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의 회복 : 한 해의 마무리와 시작을 위한 기도 안내

   대림절을 시작으로 신앙력은 이미 한 해가 시작되었어요. 새해인 것이죠.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의 시간은 한 해의 끝자락을 향해 달려갑니다. 신앙력과 세상력의 사이에서, 우리는 전자에 의한 고요한 기다림과 출발보다는 후자가 주는 힘에 더 압도되는 것 같아요. 모임도 많고 마음도 분주합니다. 커다란 박스를 꺼내놓고 1231일까지 한 해의 모든 것을 다 쓸어 담고 테잎으로 서둘러 봉인해 버리는 듯합니다. 그리고 11일을 장모가 사위 맞듯 그렇게 가슴만 두근거리는 채 일거리에 쌓여서 정신없이 맞아들입니다. 지난 한 해를 음미할 시간도, 새해를 조용히 가늠해볼 시간도 빼앗긴 채, 우리는 고속도로를 그저 질주합니다. 지나온 길에 대해 조용히 생각하며 방향과 속도를 조정하는, 즉 성찰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위협하는 이 강력한 힘, 저는 이 힘을 악마적이라고 느낍니다.

    우리의 지난 한 해는 자기 자신의 구체적인 역사입니다. 시간과 공간과 인물, 즉 사건으로 구성된 나 자신의 역사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영혼 구원이라는 말은 나란 사람이 존재하며 경험한 이 구체적 사건이 구원받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체없이 막연하고 모호한 것이 아니지요.

    이 세상의 인간 실존은 흙으로 와 흙으로 돌아가는 소멸 속에서 허무감을 끌어안고 삽니다. 이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보상받기 위해 인간은 온갖 것에 집착합니다. 건강, 젊음, 미모, 물질, 권력. 거기다가 신앙인들은 한 걸음 더 하여 교리를 맹신하는 종교 활동과 자기중심적 기복 신앙, 막연한 내세 만능주의를 움켜잡습니다. 그러나 소멸에 대한 두려움은 한 번도 건드려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삶에서 자꾸 건조한 모래 바람이 이는 까닭은 집 지은 기초가 모래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이 두려움으로부터 구원해 주지 못합니다. 우리는 두려움에 이끌려 울부짖을 일이 아니라, 그저 차분한 시선으로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 근거 없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을 뿐입니다. 성탄의 메시지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입니다. 그러하다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 온갖 흔적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흔적을 구체적인 내 삶의 역사에서 발견할 때, 우리는 구원과 사랑, 거룩함에 대해 구체적인 감각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일관된 방향과 그 방향을 향해 가속되는 안정된 힘을 느낍니다. 소멸에 관한 막연한 두려움은 근거 없음이 드러납니다. 이 근거 없음에 쫓겨 다녔다는 생각이 들면 어이가 없어지고 다시는 그렇게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전전긍긍하며 살고 싶어지지 않습니다.

    대림의 상징인 성모 마리아와 세례 요한의 특징을 생각해 보세요. 한 분은 생각하시는 분이었고, 한 분은 광야로 물러나신 분입니다. 성탄의 시기와 한 해의 끝자락을 보내면서, 그것이 시·공의 물러남이든, 마음의 물러남이든, 좀 차분히 물러나고픈 갈증을 많이 느낍니다. 모래바람을 피하고픈 마음이요.

    그래서 지난 1224일에 저는 교회 식구들과 함께 하루 피정을 보냈습니다. 사역한 지 3년 반 만에 하루 피정을 열었으니, 저도 참 느리고 게으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함께 기도하시는 분들께 성탄 선물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맨 날 받기만 하다가 저도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사람을 기쁘게 하는지 예전엔 잘 몰랐습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되다는 것은 기쁨의 차원에 관한 말이 분명합니다. 주는 것은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줄 수 있음이 얼마나 기쁜지요! 하나님께서도 성탄에 자기 자신을, 독생하신 성자를 우리에게 주시고 이렇게나 기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한해의 끝자락을 저와 함께 하나님 앞에 고요히 앉아 보시겠어요? 하나님 앞에 고요히 앉아 자기 존재를 들여다보는 모습, 저는 그것이 가장 인간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함께 인간다움을 회복해 보시면 어떨까요?




