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빌라의 테레사가 아픔과 더불어 사는 법

아빌라의 테레사가 

아픔과 더불어 사는 법



예배당 십자가 밑에 앉아 가만히 머리를 숙이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기도를 아룁니다. 얼굴 하나에 고통 한 아름, 이름 하나에 눈물이 고이는 까닭은 지금이 사순절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 흐려진 눈동자, 거절과 배신, 상실의 잔을 마셔야하는 그 씁쓸한 입맛 다심, 세속의 거센 물결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자기를 자꾸 격려하며 수줍은 미소로 괜찮은 듯 돌아서는 그 뒷모습은 마치 그림자를 보는 것 같습니다. 각기 모습은 천차만별이지만 사람인 이상 따라붙은 그림자가 다 비슷비슷한 것처럼, 우리는 여러모로 닮아 있습니다. 


수녀원 입회 2년 만에 얻은 중병

피터 루벤스가 그린 아빌라의 테레사 (출처 : 위키미디어 코먼스)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는 1515년 스페인 출신입니다. 교회 역사에서 몇 안 되는 여성 신비가 중에 한 명입니다. 그녀는 여러 편의 저술을 통해 기도, 인간 의식의 변형 단계, 그리고 문학적인 면에 이르기까지 풍성한 영감을 주는 사람입니다. 

   또한 테레사는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보여주는 성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이 점이 그녀를 친숙하게 느끼게 합니다. 테레사는 1562년에 쓴 글, 그녀 스스로 『천주 자비의 글』이라고 부르기 원했던 자서전에서 자기 생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신부님[각주:1], 당신도 아시다시피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적잖은 고생을 겪었습니다.”(자서전40,21)                                   

   여기서 말하는 ‘고생’이란 그녀가 자서전을 쓰던 시기인 40대 후반에 겪었던 개혁수도회 창설을 둘러싼 종교·사회·정치적 핍박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테레사의 삶 전체를 요약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테레사는 이즈음 자신이 겪고 있는 거센 고통, 곧 참아 견디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는 그 고통 때문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때로 나는 산다는 것에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고, 죽고 싶은 마음도 고통도 없이, 통 모든 것에 대해 일종의 냉담 상태와 어둠 속에 있을 때가 있습니다.(자서전 40,21)


  테레사는 평생 육체적인 질병으로 고통 받았습니다. 수녀원에 입회한 후 만 2년 만에, 즉 수도 생활 2년 만에 중병을 얻었습니다. “심장의 극심한 아픔은 몸서리 쳐지는 것”이었고, “날카로운 이로 심장을 물어뜯는 것” 같았고,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어서 기운이 전혀 없었고 맥이 풀려 입맛을 온통” 잃었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고열”, “고열로 말미암아 심경은 참기 어려운 고통을 느끼도록 오그라들기 시작” 했다고 설명합니다. 

   육체적 고통이 견디기 어려운 것은 우리에게 쉴 틈을 허용해 주지 않는 폭군적인 면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테레사도 “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한순간도 쉴 수가 없어 마침내 큰 비애에 빠지게 되었습니다.”고 한탄했습니다(자서전 5,7). 심지어 극심한 발작 후에 3일 동안 죽었다고 여겨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덤을 파고 장례준비를 하고 있던 찰라 그녀의 숨이 돌아왔습니다. 그 후 테레사는 3년 동안 “둥글게 말아놓은 실뭉치” 같이 침대에 누워서 사람이 손을 댈 수 없는 극심한 통증에서 보냈습니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이 잠시 고통이 멈추기만 해도 살 것 같은, 다시 살아날 것 같은 기운을 느끼는 것처럼, “조금이라도 숨을 돌릴 수가 있을 때면 병세가 좀 나아지나보다 하고 생각”(자서전 6,1)하며 테레사는 기뻐했습니다. 오랜 투병 생활의 전환점을 이룬 날, 그녀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땅바닥을 기어갈 수 있기 시작했을 적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자서전 6,2) 


   투병 생활을 해 보신 분들, 혹은 육체적 고통 속에 계신 분들에게 이 말이 어떻게 들릴지 저는 상상이 됩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공감이, 어떤 분들에게는 간절히 일어나길 기대하는 한줄기 희망으로 들릴 말입니다. 저도 한 30년 전쯤 쇠도 씹어서 소화할 십대 중반에, 학교 등굣길에 꼭 건너야 할 육교 아래 서서 “내가 죽지 않고 저 육교를 올라갈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한 움큼씩 먹던 약이 몇 년에 걸쳐 점점 줄어들고, 어느 날 육교 계단을 한 번에 올라가고 난 뒤, 제가 걸어 올라온 계단을 돌아보고 울었던 날이 있었습니다. 


“영혼에 끼친 해악은 건강 때문” 

   병에 대해 테레사가 초기에 보인 관점은 그저 받아 묵묵히 참고 견디는 점으로 일관합니다. 당대는 인내와 오래 참음이 미덕인 시대였습니다. 오늘날 관점에서 본다면, 때때로 억압으로 비쳐질 위험이 있지만 테레사는 병 자체를 그냥 받아들입니다. 테레사는 “이 기간 동안은 줄곧 모든 것을 완전히 단념한 채로 지냈고, 처음 고통이 시작되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늘 큰 기쁨마저 느끼면서 주님의 뜻을 달갑게 받고 있었습니다.”(자서전 6,2)고 말합니다. 

   병이 주는 유일한 유익이 있다면, 가장 최소한의 것, 가장 궁극적이고 가장 근원적인 것만을 붙들게 하는 가난한 정신을 갖게 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에 오롯한 일치를 하고 지냈던 관계로 언제까지 그런 상태가 계속되었다 해도 달갑게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자서전 6,2) 테레사가 오히려 투병 생활이 끝난 후 자신이 얼마나 나쁜 사람이었는지를 스스로를 회고한 것에 비하면, 병상 생활을 “하나님의 뜻에 오롯한 일치” 가운데 보냈다는 것은 아련한 소녀시절의 풋풋하고 순진한 첫사랑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것이 육체적 고통을 겪는 동안 얻어야 할 더할 나위 없는 삶의 보물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을 향한 순수하여 순진하기까지 한 가난한 정신상태 말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거리가 얼마나 먼지요! 필요 없는 것들, 부차적인 것들, 비본질적인 것들을 내려놓고, 오직 한 가지, 단 하나에만 마음을 기울이며 삶을 정돈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지요! 고통은 우리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그저 끙끙 앓게 만들뿐입니다. 그저 “주여! 주여!”를 외치거나 아니면 고통만 벌컥벌컥 들이키느라 숨이 멎을 지경이 되니 말입니다. 

