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험하다

케네스 리치의 하나님 체험[각주:1]

Experiencing God: Theology as Spirituality

케네스 리치 지음 · 홍병룡 옮김 | 청림 | 2011년


영성 지도(spiritual direction) 사역에 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케네스 리치(Kenneth Leach)의 《영혼의 친구》(Soul Friend)를 꼭 읽어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케네스 리치라는 이름은 아마도 영혼의 친구》라는 책을 통해 가장 많이 알려졌을 것이다. 리치는 영성 지도에서 중요한 저작들을 남겼는데, 이 책 《하나님 체험》(Experiencing God)은 영성 지도와 관련된 삼부작으로 이루어진 시리즈 중 영혼의 친구》와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True Prayer)에 이은 시리즈의 마지막이자 세 번째 책이다. 이 삼부작을 잘 들여다보면 영성 지도에서 중요한 주제들을 잘 다루어주고 있다. 영혼의 친구》는 영성 지도의 정의, 영성 지도의 역사, 영성 지도와 기도, 영성 지도와 심리학 등의 주제들을 통해 영성 지도를 소개하는 개론서 역할을 해주고 있다.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영성 지도에 참여하는 영성 지도자나 피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기도라는 영성 훈련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체험》은 역시 영성 지도에서 나누는 대화의 주요한 소재가 되는 하나님 경험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리치는 이 세 권의 책을 통해 영성 지도라는 사역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 체험을 접근하면 이 책을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리치는 왜 영성 지도에 그토록 큰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리치는 1939년에 영국에서 출생하였고, 1965년에 서품을 받은 영국 성공회의 신부이다. 성공회 신부로서 리치는 다양한 목회활동에 참여했겠지만, 그의 이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센터포인트(Centrepoint) 사역이다. 그는 센터포인트라는 자선단체를 1969년에 창립했는데, 이 단체는 16-25세의 청소년과 청년 노숙인들에게 숙소를 제공해주는 사역을 해왔다. 센터포인트의 이전 대표 후원자가 다이애나 왕비, 현재 대표 후원자가 그녀의 아들인 윌리엄 왕자라는 사실은 이 단체가 그 사회에서 얼마나 공신력 있는 단체가 되었는가를 보여주며, 동시에 리치가 영국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끼쳤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영성지도와 관련해서 중요한 사실은 센터포인트의 사역 가운데 하나가 청소년들을 위한 멘토링이라는 점이다. 센터포인트는 신뢰할 수 있는 멘토들을 일대일로 청소년들과 연결시켜 주고, 1년 동안 서로 만남을 갖고 도움을 주도록 해왔다. 멘토링과 영성 지도는 구분되지만 비슷한 사역이므로, 청소년들을 위한 멘토링이 이 단체에서 중심적인 사역이었음을 볼 때, 이것은 리치가 영성 지도라는 사역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 뿐만 아니라, 영성 지도의 방향과 성격을 이해하고 규정하는데 틀림없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러면, 저자와 영성지도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로 하고, 하나님 체험이라는 책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제목. 이 책은 “하나님 체험”을 제목으로 뽑았는데, 미국 시카고 대학의 유명한 기독교영성학(Christian Spirituality) 학자인 버나드 맥긴(Bernard McGinn)이나, 지티유(Graduate Theological Union)의 샌드라 쉬나이더스(Sandra Schneiders)가 주장하는 것처럼, 기독교 영성이라는 학문에서 “하나님 체험”은 핵심적인 주제이다. 영성이라는 학문은 체험 (또는 경험)을 주로 다루기 때문이다. 영성은 체험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영성은 기독교인이 체험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기독교 영성학을 세 분야로 나눈다면, 성경적 영성(biblical spirituality), 교회사적 영성(historical spirituality), 그리고 목회적 영성(pastoral spirituality)이다. 성경적 영성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나오는 하나님 체험을 다룬다. 교회사적 영성은 교회사의 자료에 나오는 하나님 체험을 다룬다. 그리고, 목회적 영성은 현대 기독교인의 하나님 체험을 다룬다. 이처럼 “하나님 체험”은 기독교 영성의 핵심 주제이자, 영성지도 대화의 핵심 주제가 된다.

