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귀고 2세에게 배우는, 렉시오 디비나를 통한 ‘영성 목회’

6. 귀고(Guigo) 2세에게 배우는,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를 통한 ‘영성 목회’



한국교회 안에서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는 이제 그리 생경한 단어가 아니다. 라틴어 '렉시오(lectio)'는 ‘모으다’, ‘필요한 것을 선택하다’, ‘눈으로 모아들이다’라는 뜻의 'legere'에서 온 명사형으로, ‘기록된 본문을 눈으로 훑어보아 마음에 모으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렉시오 디비나는 ‘거룩한 말씀을 눈으로 훑어 마음에 모으는 영적훈련’이다. 그러나 아직 많은 교회와 교인들은 렉시오 디비나를 QT(경건시간)의 다른 표현으로 이해하여 교회 내 대안적 프로그램으로만 이해하고 있으며, 고대 사막의 수도자들에 의해 시작되어 12세기 카르투시오 수도회에서 윤곽을 갖게 된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아, 고전에서 주는 풍성한 깊이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렉시오 디비나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귀고(Guigo) 2세의 책, 《수도승의 사다리》(The Ladder of Monks)를 근거로, 수도자들이 어떻게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를 통해 하나님과의 일치(Union with God)를 추구했는지를 살펴 볼 것이고, 이러한 렉시오 디비나를 통한 하나님 경험이 어떻게 목회 현장에 새로운 힘을 넣어줄 수 있는지 다루고자 한다. 


귀고(Guigo) 2세의 《수도승의 사다리》

엄밀히 말하면, 렉시오 디비나는 12세기 귀고(Guigo) 2세의 것도, 6세기 베네딕트 수도회의 것도, 사막의 구도자들의 것도 아닌 하나님의 것이다. 일찌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으라 이스라엘’이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셨고, 그 렉시오 디비나의 형태를 받아들인 다윗은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시 119:105)라고 고백하면서 말씀으로 삶을 조명 받으려고 노력했다. 

이런 성경읽기, 즉 머리로만 분석하고 지적 만족을 주는 접근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 ‘이 곳에서’ ‘내 것으로’ 삼는 ‘전유화’(appropriation)를 의미하는 '렉시오 디비나'라는 단어는 서방 수도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베네딕트 (Benedict of Nursia, 480-547)가 처음 사용하였다. 베네딕트는 그의 책 《베네딕트 규칙서》 48장에서, “게으름은 영혼의 적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은 영성 깊은 독서(lectio divina)뿐만 아니라 육체 노동을 위한 구체적인 시간을 배정해야 한다.”[각주:1]라고 말하며, 'lectio divina'라는 단어를 처음 소개하였다.

그 후 아직 뚜렷한 형태를 갖추지 못했던 렉시오 디비나는 카르투시오회(Carthusian Order)의 귀고 2세에 의해 전형화된 틀을 갖추게 되었다. 귀고 2세의 생애에 대해 뚜렷히 알려진 바는 없다. 프랑스 그르노블 근처에서 1084년 창설된 카르투시오회의 초기 회원 중에 한 사람이었다는 것, 1173년 공동체의 책임자의 자리에 있다가 제 9대 원장으로 선출되었다는 것, 그리고 1180년 이 소임을 끝낸 후, 1188년 소천했다는 것 정도가 그에 관해 알 수 있는 전부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렉시오 디비나의 전체적인 윤곽이 그의 책 《수도승의 사다리》에 잘 소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귀고 2세는 《수도승의 사다리》에서, 구도자들이 마치 사다리의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올라가듯, 렉시오 디비나를 통해 하나님과의 일치를 향해 어떻게 올라가야 하는지에 대해 네 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독서(lectio)- 묵상(meditatio)- 기도(oratio)- 관상(contemplatio). 이 네 단계를 자세히 뜯어보자. 그가 말하는 렉시오 디비나는 무엇인가?