   고통은 철저히 당하는 자의 몫으로만 돌려지는 외롭고 고독한 심연입니다. 도와주고 싶고 돕기도 하지만, 함께 하고 싶고 함께 있지만, 혼자 겪어 내야만 하는 그 영역이 있기에 바라보는 자의 고통도 커져 갑니다. 그러니 고통에 대해 자신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자신이 겪은 고통이 있다고 하더라고 그것을 훈장처럼 가슴에 달수는 없는 일입니다. 

   혼자 묵묵히 투병 생활을 하던 테레사는 어느 날 혼자 병상에서 일어납니다. “하나님과 뜻의 일치”를 이루고 있으니 괜찮다던 마음에 “빨리 낫고 싶다”는 간절한 소원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병실에 누워 꼼작도 못하던 그녀에게 이른 새벽 기도 시간을 알리면서 서로를 깨우는 수녀들의 찬미 소리를 듣고서 자신도 그들과 함께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빨리 낫고 싶다는  간절한 소원은 무엇보다도 습관대로 고요 중에 기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자서전 6,2) 침묵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싶다는 갈망이 병을 고쳐달라는 간절하고 적극적인 기도로 바뀌고, 마침내 테레사는 기적처럼 병상에서 일어납니다. 

   하지만, 이 기적 같은 일이 몰고 온 결과에 대한 테레사의 평가는 아주 냉정합니다. “오, 나의 하나님! 나는 당신을 더 잘 섬기고 싶었기에 건강을 원했습니다만, 내 영혼에 끼쳐진 갖은 해악은 그 건강에서 왔던 것입니다.”(자서전 6,4) 좀 더 건강하면 하나님을 보다 더 잘 섬길 것이라는 것은 단지 착각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상처투성이 그리스도’를 만나다.

   병을 털고 일어난 테레사의 이야기로 도시 아빌라가 들썩거렸습니다. 귀족들, 기사들은 기적을 몰고 온 젊고 아름다우며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테레사를 찾아 왔습니다. 모름지기 봉쇄수도원이었지만 종교가 일상인 시대에 수녀원의 응접실은 공식적인 사교 장소였습니다. 특히 180명이나 되는 이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것은 대단한 짐입니다. 테레사를 찾는 방문객이 많을수록 희사품도 많아지고 혹여, 귀족의 초청으로 외출이라도 하게 되면 딸려나가는 수녀까지 있으니 입을 몇이나 덜게 되는 것입니다. 고요 속에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소망했던 테레사도 “페스트와 같은 기분 풀이” 같다고 스스로 표현한 이런 교제에 휩쓸려 버렸습니다. 

   당시 이런 일은 크게 흠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데레사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가책을 토로해 보았지만 주변에서는 다들 괜찮다고만 했습니다. 나중에 가서야, 테레사는 수도자들이 수도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는 이 문제에 대해 크게 한탄했습니다. 시대를 바라보는 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육체적 질병을 3년 만에 털고 일어난 것과 달리, 내적 고통은 “상처투성이인 그리스도의 성상” 앞에서 회심한 39세까지 계속 됩니다. 테레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생활은 무척 괴로웠습니다. …… 한편에서는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나는 세속을 좇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일이 내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위로를 안겨 주는 반면, 세속 일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나는 영적 생활과 거기에서 오는 위로와, 관능적 생활의 향락과 기분 전환이라는 전연 반대되는 이 두 가지를 타협시켜 보려고 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자서전 7,17) 


   하나님과 세속 사이의 괴로움 속에서 테레사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그저 기나긴 세월 동안 시간만 보냅니다. 하나님과 세속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살면서 괴로워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투쟁해야 할 싸움의 방식이 아닙니다. 테레사는 단지, 세속을 붙들고 괴로워하는 것을 두고 자신이 싸운다고 착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과 세속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모욕적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그런 끔직한 일에 대한 자각조차 없습니다. 하나님이 전부이십니다. 세속은 무(無)일 뿐입니다. 따라서 전부를 선택해야 하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렇게 전부이신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 자연스럽게 하나님께로 기울어지는 것이 우리 싸움의 방식입니다. 선택과 결단을 유보하는 삶을 사는 것은 참된 행복을 괴로움이 좀 먹게 버려두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테레사는 우연히 기도소에 놓인 “상처투성이의 그리스도를 표상한 성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테레사는 “그 상처가 말해 주는 헤아릴 길 없는 사랑” 앞에서, 자신의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느낍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회색지대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테레사는 하나님을 향해 삶을 완전히 정향(定向) 짓는 깊은 통회를 경험합니다.(자서전 9,1) 삶의 방향이 전혀 달라진 것입니다. 오랜 시간 내적으로 고생한 것에 비례하여, 테레사의 결단은 아주 확고하게 나타납니다. 그후로부터 테레사의 영적인 걸음은 눈에 띄게 보폭이 커집니다.  


고통이 성숙으로 이끈다는 공식의 문제점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한 삶을 살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을 찾기 위해 열정적으로 봉사한 테레사에게 이후로는 병은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데레사는 여러 가지 병을, 그것도 상당히 중한 병을 평생에 걸쳐 앓았습니다. 그렇다고 테레사가 병에 대해 완전히 초연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녀는 좀 더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병에 시달리는 육체를 돌보느라 시간을 많이 써야 할 때, 기도를 하고 있는데 몸이 너무 아파서 정신을 차리기 위해 시간을 두어야 할 때, 테레사는 스스로 육체의 노예가 된 자신에게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면서 슬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테레사는 이 모든 것을 주님과 솔직하게 나누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모든 약함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받고, 다시 털고 일어섰다는 점입니다. 테레사는 그때마다 “주님께서 자신을 홀로 두지 않으셨고” 아주 “부드럽게 대해주셨다”고 말합니다. (자서전 40,20)

   글머리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테레사는 수도자들이 수도 생활을 하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그 자연스러운 갈망을 시작으로 개혁수도회를 창설합니다. 이 과정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박해를 겪어야 했습니다. 테레사의 경우 육체의 질병은 인간적인 연약함 때문이고, 내적인 고통은 더 나은 삶으로 깨어나기 위한 선택의 과정이었다면, 사역을 위해 겪는 고통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해 내는 즉, 생명을 출산하는 산고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고통을 통해 인간의 영적 성숙이 일어나는 방식을 정의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혹자는 ‘고통이 성숙으로 이끈다’는 공식을 무차별적으로 적용합니다만, 만일 그랬더라면 이 세상은 벌써 천국이 되었을 것이며,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토록 고통스럽게 기도하셨을 까닭도 없었겠지요. 분명, 고통은 항상 도전을 제기하는 위험스러운 주제임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고통을 미리 두려워할 까닭도 없겠지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문제를 염려하여 미리 보험 들 듯 안전한 환경을 위해 주문을 거는 소아적 신앙생활을 할 일도 아닙니다. 