기도 안내


    제가 안내하려는 주제는 한 해 동안 구체적인 내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함께 하셨는지를 깨닫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속에 머물며 2016년을 가늠해 보기입니다.


* 먼저, 첫 번째 기도 자료를 준비합니다

    한 해 동안 내게 일어난 사건을 기록해 보세요. 예배와 영성 생활, 이웃 사랑(봉사), 교회 봉사, 가정, 직장, , 그리고 사회적인 부분까지 항목을 생각하며 크게 크게 적습니다. 특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는지,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는지를 생각하면서 적어 보세요. 월별로 적는 것도 도움이 되어요.

 월

 -

 1

 

 

 2

 

 

 3

 

 

 4

 

 

 5

 

 

 6

 

 

 7

 

 

 8

 

 

 9

 

 

 10

 

 

 11

 

 

 12

 

 


   , 기도할 때는요. 각 사건들을 기억하세요. 공간들, 상황들, 사람들을 떠올려 보세요. 거기서 올라오는 느낌들을 깊게 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려 보세요. 성경 말씀은 호세아 111~4절 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린 아이일 때에내가 그를 사랑하여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냈다. 2 그러나 내가 부르면 부를수록이스라엘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갔다짐승을 잡아서 바알 우상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치며온갖 신상들에게 향을 피워서 바쳤지만, 3 나는 에브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었고내 품에 안아서 길렀다죽을 고비에서 그들을 살려 주었으나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4 나는 인정의 끈과 사랑의 띠로 그들을 묶어서 업고 다녔으며그들의 목에서 멍에를 벗기고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기도하시면서 다음 요점으로 도움을 삼아 보세요.

1) 내 삶의 방향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깊게 보세요.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세요? 아니면, 뭔가 잘 못 된 것 같으세요? 이 질문과 더불어, 기도 중에 내면에서부터 올라오는 나의 느낌을 인식하면서, 성경 말씀으로 하나님과 대화(교제)하세요.

2) 한 해 동안의 사건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내 삶을 어떻게 이끄셨는지를 바라보세요. 하나님께서는 내 삶의 각 사건들을 통해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셨는지요? 나는 성숙해졌나요? 나는 자유로워졌나요? 나는 고요해졌나요? 사랑이 많아 졌나요? 관대해 졌나요?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해졌나요? 신앙심이 깊어졌나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자라났나요? 부르심에 민감해졌나요? 만일 그러하다면, 하나님께서 구체적인 나의 사건 속에서 나를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가르치셨는지 묻고 대화해 보세요. 아버지 같으셨나요? 엄마 같으셨나요? 선생님, 연인, 친구? 봄볕 같으셨나요? 시원한 소나기? 곡식을 익게 만드는 가을 햇살? 사람을 고요하게 만드는 한겨울 깊은 밤?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말씀을 떠올리면서 기도해 보세요.

3) 만일 그러하지 않은 여러 마음들이 든다면, 과연 하나님은 나의 지금 이 느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내가 바라보고, 판단하고, 느낀 이 감정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은 어떠 하신지를 물어보세요. , ‘나의 느낌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과 뜻과 마음을 알려 달라고 하세요. 말씀을 떠올리면서 말씀의 내용을 붙들고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기도임을 기억하세요. 자기 분석이 아니예요. 하나님의 말씀에, 그리고 하나님 당신께 초점이 가 있어야 해요.


다음 사항을 주의하세요. 

1. 기도 주제를 잃어버리거나 분심(잡념)이 올라와서 딴 생각으로 흘러갔어도, 다시 기도하던 지점으로 돌아가시면 되요.

