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함을 즐겨라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한 줄 묵상 2013.03.21 14:14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약함들을 매우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십자가를 매일 지고 가는 것을 대단히 즐길 수 있습니다.


-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Francis of Assisi, 1182-1226),

"권고들(Admonitions)" V. 8.



나는 최근 몇 년동안 삶을 '즐겨라(enjoy)'는 권면을 자주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리고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즐겨야 할까? 아씨시의 성자 프란치스코는 우리가 남들보다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거나, 부유하거나, 귀신을 쫓아내는 것과 같은 기적을 행한다고 해서 그것을 기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것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장애물들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모두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프란치스코는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약함들"과 우리가 매일 지는 "십자가"라고 가르친다.


"약함"과 "십자가"! 이것들 때문에 우울해지고 삶이 버거워지는데, 오히려 이 무거운 짐들을 즐기라니……! 


만약 우리 삶의 목적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며 편하게 사는 것이라면, 이것들을 결코 즐길 수가 없다. 그러나 만약 우리 삶의 목적이 주님을 닮고, 매일의 삶 속에서 그분과 일치를 이루어 가는 것이라면 "약함"과 "십자가"를 즐거워 할 수 있다. 주님께서 친히 세상의 모든 약함을 지시고, 십자가에 오르셨기 때문이다 (마8:17). 사순절이 깊어 가는 오늘, 나의 약함과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주님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리고 주님의 약함과 십자가에 내가 동참할 수 있다면, 벌거벗겨진 나의 약함과 내게 주어진 매일의 십자가를 즐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바람연필

posted by 바람연필

그분이 그렇게 사셨던 것처럼 (본회퍼)

한 줄 묵상 2013.03.14 01:37

나는 한계에 처해서가 아니라 중심에 있어서

약함에 있어서가 아니라 힘에 있어서

죽음과 죄책을 계기로 해서가 아니라 생과 인간의 선에 있어서 

신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 

거기에는 종교로 위장된 도피를 결코 허락하지 않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 본회퍼 지음(Dietrich Bonhoeffer, 1906-1945), 문익환 옮김, <옥중서신> (The Letters and Papers from Prison), 170, 


이십 대 초반에 만난 신영복 교수의 옥중서간은 자못 맛갈스런 글의 맛을 알려준 나의 문학 입문서이며, 한 인간이 가진 고뇌의 깊이를 엿볼 수 있는 인생 지침서이다. 그의 글은 지금도 나를 사색케 한다


"없는 사람이 살기를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삼십칠 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이십 대 후반, 또 하나의 《옥중서간》을 만났다. 본회퍼의 옥중서간》은 읽는 내내 그의 삶에서 묻어나온 인생의 갈등 뿐아니라, 이십 세기 시대적 고민에 근거한 서구 기독교의 한계와 그 문제를 바라보며 대안을 찾는 신학적 혜안을 얻을 수 있는 천재적 작품이다.

 

특히, 그는 기독교가 "종교로 위장된 도피"를 제공하는 것에 대하여 계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삶의 문제들(폭력 앞에 침묵, 부정 앞에 외면, 권력 앞에 비호)을 덮고 피안의 세계로만 인도하는 당시의 기독교는 종교이지 신앙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나도 이제 이 위장된 종교의 껍데기를 벗고 싶다. 나의 한계에서만 부르는 신의 이름이 아닌, 약함에서만 부르짖는 이름이 아닌, 죄책과 부끄러움 앞에서만 절규하는 신의 이름이 아닌, 힘과 생과 중심에서 그분을 신앙하고 싶다.

 

이 사순절,

그 분이 그렇게

사셨던 것처럼

말이다. / 나무 잎사귀

 

 

 

 

posted by 비회원

주님을 알게하소서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한 줄 묵상 2013.02.15 13:05

언제나 한결같으신 주님, 제가 저 자신을 알고 당신을 알게 하소서. 이것이 저의 기도입니다.[각주:1]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us of Hippo: 354-430, Soliloquia. II.I.I)


초대 교부/영성가들은 물질세계에 대한 지식(scientia)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sapientia, wisdom)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거스틴은 말한다. 변화하고 쇠락하는 물질계에서는 하나님, 곧 언제나 변함 없으신 그분을 아는 지식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 만나는 길은 인간 자아(the self)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the image of God)을 향하는 내면적 여정(via interior)이어야 한다.

 

나를 깊이 아는 길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 그런데 나는 늘 바깥세상에 정신을 팔고 있다. 화려하지만 사라지는 것들, 변화하고 퇴색하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따라 나의 생각도 감정도 변한다. 때로는 하나님조차 그런 것들 속에서 찾으려 하지는 않았는지…….

 

하나님, 이번 사순절기 동안만이라도 언제나 한결같으신 당신 곁에 제 마음이 잠잠히 머무르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를 더 깊이 알고 당신을 더 가까이 알게 하소서. 주님, 저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나의 내면을 차라리 외면하고 싶다. 어두움과 편견, 상한 감정들, 끝없는 욕망, 과도한 열망, 허망한 정열……. 이런 것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이것들은 하나님 이미지를 변형시키고 있다! 실로 다양하게. 나의 과도한 열정에 하나님의 모습은 일그러지고, 무지와 편견은 하나님의 본 모습을 가린다. 격한 집착은 환영(幻影)을 만들기도 하고, 허망한 열심은 하나님 아는 것을 하나님으로 착각하게 한다. 하나님은 늘 한결같으신 분이신데도, 내게 그분은 때를 따라 다른 분으로 보이고, 내가 아는 하나님은 다른 이들의 하나님과 다를 때도 있다.

 

상한 심령을 제물로 받으시는 주님, 이 사순절기 동안 제 감정과 마음과 생각을 당신 앞에 내려놓으려 합니다. 정하게 하소서. 새롭게 하소서. 당신이 부어주시는 당신의 형상만이 내 속에 가득하게 하소서. 주님,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새결새김



구글+ '산책길'

Via the Living Books




  1. (English) God, You that are always the same, here I am, I would like to know myself and, alike, to know Thee. This is my prayer. (Latin) Deus semper idem, noverim me, noverim te. Oratum est. [본문으로]
posted by 새결새김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

"인생아 기억하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예배


posted by 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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