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과 식별

영성학 논문 2017.07.31 12:29

소명과 식별



    필자가 영성지도를 하다가 만난 신학생 가운데에는, 목사인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신학교에 들어온 경우가 있었는데,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 학생은 소명이 없이 신학교를 다니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또 어떤 신학생은 번듯한 직장 생활을 갑자기 그만 두고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확신에 차서 신학교에 들어온 경우도 있었다. 그런 신학생 가운데 어떤 사람은 마침내 선교사가 되어 사역을 활발하게 잘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중도에 포기하고 다시 사회생활로 돌아간 사람도 있다. 소명은 개인의 일생에 큰 영향을 주기에, 소명을 잘 식별하는 일이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식별을 잘 안내해주는 커리큘럼을 한국 교회 안에서 찾기 힘든 실정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소명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소명 식별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관하여 소개하려고 한다.





1. 소명이란 무엇인가?


     인문학자 윌리엄 플래처(William C. Placher)에 따르면, 소명 즉 하나님의 부르심[각주:1]은 성경과 교회사에서 다양하게 이해되어 왔다.[각주:2] 먼저 성경은 소명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일반적으로, 성경에 나타난 “부르심”(call) 또는 “소명”(vocation)이라는 낱말은 신앙으로의 부르심, 또는 하나님의 일과 관련된 특별한 과업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창세기 2장 15절에서 하나님은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각주:3]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소명을 일깨우는 말씀이고, 더불어 그들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해주는 말씀이다. 그런가 하면, 고린도전서 1장 26절에서 사도 바울은 기독교인의 소명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여기에서 부르심(klesis)은 기독교인으로 부르심을 의미한다. 기독교인이 되어 기독교인임을 세상에서 드러내며 기독교인답게 살아가는 것 자체를 소명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은 교회사를 통틀어 소명을 어떻게 이해해 왔는가? 플래처는 교회사를 네 시기로 나누어서 각 시기별로 소명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첫 번째 시기인 초기 교회는, 기독교인이 되고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드러내면서 살아가는 것을 소명으로 이해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기독교인은 소수(minority)였다. 기독교인이 되면 수시로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키게 된다. 체포되어 고문당하거나 죽음에 이를 수도 있었다. 


     두 번째 시기인 중세 교회는, 신부나 수도자가 되는 것을 위주로 소명을 이해하던 시절이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인이 되자 그 전까지 기독교인을 위협했던 박해가 사라졌다. 누구나 쉽게 기독교인이 될 수 있었고 심지어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했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기독교인이 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기독교인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구체적으로 가정을 이루고 일상생활을 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사제나 수도자가 될 것인가가 소명을 식별하는 주제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세 번째 시기인 종교개혁 이후에는,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만인제사장설’과 ‘직업소명설’에 잘 나타나 있듯이, 모든 직업을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사제나 수도자로 사는 것만을 기독교인의 중요하고 특별한 소명으로 여기던 것에서 벗어나, 모든 직업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루터는 다음과 같이 고린도전서 7장 20절의 부르심(klesis)을 직업(Beruf)으로 번역했다.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루터에 따르면, 결혼과 자녀양육을 포함해서 모든 직업이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시기는 현대다. 우리 기독교인이 살아가는 현대 사회는 다종교 사회일 뿐만 아니라, 직업과 삶의 모양이 분화되고 다양화되어서, 직업과 소명을 동일시하기 힘들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 사회였던 유럽이나 아메리카 지역은 더 이상 기독교 사회라고 할 수 없게 되었다. 교회는 비기독교적인 가치가 지배하는 시대로 진입했다. 박해의 시대를 살았던 초기 교회 시대에 기독교인이 했던 질문이 다시 현대 기독교인에게 적용되는 시절이 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에서 진행된 분업화로 인해 우리는 직업을 전통적으로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공장에서 부품을 만드는 일부 과정에만 참여하는 노동자가 자신의 직업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이해하기란 참 힘든 일이다. 아울러, 직업만을 소명으로 생각하면, 실업자나 은퇴자는 소명 담론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성경과 교회사를 살펴볼 때, 현대 기독교인을 위해서, 소명은 대체로 다음의 네 가지 경우에 적용할 수 있다. 첫째, 소명은 기독교인이 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둘째, 소명은 어떤 기독교인이 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셋째, 소명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 또는 사역자가 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명은 세상에서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 또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위의 네 가지 소명들은 경우에 따라 한꺼번에 적용될 수도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셋째 소명과 넷째 소명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2. 소명 식별 방법: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신수련》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소명을 식별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방법은 대체로 기도, 말씀 묵상, 자신이 지닌 능력과 욕구를 성찰하기, 그리고 자신이 속한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보기 등이다. 그런데 이런 방법들은 한국 교회에서 여전히 기독교인 개인에게 맡겨져 있고, 한국 교회 기독교인들은 이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이 현실이다. 


