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감리교 신도회의 규칙

감리교 신도회의 규칙: 

“선을 행하라, 악을 피하라, 모든 성회에 참석하라”




19세기 초 감리교 캠프 모임(Camp Meeting). Image from http://global.britannica.com/EBchecked/topic/378415/Methodism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91)가 이끌었던 초기 감리교 부흥 운동의 동인(動因)으로 ‘전격적 회심을 강조하는 열광적인 부흥 집회’를 꼽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는 초기 감리교 운동의 단편적인 모습일 뿐이다. 웨슬리가 옥외 설교(“field preaching”; 교회 건물이 없는 곳에서 열리는 대중 집회)를 중시했던 것은 사실이다. 공장 지역과 탄광 지대의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던 당시 상황에서, 옥외 설교는 지역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웨슬리는 이렇게 대중 집회를 통하여 회심한 사람들을 신도회(Methodist societies)라는 공동체에 가입시켜 영적으로 돌보고 신앙적으로 훈련하도록 하는 일을 옥외 설교 이상으로 중시하였다. 그렇게 돌보지 않으면 모처럼 신앙적으로 각성한 사람들 대부분이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 버린다는 것이 거듭 드러났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웨슬리가 이렇게 대중 집회와 공동체 운동을 결함시킨 것이 초기 감리교 성장의 중요한 동력이었으며, 신도회는 감리교 영성 형성의 중요한 장(場)이었다고 평가한다.[각주:1]


     웨슬리는 늘어나는 신도회들을 체계적으로 지도하기 위해 이들을 지역 단위로 묶어 연합신도회를 만들고, 1743년 5월 1일에는 이들을 위한 통일된 규칙을 발표하였다. “연합 신도회의 성격, 형태 그리고 규칙”(The Nature, Design and General Rules of the United Societies, 이하 “신도회의 규칙”)이 바로 그것이다.[각주:2] 오늘날 한국 교회에 소그룹 운동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대중적인 집회와 함께 훈련·규칙·공동체를 중시한 웨슬리의 통찰이 담긴 “신도회의 규칙”을 살펴보는 일은 의미가 있다.



속회(Class)에 참여하라


“신도회의 규칙”은 신도회의 목적에 관해서는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이 모임은 규칙적으로 모여서 함께 경건의 능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사귐으로서, 함께 기도하며, 함께 권고의 말씀을 받으며, 사랑 안에서 서로를 돌보고 지켜주어 (to watch over), 서로의 구원을 함께 이루어 가기 위해 모이는 것이다….


즉, 신도회는 친밀하고 온정적인 신도들 간의 유대를 경험하는 곳이었으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회원들은 서로 자신의 삶을 고백하고 함께 격려하고 위로하는 “상호 권면”(mutual accountability)을 실천했다. 이를 위해, 웨슬리는 모든 신도회원들이 12명 단위(지도자 1인과 11명의 회원)로 된 속회라는 소그룹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하였다. 나아가, 보다 높은 수준의 신앙 훈련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밴드(Band)라는 소그룹을 별도로 두었다.


신도회는 또한 규율을 정하고 함께 훈련하는 공동체였다. “신도회의 규칙”은, 회원들은 


“첫째로, 악을 피함으로”(By doing no harm)

“둘째, 선을 행함으로”(By doing good)

“셋째, 모든 성회에 참여함으로”(By attending all the ordinances of God)


자신들의 “구원을 향한 열망을 지속적으로 확증해야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세 가지는 큰 원칙들로 각 원칙 아래에는 구체적인 실천 덕목들을 두어 회원이 삶의 지침으로 삼도록 하였다. 

 


모든 악을 피하라


첫 번째 원칙은 신도회원이 된 사람은 “모든 종류의 악을 피하는(avoiding evil in every kind)”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지침이다. “신도회의 규칙”은, 이 원칙과 관련해서, 회원들이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피해야 하는 항목들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일(출20:7)

평일에 하는 일들, 물건을 매매하는 일을 주일에 함으로써, 주일을 더럽히는 것.

술에 취하는 일, 독한 술을 팔거나 사는 일, 그리고 그것을 마시는 일

싸움, 언쟁, 소란을 피우는 일, 신자들 간의 법적 다툼(고전6:6), 악을 악으로 갚는 일(벧전 3:9), 욕을 욕으로 갚는 일, 물건을 사고팔 때 많은 말을 하는 것(지나치게 흥정을 하거나, 값을 깎는 행위를 말함)

밀수품을 판매하거나 매입하는 행위

고리의 이자를 취하는 행위

무자비한 말이나, 무익한 대화, 특히 관리나 목사들에 대한 험담

내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시키는 행위(마7:12)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아닌 것, 예를 들면, 금이나 다른 귀금속을 몸에 걸치는 일,  값비싼 옷을 입는 것.

주 예수의 이름으로 사용될 수 없는 오락

하나님을 아는 일과 사랑하는 일에 적절치 않은 노래를 부르거나, 그런 책을 읽는 행위

세속적인 것에 쉽게 타협하는 행동이나 방종(self-indlugence)

땅에 보물을 쌓는 일.

갚을 수 없는 액수의 돈을 빌리는 일 혹은 갚을 수 없는 외상을 지는 행위.


웨슬리는 이와 같이, 십계명, 산상 수훈 등 성서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경건 생활의 덕목들을 회원들의 신앙 실천의 기본으로 삼도록 하였다. 또한, 회원들이 사회 속에서 신앙인으로서의 품격을 지키며 사는 데 지침이 되는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의미 있게 보인다.   



선을 행하라


     두 번째 원칙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능력을 다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능한 모든 종류의 선을, 모든 사람들에게 행하라.”는 원칙이다(갈6:10). 이를 위한 세부 규정들은 이웃 사랑과 선교적 삶에 관련된 지침들을 포괄하고 있다.  