    그런데, 저자는 부제를 “Theology as Spirituality” (영성으로서의 신학)라고 했다. 이 표현은 이 책의 방향을 짐작하게 해준다. 즉, 저자가 “머리말”에서도 밝힌 것처럼, 이 책은 조직신학적인 관점이 아니라 영성적 관점에서 씌어진 것이며, 따라서 신학적 논쟁을 피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준다. 동시에, 저자가 생각하는 신학이란 변화의 체험이 일어나는 신학이다. 리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참된 신학이란 참 하나님과의 만남 안에서 또 만남을 통해 인간이 변화되고 세상이 바뀌는 것을 다루는 변혁의 신학이기 때문이다.” 신학과 영성의 관계에 대한 토론 또는 논쟁은 교회사에서 무척 오래된 주제이다. 쟝 르클레르크(Jean Leclercq, 1911~1993)라는 중세사에 정통한 영성학자는 대학의 출현이 영성과 신학의 분리를 낳았다고 주장했는데, 리치는 영성과 신학을 하나님 체험 안에서 다시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신학과 영성의 통합이라는 주제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많은 신학자나 목회자의 고민과 맥을 함께 한다. 신학교 교육이 좋은 목회자를 양성하는데 있어서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하면서, 신학교마다 영성훈련의 중요성이 다시 대두되고 있는 것은 이 고민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신학과 영성의 통합이라는 리치의 화두는 오늘날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매우 적합한 주제이다.

    자, 이제 책의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리치는 1장 “하나님께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서 하나님의 안부를 묻는다. 니체나 마르크스, 프로이드가 주장하듯이, 현대 사회에서 하나님은 정말 죽은 것인가? 아니면, 마르틴 부버나 자크 엘룰이 주장하듯이, 하나님에 대해 그동안 쓰였던 개념적 언어가 죽은 것인가? 저자는 나중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다. 하나님은 죽은 것이 아니라, 침묵하고 계신다. 이제는 참된 영성을 회복하기 위해 잘못된 하나님 이미지에 기대왔던 거짓평안에 안주하지 말고, 창조적 의심을 바탕으로 무신론 너머에 현존하시는 하나님의 실재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촉구한다. 여기에서 리치는 무신론자들의 의심마저도 창조적 의심을 가능케하는 디딤돌로 겸손하게 사용하고 있다. 리치가 현 상황을 “종교적인 준거 틀, 성스러움에 대한 의식, 심지어 하나님의 관념까지” 모두 허물어졌다고 묘사하는 것은 다분히 리치가 이 책을 쓰던 20세기 중반 유럽의 상황에 바탕을 둔 인식이다. 그러나, 이 상황인식은 현재 한국 사회에도 어느 정도 적용된다.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비치고 있는 한국 교회의 모습은 진정 하나님의 현존을 증명해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한편으로 돈과 권력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것처럼 보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예언자적 목소리를 상실하고 영적분별력을 잃어버린 채 내면적 체험에만 골몰하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 리치의 조언을 우리에게 적용해보자면, 이럴 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시고 한국교회를 사랑하신다는 급급한 변명이 아니라, 우리가 체험한다고 믿고 있는 하나님이 참된 하나님인가, 우리의 믿음과 영성생활의 토대가 참된 것인가를 의심해보는 것이다.

    하나님 체험의 2장부터 13장까지 나오는 내용은 우리의 의심이 창조적 의심이 되고, 우리의 믿음을 새로운 토대 위에 세우는데 있어서 매우 도움이 되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경험들을 잘 정리해놓고 있다. 성경과 교회사를 통틀어서 신앙의 선배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모습을 열두 가지 스펙트럼으로 묘사하고 있다. 먼저, 2장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구약을 통해 만나는 하나님으로서 사막의 하나님, 거룩한 하나님, 그리고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3장 “예수의 하나님”은 복음서를 통해, 인자, 하나님나라,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라는 주제로 예수님을 살펴 본다. 4장 “하나님, 그리스도, 교회”는 복음서, 사도행전, 그리고 서신서를 바탕으로, 인류를 하나로 만드시는 하나님, 구원과 화해, 빛과 사랑의 하나님, 영이신 하나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그리고 종말론을 다룬다. 5장 “사막의 하나님”은 사막 교부들과 수도원 운동을 중심으로 고독과 관상, 단순함, 기다림, 투쟁의 영성을 강조한다. 6장 “구름과 어둠의 하나님”은 동방과 서방의 전통을 섭렵하며 하나님에 대한 “무지를 통한 앎”의 체험, 즉 부정적(apophatic) 체험을 설명해준다. 7장 “물과 불의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과의 만남을 다루는데, 특히 오순절 전통의 “성령세례”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신비주의 전통의 마음을 거룩으로 이끄는 사랑의 불에 대해 설명한다. 8장 “육신을 입은 하나님”은 성육신, 몸, 물질, 성(sexuality), 그리고 신화(deification)라는 주제를 다룬다. 9장 “성찬의 하나님”은 성찬식, 제사, 하나님의 임재, 그리고 전례의 해방적 성격 등에 대해 설명한다. 10장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은 하나님의 고통, 대속인가 화해인가, 정치적 행위로서의 십자가, 실천신학으로서의 십자가 신학, 그리고 제자도 등을 다룬다. 11장 “심연의 하나님”은 내면으로의 여정, 신비주의, 영적 여정의 삼중 단계, 영적지도, 그리고 신비주의와 정치 등에 대해 설명한다. 12장 “어머니 하나님”에서는 하나님의 여성성을 경험한 영성가들, 마리아론의 문제, 그리고 페미니즘 신학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13장 “공의의 하나님”은 개인주의를 배격하고 사회정의를 하나님의 사회적 성품에 근거한 것으로 보며, 평화 및 가난이라는 주제를 중요하게 다룬다.