     소명 식별 방법을 알고 적용하기 위한 첫걸음은 영성고전에 담긴 지혜를 이용하는 것이다. 영성고전에는 식별에 관한 다양한 자료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소명을 식별하는 방법과 관련해서 가장 잘 알려진 자료는 이냐시오 로욜라(Ignatius of Loyola, 1491-1556)의 《영신수련》(The Spiritual Exercises)[각주:4]이다. 이냐시오는 가톨릭 교회의 내부에서 개혁을 이끈 영성가 중 한 명이다. 영신수련은 이냐시오가 자신의 영성훈련과 식별 경험을 바탕으로 쓴 영성훈련 안내 책자 즉 매뉴얼이다. 이 책을 쓴 의도는 기독교인이 자신의 소명을 잘 식별하여 선택(election)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이냐시오는 당시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영성훈련 방법을 통합하여 네 주에 걸친 영성훈련을 제시하였는데, 이 영성훈련은 말씀묵상과 양심성찰, 기도, 식별, 영성지도(spiritual direction)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소명 식별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소명을 식별하려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말씀 묵상이다. 영신수련에서 영성훈련 참가자가 네 주에 걸쳐 참여하는 말씀 묵상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주 주제는 자신의 죄를 인식하여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인식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둘째 주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묵상하면서, 예수님을 더 잘 알고, 더 사랑하고, 더 가까이 따르고 싶은 마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셋째 주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수난의 자리까지 따르며 함께 머무는 인내와 용기를 경험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넷째 주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묵상하면서, 부활의 기쁨을 경험하고, 세상 가득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세상 속으로 투신할 결심과 용기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영성훈련 참가자는 먼저 죄가 정화되는 것을 경험함으로써, 맑은 마음과 질서 잡힌 마음으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삶을 명확하게 알아차리고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다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경험함으로써,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욕구 즉 영적 갈망이 생긴다.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 또는 왕으로 여기며 그분의 편에 서서 그분을 위하여 사는 삶을 선택하려는 용기가 생긴다. 그러므로 소명을 식별하려면 가장 먼저 말씀 묵상을 깊이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려고 하는 영적 갈망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소명을 식별하려면 자신의 내면의 경험을 살펴보고 식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냐시오는 영신수련 부록에서 식별을 위한 규칙을 제시하고 있다. 이 규칙을 이해하고 있으면 소명을 식별하기 위한 영성훈련에서 일어나는 경험을 구분할 때 도움이 된다. 이 규칙에서 이냐시오는 내면의 경험을 다음과 같은 두 종류로 구분 한다. 영적 위로(spiritual consolation)와 영적 실망(spiritual desolation). 영적 위로의 경험은 식별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여 영적으로 진보하고 있을 때 성령으로부터 오는 경험으로서,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언급된 세 가지 영원한 것, 즉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이 증가되는 경험이다. 영적 실망의 경험은 반대로 식별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영적으로 퇴보하고 있을 때 하는 경험으로서,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이 감소되는 경험이다. 영적 위로의 경험이라고 해서 모두 긍정적 감정의 경험인 것은 아니며, 영적 실망의 경험이라고 해서 모두 부정적 감정의 경험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영적 위로의 경험과 영적 실망의 경험은 영성훈련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교대로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가 식별하는 사람의 내면이 정화될수록 그리고 성령 충만할수록 영적 실망의 경험은 줄어들고 영적 위로의 경험이 늘어난다. 이것을 경험적으로 잘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소명을 식별할 때 좀 더 쉽게 적용할 수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해당할수록 영적 위로의 경험이 강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식별 과정을 도와주는 영성지도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이냐시오는 영신수련에서 영성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과, 영성지도자가 피지도자(directee), 즉 영성훈련 참가자에게 자신의 의도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소명 식별을 개인이 혼자서 하는 것은 자신과 공동체에 해를 끼칠 수 있다. 공동체와 영성지도자는 개인의 주관적 경험을 성경과 교리에 맞게 객관화시킬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개인은 공동체와 영성지도자를 신뢰하며 자신의 경험을 함께 식별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한 영성지도자는 개인이 소명 식별 과정에서 지나치게 개입하기보다는 성령님만을 의지하게 도와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영성지도자가 수도원장이라면 소명을 식별하는 영성훈련 참가자가 수도자가 되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또 영성지도자가 담임목사라면 소명을 식별하는 청년이 목회자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피지도자의 식별 과정에 영성지도자가 자신의 바람을 바탕으로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