이웃의 몸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대로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벗은 사람에게 입을 것을 주고, 병든 사람과 옥에 갇힌 사람을 찾아가 도와주어라.

이웃의 영혼을 위하여서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가르치고, 바르게 인도하고 권면하라. “우리의 마음이 죄로부터 온전히 벗어나 전에는 우리가 어떤 선도 행할 수 없다”는 열광주의자들의 사악한 가르침을 철저히 배격하라.


여기서 열광주의자들의 주장을 비판하는 것이 이채롭게 보인다. 하지만 이는 웨슬리가 평생 목회 활동 내내 열광주의자들의 주장을 경계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웨슬리가 그들의 주장들 중에도 가장 우려한 것은, 그들이 개인의 내적 주관적 변화의 체험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이웃 사랑과 선교적 삶에 관계된 신앙 덕목들의 중요성을 경시한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주장들은 내적 경건과 외적 경건의 조화, 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의 조화를 깨뜨리고, 올바른 신앙적 성숙을 저해한다는 점을 웨슬리는 간파한 것이다. 그는 이런 점을 “신도회의 규칙”에 반영함으로써, 신도회원들이 열광주의자들의 지나친 주장들을 분별하고 균형 잡힌 신앙인으로 성장하도록 돕고자 하였다.  


또한 이 두 번째 범주에는 공동체 생활에 관련된 아래와 같은 지침들도 들어 있다.


무엇보다도 믿음의 가족들과 믿음의 가족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라(갈6:10). 그들을 고용하고, 그들의 물건을 사주고, 그들의 사업을 도우라…. 


마지막으로 여기에는 회원들이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제자직에 부합한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는 다음과 같은 지침들을 포함하고 있다.  


할 수 있는 대로 부지런히 절약하여 복음이 비난받지 않게 하라. 

인내로써 앞을 향하여 달려 나가고, 자신을 부인하고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라. 그리스도가 당하신 고난을 당하고, 세상에서의 모욕과 비난을 감수하라.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갈 때, 사람들이 온갖 거짓말과 악한 말을 하리라.”는 것을 잊지 말라. 



모든 성회에 참석하라


     세 번째 원칙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려고 그분께서 친히 제정하신 모든 규례들(all the ordinances of God)에 참여함으로 “구원을 향한 열망”을 지속적으로 입증하라는 것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공적 예배에 참석하라. 

성경 말씀을 받는 모임, 즉 말씀을 읽거나 강해하는 모임에 참여하라.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라. 

가족 기도와 개인 기도를 지켜라. 

성경을 탐구하는 일에 참여하라. 

금식과 절식을 지켜라.


이러한 신앙생활의 근본적 실천 덕목들을 명시적으로 규정해야 했던 데에는 앞에서 언급한 것 과 같은 열광주의에 대한 경계가 들어 있다. 열광주의자들의 사적·주관적 체험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교회가 전통적으로 가르쳐온 신앙 실천들—예를 들면, 공적 예배, 성례전, 말씀 선포, 성경 묵상 등과 같이 공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마저 경시하는 경향을 띄었다. 웨슬리는 이러한 그릇된 가르침을 경계하면서, 올바른 신앙 성장은 교회가 전통적으로 가르쳐온 신앙 실천들의 토대 위에서, 그리고 신앙 공동체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여기서 분명히 하였다. 


     또한, 세 번째 원칙에는 신자들의 영적 성숙과 이웃 사랑의 실천과 같이, 첫째와 둘째 원칙에 속한 신앙 실천들이 인간의 독자적인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은혜와 성령의 능력에 응답하는 순종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확증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에 더하여, 웨슬리는 감리교인들이 영국 국교회의 모든 예배에 참석해야 하고, 거기서 베풀어지는 성찬에 반드시 참여해야 함을 의무로 규정함으로서, 감리교 신도회가 영국 국교회에 속한 하나의 단체(evangelical order)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감리교의 개혁 운동이 분파주의나 분리주의 운동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신도회의 규칙”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신도회의 규칙”은 모든 신도회원들이 이 규칙을 철저히 준수해 줄 것을 당부하는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는다.


만일 우리 가운데 누가 이를 지키지 않는다면 또는 습관적으로 위반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경고하여 알려줄 것이고 권면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우리들 가운데 더 이상 남아 있을 수가 없다.


이와 같이 모든 감리교 신도회원들이 규칙에 동의하게 하고 이것을 지키도록 서로 권고를 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자들의 모임을 영적으로 건전하게 유지하고, 그들의 지속적인 영적 성장을 돕는 일에는 온정적이면서도 적절한 규율을 유지하는 공동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웨슬리는 목회 경험을 통하여,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는 회심의 체험을 한 사람들에게는 영적으로 성장하려는 열망이 자리 잡게 된다는 점을 확신하였다. 그는 회심을 단지 ‘죄 사함을 확증하는 순간’으로만 보지 않고 거듭남으로 보았다. 다시 말하면, 회심을 성령의 인도에 응답할 수 있는 존재로의 새로운 탄생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거듭난 사람들이 올바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지와 격려와 영적 지도가 오가는 공동체가 필수적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신도회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영적 성장을 돕는 공동체였다. 웨슬리는 “혼과 몸이 사람을 만든다면, 성령과 훈련은 기독교인을 만든다.”는 말을 자주했다. 그는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대중 집회를 통해 회심한 사람들이 올바른 기독교인으로 성장하게 하는 일을 돕기 위해, 성서에 바탕을 둔 규율을 가지고 서로 권면하는 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일에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신도회의 규칙”이 내적 경건과 외적 경건의 조화를 강조하였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웨슬리는 개인의 사적이고 주관적인 체험만을 강조하는 것은 사람들의 신앙이 올바르고 조화롭게 성장하는 일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직시하였다. 그래서 그는 “악을 피하라, 선을 행하라, 모든 성회에 참석하라”는 규율을 가지고 공동체 속에서 훈련하게 함으로써, 신자들의 개인적 경건의 추구가 공동체의 상호 돌봄과 지도 속에서 행해지게 하였고, 또한 신앙인으로서 사회의 성결에 책임을 다하는 것을 훈련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조화를 강조한 감리교 부흥 운동이 근대 영국 사회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깊이 되새겨볼 점이다. 


