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이 아닌 참여하고 체험하는 신앙 (밀란의 암브로스)

한 줄 묵상 2013.07.26 11:07

그(신랑)는 신부의 기도와 유혹, 즉 설교자의 유방을 밀쳐버리지 않는다. 그는 인자하게 신부를 집 안으로 인도한다. 마지막으로, 종종 멀리 떠나 신부가 찾아다니게 하거나 신부로부터 입맞춰달라는 부탁을 받곧 했던 신랑은, 신부의 감정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본다 (아 2:9). (이렇게 해서) 신랑은 완전히 밖에 있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안에 있는 것도 아니며, 신부를 불러 자기에게 오게 하여 서로 즐겁게 대화하며 뜨거운 사랑의 번제를 교환할 수 있게 된다 (시편 118편 주해).


밀란의 암브로시우스(Ambrosius of Milan, c. 340~397), Expositio Psalmi CXVIII, M. Petschenig 편집, CSEL 62. 5 (Vienna: Tempsky-Freytag, 1913), Bernard McGinn,  The Foundations of Mysticism: Origins to the Fifth Century (New York: Crossroad, 2004), 325에서 재인용.



요즘 기독출판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책이 있다. 《성서의 에로티시즘》(차정식 지음, 꽃자리 출판)은 교회에서 금기시 되어온 성의 이야기를 교회 안으로 끌고 들어온 신선한 면도 있지만, 성서의 이야기와 인물들을 성의 관점으로 풀어낸 그만의 통찰을 볼 수 있는 다부진 책이다. 특히 그의 책은 말과 글에 익숙한 '계몽주의 키즈'들을 좀 더 감각적인 글 읽기, 좀 더 참여적인 사색의 공간으로 불러내어 - 성을 소재로 - 하나님과의 연합을 경험하게 한다. 사실 이런 성의 대한 이야기는 고대 교부들의 중요한 고민이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이다. 그는 하나님을 동경하는 갈망에 대해서 어떤 신비주의자보다 더 자주 언급했지만, 하나님과 영혼의 만남을 묘사하기 위하여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성적 표현의 사용은 피했다. 심지어 성을 하나님과의 사이를 '교란시키는 영구한 대적'으로 금기시하기도 하였다(Peter Brown, Body and Society, 419). 


그러나 그의 스승 암브로시우스(Ambrose of Milan, 또는 Aurelius Ambrosius)는 전혀 다른 입장이다. 그는 성에 대한 과감한 표현을 서슴치 않고 사용한다. "신부를 불러 자기에게 오게 하여 서로 즐겁게 대화하며 뜨거운 사랑의 번제를 교환할 수 있게 된다." 그의 관심은 성적 표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타락하지 않는 순결한 몸의 회복이 하나님과의 영적 연합임을 말하는 것이다. 버나드 맥긴은 암브로시우스의 표현에 대해 이렇게 기술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순결한 몸과 접촉함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으며, 마지막 날에 변화된 몸으로 부활할 것이다." (The Foundations of Mysticism, 328). 이렇듯 고대 신비주의의 힘은 순결한 신부(인간)와 거룩한 신랑(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에로틱하게 표현한데서 오는 감각적이며 체험적인 하나님 경험에서 온다고 볼 수 있다. 


종교개혁 이후의 개혁교회의 신앙은 고대 그리고 중세의 체험적이며 살아있는 경험의 신앙유산을 말과 글의 딱딱한 관념으로 가둬놓지는 않았는지 반추해보게 된다. 그것은 지존자와의 만남, 절대자와의 만남은 말과 글로 표현될 수 없는 각 개인의 참여와 체험을 통해 얻는 살아있는 경험의 열매들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임재를 관념과 통념 속에서만 만나고 있지는 않는가?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가족과 갈등하고 해결하면서, 현실 정치를 위한 촛불을 높이 들면서 만나는 '하나님 체험'을 잊은 채 말이다. 나무잎사귀 /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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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트의 규칙서 (Rule of St. Benedict)




블로그를 시작하며 7월의 추천 고전으로《베네딕트의 규칙서 Regula Sancti Benedicti 를 선정하였다. 6세기 초 이탈리아의 수도승 누르시아의 베네딕트(Benedict of Nursia)에 의해서 쓰여진 이 작품은 현재까지 기독교 수도원운동에 있어서 기준이 되는 가장 권위 있는 텍스트로 여겨져 오고 있다. 


