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을 성서조선으로!

한 줄 묵상 2015.10.29 16:12

우리는 다소의 경험과 확신으로써 금일의 조선에 줄 바 최진최절(最珍最切)[가장 귀하고 가장 간절함]의 선물은 신기하지도 않은 구·신약 성서 한 권이 있는 줄 알뿐입니다. … 〈성서조선〉아, 너는 … 조선 혼을 소지한 조선 사람에게 가라. 시골로 가라. 산촌으로 가라. 거기에 초부[나무꾼] 일 인을 위로함으로 너의 사명을 삼으라.

 - 김교신 지음(1901-1945), KIATS 엮음, 《김교신》(서울: 홍성사), 167, 168. 

교회는 민초들이 나무뿌리만 먹으며 지냈던 조선말기와 일제강점기부터 사람들의 혼을 책임지는 의식 공동체였다. 춥고 배고픈 시절이지만‘조선을 성서 위에 세우겠다’고 일갈하던 김교신, 함석헌, 유동식 같은 어르신들이 있었기에 지옥과 같던 ‘헬조선’은 ‘성서조선’이 되었다. 교회가 변질되었다고 매도하는 목소리들이 더 큰 요즘이지만, 그래도 대다수의 목회자들은 건강한 ‘작은 교회’를 꿈꾸며, 육참골단(肉斬骨斷)의 마음으로 아픈 부위를 도려내며 갱생하려 몸부림친다. 그 일이 조선 혼을 소지한 조선 사람을 성서 위에 세우는 교회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들어  우리 나라가 ‘헬조선’이 되었다고 아우성이다. ‘5포, 7포, 9포’ 시대의 넉두리와 원한이 곳곳에서 비등하다. 왜 성서조선이 헬조선이 되었는가? 게다가, 이 정부는 조선의 혼이 가득한 조선 사람의 역사를 제 입맛에 맞게 재단하려한다. 꽃보다 더 고운 중고생들이 촛불을 들고 저 푸른기와집, 담벼락을 향해 애절하게 외친다. 왜 성서조선이 헬조선이 되었는가? 

다시 헬조선에서 성서조선이다. 교회는 조선의 혼을 책임지는 의식 공동체다. 교회는 잘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궁전이 아니라, 더 많이 갖기 위해 충혈된 눈이 모인 시장이 아니라, 시골로, 산천으로… 그분의 위로에 굶주린 이들과 함께하는 곳이다. 이제 이 조선은 최진최절(最珍最切)의 선물인 성서 위에 다시 서서 조선의 혼을 깨우고, 민중을 살리고, 역사를 새롭게 써야할 것이다. 그 때, 한반도는 지옥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를 맛볼 것이다.

타말파이스 이경희



김교신 선생이 발간한《성서조선》 창간호 (1927. 7. 1)



posted by 바람연필

조와 (弔蛙, 개구리의 죽음을 애도함) (김교신)

한 줄 묵상 2014.06.20 02:12

봄비 쏟아지던 날 새벽, 오래간만에 친구 와군(개구리)들의 안부를 살피고자 담 속을 구부려 찾았더니 오호라, 개구리의 시체 두세 마리 담 꼬리에 부유(죽어서 물위에 떠다님)하고 있었습니다. 혹한에 동사한 개구리 시체를 모아 매장하여 주고 보니, 담저에 아직 두어 마리 기어 다닙니다. , 전멸은 면했나 봅니다!

- 김교신 지음 (1901-1945), KIATS 엮음,《김교신》(서울: 홍성사), 174.[각주:1]



이 글은 신사참배를 강제하는 일제강점기에서도 변절하지 않는 신앙인이 남아있음을, 전멸하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이 글로 인해 김교신이 발행하던 <성서조선>이 폐간당하고, 그는 일본경찰에 의해 취조를 받는 고초를 겪었다. 선생은 이러한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민족독립정신을 일깨운 지사였다. 그렇게 세운 나라가 이 땅이요, 그렇게 피흘려 건져낸 복음이 이 땅의 기독교다. 


그런데 요즘 소위 보수적 신앙인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기독교는 이런 복음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라, 일본 명치유신의 대부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과 같은 사회적 진화론에 뿌리를 두고, 조선 정복을 정당화하는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하는 듯하다. 그래서 그들은 입을 열면 게으른 국민을 깨운 일제치하’, ‘일제 36년은 경제 번영의 기초를 세운 하나님의 기회라는 말을 운운하며 박정희의 유신과 조국 근대화론을 옹호하고 있으며, 또한 뉴라이트의 세계관의 초석을 제공하는 망언을 쏟아내고 있다.