2. 어떤 느낌에 깊이 함몰되거나 압도되어 기도를 놓치지 마세요. 기도는 대화요, 교제예요. 즉 오고 가야 해요. 인내하지 말고, 말씀을 붙들고, 사건을 기억하고, 위의 1),2),3)을 알려고 하나님께 간절히 집중하세요. 그렇다고 욕심을 내라는 것은 아니구요. 하나님께 반응하라는 말이예요. 감정을 견디지 말고. 특히,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거나, 지루하다 거나, 하는 것도 느낌이예요.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과 대화하세요. 지루함, 당황스러움을 인내하지 마세요.

3. 기도를 아마 여러 번 반복해야 할 거예요. 각 항목으로, 아니면 시간 순서로, 한 해의 사건으로 충분히 기도하세요. 그리고 각 기도를 성찰하시고요.

이렇게, 한해가 점점 하나의 메시지로, 하나의 경험으로 감지가 되기 시작하면, 2016년 새해에 대한 기도로 나아갑니다.


* 두 번째 기도는요, 이렇게 해 보세요.

    성탄절을 보내면서 참 빛이신 주님이 오셨어요. 빛 되신 주님을 기억합니다. 그 빛 아래서 고요한 마음으로 2016년을 떠올려보세요.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모습으로, 어떤 마음으로, 어떤 뜻, 어떤 말씀을 가지고 다가 오실지를 기대해 보세요. 그 기대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조용히 품고, 또 품으세요. 깊게 깊게 말씀을 고요히 품고 응시합니다. 이번 기도에서는 생각을 펼쳐가거나 느낌을 떠올리지 않도록 하세요. 그저 빈 마음에 말씀을 품고 품어 말씀 자체에서 오는 기운과 힘과 느낌에 고요히 머무세요. 분심이 올라오고 생각이 많아지고 집중이 흩어지면, 다시 말씀을 기억하고 품어 보세요. 그 끝에 내면에서 올라오는 통찰이나 느낌이나 하나님과의 일치된 교제를 거부할 이유는 없어요. 마음 열고 받아들이시면 됩니다말씀은 이사야 4319~ 21절입니다.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전체를 천천히 반복해도 되구요, 기도 중에 품을 말씀 구절을 선택하시면서 기도 시간 내내 품고 계셔도 되어요. 저는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이라는 구절로 이끌림을 받았어요이 글을 쓰는 오늘은 1226일인데, 저도 일주일 내내 첫 번째 기도를 하면서 보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새해엔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반드시 내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 속에 머물면서 시작하려구요.

   이 기도 안내가 2015년을 애쓰면서 살아오신 여러분들에게 작은 선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요, 2016년에 뵈어요. / 해'맑은우리 주선영


posted by 해'맑은우리

6. 귀고 2세에게 배우는, 렉시오 디비나를 통한 ‘영성 목회’

6. 귀고(Guigo) 2세에게 배우는,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를 통한 ‘영성 목회’



한국교회 안에서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는 이제 그리 생경한 단어가 아니다. 라틴어 '렉시오(lectio)'는 ‘모으다’, ‘필요한 것을 선택하다’, ‘눈으로 모아들이다’라는 뜻의 'legere'에서 온 명사형으로, ‘기록된 본문을 눈으로 훑어보아 마음에 모으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렉시오 디비나는 ‘거룩한 말씀을 눈으로 훑어 마음에 모으는 영적훈련’이다. 그러나 아직 많은 교회와 교인들은 렉시오 디비나를 QT(경건시간)의 다른 표현으로 이해하여 교회 내 대안적 프로그램으로만 이해하고 있으며, 고대 사막의 수도자들에 의해 시작되어 12세기 카르투시오 수도회에서 윤곽을 갖게 된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아, 고전에서 주는 풍성한 깊이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렉시오 디비나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귀고(Guigo) 2세의 책, 《수도승의 사다리》(The Ladder of Monks)를 근거로, 수도자들이 어떻게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를 통해 하나님과의 일치(Union with God)를 추구했는지를 살펴 볼 것이고, 이러한 렉시오 디비나를 통한 하나님 경험이 어떻게 목회 현장에 새로운 힘을 넣어줄 수 있는지 다루고자 한다. 


