를 뚫고 영혼에게 오십니다. 그것을 가두고 있는 무덤의 문을 열어 제치십니다. 주님은 진실로 죽은 사람을 일으켜 생명에 이르게 하시고, 어두운 감옥에 갇힌 영혼들을 이끌어내십니다 (마카리우스, 『신령한 설교』 11. 11.).


실로 놀라운 영성가의 통찰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나서 가신 곳, 그 무덤, 그 음부는 바로 지옥이 되어버린 내 마음이다이 누추하고 처참한 곳에 오시기 위해서, 이 어두운 곳에서 나를 이끌어 내시기 위해서 주님이 죽으시고 묻히셨다니……. ‘감격스럽다라든가 혹은 다른 어떤 말로 다 담아낼 수 없는 놀라움, 송구함, 감격, 감사, 이런 것들이 뒤얽힌 복잡함이 나를 덮친다.


한참이 지나서 나의 태도, 나의 이해 여부에 아랑곳 없이, 주님께서 이미 오셨다는 사실이 나를 안도하게 하고 감사의 예()를 올리게 한다. 그러고 나니 그분의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분이 기다려진다. '주님, 오셔서 나를 둘러싼 모든 어두움에 종언(焉)선고하소서이 대림의 절기에 주님 어서 오소서! 마라나타!' / 새결새김

posted by 새결새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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