    이상의 열두 가지 하나님 체험은 저자가 인위적으로 나눈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분류라고는 할 수 없다. 내용에 있어서 “사막” 그리고 “어둠”이라는 주제의 경우처럼 겹치는 부분도 있다. 또, 독자의 경험과 지식에 따라서 저자와 달리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독자들 가운데에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하나님 이미지가 성경과 교회사의 자료를 통해 제시되는 것에 신선한 도전을 받을 수도 있다. 필자가 보기에 리치의 열두 가지 하나님 체험 분류는 기독교 영성 자료에 대한 상당한 지식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저자의 겸손한 고백에도 불구하고 평신도들의 영성생활에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목회자와 신학자들의 연구를 위해서 기독교 영성학적으로도 무척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체험에 대한 필자의 전체적인 소감 몇 가지와 함께 북리뷰를 마무리 하려고 한다.

    첫째, 다수의 영성가들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 영성사에 대한 지식이 없는 독자들은 현기증을 느낄 수도 있다. 각각의 영성가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는 존스, 와인라이트, 아놀드가 편집한 《기독교 영성학》(The Study of Spirituality)과 버나드 맥긴, 질 라이트, 루이스 두프레 등이 각각 편집한 《기독교 영성 1, 2, 3》(Christian Spirituality 1, 2, 3)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이 책에는 전적타락, 마리아론, 화체설 등과 같은 주제에 대한 저자의 견해에 독자들이 신학적으로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내용들이 다소 있다. 그 이유는 이 글의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저자가 성공회 신부이기 때문에 그의 신학적 입장이 반영된 결과이다. 그러나, 작은 몇 부분에서 신학적 논쟁에 사로잡히지 말고 이 책의 주제인 하나님 체험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유익을 얻기 바란다.

    셋째, 다른 책들도 그렇지만, 영성관련 서적은 특히 번역이 중요하다. 체험을 표현하는 표현들이 번역에 따라서 더 이해할 수 없게 되거나 전혀 다르게 오해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의 번역은 정말 훌륭하다. 진심으로 역자의 수고와 열정에 감사한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마지막으로, 책이 상당히 두꺼운 편이라서 지레 포기할 독자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을 펼치면 으레 갖기 마련인 독서를 빨리 완수하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읽어나가면, 영성가들의 글에서 인용한 부분들이 마치 맑은 우물에서 직접 길어온 샘물들과 같아서 그로 인해 하나님을 새롭게 체험하고 새 힘이 솟아나는 경험들이 일어날 것이다. / 이강학

  1. * 이글은 〈목회와신학〉 2012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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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리처드 로어의 《불멸의 다이아몬드》

불멸의 다이아몬드 

우리의 진짜 자기를 찾아서 

Immortal Diamond: The Search for Our True Self 

리처드 로어 지음 · 김준우 옮김 | 한국기독교연구소 | 2015년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마음에 갇혀 끙끙거리다가 어느 순간 하고 벗어날 때, 그 사람이 참 아름다워 보인다. 마치 무덤 같은 고치에서 한 마리의 나비가 태어나는 것 같다고나 할까.