3. 현대 기독교인을 위한 소명 식별 방법


     소명 식별을 주제로 하는 글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구는 아마도 프레드릭 뷔크너(Frederick Buechner)가 한 말일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시는 곳은 당신의 깊은 즐거움과 세상의 깊은 굶주림이 만나는 곳이다.”[각주:5] 다시 말해서, 소명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는 두 가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우리는 자신의 내면에서 가장 깊은 욕구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 주변의 세상에서 가장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뷔크너에 따르면 하나님의 부르심은 위의 두 가지가 만나는 접점 또는 교집합에서 발견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씨시의 프란치스코(Francis of Assisi, 1181/1182-1226)는 회심한 후에 가장 큰 기쁨을 예수님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 사는 삶에서 발견했다. 동시에 그는 이웃에 사는 한센병 환우들이 가장 가난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결과 프란치스코는 한센병 환우들을 섬기는 것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현대 개신교인을 위한 소명 식별에 도움이 되는 자료들 가운데 하나가 지티유(Graduate Theological Union) 및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San Francisco Theological Seminary)의 기독교 영성학자인 엘리자베스 리버트(Elizabeth Liebert)의 《영적 분별의 길》[각주:6]이라고 할 수 있다. 리버트는 이 책에서 식별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제공 할뿐만 아니라, 기독교인이 결정을 내릴 때 사용하면 도움이 될 영성훈련을 체계적으로 안내하고 있다. 기독교인이 내릴 결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결정은 소명을 인식하는 것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리버트가 제시하는 영성훈련을 소명 식별에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그 절차는 다섯 단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영적 갈망과 영적 자유를 구하는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나도 원하는 마음이 생길 때 더 분명해진다.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내 마음이 세상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선택하기가 더 쉬워진다. 


  2) 소명이라고 추측하는 주제를 명료한 질문 형태로 만들어본다. 예를 든다면, 하나님은 나를 목사로 부르시는가? 하나님은 나를 선교사로 부르시는가? 하나님은 나를 영성지도자로 부르시는가? 하나님은 나를 간호사로 부르시는가? 또는 하나님은 나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부르시는가? 등이 있다. 


  3) 다양한 정보를 모으고 기도한다. 리버트는 네 종류의 정보를 모아보도록 제안 한다. (1) 개인 내적(intra-personal) 정보, (2) 상호 관계(inter-personal) 정보, (3) 구조(structural) 정보, 그리고 (4) 자연 환경(natural, environmental) 정보. 개인 내적 정보란 내가 지닌 지적, 정서적, 신체적, 영적 고유한 특성들을 모두 포함한다. 상호 관계 정보란 내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난 모든 경험을 포함한다. 구조 정보란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나의 역할과 권력과 관련된 경험을 포함한다. 마지막으로 자연 환경 정보란 내가 자연 환경에 어떻게 반응해왔는가에 대한 것이다. 정보들을 모은 후에, 나의 소명이라고 추측하는 주제를 이 정보들에 대입해 보고 깨달은 것을 바탕으로 기도한다.  


  4) 다양한 영성훈련을 시행하고 기도한다. 리버트는 일곱 가지의 영성훈련을 제안 한다. (1) 떠오르는 기억 경험하기, (2) 상상력을 사용하기, (3) 직관을 사용하기, (4) 몸의 신호를 알아차리기, (5) 이성을 사용하기, (6) 감정을 식별하기, 그리고 (7) 자연 묵상에서 일어나는 경험 사용하기 등. 이 모든 영성훈련은 영적 갈망과 영적 자유를 구하는 기도를 드린 후에 시작한다. 또 이 영성훈련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전제로 실시한다. 영성훈련을 실시할 때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소명 식별 주제에 대해 가부간의 임시 결정을 내린다. 