18세기 영국의 상황과 오늘의 한국 교회 상황은 같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회심한 사람들의 신앙 성장을 돕고자, 공동체를 만들어 개인적 경건과 사회의 성결을 훈련하도록 한 웨슬리의 통찰은 오늘날  한국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글쓴이 : 남기정. '산책길' 기독교영성고전학당 연구원, 새열매연합감리교회 목사, GTU 기독교 영성학 Ph.D Candidate.


'산책길'은 2015년 한 해 동안 기독교 월간지 <목회와신학>에 '영성 고전에서 배우는 영성 목회'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목회와신학>의 양해를 얻어 이곳 산책길 팀블로그에서도 매달 글을 게재합니다. 위의 글은 2015년 5월 호에 실린 다섯 번째 글입니다.


  1. T. 런연, 《새로운 창조》, 김고광 역 (1999), 4장; 김진두, 《웨슬리의 실천신학》 개정판 (2004), 5장; Richard P. Heitzenrater, Wesley and the People Called Methodists (1995), Ch. 3; David Lowes Watston, “Methodist Spirituality,” in Protestant Spiritual Traditions, ed. Frank C. Senn (1986). [본문으로]
  2. John Wesley, “The Nature, Design, and General Rules of the United Societies (1743),” in The Methodist Societies: History, Nature, and Design, The Bicentennial Edition of the Works of John Wesley, vol. IX (1989), 67-75; 김진두, 《웨슬리의 실천신학》, 159-66. [본문으로]
posted by 바람연필

겸손을 훈련할 때 (누르시아의 베네딕트)

한 줄 묵상 2013.11.05 18:06

겸손의 네 번째 단계는 이와 같이 [상급자]에게 순종할 때에 그것이 어렵고 [자신이 원하는 것과] 반대의 일이라 할지라도, 또는 심지어 어떤 종류의 피해를 입는다고 해도 마음으로 잠잠히 고통을 품고, 약해지거나 도망치려고 하지 않고 그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다.

누르시아의 베네딕트(Benedict of Nursia, 480-ca.547), 《베네딕트의 규칙서》 

권혁일, 김재현 옮김, 제7장. 35-36. (서울: KIATS, 2011), 43.


베네딕트의 규칙서》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 중의 하나는 겸손의 열두 단계를 설명하고 있는 제7장이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은 수도자가 높으신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에 도달하기 위해서 지녀야 할 필수적인 덕목이다. 그리고 그 겸손을 훈련하는 방법이 바로 공동체 안에서의 상급자와 동료 수도자들에 대한 '상호 순종'이다. 특히 겸손의 네 번째 단계는 비록 상급자가 자신에게 맡긴 일이 어렵고, 자신의 소원과 반대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순종하는 것이다. 심지어 그 일을 통해서 어떤 피해를 입게 된다고 할지라도 도망치지 않고 잠잠히 그 고통을 품고 감내하는 것이다.


베네딕트의 이러한 가르침은 윗사람의 명령이 부조리하고 불법적이어도 무조건 복종하고 저항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베네딕트의 규칙서는 기본적으로 수도 공동체(monastic community)를 배경으로 한다. 수도 공동체에서는 '아버지(abba)' 또는 '어머니(amma)'라고 불리는 수도원장이 수도자들의 영혼을 책임진다. 그(그녀)는 수도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구성원들 상호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공동체를 이끌어 간다. 그래서 베네딕트는 수도원장의 자질과 역할에 대해서 여러 번 그리고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공동체 안에서의 상호 간의 신뢰와 항상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훌륭한 지도자가 '무조건적인 순종과 인내'의 이상적인 환경이다.


하지만 이 규칙이 수도원 밖에서 사는 이들에게는 전혀 관계 없다고도 말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속한 신앙 공동체나 가정, 직장, 삶의 환경 등에서 상급자(연장자)에게 또는 서로에게 순종함으로써, 현실의 고통을 감내함으로써, 주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우고 겸손을 훈련하기를 원하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지금 어려운 일, 자신의 의지와 반대되는 일, 또 (스스로의 눈에는) 자신에게 별 이익이 되지 않는 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를 쓰고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간절히 원하고 방법을 찾는 데도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혹시 주님께서 지금 내가 겸손을 훈련하기를 원하시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 보라. 겸손하며 인내해야 할 때인지, 아니면 요나처럼 자신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방향 전환을 해야 할 때인지 주님께 여쭈어 보고 깊이 생각하라. 혼자서 기도만 하기보다는 신뢰하는 영적 지도자와 상의하는 것이 '기도의 행위'로 자신의 욕망과 뜻을 합리화하는 것을 피하고, 주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는 데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 권혁일  

posted by 바람연필

신앙은 논하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것이다. (조지 폭스)

한 줄 묵상 2013.05.24 01:50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전에 계시지 않습니다. 또한 모든 그들의 설교, 세례, 희생들도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진 못합니다. 여러분들의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분만이 당신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서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분께 순종하십시오." 

조지 폭스 (George Fox 1624-1691), The Journal, chapter 4. A Year in Derby Prison (1650-51)년의 글 중에서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때까지 유대인들의 신앙의 중심은 예루살렘 성전이었습니다. 성전은 그것을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안심을 주는 티켓이었고, 그들이 하나님께 자신들의 신앙을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보여 있는 극장이었으며, 그들의 신앙을 보일 있는 무대였습니다. 곳에서 장사하는 장사치들을 몰아내시면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한 성전을 헐고 삼일 만에 일으키리라 하셨습니다.