귀고(Guigo) 2세의 《수도승의 사다리》

엄밀히 말하면, 렉시오 디비나는 12세기 귀고(Guigo) 2세의 것도, 6세기 베네딕트 수도회의 것도, 사막의 구도자들의 것도 아닌 하나님의 것이다. 일찌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으라 이스라엘’이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셨고, 그 렉시오 디비나의 형태를 받아들인 다윗은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시 119:105)라고 고백하면서 말씀으로 삶을 조명 받으려고 노력했다. 

이런 성경읽기, 즉 머리로만 분석하고 지적 만족을 주는 접근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 ‘이 곳에서’ ‘내 것으로’ 삼는 ‘전유화’(appropriation)를 의미하는 '렉시오 디비나'라는 단어는 서방 수도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베네딕트 (Benedict of Nursia, 480-547)가 처음 사용하였다. 베네딕트는 그의 책 《베네딕트 규칙서》 48장에서, “게으름은 영혼의 적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은 영성 깊은 독서(lectio divina)뿐만 아니라 육체 노동을 위한 구체적인 시간을 배정해야 한다.”[각주:1]라고 말하며, 'lectio divina'라는 단어를 처음 소개하였다.

그 후 아직 뚜렷한 형태를 갖추지 못했던 렉시오 디비나는 카르투시오회(Carthusian Order)의 귀고 2세에 의해 전형화된 틀을 갖추게 되었다. 귀고 2세의 생애에 대해 뚜렷히 알려진 바는 없다. 프랑스 그르노블 근처에서 1084년 창설된 카르투시오회의 초기 회원 중에 한 사람이었다는 것, 1173년 공동체의 책임자의 자리에 있다가 제 9대 원장으로 선출되었다는 것, 그리고 1180년 이 소임을 끝낸 후, 1188년 소천했다는 것 정도가 그에 관해 알 수 있는 전부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렉시오 디비나의 전체적인 윤곽이 그의 책 《수도승의 사다리》에 잘 소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귀고 2세는 《수도승의 사다리》에서, 구도자들이 마치 사다리의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올라가듯, 렉시오 디비나를 통해 하나님과의 일치를 향해 어떻게 올라가야 하는지에 대해 네 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독서(lectio)- 묵상(meditatio)- 기도(oratio)- 관상(contemplatio). 이 네 단계를 자세히 뜯어보자. 그가 말하는 렉시오 디비나는 무엇인가?

먼저, 독서(lectio)는 치밀하게 성경을 연구하는 것인데 특히 자신의 에너지를 성경에 집중하는 것이다. 음식 먹는 것에 비유하자면, 이 단계는 음식을 입에 넣는 단계이다. 귀고는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경을 치밀하게 이해하기를 소망하면서, (이 독서의 단계에서는) 영혼이 달콤한 포도송이를 한 입 베어 물고 씹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마치 포도를 포도즙 짜개에 넣듯이 말이다. 이제 이 독서의 단계에서 (잠자고 있는) 지성의 모든 힘을 불러 일깨운다.”[각주:2] 이 단계는 렉시오 디비나의 첫 번째 단계로 아주 천천히, 여유롭게, 그러나 집중해서 성경을 읽는(lectio) 단계이다. 