   저는 테레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즐겨 쓰는 유비(類比)인 결혼관계를 떠올려 봅니다. 우리는 결혼할 때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언제나 서로 사랑할 것”을 서약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떠하더라도 우리의 선택은 언제나 항상 사랑이어야 합니다

   아픔과 고통을 통해 테레사는 예수님의 극진한 사랑에 눈을 뜹니다. 테레사는 “네 소원, 님을 뵈옴이요, 네 두려움, 그를 잃을까 함이요, 네 고통, 그를 못 누림이요, 네 기쁨, 그리로 갈 수 있음이어야 하나니, 이제야 너는 크나큰 평화와 더불어 살으리라” (수녀들에게 타이르는 말, 69번)고 노래합니다. 고통과 그 고통이 몰고 오는 두려움을 넘어서 테레사는 예수님을 두 눈에 가득 담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언제나” 님을 사랑할 것을 오늘도 선택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님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죽음보다 강함을 님께서 먼저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사순절이 지나고 부활절이 오면, 님의 사랑에 고통 중에 있는 온 세상이 봄눈처럼 깨어나길 청합니다. 


글쓴이  주선영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영성학을 전공했으며(Th.M), 현재 <산책길 기독교영성고전학당>과 <모새골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영성 생활에 안내가 필요한 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이 글은 기독교 월간지 <복음과 상황> 2016년 4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1. 테레사의 자서전은 도밍고회의 페드로 이바네즈 신부의 분부대로 쓰여졌습니다. 자서전은 이 신부에게 고백하는 형식의 문체입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바람연필

함께 사는 이유 (가이사랴의 바실)

한 줄 묵상 2014.09.10 01:54

그러나 홀로 수도하는 것은 개인의 필요를 위한 봉사에만 관여할 뿐이다. 이것은 사도들이 성취한 사랑의 법에 분명히 반대된다. 자신이 아니라 구원받을 영혼들의 유익을 구한 사도들의 그 사랑에 반한다. 

- 가이사랴의 바실 (Basil the Great:  c. 330?-379), 《수도 규범(The Long Rules), 7.


카이사르의 감독이었던 바실은 삼위일체 교리의 정립 뿐 아니라 수도원 운동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독거하며 과도한 금욕을 추구하는 것 대신에 공동의 수도 공동체를 그의 수도원 운동으로 제시하였다. 그 까닭은 극단적인 금욕 수도에 대한 회의 때문만은 아니었다. 도리어 그보다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이중의 사랑을 행하는 데에는 독거보다는 공동 생활이 더 적합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우리의 영적 여정은 완전히 세상의 손길과 분리될 수는 없다. 독거 중에도 여전히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고 그 손길에 서로 의지하게 된다. 그 연결됨 안에서 우리는 (연약한) 피조물로서 창조주 앞에 설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더 깊은 고독 가운데 나아갈 때에도 '구원받을 수도 있을' 영혼을 향한 사랑을 기억해야 한다. 성도의 공동체는 문을 닫은 골방들이 아니라 열린 마당이 되어야 한다. 이웃 사랑 안에서 하나님 사랑이 꽃 피우게 되고 '구원'은 다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소리찾기 박세훈


posted by 작은소리찾기

겸손을 훈련할 때 (누르시아의 베네딕트)

한 줄 묵상 2013.11.05 18:06

겸손의 네 번째 단계는 이와 같이 [상급자]에게 순종할 때에 그것이 어렵고 [자신이 원하는 것과] 반대의 일이라 할지라도, 또는 심지어 어떤 종류의 피해를 입는다고 해도 마음으로 잠잠히 고통을 품고, 약해지거나 도망치려고 하지 않고 그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다.

누르시아의 베네딕트(Benedict of Nursia, 480-ca.547), 《베네딕트의 규칙서》 

권혁일, 김재현 옮김, 제7장. 35-36. (서울: KIATS, 2011), 43.


베네딕트의 규칙서》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 중의 하나는 겸손의 열두 단계를 설명하고 있는 제7장이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은 수도자가 높으신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에 도달하기 위해서 지녀야 할 필수적인 덕목이다. 그리고 그 겸손을 훈련하는 방법이 바로 공동체 안에서의 상급자와 동료 수도자들에 대한 '상호 순종'이다. 특히 겸손의 네 번째 단계는 비록 상급자가 자신에게 맡긴 일이 어렵고, 자신의 소원과 반대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순종하는 것이다. 심지어 그 일을 통해서 어떤 피해를 입게 된다고 할지라도 도망치지 않고 잠잠히 그 고통을 품고 감내하는 것이다.


베네딕트의 이러한 가르침은 윗사람의 명령이 부조리하고 불법적이어도 무조건 복종하고 저항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베네딕트의 규칙서는 기본적으로 수도 공동체(monastic community)를 배경으로 한다. 수도 공동체에서는 '아버지(abba)' 또는 '어머니(amma)'라고 불리는 수도원장이 수도자들의 영혼을 책임진다. 그(그녀)는 수도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구성원들 상호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공동체를 이끌어 간다. 그래서 베네딕트는 수도원장의 자질과 역할에 대해서 여러 번 그리고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공동체 안에서의 상호 간의 신뢰와 항상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훌륭한 지도자가 '무조건적인 순종과 인내'의 이상적인 환경이다.