먼저, 독서(lectio)는 치밀하게 성경을 연구하는 것인데 특히 자신의 에너지를 성경에 집중하는 것이다. 음식 먹는 것에 비유하자면, 이 단계는 음식을 입에 넣는 단계이다. 귀고는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경을 치밀하게 이해하기를 소망하면서, (이 독서의 단계에서는) 영혼이 달콤한 포도송이를 한 입 베어 물고 씹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마치 포도를 포도즙 짜개에 넣듯이 말이다. 이제 이 독서의 단계에서 (잠자고 있는) 지성의 모든 힘을 불러 일깨운다.”[각주:2] 이 단계는 렉시오 디비나의 첫 번째 단계로 아주 천천히, 여유롭게, 그러나 집중해서 성경을 읽는(lectio) 단계이다. 

두 번째로 묵상(meditatio)은 말씀 안에 숨겨진 진리를 찾기 위해 이성의 도움을 받아 행해지는 적극적인 단계이다. 귀고는 이 단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묵상을 치밀하게 할 경우, 묵상은 영혼 밖에만 머물지 않고, 덜 중요한 것에 묶여있지 않고, 오히려 이 묵상으로 인해 내 영혼은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며 마음 안으로 깊이 들어가서 철저히 내 마음을 식별하게 된다.”[각주:3]

성서를 통해 영성을 고취하는 해석학적 방법론을 마련한 샌드라 쉬나이더스(Sandra Schneiders)에 의하면, 이 묵상의 단계는 성경 본문을 내면화하는 단계로써 그것의 의미를 반추하거나 말그대로 묵상하는 단계라고 소개한다. 더 나아가 쉬나이더스는 중세 성서 주석들은 영적 깊이나 풍부한 상상의 폭(넓이)을 가지면서 이 묵상의 단계에 독자를 초대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 단계는 성경 본문의 연구를 넘어서 독자가 자신만의 상황(삶과 경험)속에서 본문의 깊은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소개한다.[각주:4]

세 번째로 기도(oratio)는 묵상에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반응으로서, 독자가 성경 본문 안에서, 혹은 본문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귀고는 이 단계에서 우리의 영혼은 우리 스스로 지성과 감성의 감미로움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단언하면서, 우리의 영혼은 겸손하게 그리고 철저히 기도에 의존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렉시오 디비나는 이 기도의 단계를 통해 절정으로 나아간다. 그는 이렇게 기도한다. 

“오 주님, 당신이 성경의 양식을 쪼개주셔야만, 당신이 그 속에서 당신 자신을 내게 보여주십니다. 그 때, 내가 더 당신을 보기 원할수록, 더욱 내가 당신을 보기를 사모할수록, 당신은 내게 성경의 글이 아닌, 그 껍데기의 의미가 아닌, 글 안에 숨겨있는 의미로, 그 깊은 말씀 안으로 나를 인도하십니다.”[각주:5]

마지막으로 관상(contemplatio)은 온 마음과 뜻이 하나님께 올려져서 그분에게 잠겨있게 되어 영원한 기쁨을 맛보는 것이다. 앞의 단계의 깊이있는 기도는 하나님과의 연합으로 인도하고 그것이 바로 영적 삶의 꼭짓점이자 본질의 영역인 관상의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말씀을 연구하는 식의 시도, 즉 무엇인가는 알아가는 모든 시도를 내려놓고 독서와 묵상과 기도의 단계에서 만난 하나님과의 일치를 누리는 단계이다. 귀고는 이 관상의 단계에서 하나님은, 

“아주 달콤하고 감미로운 하늘의 이슬을 흩뿌려주시고, 가장 고귀한 향수로 기름부어주시고, 지치고 지리한 영혼을 회복시켜주시고, 갈급한 심령을 만족시켜주시고, 배고픈 영혼을 먹여주시고, 이 땅의 모든 염려를 잊게하시고, 가장 좋은 방법으로 새로운 삶으로 이끄신다.”[각주:6]고 설명하고 있다. 쉬나이더스 역시 이 관상의 단계를 “완전히 만개한 꽃으로서, 어떤 그림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과의 연합의 단계”[각주:7]라고 설명한다.   

또한 귀고는 이 네 단계는 분리된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서로의 연관성을 설명하고 있다.