두 번째로 묵상(meditatio)은 말씀 안에 숨겨진 진리를 찾기 위해 이성의 도움을 받아 행해지는 적극적인 단계이다. 귀고는 이 단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묵상을 치밀하게 할 경우, 묵상은 영혼 밖에만 머물지 않고, 덜 중요한 것에 묶여있지 않고, 오히려 이 묵상으로 인해 내 영혼은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며 마음 안으로 깊이 들어가서 철저히 내 마음을 식별하게 된다.”[각주:3]

성서를 통해 영성을 고취하는 해석학적 방법론을 마련한 샌드라 쉬나이더스(Sandra Schneiders)에 의하면, 이 묵상의 단계는 성경 본문을 내면화하는 단계로써 그것의 의미를 반추하거나 말그대로 묵상하는 단계라고 소개한다. 더 나아가 쉬나이더스는 중세 성서 주석들은 영적 깊이나 풍부한 상상의 폭(넓이)을 가지면서 이 묵상의 단계에 독자를 초대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 단계는 성경 본문의 연구를 넘어서 독자가 자신만의 상황(삶과 경험)속에서 본문의 깊은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소개한다.[각주:4]

세 번째로 기도(oratio)는 묵상에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반응으로서, 독자가 성경 본문 안에서, 혹은 본문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귀고는 이 단계에서 우리의 영혼은 우리 스스로 지성과 감성의 감미로움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단언하면서, 우리의 영혼은 겸손하게 그리고 철저히 기도에 의존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렉시오 디비나는 이 기도의 단계를 통해 절정으로 나아간다. 그는 이렇게 기도한다. 

“오 주님, 당신이 성경의 양식을 쪼개주셔야만, 당신이 그 속에서 당신 자신을 내게 보여주십니다. 그 때, 내가 더 당신을 보기 원할수록, 더욱 내가 당신을 보기를 사모할수록, 당신은 내게 성경의 글이 아닌, 그 껍데기의 의미가 아닌, 글 안에 숨겨있는 의미로, 그 깊은 말씀 안으로 나를 인도하십니다.”[각주:5]

마지막으로 관상(contemplatio)은 온 마음과 뜻이 하나님께 올려져서 그분에게 잠겨있게 되어 영원한 기쁨을 맛보는 것이다. 앞의 단계의 깊이있는 기도는 하나님과의 연합으로 인도하고 그것이 바로 영적 삶의 꼭짓점이자 본질의 영역인 관상의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말씀을 연구하는 식의 시도, 즉 무엇인가는 알아가는 모든 시도를 내려놓고 독서와 묵상과 기도의 단계에서 만난 하나님과의 일치를 누리는 단계이다. 귀고는 이 관상의 단계에서 하나님은, 

“아주 달콤하고 감미로운 하늘의 이슬을 흩뿌려주시고, 가장 고귀한 향수로 기름부어주시고, 지치고 지리한 영혼을 회복시켜주시고, 갈급한 심령을 만족시켜주시고, 배고픈 영혼을 먹여주시고, 이 땅의 모든 염려를 잊게하시고, 가장 좋은 방법으로 새로운 삶으로 이끄신다.”[각주:6]고 설명하고 있다. 쉬나이더스 역시 이 관상의 단계를 “완전히 만개한 꽃으로서, 어떤 그림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과의 연합의 단계”[각주:7]라고 설명한다.   

또한 귀고는 이 네 단계는 분리된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서로의 연관성을 설명하고 있다.

“독서(lectio)는 이 모든 단계의 기본이며, 묵상을 위한 자료들을 제공한다. 묵상(meditatio)은 찾아야 할 것을 더 주의 깊게 고려하면서 숨겨진 보물들을 파내는 작업이다. 그러나 이 보물을 꺼내는 것은 묵상의 힘으로는 안 되며 이것은 기도의 힘이다. 기도(oratio)는 전심으로 기도 자체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이 보물을 간구하는 것인데, 이 보물은 바로 관상의 감미로움(The sweetness of contemplation)이다. 관상(contemplatio)은 이전 세 단계의 상급으로, 하늘의 감미로움으로 갈망하는 영혼을 촉촉이 적시는 것이다.”[각주:8]

이렇게 귀고 2세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렉시오 디비나를 사다리의 이미지로 전형화해서, 각각의 단계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는지 보여주었으며, 많은 구도자들을 말씀으로 초대하여 하나님과의 연합에 이르는 길을 설명한다. 