 

조지 폭스의 조금은 과격하고 극단적인 표현들은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폭스가 그토록 경계하고 회개하기를 원했던 시대의 성직자들처럼 또한 어느덧 교회의 건물 안에 사람들을 몰아넣으려고 지는 않는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로서 나의 말에 순종케 하기를 원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말하는 것에 따르는 자들은 거룩하게 것이라는 은근한 협박을 즐기고 있진 않은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일은, 더더욱 우리 목사들이 일은 조지 폭스가 말한 대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분께 순종하도록, 그분을 바라보도록 인도하는" 것일 것입니다.  조지 폭스는 당시 교회를 부정하는 듯한 표현으로 인해 감옥살이를 시작합니다. 어쩌면 바른 신앙을 갖는 것은 세상의 감옥에 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가 그러했듯, 폭스가 그러했듯,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자들은 감옥에서도 자유할 있습니다. 그렇게 살기 원합니다. / 정승구

posted by 소리벼리

아버지의 권고 (베네딕트의 규칙서)

한 줄 묵상 2013.05.21 09:33

들으라, 나의 아들아, 네 스승의 가르침들을.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마음의 귀를 열어 주의를 기울여라. 이것은 너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권고이다. 그러므로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신실하게 실행에 옮겨라.


누르시아의 베네딕트(Benedict of Nursia, 480-ca.547), 《베네딕트의 규칙서》 

권혁일, 김재현 옮김, 서론, 7. (서울: KIATS, 2011), 13.


위의 인용문은 수도 공동체의 정체성, 생활 원리, 구성원들의 관계 등을 안내하는 베네딕트의 규칙서의 가장 처음에 나오는 구절이다. 베네딕트는 영적 스승을 아버지(abba) 또는 어머니(amma)로 부르던 수도 전통을 따라서 규칙서에 수록된 가르침들을 "아버지의 권고"로 소개한다. 독자에 따라서는 "아버지의 권고"가 가부장적인 권위에서 나오는 부당한 강요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적 아버지의 권위는 '가부장제' 또는 '연령'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앞서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그의 삶과 자녀(제자)를 향한 사랑에서 나온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한번씩 약주를 드시고 집에 오시면, 어린 우리 남매를 불러 모아 앉히고는 수염이 난 까끄러운 얼굴로 우리 얼굴을 부비기도 하셨고,  이것저것 훈계를 하기도 하셨다. 당시에는 늘 똑같이 반복되는 아버지의 훈계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 시절이 매우 그리운 때가 되었다. "아버지의 권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후회하거나 아쉬워할 때가 오기 마련이다.


《베네딕트의 규칙서》 뿐만 아니라 다른 영성 고전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읽을 때 "마음의 귀"를 열고 들으며, 그것을 신실하게 실행에 옮기려는 자세를 가지는 것, 그것이 수도원 안에서든지 수도원 밖의 일상에서든지 '수도 생활'을 실천하는 첫걸음이다. / 권혁일

posted by 바람연필

이미 우리 안에 계신 주님 (하나님 임재 연습)

한 줄 묵상 2013.04.09 14:58

모든 순간 주님과 함께 이야기하고 그분의 도움을 간구하기 위해서는, 오직 주님이 우리 안에 와 계시다는 것을 (깊이) 깨닫기만 하면 됩니다.
- 로렌스 형제(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  c. 1614-1691), 《하나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Fourth Conversation)


로렌스 형제는 주님이 이미 자신 안에 계시다는 인식 속에서 살아갔다. 그것이 그의 영적 삶의 전체이자 전부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 안에 들어오신 예수님의 현존이 그가 만지고 관계맺고 경험하는 모든 일상을 거룩하게 한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경험했다.  미미 있는 일상이 가장 분명한 하나님의 자리가 있었던 것은 주님의 현존 때문이었다.

더불어 그는 예수님의 임재를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은 완전한 복종과 자아의 포기라고 알려준. 생전에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 불리셨던 예수님은 부활 후에도 죄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이들의 마음에 임하시기를 즐겨하신다. 로렌스 형제에게 있어서 자신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집이 되도록 준비하는 것은 스스로를 세리와 죄인과 같다고 고백하는 자아의 포기에 달려있었다. 그리고 주님으로만 더불어 먹고 마시기를 기뻐하는 마음에 주님은 임하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신다.

성육신하셔서 신에서 인간으로 내려오시고  가장 가난한 마음의 자리를 찾으셨던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는 이들에게 즐겨오신다. 원래 그러셨던 분이셨고 그렇게 하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를 그분에게까지 올라오라고 명하시기보다 스스로 우리의 자리까지 내려오시길 선택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성육신하신 주님은 일상을 살아가는 지금의 내 마음에라도 충분히 내려오실 있는 분이시다. 그렇게 하셔서 기도의 자리와 일상의 자리 사이의 경계를 파괴하시고 오늘도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고자 하신다.  작은소리찾기 박세훈

posted by 작은소리찾기

완전한 순종 (하나님 임재 연습)

한 줄 묵상 2012.10.31 14:41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 또한 자신을 죽이기를 소망하면서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순종'이야말로 진실로 안전한 길이 되기 때문이다. 그 길에는 항상 빛이 있어서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이다." 