오늘날 교회 안팎에서 '공동체'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지만, 사실은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많은 기독 교회들이 분열과 분쟁을 거듭하고 있으며 참된 공동체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그러므로 과거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열망으로 공동체 생활을 택한 수도자들의 규칙서가 오늘날 한국 교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과 지혜를 주고 있다고 믿는다. 최근에 새롭게 출간된 한국어 번역본을 소개하고, 그 책에 필자가 쓴 도움말로 작품에 대한 자세한 안내를 대신한다. 

 

베네딕트 저. 《베네딕트의 규칙서》 권혁일, 김재현 역. 서울: KIATS, 2011.

  


《베네딕트의 규칙서》:

천국을 향한 공동체 여정의 이정표

 

 

왜 고대의 수도원 규칙서를 읽는가?

문학에서 고전古典은 그 작품이 쓰여진 시대와 장소를 넘어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작품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베네딕트의 규칙서 Regula Sancti Benedicti》는 기독교 영성의 고전이라고 부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이 작품은 6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베네딕트Benedict of Nursia(c.480-c.547)의 지도 아래 공동생활을 하던 수도사들을 위해서 쓰여졌다. 그리고 이 규칙서는 지난 1500여 년 동안 수도원 안팎에서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 왔고, 또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쳐왔다.

《베네딕트의 규칙서》가 기독교 고전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기록 목적과 규칙의 유연성이 중심적인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규칙’을 뜻하는 라틴어 레귤라regula는 여행자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 ‘길의 울타리,’ 또는 행동과 삶의 잣대를 의미한다. 베네딕트의 규칙은 수도사들의 행동을 규제하기 위한 딱딱한 규범이 아니라, 단순하고 순수한 영성생활을 통해 천국을 향한 수도사들의 영적 여정을 안내하기 위한 이정표와 지침이다.서문 제45-50

베네딕트는 이 규칙이 문자적으로 적용될 것이 아니라, 각 수도원이 처한 기후와 환경, 그리고 수도사 개인의 영적, 육체적 조건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규칙은 수도생활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수도원장의 판단에 따라 적절하게 변경될 수 있으며, 더 나은 것으로 대치될 수도 있다. 이러한 규칙의 유연성은 오늘날 전 세계의 수도원 안에서 사는 이들은 물론 수도원 밖에서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 베네딕트 영성의 유산을 자신의 삶과 공동체의 삶에 창조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수도원주의의 발달과 《베네딕트의 규칙서》