렉시오 디비나를 통한 영성목회

그럼 우리는 어떻게 이 귀고 2세의 렉시오 디비나를 목회 현장에 적용할 것인가? 성경의 권위가 강한 한국의 개신교는 19, 20세기 유럽과 미국의 대부흥을 거치면서 검증된 다양한 성경 프로그램을 가지고있다. 그 중에 ‘QT’는 제자훈련의 입문단계로 인식되어 개 교회의 성경공부반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귀납법적 성경연구’식 프로그램은 좀더 지적 접근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그 갈급함을 해결해주고 있다. 이 얼마나 소중하고 풍성한 영적 유산이란 말인가!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훈련을 받아도 왜 우리는 변하지 않는가! 이 거대한 담론을 제한된 지면에 소개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할 수 없다. 단, 성경의 절대성이 강한 개신교가 이제까지 수많은 성경 프로그램을 해왔지만 삶에 깊은 영향을 주지 못했다면, 지금까지의 접근에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을 아닐까?

렉시오 디비나 소개는 이 지점에 방점을 찍고 한국교회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즉, 성경을 읽되 본문이 주는 의미보다는 독자의 삶의 정황에 더 큰 관심을 갖는 QT식 성경읽기가 아닌, 혹은 성경 본문이 주는 메시지를 삶에 적용하기 보다 본문 자체를 알아가는 정보적 관심에 더 큰 의미를 두는 귀납법적 성경연구식 성경 읽기가 아닌, 본문을 철저히 읽고, 묵상하고, 기도로 올려드리며, 기도 중에 하나님과의 연합을 경험해서 그 말씀이 철저히 삶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렉시오 디비나는 영성 목회에 중요한 시작이라 하겠다. 

이렇게 성경을 기반으로 한 영성을 추구하는, 앞서 이미 언급한, 샌드라 쉬나이더스는 우리에게 좀 더 많은 들을거리를 제공한다. 쉬나이더스는 어떻게 크리스찬이 성경을 통해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까를 누구보다 진지하게 고민했다. 쉬나이더스는 성경의 역사적, 문학적 방법을 통해 얻은 정보들은 변화를 가져오기가 힘들고 오히려 성경 안으로 들어가서 성경의 세계를 경험하기를 원하는 독자가 그 말씀 안에 자신을 완전히 열었을 때, 하나님과의 연합을 체험하고 그 때, 비로소 변화를 경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각주:9] 즉, 쉬나이더스 역시 귀고처럼 정보적(informative) 접근이 아닌 변화적(transformative) 접근으로 성경을 경험할 것을 부탁하고 있다.

더 이상 교회 안에서 성서읽기는 백화점식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머물면 안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렉시오 디비나는 정보 생산에 헐떡이던 모더니즘적 접근에 매여있는 한국교회에 큰 방향을 바꿀 영성 목회의 기초가 될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에 할례된 성도와 다음 세대는 더 이상 지식을 더하는 제자훈련식 프로그램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관심은 ‘변화’에 있다. 내가 변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나를 통해 다른 사람이 변하느냐? 이런 도전적 토양에서, 렉시오 디비나를 통한 영성 목회는 우리의 신앙 체질을 바꿀 수 있는 건강한 시도가 될 것이다. 말씀 안에 자신을 완전히 열어(lectio, meditatio), 말씀의 세계 안에서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고(oratio), 그분 안에서 이전에는 맛보지 못한 기쁨을 경험하는 것(contemplatio) 그래서 옛 삶을 벗고 새 삶으로 변화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영성의 진수라 하겠다. 


글쓴이 : 이경희. '산책길' 기독교영성고전학당 연구원, 새크라멘토 시온장로교회 목사, GTU 기독교 영성학 Ph.D Candidate.

'산책길'은 2015년 한 해 동안 기독교 월간지 <목회와신학>에 '영성 고전에서 배우는 영성 목회'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목회와신학>의 양해를 얻어 이곳 산책길 팀블로그에서도 매달 글을 게재합니다. 위의 글은 2015년 6월 호에 실린 여섯 번째 글입니다.