“독서(lectio)는 이 모든 단계의 기본이며, 묵상을 위한 자료들을 제공한다. 묵상(meditatio)은 찾아야 할 것을 더 주의 깊게 고려하면서 숨겨진 보물들을 파내는 작업이다. 그러나 이 보물을 꺼내는 것은 묵상의 힘으로는 안 되며 이것은 기도의 힘이다. 기도(oratio)는 전심으로 기도 자체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이 보물을 간구하는 것인데, 이 보물은 바로 관상의 감미로움(The sweetness of contemplation)이다. 관상(contemplatio)은 이전 세 단계의 상급으로, 하늘의 감미로움으로 갈망하는 영혼을 촉촉이 적시는 것이다.”[각주:8]

이렇게 귀고 2세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렉시오 디비나를 사다리의 이미지로 전형화해서, 각각의 단계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는지 보여주었으며, 많은 구도자들을 말씀으로 초대하여 하나님과의 연합에 이르는 길을 설명한다. 


렉시오 디비나를 통한 영성목회

그럼 우리는 어떻게 이 귀고 2세의 렉시오 디비나를 목회 현장에 적용할 것인가? 성경의 권위가 강한 한국의 개신교는 19, 20세기 유럽과 미국의 대부흥을 거치면서 검증된 다양한 성경 프로그램을 가지고있다. 그 중에 ‘QT’는 제자훈련의 입문단계로 인식되어 개 교회의 성경공부반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귀납법적 성경연구’식 프로그램은 좀더 지적 접근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그 갈급함을 해결해주고 있다. 이 얼마나 소중하고 풍성한 영적 유산이란 말인가!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훈련을 받아도 왜 우리는 변하지 않는가! 이 거대한 담론을 제한된 지면에 소개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할 수 없다. 단, 성경의 절대성이 강한 개신교가 이제까지 수많은 성경 프로그램을 해왔지만 삶에 깊은 영향을 주지 못했다면, 지금까지의 접근에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을 아닐까?

렉시오 디비나 소개는 이 지점에 방점을 찍고 한국교회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즉, 성경을 읽되 본문이 주는 의미보다는 독자의 삶의 정황에 더 큰 관심을 갖는 QT식 성경읽기가 아닌, 혹은 성경 본문이 주는 메시지를 삶에 적용하기 보다 본문 자체를 알아가는 정보적 관심에 더 큰 의미를 두는 귀납법적 성경연구식 성경 읽기가 아닌, 본문을 철저히 읽고, 묵상하고, 기도로 올려드리며, 기도 중에 하나님과의 연합을 경험해서 그 말씀이 철저히 삶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렉시오 디비나는 영성 목회에 중요한 시작이라 하겠다. 

이렇게 성경을 기반으로 한 영성을 추구하는, 앞서 이미 언급한, 샌드라 쉬나이더스는 우리에게 좀 더 많은 들을거리를 제공한다. 쉬나이더스는 어떻게 크리스찬이 성경을 통해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까를 누구보다 진지하게 고민했다. 쉬나이더스는 성경의 역사적, 문학적 방법을 통해 얻은 정보들은 변화를 가져오기가 힘들고 오히려 성경 안으로 들어가서 성경의 세계를 경험하기를 원하는 독자가 그 말씀 안에 자신을 완전히 열었을 때, 하나님과의 연합을 체험하고 그 때, 비로소 변화를 경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각주:9] 즉, 쉬나이더스 역시 귀고처럼 정보적(informative) 접근이 아닌 변화적(transformative) 접근으로 성경을 경험할 것을 부탁하고 있다.

