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의 영성에 눈뜨다 (존 울먼)

한 줄 묵상 2014.10.19 12:34

이번 여행에서 두 가지가 내 마음에 각인되었다. 첫째, 노예들의 고된 노동의 댓가로 편안함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의 집에서 기거하고, 먹고, 마실 때마다 내 마음에 불편함이 계속해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 둘째는, 노예를 수입하고 거래하는 무역이 성행하고, 그에 따라 상응하는 노동없이 여유있게 사는 백인들과 그의 자녀들에 대해 나의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는 것이다. …… 이 내적 고민은 한두 번이 아닌, 내 마음에 고정된 문제가 되었다.


- 존 울먼(John Woolman: c. 1720-1772), 《Journal of John Woolman》, chapter 2. 


    신실한 기독교인이라 자부하며 신앙 생활을 하던 학창 시절, 사회불안을 조장하고, 폭력을 일삼는 노동자들과 대학생들에 대해 나는 신앙의 이름으로 그들을 비판하고 정죄하길 일삼았다. 사회문제와 그로 인한 갈등과 긴장은 내 신앙적 세계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훌륭한 신앙인은 사회문제와 그로 인해 야기되는 갈등과 긴장으로부터 초연하고 거리감을 두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믿어왔다. 어릴적 내게 있어서 사회문제와 신앙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위의 인용문은 미국의 초기 퀘이커 교인인 존 울먼이 자신의 일기에 노예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남긴 첫 번째 기록이다. 미국 동해안 중남부 도시의 영적 공동체를 순회하면서 보게 된 사회현상이 그의 마음에 부딪혀 왔고, 이에 대한 그의 고민이 깊어져 갔다. 존 울먼은 한 평생 노예 제도라는 사회 억압 구조의 폐지를 위해 헌신했는데, 그 시작은 이와 같이 참으로 미약하고 단순한 인식과 행동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억압과 압제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고, 그들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것을 기도로 옮겼다. 고통에 대한 최초의 인식과 그에 대한 긍휼의 마음은 신학적 이해 이전에 존 울먼의 영혼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의한 사회구조에 기대어 부당한 이익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적어도 그들이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이런 억압과 폭력을 일삼아서는 안 된다는 원초적 깨달음에서 그의 기도는 시작되었다. 그의 일생의 소명은 그렇게 고통받는 자들에 대한 긍휼의 마음에서 시작하였다. 이천 년 전 억압적 사회구조에 고통당하고 있던 유대인을 긍휼히 여기셨던 예수님처럼. 

    정의, 형평성, 사회 안전망에 대한 시대적 요구와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는 이 시점에 존 울먼은 우리에게 직설적으로 묻는 듯하다이웃과 지체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방관자가 되어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의 양심은 충분히 선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추구하고 있는지, 혹 우리와 그들의 고통이 사회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어떻게 기도하고 반응할 지에 대하여 말이다. 존 울먼은 긍휼의 마음으로부터 우리의 영성 생활을 시작하자고 초대한다. 이웃과 지체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기도로 옮기자고. / 이주형









posted by 구름위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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