렌스 형제 (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 c. 1614-1691),

《하나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Third Conversation)




우리는 죽음을 부정하고 몰아내는 세상 속에 살아간다. 가난과 질병 그리고 죽음은 쫓아내야 할 저주이며, 징벌을 받은 사람들의 것으로 치부되어 버린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자신의 욕심과 뜻을 죽이기가 어렵다.  '하나님의 사랑'을 위한다고 할 때에도 자신을 부정하고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매우 어렵다. 머리로는 아는 듯 해도 순종이 내 삶에 상식처럼 되게 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마치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저 과장법이나 비유가 아니다. 그렇기에 이 '완전한 순종'은 지금 우리에게 거대한 믿음의 도전이 된다.


로렌스 수사는 이 거대한 도전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될 때까지 순종하면서 배워갔다. 하나님을 경험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 포기와 순종의 길에는 항상 우리를 인도하는 빛이 (정말) 있다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준다. / 작은소리찾기

posted by 작은소리찾기

시험을 감사하라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한 줄 묵상 2012.09.18 07:48
  • 시험은 지나가면 간증으로 담담히 말할 수 있지만 현재 진행형 일때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기 때문에 시험인 것 같아요. 시험 중에 감사하는 것과 시험을 겪은 후에 감사하는 것...점점 더 그런 차이가 마음을 무겁게 하기도 하고, 겸손케 하기도 합니다. 가끔씩 목사님 선하고 밝은 표정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전 목사님의 삶과 신앙의 깊이를 측량하곤 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BlogIcon 소리벼리 2012.09.18 14:44 신고
  • 정목사님의 묵상이 제게 격려가 됩니다. 그리고 저에 대한 말씀에는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실상은 그렇지 못하구요.... 지난번 모임 때, 책 정하는 순서를 양보하시는 목사님 모습에 사실 감명을 받았었지요. 한 송이의 꽃을 보았지요.^^

    BlogIcon 오래된 오늘 2012.09.19 05:42 신고

테베의 요셉(Joseph of Thebes)이 이르기를,


"하나님으로부터 칭찬 받을 만한 세 가지 때가 있습니다. 첫째는 어떤 병약한 사람에게 시험들(temptations)이 닥쳐올 때 그러한 것들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때입니다. 둘째는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 인간적인 동기 같은 것을 혼합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그저 순수하게 하는 때입니다. 세 번째는 제자가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영적인 아버지께 순명하는 때입니다."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주제별)》Ch. 1. 9



나에게는 아픈 딸이 있는데, 글을 통해 '육신이 아파서 찾아오는 시험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돌아다 보는 계기를 가지게 된다. 


자신이 힘든 상황에 몰입되어 있다가 보면, 먼저는 어떤 것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험거리들인지 분별하고자 하는 의욕조차 상실되는 것을 나는 체험한다. 더 나아가, 병든 상황 자체를 하나님 안에서 좀 떨어져서 바라보는 '영적인 객관화 작업'이 이러한 시험들을 분별할 수 있는 기초가 되는 줄 알면서도 쉬운 일이 아님을 또한 절감하고 있다. 


이같은 나 자신에게 "병약할 때 닥치는 시험들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라"는 금언은 그래서 오늘 내게 큰 도전과 울림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 오래된 오늘


posted by 오래된 오늘

베네딕트의 규칙서 (Rule of St. Benedict)




블로그를 시작하며 7월의 추천 고전으로《베네딕트의 규칙서 Regula Sancti Benedicti 를 선정하였다. 6세기 초 이탈리아의 수도승 누르시아의 베네딕트(Benedict of Nursia)에 의해서 쓰여진 이 작품은 현재까지 기독교 수도원운동에 있어서 기준이 되는 가장 권위 있는 텍스트로 여겨져 오고 있다. 


오늘날 교회 안팎에서 '공동체'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지만, 사실은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많은 기독 교회들이 분열과 분쟁을 거듭하고 있으며 참된 공동체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그러므로 과거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열망으로 공동체 생활을 택한 수도자들의 규칙서가 오늘날 한국 교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과 지혜를 주고 있다고 믿는다. 최근에 새롭게 출간된 한국어 번역본을 소개하고, 그 책에 필자가 쓴 도움말로 작품에 대한 자세한 안내를 대신한다. 

 

베네딕트 저. 《베네딕트의 규칙서》 권혁일, 김재현 역. 서울: KIATS, 2011.

  


《베네딕트의 규칙서》:

천국을 향한 공동체 여정의 이정표

 

 

왜 고대의 수도원 규칙서를 읽는가?

문학에서 고전古典은 그 작품이 쓰여진 시대와 장소를 넘어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작품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베네딕트의 규칙서 Regula Sancti Benedicti》는 기독교 영성의 고전이라고 부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이 작품은 6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베네딕트Benedict of Nursia(c.480-c.547)의 지도 아래 공동생활을 하던 수도사들을 위해서 쓰여졌다. 그리고 이 규칙서는 지난 1500여 년 동안 수도원 안팎에서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 왔고, 또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쳐왔다.

《베네딕트의 규칙서》가 기독교 고전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기록 목적과 규칙의 유연성이 중심적인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규칙’을 뜻하는 라틴어 레귤라regula는 여행자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 ‘길의 울타리,’ 또는 행동과 삶의 잣대를 의미한다. 베네딕트의 규칙은 수도사들의 행동을 규제하기 위한 딱딱한 규범이 아니라, 단순하고 순수한 영성생활을 통해 천국을 향한 수도사들의 영적 여정을 안내하기 위한 이정표와 지침이다.서문 제45-50

베네딕트는 이 규칙이 문자적으로 적용될 것이 아니라, 각 수도원이 처한 기후와 환경, 그리고 수도사 개인의 영적, 육체적 조건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규칙은 수도생활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수도원장의 판단에 따라 적절하게 변경될 수 있으며, 더 나은 것으로 대치될 수도 있다. 이러한 규칙의 유연성은 오늘날 전 세계의 수도원 안에서 사는 이들은 물론 수도원 밖에서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 베네딕트 영성의 유산을 자신의 삶과 공동체의 삶에 창조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수도원주의의 발달과 《베네딕트의 규칙서》