더 이상 교회 안에서 성서읽기는 백화점식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머물면 안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렉시오 디비나는 정보 생산에 헐떡이던 모더니즘적 접근에 매여있는 한국교회에 큰 방향을 바꿀 영성 목회의 기초가 될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에 할례된 성도와 다음 세대는 더 이상 지식을 더하는 제자훈련식 프로그램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관심은 ‘변화’에 있다. 내가 변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나를 통해 다른 사람이 변하느냐? 이런 도전적 토양에서, 렉시오 디비나를 통한 영성 목회는 우리의 신앙 체질을 바꿀 수 있는 건강한 시도가 될 것이다. 말씀 안에 자신을 완전히 열어(lectio, meditatio), 말씀의 세계 안에서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고(oratio), 그분 안에서 이전에는 맛보지 못한 기쁨을 경험하는 것(contemplatio) 그래서 옛 삶을 벗고 새 삶으로 변화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영성의 진수라 하겠다. 


글쓴이 : 이경희. '산책길' 기독교영성고전학당 연구원, 새크라멘토 시온장로교회 목사, GTU 기독교 영성학 Ph.D Candidate.

'산책길'은 2015년 한 해 동안 기독교 월간지 <목회와신학>에 '영성 고전에서 배우는 영성 목회'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목회와신학>의 양해를 얻어 이곳 산책길 팀블로그에서도 매달 글을 게재합니다. 위의 글은 2015년 6월 호에 실린 여섯 번째 글입니다.


  1. 누르시아의 베네딕트 지음, 권혁일·김재현 옮김, 《베네딕트의 규칙서》(KIATS, 2011), 91. [본문으로]
  2. Guigo II, Ladder of Monks and Twelve Meditations, trans. Edmund Colledge, O.S.A. and James Walsh, S.J, (Kalamazoo, MI: Cistercian Publication, 1981), 69. [본문으로]
  3. Ibid., 70. [본문으로]
  4. Sandra Schneiders, “Biblical Spirituality,” Interpretation 56, no. 2 (April 1, 2002): 140. [본문으로]
  5. 주: Guigo II, Ladder of Monks and Twelve Meditations, 73. [본문으로]
  6. Ibid., 74. [본문으로]
  7. Schneiders, “Biblical Spirituality”: 140. [본문으로]
  8. Guigo II, Ladder of Monks and Twelve Meditations, 79. [본문으로]
  9. Schneiders, “Biblical Spirituality”: 136. [본문으로]
posted by 바람연필

독서하는 신앙인 (존 웨슬리)

한 줄 묵상 2013.10.30 09:00

“[감리교인들]이 영적 독서에 열심을 내지 않는다면, 그들이 은혜 속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실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만이 하나님과 그분의 세계를 깊이 아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존 웨슬리 (John Wesley, 1703-91), “A Letter to George Holder” (8 Nov. 1790) in Telford ed., Letters, 8: 247.

 

웨슬리는 감리교인들이 열심히 독서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랐다. 그는 감리교인은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을 알려주는 책들을꾸준히 읽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고 당부한다(General Rules of 1743). 그는 설교자들에게 이러한 독서는 더욱 더 필수적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감리교 설교자들에게 젊은 대학생들처럼열심히 독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자신이 추천하는 책들을 하루에 7시간씩 읽게 하였다(The Minutes of 1746 and 47).

웨슬리는 개인과 공동체의 영적 성숙에 고전 읽기가 필수적임을 잘 인식하고, 그것의 실천을 끊임없이 강조한 신앙 지도자였다. 그는 민중들의 신앙 고전 독서 실천을 뒷바침하기 위해 다양한 기독교 전통에서 비롯된 수많은 고전들을 편집하고 출판, 배포하는 일에 많은 힘을 썼다. 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18세기 영국에서 가장 많은 책을 편집, 출판한 이가 바로 존 웨슬리였다고 한다(The Cambridge Companion to John Wesley, 145). 이는 그가 영적 독서를 진작하기 위해 들인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영적 고전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에 대한 열심을 신앙 고전 읽기로까지 확대한다면, 한국 교회는 신앙의 성장과 성숙에 위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웨슬리 자신도 한 책의 사람(homo Unius libri)"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신앙 생활에 있어서 성서의 역할를 중시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이런 성서 중심의 신앙에다가 신앙고전 읽기를 더하는 것이 사람들의 영적 성장에 더 없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강조했던 것이다. 고전 읽기는 우리가 성서의 세계를 보다 깊고 폭넓게 이해하는 데에 바탕과 길잡이가 될 것이며(성서 해석의 가장 중요한 길잡이는 교회의 전통이다!), 또한 고전 읽기는 성서적 신앙이 삶의 실천으로 이어지게 하는 데에도 힘과 지혜를 줄 것이다. 왜냐면 고전이란, 성경을 품고 살았던 신앙 선현들의 경험에서 나온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성경과 고전 읽기의 상호 작용이 우리의 신앙 실천을 바른 성장으로 이끌 것이다. / 남기정

