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함과 압박은 폭력입니다 (토마스 머튼)

한 줄 묵상 2013.02.20 08:01

현대 생활의 분주함과 압박은 타고난 폭력의 한 형태, 아마도 가장 흔한 형태이다. 상충하는 수많은 염려들에 스스로를 내어주고, 지나치게 많은 요구들에 항복하며, 너무 많은 계획들을 세워서 실천하고, 모든 사람을 모든 것에 있어서 도와 주기를 원하는 것은 폭력에 굴복하는 것이다. 아니 그것은 폭력에 협조하는 것이다. 활동주의자의 광기는 …… 자신이 하는 일이 풍성한 결실을 맺지 못하도록 파괴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일을 풍성하게 하는 내적 지혜의 뿌리를 죽이기 때문이다.


토마스 머튼 (Thomas Merton, 1915-1968) Conjectures of a Guilty Bystander (NY, Garden City: Image, 1989), 86.




매일 저녁 잠자리에 누워 하루를 돌아보면, 늘 여러가지 일로 분주하게 살고 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산책을 나가 발은 한가로이 걸어도, 마음은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압박으로 늘 총총 걸음이다. 토마스 머튼은 이렇게 현대 생활이 주는 분주함과 압박은 우리 자신을 향한 '폭력'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내면의 풍요로움과 그로 인한 삶의 풍요로움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튼에 따르면 평화를 위해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일한다 할지라도 지나치게 '활동'에 매여 있으면 그것은 폭력에 협조하는 것이다.


수도원의 수련생들을 대상으로 한 어떤 강의에서 머튼은, "만일 우리 안에 스스로를 사적인 기획(priviate projects)으로 떠미는 자아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결코 영성 생활을 발전시킬 수가 없다"고 말한다. 신기한 것은 늘 일에 쫒겨 살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거의 날마다 새로운 기획들과 아이디어들이 끊임 없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 생각들 중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것들을 분별해서 과감히 쓰레기통에 집어 넣고, 나의 계획이 아니라 그분을 좀더 깊이 생각하는 것이 올 한 해 개인적인 영성생활의 목표이다.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누가복음 11장 41-42절)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  / 바람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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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ppreciate your busy-ness! (팡세)

한 줄 묵상 2012.11.05 03:52

"인간의 온갖 불행은 단 하나의 사실에서, 즉 한 방에 조용히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서 유래한다는 것을 나는 발견하였다."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 팡세The Pensées (이환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부), p. 159




어느 가게에서 나오다가 이런 문구를 보았다: 


"We appreciate your business!"

 

그런데 순간, 그 말이 

"We appreciate your busy-ness!" 

로 읽히면서, 

마치 악마가 내 뒤통수에 대고 하는 말로 들렸다. 

Carl Jung이 한 말과 중첩되었기 때문인데, 

"현대인은 영혼을 잃어버렸다"

(「Modern man in Search of a Soul」)

고 말하는 그는 

어디선가 이렇게 말했다: 


"Hurry is not of the devil; hurry is the devil."

"바쁜 것은 악마적인 것 이상이다. 악마 자체다." 


왜 바쁘다는 것이 악마적인 것이고, 또 심지어 그 이상일까? 


그건, 바쁘면, '정신 없이' 바쁘게 살다보면, 

'정신을 잃어버리기' 때문이겠지. 


그렇다, 정신 없이 바쁘게 살다보면 그만 '영혼을 잃어버리기' 쉽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신 없이 바쁘게 살다보면 영혼을 잃어버린다기 보다는, 

어쩌면, 우리는, 

'이미 영혼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일부러 정신 없이 바쁘게 사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일부러 바쁘게 산다. 

바쁘게 살아야 잊을 수 있으니까. 


정신 없이 바쁘게 살아야 우리는, 

내게 영혼이 없다는 것을,

내가 내 영혼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다는 

끔찍한 사실을 잊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늘 바쁘다. 


그리고 인정 받는다. 


그게 사는 것이라고. 


세상을 잘 살고 있는 것이라고: 


We appreciate your busy-ness! 


/ 산처럼



      연극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한국 공연 명동 삼일로 창고극장 http://cafe.naver.com/samil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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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모으기 (그리스도를 본받아)

한 줄 묵상 2012.09.17 09:30
  • "recollect"라는 단어를 어원을 따라 "다시 모아 들인다"로 번역한 것이 인상적이네요. 요즘 할 일이 많아 늘 마음이 쫓기는데, 그러면서도 마음이 산만해요. 산만한 나를 "다시 모아 들여야겠어요."

    BlogIcon 바람연필 2012.09.16 10:02 신고
  • 목사님, 글 감사합니다. 마침 제가 읽고 있는 웨슬리의 기도도 하나님 사랑과 단순성에 관한 것이었는데 많은 부분 웨슬리가 기도에 대해 가르친 것과 통하는 것 같습니다. 웨슬리의 <자기 성찰>에서 주일의 주제가 "하나님 사랑과 단순성: 그의 수단으로서의 기도와 메디테이션"입니다. 웨슬리가 아켐피스를 좋아했고 많이 읽었음이 드러나기도 하고 또 이것이 기독교 영성 전통에 중요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새결개김 2012.09.17 14:18 신고
"내면의 길을 걷는 이들은 늘 자신을 다시 모아 들이며, 

바깥 것들에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는 바깥 일들이나

해야할 일들에 치이는 법이 없으며,  

무슨 일이 닥치든, 

그 일을 거뜬히 수용해 낸다."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c. 1380–1471), 《그리스도를 본받아》, book 2, ch. 1.





늘 일에 치여 사는 것은 

일이 너무 많아서일 수도 있지만, 

내가 너무 많아서 일 수도 있다. 

"내 속에 내가 너무 많기" 때문일 수 있다. 


영성가들은 '나'가 "하나로 모아지기"(recollection)를 바라고 힘썼다. 

어거스틴은 "하나(one)이신 하나님을 떠나 복잡한(many) 세상 속에 흩어저 버린 나를 다시 하나로 모아주소서"라고 기도했다. 


내가 하나로 모아지면, 

즉, 하나님만 사랑하는 "한 마음"을 품게 되면, 

일을 줄일 수 있는 내적 여유가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내적 힘이 생겨난다고 

토마스 수사는

'경험으로부터' 말하고 있는 듯 하다. / 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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