《베네딕트의 규칙서》는 서방기독교 수도원 발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서이다. 기독교 수도원의 역사는 4세기 초 이집트의 사막에서 시작되었다. 304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Diocletianus 치하에서는 많은 이들이 혹독한 박해를 피해 사막으로 도망쳤다. 그런데 313년 콘스탄틴 황제Constantine the Great의 기독교 공인 이후에는 당대 기독교인들이 새로운 형태의 ‘순교’를 찾아서 이집트의 황량한 사막으로 나아갔다.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of Alexandria에 따르면 4-5세기에는 “사막에 도시를 이룰 정도로 많은 수도사들이 이집트의 사막에서 은둔형 혹은 공동체형 수도원을 만들어 수도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렇다고 당시 사막의 수도사들이 세속 도시와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박해시대의 순교자들처럼 교회에서 ‘영웅’으로 인식되며, 로마제국의 종교적 관용으로 인해 신앙이 느슨해진 교회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이 같은 이집트 사막의 수도사와 수도원 이야기는 아타나시우스의 《안토니의 생애 Vita Anthonii》와 요한 카시아누스Johannes Cassianus의 《제도집 Institutes,《담화집 Conferences》과 같은 글과 종교-문화적 접촉을 통해 서방교회의 수도원 발달을 크게 자극하였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갈리아Gaul와 팔레스타인, 로마가 지배한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수도생활의 이상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수도원 전통의 유산들이 축적되어 6세기《베네딕트의 규칙서》로 꽃피어났다. 실제로 《베네딕트의 규칙서》는 사막 교부들의 생애와 금언집Apothegmata,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암브로시우스Ambrosius of Milan,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 바실리우스Basilius of Cappadocia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특히 《베네딕트의 규칙서》보다 조금 앞서 쓰여진 《스승의 규칙서 Regula Magistri》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베네딕트는 자신의 규칙을 토대로 서구 수도원제도의 기초를 놓으려 하거나 자신만의 수도회를 창설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규칙은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융통성과 온건한 금욕적 수행, 그리고 균형 있는 생활규율 등으로 인해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후 8세기 후반과 9세기 초에 프랑크왕국의 샤를마뉴 대제Charlemagne는 베네딕트의 규칙을 자신의 카롤링거 제국에 속한 수도원의 공식적인 규범으로 채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기반 위에 10세기에는 베네딕트의 규칙을 사용하는 수도원들이 연합하여 베네딕트 수도회Benedictine Order를 창설하였다. 이후 《베네딕트의 규칙서》는 중세에 수도원이 타락하고 위기에 처했을 때는 물론 수많은 수도원개혁의 과정에서 신앙적 활력과 기준을 제공해주었다. 20세기에 들어서 베네딕트 수도원들은 영국성공회와 스웨덴 루터교 안에도 세워졌으며, 오늘날 전 세계에 약 3만 여명의 수사와 수녀가 베네딕트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고 있다.

 

베네딕트의 생애

베네딕트의 생애에 관해 현재 남아 있는 자료는 그의 사후 약 50년 경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1Gregorius the Great가 자신의《대화집Dialogues》제2권에 남겨둔 베네딕트의 생애Vita Benedicti가 전부이다. 물론 그레고리우스의 성인전聖人傳이 오늘날의 전기biography의 개념으로 베네딕트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제공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다만 “하나님의 사람” 베네딕트의 거룩한 성품과 영적인 특징을 묘사하고 이것을 통해 자신의 의도한 교훈을 교회와 이탈리아 사회에 전달하고자 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의 기록에 따르면 베네딕트는 480년 이탈리아 중부의 누르시아Nursia라는 지방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로마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당대 사회의 방탕함과 무의미한 생활을 목격한 그는 13세가 되던 493년에 로마를 떠나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처음 1년은 엔피데Enfide에서 다른 금욕주의자들과 같이, 이후에는 수비아코Subiaco의 산 위에 있는 동굴에서 약 3년 간 홀로 기도와 금욕훈련에 매진했다. 그는 악마의 유혹과 육체의 정욕을 이겨내기 위해 심지어 쐐기풀과 들장미 덤불 속에 들어가 그의 몸에 상처를 내기도 하였다.

그의 종교적 생활이 주변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그는 수비아코의 한 수도원장으로 부름을 받았다. 하지만 베네딕트의 엄격한 삶의 방식은 평이한 삶을 원하는 그곳 수도사들의 기대와 상충했고, 그는 다시 동굴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종교적인 거룩함에 대한 평판과 기적에 대한 소문 때문에 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수비아코에서 약 19년 동안 열두 개의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곧 지역 사제들의 질투를 불러 일으켰다. 이를 피해 베네딕트는 529년경에 로마와 나폴리Naples 사이에 있는 몬테카시노Monte Cassino로 옮겼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적용하여 이방신을 섬겨오던 이곳에 수도원을 세우고 수도사들을 지도하였다. 《베네딕트의 규칙서》가 기록된 것도 바로 이 시기이다. 그는 수도사들의 삶에만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가뭄이 극심할 때는 수도원의 식량을 풀어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등 수도원 밖의 사람들에게도 많은 자비를 베풀었다.