하지만 이 규칙이 수도원 밖에서 사는 이들에게는 전혀 관계 없다고도 말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속한 신앙 공동체나 가정, 직장, 삶의 환경 등에서 상급자(연장자)에게 또는 서로에게 순종함으로써, 현실의 고통을 감내함으로써, 주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우고 겸손을 훈련하기를 원하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지금 어려운 일, 자신의 의지와 반대되는 일, 또 (스스로의 눈에는) 자신에게 별 이익이 되지 않는 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를 쓰고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간절히 원하고 방법을 찾는 데도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혹시 주님께서 지금 내가 겸손을 훈련하기를 원하시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 보라. 겸손하며 인내해야 할 때인지, 아니면 요나처럼 자신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방향 전환을 해야 할 때인지 주님께 여쭈어 보고 깊이 생각하라. 혼자서 기도만 하기보다는 신뢰하는 영적 지도자와 상의하는 것이 '기도의 행위'로 자신의 욕망과 뜻을 합리화하는 것을 피하고, 주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는 데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 권혁일  

posted by 바람연필

은둔 그리고 참여 (안토니의 생애)

2013년 6월의 추천고전


안토니의 생애 (The Life of Antony)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영성 고전을 소개하고 싶다안토니의 생애 (The Life of Antony)》는 수도원 운동의 창시자라고 불리우는 이집트의 안토니우스(Antonius of Egypt 또는 Ant(h)ony the Great)를 소개한 책이다. 비록 이 책은 약 1700여년 전에 쓰여졌지만, 순전한 삶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지금까지 애독되어 왔고, 지금도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한 번 쯤 곱씹고 고민해볼 만한 여러 가지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예를 들면, 안토니우스의 가르침과 설교의 주요 주제들은 무엇인가? 저자 아타나시우스는 안토니우스를 통해 당시 아리우스주의자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안토니우스의 부르심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안토니우스의 교회론은 오늘날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가? 오늘날 개신교는 안토니우스의 수도 생활, 은둔 생활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등이다. 

 


·         시대적 배경


      이 책의 저자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6-373)는 기독교 초기, 변증과 이단 논쟁을 통해서 기독교 교리가 확정되어 가던 격동기를 살아온 인물이다. 그는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큰 영향을 끼쳤던 밀란 칙령(The Edict of Milan, 313)과 니케아 회의(The Nicaea Council, 325)를 직접 경험하였다. 무엇보다 신플라톤주의 철학에 기반을 둔 아리우스주의자들과의 설전은 그를 평생 기독론과 삼위일체론의 투사로 기억되게 만들었다. 그는 아리우스를 경계하며 안토니우스의 입을 빌어 이렇게 권면한다.

 

안토니가 자신들과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고 잘못된 주장을 아리우스파가 펼쳤을 때, 그는 흥분하며 그들에게 분노했다. “그러므로 그분(예수님)이 존재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분의 신성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자 말씀이신 분을 피조물이라고 말하는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보다는 그분이 만드신 것을 더 경배하며 섬기는 ( 1:25) 이방인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69).

 

믿음의 자녀들이여, 낙심하지 마시오. …… 여러분 자신을 아리우스파와 상대함을 더럽히지 마시오. 그들의 가르침은 사도들에게서 온 것이 아니며 마귀들과 그들의 아버지인 사탄에게서 온 것이오. 정말로 사탄은 생명이 없고 지각이 없으며 무분별한 노새들처럼 올바르게 이해하지도 못한다오.” (82).

 


·         안토니우스의 삶


      그렇다면 안토니우스는 누구인가? 그는 251년 이집트의 작은 마을 코마(Coma)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스무 살쯤에 부모를 여의고 모든 재산을 상속 받는다. 그러나 그에게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순수한 신앙을 따르려는 열정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배 중에 네가 완전하려거든 가서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누라라는 말씀을 듣고 문자적으로 순종하여 그의 재산을 처분하고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처음에 그는 자신이 살던 마을 근처에서 금욕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다양한 금욕주의자들을 만나보고 그런 삶을 공부했으며 서로의 가치를 배웠다. 그 후, 그는 그의 거처를 마을 근처의 무덤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수많은 야수의 모양을 한 악령들과의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15년후, 그는 완전한 고독으로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부터 그를 단절시켰다. 나일강 동쪽 피스피르(Pispir)라는 곳에 자리를 잡은 안토니우스는 거의 20년에 가까운 기간동안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은둔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더 나아가 나일강과 홍해 사이의 한 곳을 정하여 자신을 격리시켰다. 그러나 안토니우스는 완전한 은둔이 아닌 필요에 따라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며 찾아오는 이들을 만나거나 도시로 나가는 현실 참여적인 수도의 삶을 45년간 살다가 105세에 그의 생을 마감하였다.  

 


·         은둔인가, 참여인가?


《안토니의 생애》를 소개하면서 은둔인가 참여인가라는 화두는 참으로 아이들 말로- 생뚱맞다. 왜냐하면 그는 은둔과 금욕의 대명사이지, 현실 참여의 영성은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선입견이 우리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특히 거꾸로만 향하는 정치인들의 작태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타나시우스는 그가 철저한 참여의 영성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번은 수도자들이 그에게 간청하기를, 잠시 동안만이라도 그들에게 와서 그들의 생활을 감독해 달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수도자들과 함께 길을 떠났으며, 낙타 한 마리가 그들의 빵과 물을 운반하였다. 그 사막은 온통 건조해서 그의 암자가 있는 산속을 제외하고는 물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거기에서 물을 걸어왔다. 바야흐로 숨 막힐 듯 한 열기가 온 땅에 가득 차고 물마저 도중에 떨어졌으므로, 그들 모두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들은 여러 곳으로 물을 찾아 헤매었지만 허사였고, 더 이상 길을 걸을 수 없어서 땅 위에 드러누었으며 삶을 포기한 채 낙타를 풀어주었다. 늙은 안토니는 모두가 위험에 처한 것을 보자 몹시 괴로워하고 깊이 탄식하면서 그들을 떠나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갔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손을 내밀며 기도를 드렸다. 즉시 주님은 그가 기도하는 곳에서 물이 펑펑 쏟아지게 하셨다. (54)

 

며칠 후 그는 다시 산 속으로 돌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방문했고, 그 중에서도 고통 받는 사람들은 그에게 담대히 다가갔다. 찾아온 모든 수도자들을 위해서 그는 어김없이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55)

 

귀족 한 사람도 마귀에게 시달림을 당하며 그에게 왔다. 그 마귀는 너무 흉악해서 그에게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이 안토니에게 가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그의 상태는 너무나 심각해서 자신의 배설물까지 삼킬 정도였다. 그를 데려온 사람들은 안토니에게 그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애원했다. 안토니는 그 젊은이를 측은하게 여기고 기도를 드렸으며, 온 밤을 그와 함께 새웠다. (64)