《베네딕트의 규칙서》는 서방기독교 수도원 발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서이다. 기독교 수도원의 역사는 4세기 초 이집트의 사막에서 시작되었다. 304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Diocletianus 치하에서는 많은 이들이 혹독한 박해를 피해 사막으로 도망쳤다. 그런데 313년 콘스탄틴 황제Constantine the Great의 기독교 공인 이후에는 당대 기독교인들이 새로운 형태의 ‘순교’를 찾아서 이집트의 황량한 사막으로 나아갔다.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of Alexandria에 따르면 4-5세기에는 “사막에 도시를 이룰 정도로 많은 수도사들이 이집트의 사막에서 은둔형 혹은 공동체형 수도원을 만들어 수도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렇다고 당시 사막의 수도사들이 세속 도시와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박해시대의 순교자들처럼 교회에서 ‘영웅’으로 인식되며, 로마제국의 종교적 관용으로 인해 신앙이 느슨해진 교회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이 같은 이집트 사막의 수도사와 수도원 이야기는 아타나시우스의 《안토니의 생애 Vita Anthonii》와 요한 카시아누스Johannes Cassianus의 《제도집 Institutes,《담화집 Conferences》과 같은 글과 종교-문화적 접촉을 통해 서방교회의 수도원 발달을 크게 자극하였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갈리아Gaul와 팔레스타인, 로마가 지배한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수도생활의 이상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수도원 전통의 유산들이 축적되어 6세기《베네딕트의 규칙서》로 꽃피어났다. 실제로 《베네딕트의 규칙서》는 사막 교부들의 생애와 금언집Apothegmata,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암브로시우스Ambrosius of Milan,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 바실리우스Basilius of Cappadocia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특히 《베네딕트의 규칙서》보다 조금 앞서 쓰여진 《스승의 규칙서 Regula Magistri》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베네딕트는 자신의 규칙을 토대로 서구 수도원제도의 기초를 놓으려 하거나 자신만의 수도회를 창설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규칙은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융통성과 온건한 금욕적 수행, 그리고 균형 있는 생활규율 등으로 인해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후 8세기 후반과 9세기 초에 프랑크왕국의 샤를마뉴 대제Charlemagne는 베네딕트의 규칙을 자신의 카롤링거 제국에 속한 수도원의 공식적인 규범으로 채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기반 위에 10세기에는 베네딕트의 규칙을 사용하는 수도원들이 연합하여 베네딕트 수도회Benedictine Order를 창설하였다. 이후 《베네딕트의 규칙서》는 중세에 수도원이 타락하고 위기에 처했을 때는 물론 수많은 수도원개혁의 과정에서 신앙적 활력과 기준을 제공해주었다. 20세기에 들어서 베네딕트 수도원들은 영국성공회와 스웨덴 루터교 안에도 세워졌으며, 오늘날 전 세계에 약 3만 여명의 수사와 수녀가 베네딕트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고 있다.

 

베네딕트의 생애

베네딕트의 생애에 관해 현재 남아 있는 자료는 그의 사후 약 50년 경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1Gregorius the Great가 자신의《대화집Dialogues》제2권에 남겨둔 베네딕트의 생애Vita Benedicti가 전부이다. 물론 그레고리우스의 성인전聖人傳이 오늘날의 전기biography의 개념으로 베네딕트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제공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다만 “하나님의 사람” 베네딕트의 거룩한 성품과 영적인 특징을 묘사하고 이것을 통해 자신의 의도한 교훈을 교회와 이탈리아 사회에 전달하고자 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의 기록에 따르면 베네딕트는 480년 이탈리아 중부의 누르시아Nursia라는 지방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로마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당대 사회의 방탕함과 무의미한 생활을 목격한 그는 13세가 되던 493년에 로마를 떠나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처음 1년은 엔피데Enfide에서 다른 금욕주의자들과 같이, 이후에는 수비아코Subiaco의 산 위에 있는 동굴에서 약 3년 간 홀로 기도와 금욕훈련에 매진했다. 그는 악마의 유혹과 육체의 정욕을 이겨내기 위해 심지어 쐐기풀과 들장미 덤불 속에 들어가 그의 몸에 상처를 내기도 하였다.

그의 종교적 생활이 주변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그는 수비아코의 한 수도원장으로 부름을 받았다. 하지만 베네딕트의 엄격한 삶의 방식은 평이한 삶을 원하는 그곳 수도사들의 기대와 상충했고, 그는 다시 동굴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종교적인 거룩함에 대한 평판과 기적에 대한 소문 때문에 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수비아코에서 약 19년 동안 열두 개의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곧 지역 사제들의 질투를 불러 일으켰다. 이를 피해 베네딕트는 529년경에 로마와 나폴리Naples 사이에 있는 몬테카시노Monte Cassino로 옮겼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적용하여 이방신을 섬겨오던 이곳에 수도원을 세우고 수도사들을 지도하였다. 《베네딕트의 규칙서》가 기록된 것도 바로 이 시기이다. 그는 수도사들의 삶에만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가뭄이 극심할 때는 수도원의 식량을 풀어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등 수도원 밖의 사람들에게도 많은 자비를 베풀었다.