베네딕트의 죽음은 그의 기도하는 삶의 아름다운 절정을 보여준다. 그는 547 3 21일 몬테카시노에서 형제들의 부축을 받아 서서 기도하는 중에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져 있다. 그레고리우스 1세는 베네딕트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면서 그의 규칙서는 자신이 살았던 삶의 방법과 양식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생애와 대화[가르침]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사람은 베네딕트의 규칙을 통해 그의 삶의 방식과 훈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거룩한 사람[베네딕트]은 그가 가르친 것을 모두 삶으로 살아 내었기 때문이다(그레고리우스 1세의 《대화집》 제2권 제36)

 

《베네딕트의 규칙서》의 내용과 주요 주제

《베네딕트의 규칙서》는 규칙을 제정한 의의를 설명하는 서문과 수도원에서의 각종 제도와 생활규율 등을 설명하는 73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문에서 제7장까지는 《스승의 규칙서》와 아주 많이 일치하는 부분으로, 수도사의 종류(1)와 수도원장(2-3), 그리고 영적성장을 위한 훈련방법(4-7)을 개괄적으로 설명하며 글 전체의 도입부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에서는 이전 도입부의 정신을 강조하면서 보다 구체적인 규칙을 다루고 있다. 전체를 간략히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전례규칙과 자세(8-20), 직책과 역할(21, 31-32, 38, 47, 57, 62-66), 입회, 책벌, 파문(23-30, 42-46, 58-61), 노동과 각종 생활규칙(22, 33-37, 39-42, 48-56, 67-72), 끝맺는 말(73)로 이루어져 있다.

 

상호적인 사랑에서 솟아나는 순종

“들으라, 나의 아들아”라는 권고로 시작하는 서문은 이 글이 법률적 문서보다 구약성서의 지혜문학wisdom literature 전통잠언 1:8, 4:1 참조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베네딕트는 규칙서에 기록된 가르침들을 부모가 자녀에게 들려주는 사랑의 교훈에 비유한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이 가르침들을 주의 깊게 듣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즉각적으로 순종해야 한다서문 1.

이러한 지혜문학으로서의 글의 성격은 베네딕트회의 3대 서약 중의 하나인 ‘순종’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도와준다. 즉 베네딕트에게서 ‘순종’은 권위자의 일방적인 명령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오는 맹목적인 반응이 아니라, 영적인 부모와 자녀 사이의 상호적인 사랑과 신뢰에서 자라나는 미덕이다. 수직적인 관계에서 이렇게 형성된 순종은 나아가 수평적인 관계로 확장된다. 베네딕트는 그의 규칙서 끝부분에서 수도원장과 수도사 사이뿐만 아니라, 수도사들 사이에서도 상호순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71.1, 72.5. 이와 같이 순종은 겸손과 더불어《베네딕트의 규칙서》의 처음과 마지막을 꿰뚫으며 모든 규칙을 하나로 묶는다. 이런 점에서 베네딕트의 순종은 효를 모든 행위의 근본으로 삼는 동양의 유학儒學의 가르침과도 통한다. 예를 들면, 유학에서도 부모의 사랑에 대한 자녀의 사랑의 반응이 효라고 가르친다. 부모와 자녀의 수직적인 관계에서의 효가 형제자매와 친구와의 수평적인 관계로 확장된 것이 우정이다.

또한 순종은 발전시켜야 하는 미덕인 동시에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영성훈련의 효과적인 방법이다. ‘순종’을 뜻하는 라틴어 오보에디레oboedire는 어원적으로 ‘듣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곧 순종은 수도원장이나 다른 형제들의 말 속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훈련이다. 그래서 베네딕트는 수도사는 상급자의 명령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여기고 실행해야 하며, 상급자에게 보여준 순종은 곧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라고 말한다5.4,15. 이처럼 순종의 훈련을 통해서 수도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귀를 열어놓게 되며,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법을 배우게 된다.

 

겸손, 환대, 그리고 자비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

순종과 마찬가지로 겸손은 《베네딕트의 규칙서》의 기초를 이루는 미덕이며 동시에 영성훈련 방법이다. 7장에는 겸손의 열두 단계가 기록되어 있는데, 베네딕트는 겸손을 인간이 몸과 영혼, 즉 전인적으로 성장해가는 점진적인 과정으로 제시한다. 첫 번째 단계는 자신의 죄에 관한 욕망을 인식하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것을 극복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두 번째부터 일곱 번째 단계를 거치면서는 수도사는 자신의 비천함을 인식하고, 자신의 뜻을 버리며, 죄를 고백하고, 인내하는 가운데 순종하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여덟 번째부터 마지막 단계는 겸손을 마음으로뿐만 아니라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충실하게 나타내는 과정이다. 겸손의 단계를 모두 거치면 수도사는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는 하나님의 사랑에 도달하게 된다. 이 사랑은 또한 수도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을 연합시켜서,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것처럼 즐거이 준행하게 만든다. 이런 의미에서 겸손의 사다리는 수도사를 금욕적인 삶 또는 능동적 삶의 정점으로 인도한다. 이와 같은 하나님과의 사랑 깊은 연합이 곧 베네틱트가 추구한 수도생활의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겸손은 또한 베네딕트 영성의 또 다른 특징인 다른 이들에 대한 환대자비로 표현되어야 한다. 수도사들은 방문한 모든 손님들에게 머리를 숙이거나 몸을 완전히 엎드려 겸손히 영접하고 진심으로 대접해야 한다. 손님대접을 위해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담당자는 중요한 금욕훈련 중의 하나인 금식도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이 규칙서는 공동체의 병들거나 약한 이들에 대한 커다란 관심과 배려를 보이고 있다. 손님과 병든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와 같이 돌봄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환대를 통해 나그네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경배를 받으시기 때문이다36, 53. 이처럼 겸손과 환대, 그리고 자비는 금욕수행보다도 더 우선되는 미덕이자 훈련이며,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섬기고 그분과 연합하는 삶의 길이다.