 

             그는 죽어가는 자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고 (54), 방문하는 자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었고 (55), 또한 귀신들린 자를 긍휼히 여겨 그와 온 밤을 지새우기도 하였다 (64). 그의 삶은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선입견처럼 은둔의 삶 만이 아니었다. 그는 그 은둔이 무엇을 위함인지 철저하게 알았기에 그의 삶은 아픈 자들과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한 현실 참여의 삶이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사회운동가들처럼 참여만을 외치는 영성가가 아니었다. 그는 우리의 참여는 반드시 고독에서 만나는 하나님과의 경험에 기초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언젠가 그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로부터 또 이런 간청을 받게 되었다. 군대의 지휘관 한사람이 많은 전령사를 보내 그에게 와줄 것을 청했다. 그는 가서 구원에 대한 몇 마디 말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충고를 전한 후, 서둘러 돌아가려고 했다. 공작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그에게 머물러 달라고 간청했으나 그는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공손하게 해명하며, 그 공작을 설득했다.

물고기가 마른 땅 위에 잠시 나와 있으면 죽게 되듯이 수도자들도 여러분과 함께 머뭇거리며 시간을 보낼 때 수도를 게을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물고기가 바다로 가듯 우리는 산속으로 속히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여러분 사이에 남아 있으면서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85)

 


·         은둔이다 그리고 참여다


      요즘은 정의가 땅에 뭍히고법을 준수하는 자가 냉소와 조소를 받는 시대이다. 이러한 때에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거대한 기득권들에 대항하여 목소리를 내다 지쳐버려아니 해도 해도 안되는 것을 운명처럼 여겨 버리고 급기야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끼는 듯하다. 국가기관의 권력을 남용하여 선거에 개입하였던 전 국정원장과 국정원 직원들의 잘못은 모른 체하고, 그것에 물을 타기’ 위해 이미 고인이 되신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발언 등을 문제 삼는 모습은 세상에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의지를 더욱 꺾어버린다. 그래서 많은 이들로 하여금 세상을 등지고 은둔하게만 만들어 간다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안토니의 생애》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가그의 영성은 은둔의 영성인가 참여의 영성인가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부조리 가운데서, 그리고 약한자들이 처절하게 밟히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무엇을 해야하는가


      《안토니의 생애》는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참여다! 무엇인 진리인지 고민하지 않는 영성,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 신앙은 죽은 것이라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은둔이다! 그 참여의 영적 밑동’(영적 뿌리)은 한 발 물러나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다. 《안토니의 생애》는 다시 한 번 이 갑갑하고 떠나가고 싶은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자극을 제공한다. 그것은 그가 105세의 삶을 살면서 타인의 삶에 참여했지만 뒤로 물러나 하나님을 만났기에 가능했던 은둔에 뿌리를 둔 참여의 영성이다 / 나무 잎사귀 이경희




성 안토니의 생애

저자
아타나시우스 지음
출판사
은성 | 2009-02-28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
가격비교



Athanasius : The Life of Antony and the Letter to Marcellinus

저자
Gregg, Robert C. 지음
출판사
Paulist | 2010-06-25 출간
카테고리
문학/만화
책소개
Athanasius (c. 295-373) Bishop of A...
가격비교


posted by 바람연필

아버지의 권고 (베네딕트의 규칙서)

한 줄 묵상 2013.05.21 09:33

들으라, 나의 아들아, 네 스승의 가르침들을.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마음의 귀를 열어 주의를 기울여라. 이것은 너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권고이다. 그러므로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신실하게 실행에 옮겨라.


누르시아의 베네딕트(Benedict of Nursia, 480-ca.547), 《베네딕트의 규칙서》 

권혁일, 김재현 옮김, 서론, 7. (서울: KIATS, 2011), 13.


위의 인용문은 수도 공동체의 정체성, 생활 원리, 구성원들의 관계 등을 안내하는 베네딕트의 규칙서의 가장 처음에 나오는 구절이다. 베네딕트는 영적 스승을 아버지(abba) 또는 어머니(amma)로 부르던 수도 전통을 따라서 규칙서에 수록된 가르침들을 "아버지의 권고"로 소개한다. 독자에 따라서는 "아버지의 권고"가 가부장적인 권위에서 나오는 부당한 강요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적 아버지의 권위는 '가부장제' 또는 '연령'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앞서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그의 삶과 자녀(제자)를 향한 사랑에서 나온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한번씩 약주를 드시고 집에 오시면, 어린 우리 남매를 불러 모아 앉히고는 수염이 난 까끄러운 얼굴로 우리 얼굴을 부비기도 하셨고,  이것저것 훈계를 하기도 하셨다. 당시에는 늘 똑같이 반복되는 아버지의 훈계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 시절이 매우 그리운 때가 되었다. "아버지의 권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후회하거나 아쉬워할 때가 오기 마련이다.


《베네딕트의 규칙서》 뿐만 아니라 다른 영성 고전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읽을 때 "마음의 귀"를 열고 들으며, 그것을 신실하게 실행에 옮기려는 자세를 가지는 것, 그것이 수도원 안에서든지 수도원 밖의 일상에서든지 '수도 생활'을 실천하는 첫걸음이다. / 권혁일

posted by 바람연필

베네딕트의 규칙서 (Rule of St. Benedict)




블로그를 시작하며 7월의 추천 고전으로《베네딕트의 규칙서 Regula Sancti Benedicti 를 선정하였다. 6세기 초 이탈리아의 수도승 누르시아의 베네딕트(Benedict of Nursia)에 의해서 쓰여진 이 작품은 현재까지 기독교 수도원운동에 있어서 기준이 되는 가장 권위 있는 텍스트로 여겨져 오고 있다. 


오늘날 교회 안팎에서 '공동체'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지만, 사실은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많은 기독 교회들이 분열과 분쟁을 거듭하고 있으며 참된 공동체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그러므로 과거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열망으로 공동체 생활을 택한 수도자들의 규칙서가 오늘날 한국 교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과 지혜를 주고 있다고 믿는다. 최근에 새롭게 출간된 한국어 번역본을 소개하고, 그 책에 필자가 쓴 도움말로 작품에 대한 자세한 안내를 대신한다. 

