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위에서 약혼하다 (아빌라의 테레사)

한 줄 묵상 2014.11.09 07:08

여기(6궁방)의 영혼은 다른 신랑은 그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으려는 굳은 결심이 벌써 딱 서 있습니다. 그렇다고 신랑은 약혼을 서두르는 그 영혼의 열렬한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시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가 약혼을 더더욱 갈망하게 하시고, 이 최대의 행복을 얻기 위해 약간의 희생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 아, 이 영혼이 제 칠 궁방(하나님과의 연합)에 들기에 앞서 안팎으로 치러야 할 시련은 얼마나 쓰라린 것이겠습니가?

 -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  c. 1515-1582), 《영혼의 성(The Interior Castle), 6궁방, 1장. 1절.


16세기 스페인의 신비가 아빌라의 테레사는 영적 여정을 7단계의 궁방(mansion)으로 묘사한다. 그녀에 의하면 마지막 단계인 '하나님과의 연합' 앞에 깊은 정화의 시련이 놓여져 있다. 그리스도와의 영적 결혼 이전에 영혼이[우리가] 신부됨에 적합치 않은 모든 부분들이 정화를 위한 사랑의 불에 타게 된다. 그것은 어떤 죄악된 행위나 습관의 차원을 넘어서 죄된 자아 자체, 자기 중심적 삶 자체에 대한 정화의 과정이다. 테레사 뿐 아니라 십자가의 성 요한(John of the Cross)이 말했던 '영혼의 어두운 밤'(the dark night of the soul)이다. 거기에는 세상의 어떤 위로도 만족도 없으며, 하나님도 자신을 완전히 숨겨버리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테레사는 이 영혼의 밤이 주님과의 영적 결혼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영혼을 낭만적 사랑 놀이가 아닌, 첫사랑의 타오름이 아닌, '사랑의 어두운 밤'으로 인도하셔서 그 어떤 위로나 기쁨 없이도 주님의 뜻에 온전히 하나되도록 이끄신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의 절규에서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의 고백으로 나아가게 하신다. 두렵고 무서운 혼란과 어둠의 밤, 차원이 다른 고통의 밤 한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신다. 주님과의 영적 약혼식은 이렇게 십자가 위에서 치러진다. 작은소리찾기 박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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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 밤 - 십자가의 성 요한


    어둔 밤 

 

1. 어느 어두운 밤에

사랑에 불타 열망하며

좋아라, 순전한 은혜여

아무도 모르게 나왔다

내 집은 이미 고요해지고


2.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옷을 바꿔입고, 비밀계단을 오른다
좋아라, 순전한 은혜여

캄캄한 속에 꼭꼭 숨어

내 집은 이미 고요해지고


3. 행복한 밤에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은밀한 곳

빛도 없이 길잡이도 없이

나도 아무것도 보지 못 했다

내 마음 속에 타오르는 불빛밖엔


4. 그 빛이 나를

정오의 빛보다 더욱 확실히 인도한다

내가 가장 잘 아는

그분께서 날 기다리시는 그곳으로

아무도 보이지 않는 그곳으로


5. 아, 나를 인도하는 밤이여

새벽보다 더 사랑스러운 밤이여

사랑하는 이와 사랑받는 자를

한몸으로 묶어주는 밤이여

사랑하는 이는 사랑받는 자를 변화시키고


6. 내 가슴의 꽃밭

오직 그분만을 지켜온 그곳

거기서 당신이 잠드셨을 때

나는 당신을 어루만지고

잣나무의 바람이 부채가 되고


7. 작은 탑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나는 그분의 머리채를 만져드릴 때

부드러운 당신의 손으로

내 목에 상처를 내시니

나의 모든 감각은 끊어졌다


8. 망각 속에 나 자신을 남겨두고

사랑하는 그분께 내 얼굴 기대이니

모든 것이 멈추고, 나도 사라진다

백합화 떨기 속에

내 시름 버려두고 돌아선다


십자가의 성 요한 지음

권혁일 옮김

왼편의 작품은 16세기 스페인에 살았던 신비가 십자가의 성 요한(John of the Cross, Juan de la Cruze, 1542. 6. 24.- 1591. 12. 14.)의 "어둔 밤(The Dark Night)"라는 시이다.

이것은 연인과의 사랑을 노래한 문학작품이 아니라 그의 하나님 체험을 시로 표현한 것이다. 요한은 그의 수도원 개혁에 반감을 품고 있던 이들에 의해 납치 되어 어두운 감방에서 약 아홉달 동안 갇혀 지냈는데, 이 때 그가 경험한 고통과 은혜를 "어둔 밤"과 "영적 찬송 (Spiritual Canticle)"이라는 시에 담아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 "어둔 밤"을 해설한 주석서가 바로 <갈멜의 산길>과 <어둔 밤>이라는 영성 고전 작품들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긴 두 권의 책들보다 이 시 한편이 '어둔 밤'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어둔 밤'은 고통스럽지만 우리를 모든 영적, 육적 욕망으로부터 정화하는 과정을 상징한다. 우리가 빛 되신 하나님과의 연합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둔 밤을 주시고,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 안의 다른 욕망들이 어두워지고, 오직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더욱 불타게 하신다. 우리의 삶이 어두워 한 치 앞도 바라볼 수 없고 삶의 모든 즐거움이 사라졌을 때 우리가 절망하지 않고 소망을 품으며 기뻐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바람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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