  1. 누르시아의 베네딕트 지음, 권혁일·김재현 옮김, 《베네딕트의 규칙서》(KIATS, 2011), 91. [본문으로]
  2. Guigo II, Ladder of Monks and Twelve Meditations, trans. Edmund Colledge, O.S.A. and James Walsh, S.J, (Kalamazoo, MI: Cistercian Publication, 1981), 69. [본문으로]
  3. Ibid., 70. [본문으로]
  4. Sandra Schneiders, “Biblical Spirituality,” Interpretation 56, no. 2 (April 1, 2002): 140. [본문으로]
  5. 주: Guigo II, Ladder of Monks and Twelve Meditations, 73. [본문으로]
  6. Ibid., 74. [본문으로]
  7. Schneiders, “Biblical Spirituality”: 140. [본문으로]
  8. Guigo II, Ladder of Monks and Twelve Meditations, 79. [본문으로]
  9. Schneiders, “Biblical Spirituality”: 136. [본문으로]
posted by 바람연필

렉시오 디비나의 ‘기도’ (귀고 2세)

한 줄 묵상 2015.05.17 09:47

오 주님, 주님이 성경의 양식을 쪼개 주실 때, 그 말씀에서 주님 자신을 제게 보여주십니다. 그 때 제가 주님 보기를 더 원할수록, 주님을 보기를 더욱 사모할수록, 주님은 제게 성경의 글이 아닌, 그 껍데기의 의미가 아닌, 글 안에 숨겨있는 의미로, 그 깊은 말씀 안으로 저를 인도하십니다.


- Guigo II(?-1188), Ladder of Monks and Twelve Meditations, trans. Edmund Colledge and James Walsh (Kalamazoo, MI: Cistercian Publication, 1981), 69.


귀고 2세는 수도승의 사다리에서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를 읽기(Lectio), 묵상(Meditatio), 기도(Oratio), 관상(Contemplatio) 네 단계로 정형화해서 알려 준다. 그 중 어느 단계라도 소홀히 할 수 없지만 기도(Oratio)의 시간은 읽기를 통해 얻은 정보적 앎이, ‘묵상의 단계를 통해 뿌리내리고, ‘관상’의 단계에서 꽃피기 위해, 꼭 거쳐야하는 숙성의 시간이다.


기도의 시간은 성서의 문자가 정보를 감싸고 있는 포장지가 아니라 나의 숨은 존재를 깨워주는 생명임을 더 간절히 알아가게 한다. 기도의 시간은 나를 하나님과 관상의 세계 속으로 이끌어, 하나님과 나의 구분이 없는 연합의 신비를 경험하게 한다. 그 속에서 나의 지리하고 곤한 영혼은 새 의미 앞으로 나아가며, 척박한 영혼은 하늘에서 흩뿌려 주시는 잔잔한 은혜를 맛보게 된다.


오라티오! 

"주님, 앎을 바꾸어, 주님과 만남의 경험을 통해, 변화로 나아가게 하소서!"/ 이경희

posted by 바람연필

하나님께 전달되는 목소리 (닛사의 그레고리)

한 줄 묵상 2014.09.27 00:36

만약 지도자가 하나님과 대화 할 수 없는 자라면 백성들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에만 관심을 두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은밀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용기를 내도록 권유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향해 울부짖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 전달되는 목소리는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순수한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묵상을 통해서 나온다.

 -닛사의 그레고리우스 (St. Gregorius Nyssenus, 335-395), 고진옥 옮김, 《모세의 생애》, (은성출판사, 2003), 111.