 

베네딕트 저. 《베네딕트의 규칙서》 권혁일, 김재현 역. 서울: KIATS, 2011.

  


《베네딕트의 규칙서》:

천국을 향한 공동체 여정의 이정표

 

 

왜 고대의 수도원 규칙서를 읽는가?

문학에서 고전古典은 그 작품이 쓰여진 시대와 장소를 넘어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작품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베네딕트의 규칙서 Regula Sancti Benedicti》는 기독교 영성의 고전이라고 부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이 작품은 6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베네딕트Benedict of Nursia(c.480-c.547)의 지도 아래 공동생활을 하던 수도사들을 위해서 쓰여졌다. 그리고 이 규칙서는 지난 1500여 년 동안 수도원 안팎에서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 왔고, 또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쳐왔다.

《베네딕트의 규칙서》가 기독교 고전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기록 목적과 규칙의 유연성이 중심적인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규칙’을 뜻하는 라틴어 레귤라regula는 여행자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 ‘길의 울타리,’ 또는 행동과 삶의 잣대를 의미한다. 베네딕트의 규칙은 수도사들의 행동을 규제하기 위한 딱딱한 규범이 아니라, 단순하고 순수한 영성생활을 통해 천국을 향한 수도사들의 영적 여정을 안내하기 위한 이정표와 지침이다.서문 제45-50

베네딕트는 이 규칙이 문자적으로 적용될 것이 아니라, 각 수도원이 처한 기후와 환경, 그리고 수도사 개인의 영적, 육체적 조건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규칙은 수도생활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수도원장의 판단에 따라 적절하게 변경될 수 있으며, 더 나은 것으로 대치될 수도 있다. 이러한 규칙의 유연성은 오늘날 전 세계의 수도원 안에서 사는 이들은 물론 수도원 밖에서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 베네딕트 영성의 유산을 자신의 삶과 공동체의 삶에 창조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수도원주의의 발달과 《베네딕트의 규칙서》

《베네딕트의 규칙서》는 서방기독교 수도원 발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서이다. 기독교 수도원의 역사는 4세기 초 이집트의 사막에서 시작되었다. 304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Diocletianus 치하에서는 많은 이들이 혹독한 박해를 피해 사막으로 도망쳤다. 그런데 313년 콘스탄틴 황제Constantine the Great의 기독교 공인 이후에는 당대 기독교인들이 새로운 형태의 ‘순교’를 찾아서 이집트의 황량한 사막으로 나아갔다.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of Alexandria에 따르면 4-5세기에는 “사막에 도시를 이룰 정도로 많은 수도사들이 이집트의 사막에서 은둔형 혹은 공동체형 수도원을 만들어 수도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렇다고 당시 사막의 수도사들이 세속 도시와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박해시대의 순교자들처럼 교회에서 ‘영웅’으로 인식되며, 로마제국의 종교적 관용으로 인해 신앙이 느슨해진 교회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이 같은 이집트 사막의 수도사와 수도원 이야기는 아타나시우스의 《안토니의 생애 Vita Anthonii》와 요한 카시아누스Johannes Cassianus의 《제도집 Institutes,《담화집 Conferences》과 같은 글과 종교-문화적 접촉을 통해 서방교회의 수도원 발달을 크게 자극하였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갈리아Gaul와 팔레스타인, 로마가 지배한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수도생활의 이상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수도원 전통의 유산들이 축적되어 6세기《베네딕트의 규칙서》로 꽃피어났다. 실제로 《베네딕트의 규칙서》는 사막 교부들의 생애와 금언집Apothegmata,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암브로시우스Ambrosius of Milan,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 바실리우스Basilius of Cappadocia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특히 《베네딕트의 규칙서》보다 조금 앞서 쓰여진 《스승의 규칙서 Regula Magistri》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베네딕트는 자신의 규칙을 토대로 서구 수도원제도의 기초를 놓으려 하거나 자신만의 수도회를 창설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규칙은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융통성과 온건한 금욕적 수행, 그리고 균형 있는 생활규율 등으로 인해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후 8세기 후반과 9세기 초에 프랑크왕국의 샤를마뉴 대제Charlemagne는 베네딕트의 규칙을 자신의 카롤링거 제국에 속한 수도원의 공식적인 규범으로 채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기반 위에 10세기에는 베네딕트의 규칙을 사용하는 수도원들이 연합하여 베네딕트 수도회Benedictine Order를 창설하였다. 이후 《베네딕트의 규칙서》는 중세에 수도원이 타락하고 위기에 처했을 때는 물론 수많은 수도원개혁의 과정에서 신앙적 활력과 기준을 제공해주었다. 20세기에 들어서 베네딕트 수도원들은 영국성공회와 스웨덴 루터교 안에도 세워졌으며, 오늘날 전 세계에 약 3만 여명의 수사와 수녀가 베네딕트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고 있다.

 

베네딕트의 생애

베네딕트의 생애에 관해 현재 남아 있는 자료는 그의 사후 약 50년 경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1Gregorius the Great가 자신의《대화집Dialogues》제2권에 남겨둔 베네딕트의 생애Vita Benedicti가 전부이다. 물론 그레고리우스의 성인전聖人傳이 오늘날의 전기biography의 개념으로 베네딕트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제공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다만 “하나님의 사람” 베네딕트의 거룩한 성품과 영적인 특징을 묘사하고 이것을 통해 자신의 의도한 교훈을 교회와 이탈리아 사회에 전달하고자 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의 기록에 따르면 베네딕트는 480년 이탈리아 중부의 누르시아Nursia라는 지방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로마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당대 사회의 방탕함과 무의미한 생활을 목격한 그는 13세가 되던 493년에 로마를 떠나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처음 1년은 엔피데Enfide에서 다른 금욕주의자들과 같이, 이후에는 수비아코Subiaco의 산 위에 있는 동굴에서 약 3년 간 홀로 기도와 금욕훈련에 매진했다. 그는 악마의 유혹과 육체의 정욕을 이겨내기 위해 심지어 쐐기풀과 들장미 덤불 속에 들어가 그의 몸에 상처를 내기도 하였다.