 

삶의 균형과 리듬

베네딕트 영성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균형과 리듬이다. 먼저 베네딕트는 하루 중 기도와 노동이, 그리고 공동체의 예배와 개인의 영성생활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도록 가르친다. 물론 우선순위는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성무일도officium divinum 또는 하나님의 일Opus Dei에 있지만, 육체적인 노동과 개인적인 독서lectio divina 역시 매일의 수도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베네딕트는 제8장부터 제20장에 걸쳐 매일 혹은 매주 드릴 성무일도의 시간과 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기도와 예배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외적인 형식이 아니라 이집트 사막의 수도사들이 추구한 “마음의 순수함과 참회의 눈물”이다20.3. 기도는 짧고 단순해야 하며20.4, 찬송은 마음과 목소리가 조화를 이루어져야 한다19.7. 그리고 하나님이 어디에나 임재하시며, 모든 곳에서 주님의 눈이 감찰하고 계시기 때문에19.1 성무일도를 비롯한 모든 일은 매 순간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는 가운데서 행해져야 한다.

그 외에도 베네딕트는 사순절을 지키는 방법49과 취침과 식사 등 일상생활에 대한 지침22, 41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전례규칙과 일상생활의 규칙은 함께 어우러져 짧게는 매일의 생활, 길게는 연간 생활의 리듬을 형성한다. 즉 《베네딕트의 규칙서》에 심겨져 있는 수도원의 이상은 단조로운 매일의 의무들로 채워져 있는 삶이 아니라, 균형 잡힌 일상생활의 반복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리듬 있는 삶이다. 그런데 이러한 반복은 발전 없이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집”을 향해 오르는 영적인 여정이며, 공동체가 사랑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규칙이라는 리듬에 맞춰 내딛는 공동의 발걸음이다72.4, 73.8.

 

라틴어 원문들

《베네딕트의 규칙서》는 그의 막강한 영향력을 보여주듯 많은 사본들이 발견된다. 현재 삼 백여 개 이상의 다양한 라틴어 사본들이 남아 있는데, 전승 과정에서 곳곳에 가필된 부분이 많아 원문을 확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규칙서》본문에 대한 비평적 연구는 19세기 후반에 들어서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고대 라틴어 사본들은 문서가 시작하는 첫 단어에 따라 아우스쿨타ausculta옵스쿨타obsculta,두 그룹으로 구분되어 명명되어왔다. 중세시대에는 이 두 그룹의 사본을 적절히 조합하여 주석을 단 공인본문textus receptus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규칙서》각 장의 구분은 모든 사본에 나타나며, 절의 구분은 17세기부터 시작되어 1947년에 안셀모 렌티니Anselmo Lentini에 의해 본격적으로 활용되었다. KIATS영성 선집도 이 기준을 따랐다. 중세 기독교 문학의 일반적인 특징을 반영하듯, 규칙서에는 약 300여 개 이상의 성서본문이 직간접적으로 인용되었다. 물론 베네딕트는 성경본문을 문자 그대로 인용하거나 출처를 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도사들이 보다 쉽게 낭독할 수 있도록 운율을 살리기도 했다.  KIATS영성 선집에서는 독자들에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경우에만 성경인용의 출처를 담았다. 우리는 이 《규칙서》의 한글 번역과 연구를 위해 지금까지 나온 많은 라틴어와 영어 번역을 참조했다. 동시에 믿을만한 비평본인 아달베르트(Adalbert de Vogüé)가 편집한 La Règle de Saint Benoît: Introduction, Traduction, et Notes par Adalbert de Vogüé: Texte Établi et Preésenté par Jean Neufville (Paris, Éditions du Cerf, 1972)과 프라이(Timothy Fry)가 편집한 RB1980: The Rule of St. Benedict in Latin and English with Notes (Collegeville, Minnesota: Liturgical Press, 1981)의 도움을 받았다.

 

주요 참고문헌

1차 문헌

Fry, Timothy . RB1980: The Rule of St. Benedict in Latin and English with Notes. Collegeville, Minnesota: Liturgical Press, 1981.

Gregory the Great. The Life of Saint Benedict. Hilary Costello, Eoin de Bhaldraithe. Petersham, Massachusetts: Bedes Publications, 1993.

Lentini, Anselmo. S. Benedetto, La regola: testo, versione e comment. 2. Montecassino: Pisani, 1980.

McCann, Justin. The Rule of Saint Benedict in Latin and English. London: Burns and Oates, 1952.

Penco, Gregorio. S. Benedicti Regula: introduzione, testo, apparati, traduzione e commento. Florence: La Nuova Italia, 1958.

de Vogüé, Adalbert . La Règle de Saint Benoît: Introduction, Traduction, et Notes par Adalbert de Vogüé: Texte Établi et Preésenté par Jean Neufville. Paris, Éditions du Cerf, 1972.

 

 

2차 문헌

강치원. 『베네딕트 규칙서』에 나타난 렉시오 디비나. 《선교와 신학》제19 (2007): 187-220.

김봉수. 『베네딕트 규칙서』에 나타난 수도원이념에 관한 연구. 《總神大論叢》제16 (1997): 249-290.

Casey, Michael. Strangers to the City: Reflections on the Beliefs and Values of the Rule of St. Benedict. Brewster, Massachusetts: Paraclete Press, 2005.

Ladrigan-Whelpley, Theresa. “Benedict of Nursia (c.480–c.547), Rule.” Christian Spirituality: The Classics. Arthur Holder . New York: Routledge, 2009: 62–73.

Merton, Thomas. The Rule of Saint Benedict: Initiation into the Monastic Tradition 4. Collegeville, Minnesota: Liturgical Press, 2009.

Stewart, Columba. Prayer and Community: The Benedictine Tradition. Maryknoll, New York: Orbis Books, 1998.

Swan, Laura. The Benedictine Tradition: Spirituality in History. Collegeville, Minnesota: Liturgical Press, 2007.

de Waal, Esther. A Life Giving Way: A Commentary on the Rule of St. Benedict. Collegeville, Minnesota: Liturgical Press, 1995.

 


posted by 바람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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