  5) 마지막으로 일곱 가지 영성훈련의 결과를 하나님께 들고 나가서 확증(confirmation)을 받는다. 확증을 위해 사용하는 식별 기준들을 리버트는 시금석이라 부른다. 식별 시금석들은 성령께서 일으키신 경험들의 예로서, 대체로 내가 경험한 것과 비교해보기 위해 사용하는 성경의 경험들과 영성고전에서 신앙의 선배들이 제시한 경험들을 말한다. 예를 들어, 앞에 언급한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믿음, 소망, 사랑의 경험이라든가,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 –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등의 경험을 들 수 있다. 


     영성고전에서 제시된 시금석 경험의 대표적인 예로는 이냐시오의 식별 규칙에 나오는 영적 위로의 경험이 있다. 그리고 18세기 미국 영적 대각성 운동의 중심 인물인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가 《신앙과 정서》(Religious Affections)[각주:7]에서 제시한 바 있는, 성령으로부터 오는 거룩한 정서의 신뢰할만한 열두 가지 표지들 역시 식별의 시금석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 열두 가지 표지들은 다음과 같다. (1) 거룩하고 초자연적인 원천에서 옴, (2) 하나님과 하나님의 방법들에 그 자체의 탁월성 때문에 이끌림, (3) 거룩한 일들의 아름다움을 보는 경험에서 옴, (4) 영적인 것들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수반함, (5) 깊게 자리한 확신을 수반함, (6) 겸손을 수반함, (7) 본성의 참된 변화를 수반함, (8)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영을 수반함, (9) 부드러운 마음과 영의 온유함을 수반함, (10) 균형과 조화를 수반함, (11)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더욱 커짐, (12) 기독교적 실천들이 증가함. 


     필자는 이상에서 소명이란 무엇인지에 관하여 그리고 소명을 식별하는데 도움이 되는 영성훈련들에 대하여 소개하였다. 소명을 식별하려고 할 때, 하나님의 부르심이 지닌 두 가지 특징을 기억하자. 첫째, 하나님은 먼저 우리가 자유롭게 와서 보고 선택하게 하신다. 소명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안에서 싹트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사랑의 사귐 없이 하나님을 위해 무슨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부르심을 식별하는 것은 한 순간에 갑자기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다.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다르다. 그러므로 조급해하지 말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너무 앞서거나 너무 뒤떨어지거나 하지 말고 하나님과 함께 보조를 맞추면서 가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에 기독교인의 소명 식별을 도와줄 목회자와 영성지도자가 많이 준비되기를 기도한다. / 아우의 마음 이강학


이 글은 '디바인영성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영성을 살다」 (통권7호, 2017년 상반기), 36-43쪽에 게재된 글입니다.



  1. 1. 이 글에서 '소명'과 '부르심'은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본문으로]
  2. 2. William C. Placher, ed., Callings: Twenty Centuries of Christian Wisdom on Vocation (Grand Rapids, Michigan: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05). [본문으로]
  3. 3. 한글 성경은 모두 '개역개정판'을 인용한다. [본문으로]
  4. 4. 이냐시오 로욜라, <영신수련>, 정제천 역 (서울: 이냐시오영성연구소, 2010). [본문으로]
  5. 5. Frederick Buechner, Wishful Thinking: A Theological ABC (New York: Harper and Row, 1973), 95. [본문으로]
  6. 엘리자베스 리버트, 《영적 분별의 길》, 이강학 역 (서울: 좋은씨앗, 2011). [본문으로]
  7. 조나단 에드워즈, 《신앙과 정서》, 서문강 역 (서울: 지평서원, 2009). [본문으로]
posted by 바람연필

위대한 영적소명은 연대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위대한 영적 소명은 남들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동일한 실체와 존재가 되는 것, 남들과 하나가 되는 것임을 나는 드디어 깨달았다. 조금이라도 튀어 보일까싶어 삶의 주변부를 헤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중심부로 들어가는 것이 나의 소명이다. 거기서 모든 인간과 연대하게 된다.

- 헨리 나우웬(Henri Nouwen, 1932-1996), 《두려움에서 사랑으로》(서울: 두란노, 2011) , 142.