그의 종교적 생활이 주변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그는 수비아코의 한 수도원장으로 부름을 받았다. 하지만 베네딕트의 엄격한 삶의 방식은 평이한 삶을 원하는 그곳 수도사들의 기대와 상충했고, 그는 다시 동굴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종교적인 거룩함에 대한 평판과 기적에 대한 소문 때문에 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수비아코에서 약 19년 동안 열두 개의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곧 지역 사제들의 질투를 불러 일으켰다. 이를 피해 베네딕트는 529년경에 로마와 나폴리Naples 사이에 있는 몬테카시노Monte Cassino로 옮겼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적용하여 이방신을 섬겨오던 이곳에 수도원을 세우고 수도사들을 지도하였다. 《베네딕트의 규칙서》가 기록된 것도 바로 이 시기이다. 그는 수도사들의 삶에만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가뭄이 극심할 때는 수도원의 식량을 풀어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등 수도원 밖의 사람들에게도 많은 자비를 베풀었다.

베네딕트의 죽음은 그의 기도하는 삶의 아름다운 절정을 보여준다. 그는 547 3 21일 몬테카시노에서 형제들의 부축을 받아 서서 기도하는 중에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져 있다. 그레고리우스 1세는 베네딕트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면서 그의 규칙서는 자신이 살았던 삶의 방법과 양식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생애와 대화[가르침]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사람은 베네딕트의 규칙을 통해 그의 삶의 방식과 훈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거룩한 사람[베네딕트]은 그가 가르친 것을 모두 삶으로 살아 내었기 때문이다(그레고리우스 1세의 《대화집》 제2권 제36)

 

《베네딕트의 규칙서》의 내용과 주요 주제

《베네딕트의 규칙서》는 규칙을 제정한 의의를 설명하는 서문과 수도원에서의 각종 제도와 생활규율 등을 설명하는 73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문에서 제7장까지는 《스승의 규칙서》와 아주 많이 일치하는 부분으로, 수도사의 종류(1)와 수도원장(2-3), 그리고 영적성장을 위한 훈련방법(4-7)을 개괄적으로 설명하며 글 전체의 도입부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에서는 이전 도입부의 정신을 강조하면서 보다 구체적인 규칙을 다루고 있다. 전체를 간략히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전례규칙과 자세(8-20), 직책과 역할(21, 31-32, 38, 47, 57, 62-66), 입회, 책벌, 파문(23-30, 42-46, 58-61), 노동과 각종 생활규칙(22, 33-37, 39-42, 48-56, 67-72), 끝맺는 말(73)로 이루어져 있다.

 

상호적인 사랑에서 솟아나는 순종

“들으라, 나의 아들아”라는 권고로 시작하는 서문은 이 글이 법률적 문서보다 구약성서의 지혜문학wisdom literature 전통잠언 1:8, 4:1 참조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베네딕트는 규칙서에 기록된 가르침들을 부모가 자녀에게 들려주는 사랑의 교훈에 비유한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이 가르침들을 주의 깊게 듣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즉각적으로 순종해야 한다서문 1.

이러한 지혜문학으로서의 글의 성격은 베네딕트회의 3대 서약 중의 하나인 ‘순종’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도와준다. 즉 베네딕트에게서 ‘순종’은 권위자의 일방적인 명령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오는 맹목적인 반응이 아니라, 영적인 부모와 자녀 사이의 상호적인 사랑과 신뢰에서 자라나는 미덕이다. 수직적인 관계에서 이렇게 형성된 순종은 나아가 수평적인 관계로 확장된다. 베네딕트는 그의 규칙서 끝부분에서 수도원장과 수도사 사이뿐만 아니라, 수도사들 사이에서도 상호순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71.1, 72.5. 이와 같이 순종은 겸손과 더불어《베네딕트의 규칙서》의 처음과 마지막을 꿰뚫으며 모든 규칙을 하나로 묶는다. 이런 점에서 베네딕트의 순종은 효를 모든 행위의 근본으로 삼는 동양의 유학儒學의 가르침과도 통한다. 예를 들면, 유학에서도 부모의 사랑에 대한 자녀의 사랑의 반응이 효라고 가르친다. 부모와 자녀의 수직적인 관계에서의 효가 형제자매와 친구와의 수평적인 관계로 확장된 것이 우정이다.

또한 순종은 발전시켜야 하는 미덕인 동시에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영성훈련의 효과적인 방법이다. ‘순종’을 뜻하는 라틴어 오보에디레oboedire는 어원적으로 ‘듣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곧 순종은 수도원장이나 다른 형제들의 말 속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훈련이다. 그래서 베네딕트는 수도사는 상급자의 명령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여기고 실행해야 하며, 상급자에게 보여준 순종은 곧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라고 말한다5.4,15. 이처럼 순종의 훈련을 통해서 수도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귀를 열어놓게 되며,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법을 배우게 된다.

 

겸손, 환대, 그리고 자비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

순종과 마찬가지로 겸손은 《베네딕트의 규칙서》의 기초를 이루는 미덕이며 동시에 영성훈련 방법이다. 7장에는 겸손의 열두 단계가 기록되어 있는데, 베네딕트는 겸손을 인간이 몸과 영혼, 즉 전인적으로 성장해가는 점진적인 과정으로 제시한다. 첫 번째 단계는 자신의 죄에 관한 욕망을 인식하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것을 극복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두 번째부터 일곱 번째 단계를 거치면서는 수도사는 자신의 비천함을 인식하고, 자신의 뜻을 버리며, 죄를 고백하고, 인내하는 가운데 순종하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여덟 번째부터 마지막 단계는 겸손을 마음으로뿐만 아니라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충실하게 나타내는 과정이다. 겸손의 단계를 모두 거치면 수도사는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는 하나님의 사랑에 도달하게 된다. 이 사랑은 또한 수도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을 연합시켜서,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것처럼 즐거이 준행하게 만든다. 이런 의미에서 겸손의 사다리는 수도사를 금욕적인 삶 또는 능동적 삶의 정점으로 인도한다. 이와 같은 하나님과의 사랑 깊은 연합이 곧 베네틱트가 추구한 수도생활의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겸손은 또한 베네딕트 영성의 또 다른 특징인 다른 이들에 대한 환대자비로 표현되어야 한다. 수도사들은 방문한 모든 손님들에게 머리를 숙이거나 몸을 완전히 엎드려 겸손히 영접하고 진심으로 대접해야 한다. 손님대접을 위해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담당자는 중요한 금욕훈련 중의 하나인 금식도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이 규칙서는 공동체의 병들거나 약한 이들에 대한 커다란 관심과 배려를 보이고 있다. 손님과 병든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와 같이 돌봄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환대를 통해 나그네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경배를 받으시기 때문이다36, 53. 이처럼 겸손과 환대, 그리고 자비는 금욕수행보다도 더 우선되는 미덕이자 훈련이며,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섬기고 그분과 연합하는 삶의 길이다.