설교를 위해 강단에 올라가기 전 습관마다 행하는 일이 있다. 거울을 바라보는 것이다. 넥타이는 잘 매어져 있는지, 머리는 잘 빗기어져 있는지, 강대상에서 성도님들을 만나기 전에 마지막 점검을 하는 것이다그리고 그 날의 본문에 맞추어서 설교를 한다. 때로는 목소리를 높여 소리치기도 한다. 기도하라고, 말씀 좀 읽으라고…. 마치 어렸을 적 어머님께 들었던 잔소리를 하는 것 같다. 소리치는 사이로 슬며시 나 자신을 숨긴다. 그러고선 내가 드러나지 않고 말씀만 드러나게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닛사의 그레고리 때도 나 같은 설교가, 나 같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있었나보다. 모세의 생애를 읽다가 이 구절에서 뜨끔했다. 지도자가 하나님과 대화 할 수 없는 자라면 백성들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난 거울은 바라보고 성도들에게 목소리는 높이면서, 얼마나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백성들을 권면했는가? 모세는 백성 앞에서 온유했고, 하나님 앞에선 간절했다. 절규했다점점 더 하나님 앞에선 조용하고 성도들 앞에서 시끄러워지는 나를 볼 때마다 때가 묻는 것 같다. 그래. 하나님께 전달되는 목소리는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순수한 양심에서 나오는 묵상을 통해서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 소리를 드리려 조용히 성경책을 편다. / 소리벼리 정승구



posted by 소리벼리

잘못된 영성 훈련의 병증 (귀고 2세의 <수도승의 사다리>)

한 줄 묵상 2014.09.12 12:19
  • 대부분의 영성훈련이 일회성의 깨달음으로 그치기 때문에 아쉽지요~^
    지속하는 것이 중요한데~~

    BlogIcon 이기연 2014.09.12 18:31 신고

묵상 없는 독서는 건조하며 독서 없는 묵상은 오류에 빠지기 쉽고, 나아가 묵상 없는 기도는 미지근하며 기도 없는 묵상은 결실이 없는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겠습니다. 정성들인 기도는 관상을 얻게 해주며, 기도 없는 관상의 선물은 드물고 기적에 가까운 것이라 하겠습니다.


- 귀고 2세(Guigo II: ?-1188), <관상 생활에 대해 쓴 편지>, 

엔조 비앙키 지음, 이연학 옮김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왜관: 분도, 2010), 154-55에서.



귀고 2세는 12세기 카르투지오 수도회의 원장을 지낸 분이다. 카르투지오 수도회는 베네딕트 규칙서를 엄격하게 지키기 위해 11세기에 설립된 수도회이다. 몇 년 전 개봉되어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는 다큐멘터리 <위대한 침묵>은 이 수도회의 일상을 다룬 것이다. 봉쇄 수도원의 깊은 침묵이 분주한 현대인들의 영적 갈망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했다.


귀고 2세가 쓴 <관상 생활에 대해 쓴 편지(The Letter on the Contemplative Life)>는 우리에게 <수도승의 사다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원조 큐티(QT)라고 할 수 있는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를 체계적으로 설명한 유명한 영성 고전이다. 귀고 2세는 렉시오 디비나를 네 단계, 즉 독서, 묵상, 기도, 관상으로 설명한다. 렉시오 디비나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각각의 단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각각의 단계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독서와 묵상이, 묵상과 기도가, 그리고 기도와 관상이 어떻게 체험적으로 흘러가는지를 알면 영성 생활에서 어느 한 요소도 소외되지 않도록 노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빨리빨리 읽기만 하고 묵상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성경은 읽지 않고 이런저런 생각만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묵상은 하지 않고 기도부터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묵상만 하고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기도를 마음을 다해 하지 않고 해야할 일을 해치우듯이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기도의 체험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관상의 경험을 자신의 영적 경험에서 아예 배제시켜버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영성 생활에서 이런 병증을 습관화시킨 사람들은 기도에 결코 맛들일 수 없다. 성경을 읽다가 기도로 흘러가는 것이 기독교 영성훈련의 기본이다. 위에 인용한 귀고 2세의 말은 그런 점에서 우리의 영성 훈련에 병증은 없는지 다시 돌아보게 해준다. / 이강학


posted by 아우의 마음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