베네딕트의 죽음은 그의 기도하는 삶의 아름다운 절정을 보여준다. 그는 547 3 21일 몬테카시노에서 형제들의 부축을 받아 서서 기도하는 중에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져 있다. 그레고리우스 1세는 베네딕트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면서 그의 규칙서는 자신이 살았던 삶의 방법과 양식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생애와 대화[가르침]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사람은 베네딕트의 규칙을 통해 그의 삶의 방식과 훈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거룩한 사람[베네딕트]은 그가 가르친 것을 모두 삶으로 살아 내었기 때문이다(그레고리우스 1세의 《대화집》 제2권 제36)

 

《베네딕트의 규칙서》의 내용과 주요 주제

《베네딕트의 규칙서》는 규칙을 제정한 의의를 설명하는 서문과 수도원에서의 각종 제도와 생활규율 등을 설명하는 73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문에서 제7장까지는 《스승의 규칙서》와 아주 많이 일치하는 부분으로, 수도사의 종류(1)와 수도원장(2-3), 그리고 영적성장을 위한 훈련방법(4-7)을 개괄적으로 설명하며 글 전체의 도입부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에서는 이전 도입부의 정신을 강조하면서 보다 구체적인 규칙을 다루고 있다. 전체를 간략히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전례규칙과 자세(8-20), 직책과 역할(21, 31-32, 38, 47, 57, 62-66), 입회, 책벌, 파문(23-30, 42-46, 58-61), 노동과 각종 생활규칙(22, 33-37, 39-42, 48-56, 67-72), 끝맺는 말(73)로 이루어져 있다.

 

상호적인 사랑에서 솟아나는 순종

“들으라, 나의 아들아”라는 권고로 시작하는 서문은 이 글이 법률적 문서보다 구약성서의 지혜문학wisdom literature 전통잠언 1:8, 4:1 참조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베네딕트는 규칙서에 기록된 가르침들을 부모가 자녀에게 들려주는 사랑의 교훈에 비유한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이 가르침들을 주의 깊게 듣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즉각적으로 순종해야 한다서문 1.

이러한 지혜문학으로서의 글의 성격은 베네딕트회의 3대 서약 중의 하나인 ‘순종’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도와준다. 즉 베네딕트에게서 ‘순종’은 권위자의 일방적인 명령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오는 맹목적인 반응이 아니라, 영적인 부모와 자녀 사이의 상호적인 사랑과 신뢰에서 자라나는 미덕이다. 수직적인 관계에서 이렇게 형성된 순종은 나아가 수평적인 관계로 확장된다. 베네딕트는 그의 규칙서 끝부분에서 수도원장과 수도사 사이뿐만 아니라, 수도사들 사이에서도 상호순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71.1, 72.5. 이와 같이 순종은 겸손과 더불어《베네딕트의 규칙서》의 처음과 마지막을 꿰뚫으며 모든 규칙을 하나로 묶는다. 이런 점에서 베네딕트의 순종은 효를 모든 행위의 근본으로 삼는 동양의 유학儒學의 가르침과도 통한다. 예를 들면, 유학에서도 부모의 사랑에 대한 자녀의 사랑의 반응이 효라고 가르친다. 부모와 자녀의 수직적인 관계에서의 효가 형제자매와 친구와의 수평적인 관계로 확장된 것이 우정이다.

또한 순종은 발전시켜야 하는 미덕인 동시에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영성훈련의 효과적인 방법이다. ‘순종’을 뜻하는 라틴어 오보에디레oboedire는 어원적으로 ‘듣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곧 순종은 수도원장이나 다른 형제들의 말 속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훈련이다. 그래서 베네딕트는 수도사는 상급자의 명령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여기고 실행해야 하며, 상급자에게 보여준 순종은 곧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라고 말한다5.4,15. 이처럼 순종의 훈련을 통해서 수도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귀를 열어놓게 되며,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법을 배우게 된다.