 

삶의 균형과 리듬

베네딕트 영성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균형과 리듬이다. 먼저 베네딕트는 하루 중 기도와 노동이, 그리고 공동체의 예배와 개인의 영성생활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도록 가르친다. 물론 우선순위는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성무일도officium divinum 또는 하나님의 일Opus Dei에 있지만, 육체적인 노동과 개인적인 독서lectio divina 역시 매일의 수도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베네딕트는 제8장부터 제20장에 걸쳐 매일 혹은 매주 드릴 성무일도의 시간과 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기도와 예배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외적인 형식이 아니라 이집트 사막의 수도사들이 추구한 “마음의 순수함과 참회의 눈물”이다20.3. 기도는 짧고 단순해야 하며20.4, 찬송은 마음과 목소리가 조화를 이루어져야 한다19.7. 그리고 하나님이 어디에나 임재하시며, 모든 곳에서 주님의 눈이 감찰하고 계시기 때문에19.1 성무일도를 비롯한 모든 일은 매 순간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는 가운데서 행해져야 한다.

그 외에도 베네딕트는 사순절을 지키는 방법49과 취침과 식사 등 일상생활에 대한 지침22, 41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전례규칙과 일상생활의 규칙은 함께 어우러져 짧게는 매일의 생활, 길게는 연간 생활의 리듬을 형성한다. 즉 《베네딕트의 규칙서》에 심겨져 있는 수도원의 이상은 단조로운 매일의 의무들로 채워져 있는 삶이 아니라, 균형 잡힌 일상생활의 반복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리듬 있는 삶이다. 그런데 이러한 반복은 발전 없이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집”을 향해 오르는 영적인 여정이며, 공동체가 사랑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규칙이라는 리듬에 맞춰 내딛는 공동의 발걸음이다72.4, 73.8.

 

라틴어 원문들

《베네딕트의 규칙서》는 그의 막강한 영향력을 보여주듯 많은 사본들이 발견된다. 현재 삼 백여 개 이상의 다양한 라틴어 사본들이 남아 있는데, 전승 과정에서 곳곳에 가필된 부분이 많아 원문을 확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규칙서》본문에 대한 비평적 연구는 19세기 후반에 들어서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고대 라틴어 사본들은 문서가 시작하는 첫 단어에 따라 아우스쿨타ausculta옵스쿨타obsculta,두 그룹으로 구분되어 명명되어왔다. 중세시대에는 이 두 그룹의 사본을 적절히 조합하여 주석을 단 공인본문textus receptus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규칙서》각 장의 구분은 모든 사본에 나타나며, 절의 구분은 17세기부터 시작되어 1947년에 안셀모 렌티니Anselmo Lentini에 의해 본격적으로 활용되었다. KIATS영성 선집도 이 기준을 따랐다. 중세 기독교 문학의 일반적인 특징을 반영하듯, 규칙서에는 약 300여 개 이상의 성서본문이 직간접적으로 인용되었다. 물론 베네딕트는 성경본문을 문자 그대로 인용하거나 출처를 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도사들이 보다 쉽게 낭독할 수 있도록 운율을 살리기도 했다.  KIATS영성 선집에서는 독자들에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경우에만 성경인용의 출처를 담았다. 우리는 이 《규칙서》의 한글 번역과 연구를 위해 지금까지 나온 많은 라틴어와 영어 번역을 참조했다. 동시에 믿을만한 비평본인 아달베르트(Adalbert de Vogüé)가 편집한 La Règle de Saint Benoît: Introduction, Traduction, et Notes par Adalbert de Vogüé: Texte Établi et Preésenté par Jean Neufville (Paris, Éditions du Cerf, 1972)과 프라이(Timothy Fry)가 편집한 RB1980: The Rule of St. Benedict in Latin and English with Notes (Collegeville, Minnesota: Liturgical Press, 1981)의 도움을 받았다.

 

주요 참고문헌

1차 문헌

Fry, Timothy . RB1980: The Rule of St. Benedict in Latin and English with Notes. Collegeville, Minnesota: Liturgical Press, 1981.

Gregory the Great. The Life of Saint Benedict. Hilary Costello, Eoin de Bhaldraithe. Petersham, Massachusetts: Bedes Publications, 1993.

Lentini, Anselmo. S. Benedetto, La regola: testo, versione e comment. 2. Montecassino: Pisani, 1980.

McCann, Justin. The Rule of Saint Benedict in Latin and English. London: Burns and Oates, 1952.

Penco, Gregorio. S. Benedicti Regula: introduzione, testo, apparati, traduzione e commento. Florence: La Nuova Italia, 1958.

de Vogüé, Adalbert . La Règle de Saint Benoît: Introduction, Traduction, et Notes par Adalbert de Vogüé: Texte Établi et Preésenté par Jean Neufville. Paris, Éditions du Cerf, 1972.

 

 

2차 문헌

강치원. 『베네딕트 규칙서』에 나타난 렉시오 디비나. 《선교와 신학》제19 (2007): 187-220.

김봉수. 『베네딕트 규칙서』에 나타난 수도원이념에 관한 연구. 《總神大論叢》제16 (1997): 249-290.

Casey, Michael. Strangers to the City: Reflections on the Beliefs and Values of the Rule of St. Benedict. Brewster, Massachusetts: Paraclete Press, 2005.

Ladrigan-Whelpley, Theresa. “Benedict of Nursia (c.480–c.547), Rule.” Christian Spirituality: The Classics. Arthur Holder . New York: Routledge, 2009: 62–73.

Merton, Thomas. The Rule of Saint Benedict: Initiation into the Monastic Tradition 4. Collegeville, Minnesota: Liturgical Press, 2009.

Stewart, Columba. Prayer and Community: The Benedictine Tradition. Maryknoll, New York: Orbis Books, 1998.

Swan, Laura. The Benedictine Tradition: Spirituality in History. Collegeville, Minnesota: Liturgical Press, 2007.

de Waal, Esther. A Life Giving Way: A Commentary on the Rule of St. Benedict. Collegeville, Minnesota: Liturgical Press, 1995.

 


posted by 바람연필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