 

과연 혹한을 이겨낸 개구리()는 정한론을 기다려온 생명들일까과연 민주화의 대열의 최전선에서 민족의 아픔을 같이 한 기독교는 일제강점기부터 기득권을 누려온 이들을 옹호하는 그네들의기독교에 뭍혀야만 하는가어찌 이런 저속한 횡포에 어렵게 살아난 개구리가 다시 죽음에 방치되도록 내버려 둬야 하는가그러나 김교신의 말처럼 아직 다 죽지 않았다!’ ‘전멸은 오지 않으리라비록 더 엄혹한 시간이 온 다 할지라도, 우리의 기독교가 어떤 사명을 가지고 이 땅 위에 존재하는지를 안다면 그네들의 기독교와 다른 우리의 기독교의 생명은 꺼지지 않으리라! / 이경희 








  1. *1942년 3월호에 실린 글, ‘조와弔蛙’는 <성서조선> 폐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총독부 당국은 김교신이 이 글에서 조선인을 개구리에, 일본의 조선 지배 정책을 혹한에 비유하여 민족의 독립을 암시했다하여 김교신을 비롯하여 함석헌, 송두용 등 13명을 투옥하였고, 독자 400여 명까지도 취조하였다 (173면의 각주에서 인용). [본문으로]
posted by 비회원

그 사람을 가졌는가? (김교신)

한 줄 묵상 2014.02.14 11:16

"우치무라 선생은 여하간 위대한 선생입니다.  마침 우치무라 선생 일생의 대 사업인 로마서 강의가 시작되어 초회부터 비상한 열심으로써 참석하였습니다.  당시에 우치무라 선생의 저서를 읽은 것은 독서하였다기보다 기갈(굶주림과 목마름)하였던 자가 몰체면하고 음식물을 탐식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노니 저는 선생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치무라 간조란 인간의 지도를 통하여 복음의 오의(義/깊은 뜻)를 가르침 받았다는 것입니다."

- 김교신 지음(1901-1945), KIATS 엮음《김교신(서울: 홍성사), 120, 127, 131







     우리에게 '무교회주의자'란 주홍글씨로 폄하되어 알려진 김교신은 사실, 한국교회가 세계에 내세울 만한 탁월한 교육가이며, 민족운동가요, 독교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그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 중 우리에게 익숙한 사람들이 여러 명 있다. 농학자이며 사회운동가이며 수필가인 유달영, 한국의 슈바이처인 장기려, 《태백산맥》과 《아리랑》의 작가 조정래, 그리고 영원한 마라토너 손기정이다. <성서조선>을 통한 그의 삶과 사상은, 암울했던 일제침략기의 민초들이 민족적 정체성을 깨닫고 '조선산 기독교'를 만들수 있도록 도와준 토양이 되었다.

     그가 그렇게 '선생'될 수 있었던 이유, 그렇게 가르쳐 사람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그에게 우치무라 간조라는 스승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먼저 스승되기보다 오히려 '더 많이 배우는' 제자가 되었다. 그런의미에서 히브리어에 '가르치다'라는 단어가 없다라는 점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히브리어는 '배우다'(라마드)라는 보통형 동사(칼)가 '더 많이 배우다'(리미드)라는 강조형 동사(피엘)이 되면 '가르치다'라는 뜻을 만들어낸다. 즉 히브리어에서 '가르치다'라는 단어는 없고, '배우다'라는 단어의 강조형태인 '더 많이 배우다'가 '가르치다'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다시 말해서 가르치고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먼저 '더 많이 배우라'는 말이다.

     이미 모더니즘적인 패러다임이 종언을 고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더니즘적 자기 관리와 자기 강화의 기술로 세상에 영향을 주기위해 '일만 스승'(고전 4:15)이 되려 한다. 그러나 먼저 배움이 없이는, 그리고 더 겸손히 자신의 기갈한 상태를 점검해주고 꾸짖어주는 스승 앞에 더 많이 배우지 않고는, 참 선생이 될 수 없다. 김교신이 먼저 그의 스승 우치무라 간조에게 몰체면하고 복음의 깊은 뜻을 더 많이 배운 것처럼 이 땅의 가르치려 하는 자들이 먼저 '더 많이 배울' 스승을 가져할 것이다. 

지금 너의 상태를 물끄러미 봐주고 그 기갈을 채울 스승을, 그 사람을 가졌는가? / 이경희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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