   



posted by 진정한 열망

부모는 아이들의 '영성 지도자'

기타/영성 관련글 2014.05.06 11:01

가정의 달 특별 기획



부모는 아이들의 '영성 지도자'

- 영성적 자녀 양육을 위한 일곱 가지 조언 -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인생의 목적인, 소명을 찾아가는 것이다. 부모로서의 소명을 찾는 여정은 뜻밖에 찾아오는 복(blessing)임과 동시에 간과할 수 없는 책임을 부여받는 과정이다. 한 아이의 부모가 됨으로써 그 아이의 인생의 기원이 되는 특권을 부여받는다. 또한 아이 인생의 동반자로서 주어진 동행과 나눔이라는 행복과 복을 선사받는다. 더불어 부모의 양육은 자녀들과 이후의 세대에게 유/무형의 유산과 영향력을 남기기에, 부모에게 주어진 인생의 중요한 책무이기도 하다. 


부모는 자녀의 생물학적인 기원이기는 하나, 자녀 삶에 대한 소유권은 없다. 그리고 자녀가 장성하기까지 물리적, 재정적, 심리적 안전을 제공해야 하나, 그들이 건강하게 독립하여, 그들의 가정을 꾸리고, 다음 세대의 부모가 되도록 안내해주는 것이 부모의 존재 목표가 되어야 한다. 


자녀들은 부모를 통해 세상을 탐험하고 접하기 때문에, 부모의 삶의 궤적과 여정에 지대한 영향을 받으며, 가족과 부모는 자녀의 인생의 선택하지 않은 주어진 조건이 된다. 그 조건과 한계 안에서 자녀는 자신의 인생의 모판을 준비해가며, 모판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최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려는 욕망과 본능을 준비해간다. 모든 인간은 부모를 통해 자신의 인생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부모로부터의 독립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이어간다. 


세상을 만나고 탐험하는 모든 과정은 아이들의 무의식과 자아 형성에 실질적 토대가 되기 때문에, 일상에서 경험되는 부모 삶의 습관, 부모와의 인격적 관계 형성은 아이들의 인격과 자아 형성에 중요한 모판이 된다. 일상의 모든 경험이 영적인 경험, 혹은 영성의 재료와 소재가 되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살도록 주어진 모든 시간은 아이의 입장에서는 영적 자아, 하나님 형상과 이미지, 내적 자아와 소명, 관계적 사회적 자아 등이 형성되는 실재적인 교육의 시간이 된다. 


그러하기에 모든 부모는 자녀들의 영성 지도자(spiritual director)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자녀, 혹은 한 영혼의 영성 형성과 영적 여정에 동행하면서, 온전한 길로 인도하며 방향을 제시해준다는 의미에서 본질적으로 영성 지도자의 위치와 역할을 부여받고 수행하게 된다. 영성 지도자로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데 있어 다음의 일곱 가지는 부모의 기도와 묵상 가운데 늘 확인되어야 한다. 




첫째, 관계의 기원(Divine Initiation) 


부모라는 역할은 주님이 부여하신 소명임을 잊지않는다. 헨리 나우엔(Henri Nouwen)은 아이란 존재는 주님이 우리 부부에게 보내주신 선물임과 동시에 손님으로 찾아왔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아이와의 관계가 주님에 의한 시작되었고. 그 분의 주권 아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이 관계를 건강하게 형성하고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전제임을 깨닫는다. 부모에게 있어서 아이는 삶의 선물이지만 동시에 손님과 같은 존재라는 이 둘 사이의 긴장과 역설 속에서, 아이는 내가 책임져야 할 가장 중요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그들의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없으며, 내게 머물렀다가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한다는 인식을 늘 확인한다. 손님이 내 삶의 울타리에서 거하는 동안 안전하고 평안하게 느끼게 하며, 자신의 인생의 여정을 출발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둘째, 영적 자유(Spiritual Indifference) 


주님이 내게 보내신 손님이기에 부모로서의 나의 기대와 양육 방향을 늘 조심스럽게 확인한다. 아이에 대한 나의 기대치를 내려놓고, 주님이 맡겨주신 아이를 향한 마음을 우리 마음과 영혼에 새기기에 힘쓴다. 내가 원하는 아이를 만들어 내고 인도하려는 의도와 욕망이 절대적 선이 되어서 양육과 교육에 스며들지 않도록 주의한다. 건강한 아이로의 성장에 있어 최선의 방법은 우리 아이 스스로 영적 존재임을 깨닫고, 영혼의 창조주이신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도록 돕는 것이다. 내가 의도한 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 자녀에게 부여해주신 주님의 뜻을 부모로서 먼저 발견하고 수용하여 자녀의 잠재력과 소명의 씨앗이 움틀 수 있도록 기도한다. 