 

겸손, 환대, 그리고 자비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

순종과 마찬가지로 겸손은 《베네딕트의 규칙서》의 기초를 이루는 미덕이며 동시에 영성훈련 방법이다. 7장에는 겸손의 열두 단계가 기록되어 있는데, 베네딕트는 겸손을 인간이 몸과 영혼, 즉 전인적으로 성장해가는 점진적인 과정으로 제시한다. 첫 번째 단계는 자신의 죄에 관한 욕망을 인식하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것을 극복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두 번째부터 일곱 번째 단계를 거치면서는 수도사는 자신의 비천함을 인식하고, 자신의 뜻을 버리며, 죄를 고백하고, 인내하는 가운데 순종하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여덟 번째부터 마지막 단계는 겸손을 마음으로뿐만 아니라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충실하게 나타내는 과정이다. 겸손의 단계를 모두 거치면 수도사는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는 하나님의 사랑에 도달하게 된다. 이 사랑은 또한 수도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을 연합시켜서,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것처럼 즐거이 준행하게 만든다. 이런 의미에서 겸손의 사다리는 수도사를 금욕적인 삶 또는 능동적 삶의 정점으로 인도한다. 이와 같은 하나님과의 사랑 깊은 연합이 곧 베네틱트가 추구한 수도생활의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겸손은 또한 베네딕트 영성의 또 다른 특징인 다른 이들에 대한 환대자비로 표현되어야 한다. 수도사들은 방문한 모든 손님들에게 머리를 숙이거나 몸을 완전히 엎드려 겸손히 영접하고 진심으로 대접해야 한다. 손님대접을 위해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담당자는 중요한 금욕훈련 중의 하나인 금식도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이 규칙서는 공동체의 병들거나 약한 이들에 대한 커다란 관심과 배려를 보이고 있다. 손님과 병든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와 같이 돌봄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환대를 통해 나그네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경배를 받으시기 때문이다36, 53. 이처럼 겸손과 환대, 그리고 자비는 금욕수행보다도 더 우선되는 미덕이자 훈련이며,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섬기고 그분과 연합하는 삶의 길이다.

 

삶의 균형과 리듬

베네딕트 영성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균형과 리듬이다. 먼저 베네딕트는 하루 중 기도와 노동이, 그리고 공동체의 예배와 개인의 영성생활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도록 가르친다. 물론 우선순위는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성무일도officium divinum 또는 하나님의 일Opus Dei에 있지만, 육체적인 노동과 개인적인 독서lectio divina 역시 매일의 수도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베네딕트는 제8장부터 제20장에 걸쳐 매일 혹은 매주 드릴 성무일도의 시간과 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기도와 예배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외적인 형식이 아니라 이집트 사막의 수도사들이 추구한 “마음의 순수함과 참회의 눈물”이다20.3. 기도는 짧고 단순해야 하며20.4, 찬송은 마음과 목소리가 조화를 이루어져야 한다19.7. 그리고 하나님이 어디에나 임재하시며, 모든 곳에서 주님의 눈이 감찰하고 계시기 때문에19.1 성무일도를 비롯한 모든 일은 매 순간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는 가운데서 행해져야 한다.

그 외에도 베네딕트는 사순절을 지키는 방법49과 취침과 식사 등 일상생활에 대한 지침22, 41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전례규칙과 일상생활의 규칙은 함께 어우러져 짧게는 매일의 생활, 길게는 연간 생활의 리듬을 형성한다. 즉 《베네딕트의 규칙서》에 심겨져 있는 수도원의 이상은 단조로운 매일의 의무들로 채워져 있는 삶이 아니라, 균형 잡힌 일상생활의 반복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리듬 있는 삶이다. 그런데 이러한 반복은 발전 없이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집”을 향해 오르는 영적인 여정이며, 공동체가 사랑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규칙이라는 리듬에 맞춰 내딛는 공동의 발걸음이다72.4, 73.8.

