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긍휼을 품은 사람은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한 줄 묵상 2015.04.15 16:06

하지만 형제애에서 우러나는 긍휼을 품은 이는 그 슬픔의 원인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랄 것입니다. 


-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of Hippo: 354-430) 《고백록》, Book III, ii (3)


카르타고(Carthage)에서 유학하던 젊은 시절, 아우구스티누스는 극장에서 비극을 즐겨 보았다. 그것은 그가 비극 관람을 통해 얻는 '카타르시스(catharsis)' 그 자체를 즐겼기 때문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람들이 자신은 슬픈 일을 당하기를 원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이들의 불행을 보는 것을 즐기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기 좋아하는 것은 참된 긍휼(misericordia)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참된 긍휼은 불쌍한 사람과 함께 슬퍼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 슬픔의 원인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슬퍼하는 이들의 진정한 형제와 자매는 그 슬픔의 원인을 찾아, 그 원인이 제거되도록 행동하는 이들이다. 세월호 희생 1주기를 맞아 그저 슬퍼하고 눈시울을 적시는 데서 끝난다면, 그것은 참된 긍휼도 연민도 자비도 아니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들이 돌아오고,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규명되어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를 찾아 실천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품어야 할 참된 긍휼이다. / 권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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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머튼의 <동생을 위해> 그리고 4월 16일

2014년 4월 16일, 고난주간 수요일, 세월호가 조난당하고 삼백 여명의 꽃다운 생명이 바닷속에 잠겼다. 

1943년 4월 16일, 고난주간 금요일 밤, 토마스 머튼의 동생 존 폴 머튼이 영국 해협에서 조난 당하고, 다음날 이른 새벽 바다 위에서 숨을 거뒀다.


존 폴 머튼(John Paul Merton, 1918-1943)은 당시 캐나다 공군 소속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가 탄 비행기가 고도를 잃고 바다에 추락했고, 그 충격으로 그는 척추가 부러져 버렸다. 함께 탑승하고 있던 동료 두 명이 그를 간신히 고무보트로 끌어 올렸지만, 그는 세 시간 정도 갈증 속에서 버티며 기도하다가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의 동료들은 구조를 기다리며 바다 위를 표류하다가 표류 넷째 날 존의 시신을 수장하였고, 다섯째 날에 구조되었다. 양친이 모두 일찍 돌아가셨기에 토마스와 존 두 사람에게 서로는 참 특별하고 애틋한 존재였다. 토마스 머튼은 동생의 죽음 소식에 크게 슬퍼했고, 그의 세 시간의 목마름 속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목마름을 보았다. 아래는 트라피스트회 수도자 토마스 머튼이 동생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지은 애가(歌)인데, Thirty Poems(1944)라는 그의 첫 번째 시집에 실렸다가 후에 그의 자서전 《칠층산》(The Seven Storey Mountain) 초판의 마지막을 장식하였다. 세월호 사고로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애도하며, 머튼의 시를 한글로 다시 옮긴다. 




동생을 위해 : 1943년 작전 중 실종됨

 


사랑스런 아우야, 내가 잠들지 않으면

나의 눈은 너의 무덤에 놓는 꽃이란다

그리고 내가 빵을 먹지 못하면

나의 금식은 버들처럼 네가 죽은 곳에 살리라

내가 뜨거운 열기 속에 갈증을 적실 물을 찾지 못하면

나의 갈증은 너, 가련한 여행자를 위한 샘이 되리라

 

네 가련한 몸은 어디,

어느 적막하고 연기 자욱한 나라에

누웠느냐, 실종되었느냐, 그리고 죽었느냐?

그리고 네 불행한 영혼은

어떤 처참한 풍경 속에 길을 잃었느냐?

 

오라, 나의 노동 속에 안식처를 찾으라

그리고 내 슬픔 속에 네 머리를 눕혀라,

아니 차라리 내 생명과 피를 가져라

그래서 널 위해 더 좋은 침대를 사라

아니 내 숨과 내 죽음을 가져라

그래서 널 위해 더 좋은 안식을 사라

 

모든 전사들이 총탄에 맞고

깃발들이 먼지 속으로 추락할 때

너의 십자가와 나의 십자가는 그들에게 여전히 말하리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각자의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

우리 모두를 위해.

 

네 사월의 잔해 속에 그리스도가 학살당하고

내 봄의 폐허 속에 그리스도가 눈물을 쏟는다.

그의 눈물의 돈이

너의 약하고 외로운 손으로 떨어지리라

그러면 너를 다시 사서 너의 땅으로 돌아오라.

그의 눈물의 침묵이 

종소리처럼 너의 낯선 무덤에 떨어지리라.

그 소리를 들으라, 그리고 오라그들이 너를 집으로 부른다.

 

 

/ 토마스 머튼 지음, 권혁일 옮김.

Thomas Merton(1915-1968), "For my Brother : Reported Missing in Action, 1943," in The Collected Poems of Thomas Merton (New York: New Directions, 1977), 35-36.




posted by 바람연필

하나님의 아들도 넘어졌습니다 (노리치의 줄리안)

한 줄 묵상 2014.04.26 07:56

아담이 넘어졌을 때, 하나님의 아들도 넘어졌습니다.

'When Adam fell, God's Son fell'

 

 

노리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 1342 – c.1420),《하나님 사랑의 계시 Showings》, LT, ch. 51.

 

줄리안이 그토록 어려워 하던 계시였던 '주인과 종에 관한 비유'의 한 구절이다. 줄리안은 자그만치 20여년을 자기 눈에 보여진 계시를 이해하기 위해 기도하고 묵상하고 하나님과 대화한다. 당시 흑사병으로 인해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죽고, 100년 전쟁, 농민 혁명, 아비뇽의 유수 등으로 극심한 혼란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 생각하며 절망했다. 

 

우리는 무엇인가 비극적인 일이 우리 가운데 생길 때에 누군가의 죄, 혹은 우리 자신의 죄를 보며 절망한다. 수많은 아이들의 죽음을 몰고 온 선장과 선원들의 몰염치와 국가 기관이 무기력함, 침몰하는 배를 바라보며 절규하는 부모들의 모습과 수많은 장비들을 손에 든 채 그저 바라만 보는 사람들의 무기력한 모습을 보며 분노하고 절망하고 한탄하며, 그리고 운다. 


그런데 주님은 결코 절망하지 않으신다. 아담이 깊은 수렁에 빠졌을 때, 주님은 더 깊은 인간의 자궁 속으로 떨어져 사람이 되신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육신 가운데 거하신다. 절망 밖에 계신 것이 아니라 어두운 절망 속으로 들어와 희망의 불을 밝히신다.


침몰하는 세월호를 바라보는 것이 침몰하는 우리 나라와 혹은 나 자신을 바라보는 양 너무 힘들기만 하다. 이 수렁에서 벗어날 길을 찾기엔 현실의 모습은 깜깜하기만 하다. 그래서 우린 우리의 절망 속으로 넘어지신 그분을, 여전히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바라보시며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지 못 할 때가 많다. /정승구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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