셋째, 산파됨(Being a Midwife) 


영성 지도자로서 부모는 자녀들이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는 데 가장 든든한 조력자요 협력자이다. 아이들의 성장과 성숙은 곧 자기 분화(self-differentiation)와 자아 실현(self-realization)을 의미한다. 자녀가 생물학적 성장을 거치며 더불어 심리적 성장을 경험할 때, 자신이 부모로부터 다른 존재이며 독립해야 한다는 인식 과정이 수반된다. 이 자아 형성의 과정을 부모가 먼저 인식하고 준비하여, 건강한 자아 분화가 이뤄지도록 협조한다. 자아분화, 곧 독립된 존재로 성장해 가는 과정의 궁극적인 목표는 참 자아(true self)를 찾아가는 것이다.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에 따르면, 우리의 참 자아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이다. 성장과정에서 겪는 미숙했던 욕망의 분출구가 되었던 여러 이기적이고 파괴적 경험들은 하나님의 형상, 그리고 영적 존재로서의 자신의 정체감을 훼손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제 자녀들이 그들의 영성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여행, 곧 참 자아를 찾아가는 여행을 하도록 인도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이 여행은 또한 한 인생에 부여된 소명을 발견하는 과정일 뿐 아니라, 자녀가 일생의 반려자를 만나며, 직업을 찾고, 인생의 여정을 통해 자아 실현을 이루어내는 결정적 기회가 되는 영적인 과정이다. 이 영적 산통의 과정에 동참하고, 동행해 주는 영적 동반자가 부모이다.


자녀들의 영적 지도자로서 이 여정을 인도하고 동행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영적 자산(quality)은 부모 자신이 먼저, 자신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 자신을 알고 이해하는 것만큼, 내 자녀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적 은혜를 경험하며, 영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이신 주님의 은혜를 누리는 부모가 건강한 영성생활과 내적 자아를 추구할 수 있다. 영적 자의식과 성찰을 토대로 나의 '부모됨'을 재정립하고 새롭게 자아 인식을 세워갈 때, 인간으로서의 내 약점과 한계도 받아들이게 되며, 나아가 나의 이런 연약함이 부모됨에 있어 장애가 되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다. 더욱 더 참자아를 찾아가는 영적인 여정은 부모됨 안에서 실현되고 확장된다. 즉, 자녀와의 영적 관계와 양육 방향 안에서 참 자아가 실현되어 나갈 때, 부모됨의 소명도 조금씩 실현될 수 있다. 참 자아를 찾아가려는 부모의 영적인 여정과 성찰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자신들의 참 자아를 찾아가려는 자녀들의 영적 여정에 가장 든든한 조건이며 확실한 양육 방법이다. 



넷째, 거룩한 임재(Sacred Presence)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의 일상 속에 늘 발견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제한된 시간과 공간은 주님의 임재를 경험함으로써 초월되고, 영적인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그 일상의 삶은 아이들이 부모를 보고, 따라하며, 세상을 발견하고 경험하는 배움의 터전이 된다. 부모는 자신의 일상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임재를 발견하고 참여함으로써, 우리 아이들에게 이미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Emanuel)을 소개할 수 있게 된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분의 임재를 분별하고 참여하는 삶은 우리에게 신앙을 현실 속에서 실천하고, 통합하며, 일치시키는 노력을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 건강하고 선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부모는 신앙을 현실 안에서 통합하고 일치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임재에 참여하는 방법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물질과 돈에 대한 가치관, 이성관, 건강한 양심, 도덕적 혹은 윤리적 삶에 가치관 등을 일상적인 삶 속에서 실천함으로써, 부모의 삶이 아이에게 영적 삶의 본이 되고, 부모의 일상 영성이 아이들의 영성 형성에 모판이 된다. 


다섯째, 신령한 경청(Holy Listening) 


영성 지도자로서 부모는 경청하는 사람이다. 영적인 경청을 통해 아이들의 내면의 필요를 확인해 나간다. 한국인의 근대적 교육방법에서 부모는 말하는 사람이며, 아이들은 부모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수동적 존재였다. 이 접근은 오히려 자녀의 고유한 성품이나, 건강한 영성을 계발하고 성장시키는데 방해가 되어왔다. 영적인 삶에 있어서 아이들은 수동적이거나, 객체가 될 수 없다. 자녀들이 내면과 일상 생활 속에서 주님의 임재와 음성을 발견하고 들을 수 있다면, 이러한 경험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영성 생활에 있어서 스스로가 이미 주체임을 깨닫게 도울 것이다. 그들은 자신만의 영적인 여정을 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부모는 늘 따뜻한 시선과 열린 마음으로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경험 속 녹아 있는 그들만의 느낌, 생각, 욕망과 필요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자녀와 대화할 때는 열린 질문을 활용하여 그들의 경험과 내면의 이야기, 기억과 감정들을 표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유용한 대화 방법으로는 비폭력 대화법(nonviolence communication)을 활용하면 좋겠다.  