posted by 새결새김

인문학과 성경 읽기

조각이나 그림을 감상할 때에 그 작품의 각 부분을 곰곰이 살펴본다면, 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읽을 때) 이 놀라운 광경 (지붕을 뚫고 내려진 중풍병자를 고치신 일) 앞에 잠시 멈추어 서서 (너의 이성을 동원해서) 경건한 호기심을 가지고 내용을 세밀하게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 제임스 트래이시(James Tracy), "인문주의자들의 성서 이해: 영혼의 양식," 《기독교 영성 II》, 질라이트 편집(Jill Raitt), 엄성옥 이후정 공역 (은성), 386.


요즘 십여 명의 청년들과 함께 제자훈련이라는 이름으로 만나고 있다. 총 세 단계의 훈련 과정인데 첫 번째 과정을 수료한 친구들과 이제 막 두 번째 과정으로 들어왔다. 대견하고 기특하다. 공부하고 일하는 시간을 쪼개서 렉시오 디비나, 말씀 암송, 자기 관리표 작성 등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청년들을 보며 늘 도전받는다.

오늘이 두 번째 과정(14)에 들어가는 첫 날이다. 이런 저런 숙제들을 설명하다 함석헌 선생님의뜻으로 본 한국역사》등 몇 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는 말에 청년들은 아연실색이다. 그 착한 청년들이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갈 기세다. 한 술 더 떠, 이게 성경과 관련된 책이냐며 앙탈을 떤다. 대박…!


왜 교회에서 인문학은 치외법권인가?   

중고등학교 시간에 배워 익숙한 르네상스의 아버지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of Rotterdam, 1466-1536)는 사실 인문학자이기 이전에 가톨릭 사제이며 복음적 영성가였다. 그는 당시에 팽배했던 금욕주의적 기독교보다 인문주의의 접근이 더 세상에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그를 포함한 인문주의자들은 지식을 지적인 것들의 영역에 한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식이란 하나님을 더 알고자하는 인간의 마음을 꿰뚫는 의지를 형성하는 전인적 경험(Holistic Experience)이라 이해했다. 그들에게 인문학은 절대 하나님을 등지기 위함이 아닌 하나님 등에 업혀 못 보았고 못 들었던 지성의 세계를 열어 그분을 더 깊이 알아가고자 함이었다.


위에서 트레이시가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는 성경을 대할 때, '이것은 몇 년도 조각된 누구의 작품입니다. 다음 작품은요……'라는 설명으로 조각품 감상을 급하게 훑듯 성경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조각품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 이곳저곳 뜯어보며 조각가와 대화하듯 경건한 호기심으로 물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이성의 잠자던 미세신경까지 깨워 본문에 드러나지 않은 행간에 숨겨진 하나님을 읽어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에 경제학, 미술사, 정치학, 건축학, 역사학 등의 인문학은 성경이 꽁꽁 싸맨 그만의 맨살을 볼 수 있는 좋은 도구이다. 그런 의미에서 함석헌 선생의 그 책을 난감해하던 나의 청년들이 시간이 지난 후 인문학을 통한 하나님과의 전인적 경험을 기뻐할 날이 곧 오리라 믿는다. 나도 그러했기에 그들이 더욱 기대가 된다. / 이경희



기독교 영성 2

저자
질라이트 외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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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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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기독교 영성 시리즈. 중세시대와 종교개혁기의 영성, 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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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 Spirituality Vol. 2: High Middle & Refor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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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nard McGinn, Jill Raitt, John Meyendorff 지음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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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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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A multivolume series with more t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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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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