 

라틴어 원문들

《베네딕트의 규칙서》는 그의 막강한 영향력을 보여주듯 많은 사본들이 발견된다. 현재 삼 백여 개 이상의 다양한 라틴어 사본들이 남아 있는데, 전승 과정에서 곳곳에 가필된 부분이 많아 원문을 확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규칙서》본문에 대한 비평적 연구는 19세기 후반에 들어서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고대 라틴어 사본들은 문서가 시작하는 첫 단어에 따라 아우스쿨타ausculta옵스쿨타obsculta,두 그룹으로 구분되어 명명되어왔다. 중세시대에는 이 두 그룹의 사본을 적절히 조합하여 주석을 단 공인본문textus receptus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규칙서》각 장의 구분은 모든 사본에 나타나며, 절의 구분은 17세기부터 시작되어 1947년에 안셀모 렌티니Anselmo Lentini에 의해 본격적으로 활용되었다. KIATS영성 선집도 이 기준을 따랐다. 중세 기독교 문학의 일반적인 특징을 반영하듯, 규칙서에는 약 300여 개 이상의 성서본문이 직간접적으로 인용되었다. 물론 베네딕트는 성경본문을 문자 그대로 인용하거나 출처를 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도사들이 보다 쉽게 낭독할 수 있도록 운율을 살리기도 했다.  KIATS영성 선집에서는 독자들에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경우에만 성경인용의 출처를 담았다. 우리는 이 《규칙서》의 한글 번역과 연구를 위해 지금까지 나온 많은 라틴어와 영어 번역을 참조했다. 동시에 믿을만한 비평본인 아달베르트(Adalbert de Vogüé)가 편집한 La Règle de Saint Benoît: Introduction, Traduction, et Notes par Adalbert de Vogüé: Texte Établi et Preésenté par Jean Neufville (Paris, Éditions du Cerf, 1972)과 프라이(Timothy Fry)가 편집한 RB1980: The Rule of St. Benedict in Latin and English with Notes (Collegeville, Minnesota: Liturgical Press, 1981)의 도움을 받았다.

 

주요 참고문헌

1차 문헌

Fry, Timothy . RB1980: The Rule of St. Benedict in Latin and English with Notes. Collegeville, Minnesota: Liturgical Press, 1981.

Gregory the Great. The Life of Saint Benedict. Hilary Costello, Eoin de Bhaldraithe. Petersham, Massachusetts: Bedes Publications, 1993.

Lentini, Anselmo. S. Benedetto, La regola: testo, versione e comment. 2. Montecassino: Pisani, 1980.

McCann, Justin. The Rule of Saint Benedict in Latin and English. London: Burns and Oates, 1952.

Penco, Gregorio. S. Benedicti Regula: introduzione, testo, apparati, traduzione e commento. Florence: La Nuova Italia, 1958.

de Vogüé, Adalbert . La Règle de Saint Benoît: Introduction, Traduction, et Notes par Adalbert de Vogüé: Texte Établi et Preésenté par Jean Neufville. Paris, Éditions du Cerf, 1972.

 

 

2차 문헌

강치원. 『베네딕트 규칙서』에 나타난 렉시오 디비나. 《선교와 신학》제19 (2007): 187-220.

김봉수. 『베네딕트 규칙서』에 나타난 수도원이념에 관한 연구. 《總神大論叢》제16 (1997): 249-290.

Casey, Michael. Strangers to the City: Reflections on the Beliefs and Values of the Rule of St. Benedict. Brewster, Massachusetts: Paraclete Press, 2005.

Ladrigan-Whelpley, Theresa. “Benedict of Nursia (c.480–c.547), Rule.” Christian Spirituality: The Classics. Arthur Holder . New York: Routledge, 2009: 62–73.

Merton, Thomas. The Rule of Saint Benedict: Initiation into the Monastic Tradition 4. Collegeville, Minnesota: Liturgical Press, 2009.

Stewart, Columba. Prayer and Community: The Benedictine Tradition. Maryknoll, New York: Orbis Books, 1998.

Swan, Laura. The Benedictine Tradition: Spirituality in History. Collegeville, Minnesota: Liturgical Press, 2007.

de Waal, Esther. A Life Giving Way: A Commentary on the Rule of St. Benedict. Collegeville, Minnesota: Liturgical Press, 1995.

 


posted by 바람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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