여섯째, 지혜로운 코치(Wise Coaching) 


아이가 자라면서 홀로 세상을 만나고 경험하게 되면, 부모는 아이에게 조언과 충고를 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인생의 험한 경기를 통해 고통스런 경험을 한 자녀들은 부모에게 먼저 찾아와 조언과 지도를 구하기도 한다. 이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부모의 미숙한 조언과 권위주의적 지시가 오히려 아이들을 부모에게 종속된 존재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랑과 배려를 바탕으로 조언과 지도를 하는 부모는 자녀의 궁극적 인도자가 주님이심을 늘 자신의 기도와 마음, 대화 속에 상기시킬 것이다. 따라서 절대적이고 권위적인 자세를 통해 복종해야 하는 규율로 조언과 지도를 선택하기보다는, 삶의 경륜을 통해 얻은 지혜와 전략으로 자녀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전해주는 부모가 아이들을 지혜롭게 양육하고 성장시킬 수 있다. 인생의 선생이요, 코치로서 부모는 자녀의 인생 게임을 치르고 있는 사람은 부모가 아니라 자녀임을 깨닫고, 자신의 의도와 조언이 아이에게 절대적일 수 없음을 겸손하게 인정한다. 아이들이 경험을 통해 인생의 가치관과 세계관, 나아가서는 신앙을 삶의 현장(게임)에서 실천해 보고, 스스로 찾고 정립해 나갈 수 있도록 부모는 자녀에게 기회를 주고,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지혜로운 코치로서 부모의 역할일 것이다. 아이의 모든 삶에 관여할 수 있고, 자신의 뜻이 자녀의 삶을 항상 이로운 방향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생각은 부모의 환상이며 신화이다. 


일곱째, 소망 가운데 기다림(Hopeful Waiting) 


영적 지도자로서 부모는 자녀를 기다려 준다. 기다림을 통해 부모는 아이에게 관계의 주도권을 나눠 주며, 그들이 자발적이고 기쁘게 부모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기다리는 시간은 아이들에게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 아니라, 약속을 지켰을 때, 부모와의 관계를 신뢰 관계로 성숙 발전시켜 나가는 경험으로 인도한다. 시간이 지날 수록 부모는 아이와 동등한 인격체로서 다시 만나, 그들의 영적인 여정을 점검해 줄 수 있는 만남을 기대하고 기다리게 되는데, 이것은 독립한 자녀들을 둔 부모의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시간 개념을 기다림 속에 실천하는 데에 있다. 자녀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변화가 인간의 시간과 방법에 있지 않다는 겸손한 고백을 바탕으로 일어 난다. 인간의 변화와 성숙의 주체는 오직 창조주이신 주님이시기에 그 분의 시간 안에서, 그 분이 정하신 시간에, 그 분이 정하신 방법으로 아이들이 변화하고 성숙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시간에 들어가는 것이다. / 이주형



posted by 구름위 햇살

천명을 따라 가는 길 (윤동주)

한 줄 묵상 2014.02.17 09:53
  • 참된 나를 만나는 일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최초의 악수'라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처음 악수가 이루어진 순간과도 같이 다시금 마주 잡고, 앞으로도 마주 잡을 그 일은 '최후의 나'에게까지 나아갑니다.

    lumierehee 2014.02.22 04:35 신고
  •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윤동주에게 시쓰기는 그와 같이 자신과 손을 마주 잡는 행위(또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BlogIcon 바람연필 2014.02.25 06:37 신고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중략)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윤동주(1917-1945), <쉽게 씌어진 시> 부분, 《정본 윤동주 전집》(서울: 문학과 지성사, 2004), 128-129.



2월 16일, 오늘은 시인 윤동주가 일본에서 옥사한 날이다. 그는 우리나라가 광복을 얻기 약 6개월 전인 1945년 2월 16일 새벽,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외마디 비명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그가 일본 유학 시절에 쓴 시는 오직 다섯 편만이 전해 질 뿐인데, 이 시는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쉽게 씌어진 시>라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약 10제곱미터(3평)의 좁은 다다미 방에 앉아 있고, 창밖에는 밤비가 속살거린다(작은 소리로 소곤소곤 이야기한다). 밤비는 그의 귀에 무엇이라고 속살거렸을까? 나라를 잃어버리고 침략자의 땅에 유학을 온 청년은 좁은 육첩방, 곧 자신만의 공간에서조차 '집에 있는' 편안함을 누리지 못하고 "남의 나라"에 있음을 절감한다. 이와 같은 깊은 소외와 고독 그리고 단절감이 그의 영혼 깊은 곳으로 침입한다. 이러한 경험은 시인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과 마주 보게 만든다. 곧, 통렬한 비정체성(nonidentity)의 경험이 그로 하여금 자신의 참된 정체성을 추구하게 하였다. 청년은 어둡고 어려운 조국의 현실을 뒤로 하고, 부모님이 보내 주는 학비를 받아 '쉽게 쓰여지는 시'처럼 쉽게 가는 삶을 살고 있음에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한다.  그래서 그에게 "시인"의 길을 걷는 것은 "슬픈 천명"이다. 그러한 부끄러움과 괴로움 속에서, 그는 자신의 참된 자아인 "최후의 나"와 대면하게 된다. 그 최후의 나는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작은 등불을 밝혀 방 안의 어둠을 조금 몰아내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는 온 세상을 밝게 비출 광명의 아침을 기다린다. 그는 등불을 하나하나 밝히듯, 천명을 따라 시를 한 줄 한 줄 쓰며 어둠을 조금씩 내몰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마지막 연에서는 자신의 참 자아와의 조우, 화해, 연합이 이루어진다. 


일제시대 일본 땅에서 유학 중인 식민지 청년을 생각해 보라. 그는 얼마나 약하고 무력한 존재인가? 그가 어둠과 고통 가운데 있는 조국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무엇이 있는가? 그러나 지금 우리가 아는 것은 그 연약한 청년의 시를 읽고 이를 마음으로 받아들인 이들에게는 그 시편들이 어둠을 밝히는 조그만 등불이 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도 무력하고 보잘 것 없는 듯해도, 조급하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 "천명(天命)"에 순종해서 길을 간다면 어둠을 조금 밝힐 수 있는 빛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작은 빛들이 모이면 아침이 시대처럼 도래할 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세운 마을은 숨길 수 없다."(마태복음 5:14).

 

오늘도 남의 나라, 창밖엔 밤비가 속살거린다. / 권혁일

posted by 바람연필

분별력을 구하는 기도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한 줄 묵상 2013.02.06 19:00

지극히 높으신 주님, 영광스러우신 하나님,

제 마음의 어둠을 밝혀 주시옵소서.

그리고 주님, 

저에게 바른 믿음과, 확실한 소망과, 완전한 사랑과,

감각과 지식을 주시옵소서.

그래서 제가 주님의 거룩하고 참된 명령을 수행할 수 있게 하소서.


-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Francis of Assisi, 1182-1226), 

"The Prayer Before the Crucifix" (십자가상 앞에서의 기도)



청년 프란치스코는 원래 세상에서 명성 있는 기사와 귀족이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전쟁과 질병, 그리고 신비 체험 등을 통해서 회심을 경험한다. 이후에 그는 성 다미아노 교회의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다가 십자가 위의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다. 


"프란치스코야, 가서 내 집을 재건하거라. 네가 보듯이 그것은 거의 다 무너져가고 있다." 


이 말씀을 듣던 당시 프란치스코는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건축재료를 들고와서 자신이 기도하고 있던 성 다미아노 교회를 보수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에 그는 그 명령이 건물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당시 쇠퇴해가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말하는 것임을 알고, 프란치스코회를 설립하고 주님의 교회를 재건하는 데에 평생을 바쳤다. 


위에 인용한 기도문은 프란치스코가 자신이 받은 명령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행해야하는지 알 수 있도록 주님께서 분별력(discerning heart)을 주시도록 구한 기도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사명(소명)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이루기 위한 분별력도, 힘과 지혜도 모두 주님으로부터 받아야 한다. 분별력이 필요할 때마다, 힘과 지혜가 필요할 때마다 이 기도문을 가지고 진실하게 기도한다면 주님께서 프란치스코에게 주셨던 것과 같은 은총을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시지 않을까? / 바람연필



posted by 바람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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