    이렇게 자기를 하고 벗어나게 해 주는 방법이 있다. 스승이신 장신대 유해룡 교수께서 신학생들에게 늘 이르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자기 초월로 이끄는 세 가지가 있다. 인격적 관계를 기반으로 한 기도, 독서, 이웃 사랑이다.” 이 셋은 자기를 온전히 개방하지 않고서는 그 본질을 수행하기 불가능한 일이다. 낯선 세계, 낯선 생각, 낯선 이에게 자기를 '탁' 개방하고 내어주는 것. 그리고 종국에는 그 낯섬과 하나가 되는 것. 사람이 아름다워지는 때, 이를 두고 영적 수련이라고 하며, 이 셋은 기본이다.  그리고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최근에 좋은 책을 한 권 추천받았다. 이 책이 얼마나 맘에 드는지! 추천해주신 분, 이 책을 선별하여 번역한 번역자와 출판사, 출판비를 후원하신 분까지 책을 만지고 읽을 때마다 마음에 담고 기도를 드릴지경이다. 리처드 로어(Richard Rohr)의 《불멸의 다이아몬드》, 요즘 푹 빠져있는 참 좋은 벗이다.

    이 책은 인간의 궁극적 질문,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성서적이고 신학적인 답을 진짜 자기로 정의한다. 저자는 진짜 자기를 불멸의 다이아몬드라고 부르는데, 마태복음 13장의 밭에 감추인 보물에 대한 유비(analogy)이다. , 16세기의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가 영적 생활에 관해 글을 쓰기 위해 고심하던 어느날, 기도 중에 문득 떠올랐던 맑디맑은 수정궁의 상징과도 유사하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진짜와, 이 진짜를 대체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가짜 자기와, 가짜 자기가 구축한 세상, 그리고 이 둘의 체제(system)를 놀랍게 통찰하고 있다. 오랜 시간에 걸친 개인적 수행과 폭넓은 영적 지도의 경험 없이는, 쓸데없이 사서 고생하고 있는 신자들과 본래의 기능을 상실해 가는 종교에 대한 깊은 애정 없이는, 결코 쓸 수 없는 말들이 수놓아져 있다.

    문장 사이를 서둘러 걸어가 마지막 끝에 빨리 도달할 수 없다. 머물고 맴돌고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게 한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쁘기도 하고 속이 시원하기도하다. 무엇보다 이런 책이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나와 주길 기다려왔다. 내 스스로도 너무 사서 고생을 많이 했다. 다른 이들에겐 시간을 단축시켜 주고 싶다.


기도하며 읽는 책

    이 책은 기도하며 읽어 가면 좋겠다. ‘센터링 침묵기도’(향심기도)로 시작한다.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은 잠시 머물며 글을 음미하기도 한다. 책 내용 중에 기도하기 좋은 말씀과 상징들은 좀 오랜 시간 묵상으로 기도한다. 예를 들어, ‘밭에 묻혀있는 보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을 읽고 나면, 내 마음 밭을 바라보고 그 밭에 감추어진 하나님을 찾아 주목해 보는 기도를 각자 하고 싶은 방법으로 기도한다. 기도 자료가 더 필요하면 부록을 사용하면 된다.

    나는 지금 교회 기도 모임에서 이 책을 사용하고 있다. 자매님들과 함께 천천히 읽어가면서, 어려운 부분은 보충 설명을 해 주고, 함께 기도한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한국 개신교의 보수적인 분위기를 고려할 때, 이런 책을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교회가 몇이나 되겠는가. 아빌라의 테레사가 살던 시절, 1559년 교회에서 금서목록이 발표되었을 때, 테레사는 자신이 즐겨 읽던 대다수의 책이 이 목록에 들어 있는 것을 알고는 깊은 실의에 빠졌다.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때 테레사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살아 있는 책을 주리라.”는 주님의 큰 위로를 받았다(《천주자비의 글》, 26.

    책 읽기 좋은 계절이다.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좋은 책들을 가까이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혹시 아는가, 어쩌다가 진실로 "살아 있는 책" 자체이신 주님을 힐긋이라도 읽게 되는 날이 바로 오늘이 될런지! / 해'맑은우리  주선영

 


 

posted by 해'맑은우리

땅 속에서 인내하며 기다리는 씨앗 (C. S. 루이스)

한 줄 묵상 2014.03.07 03:00


"물론 우리는 고난이 올 때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배워 알고 있습니다. 미약하나마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으로 여기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바치라고요. 하지만 그렇게 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요." (1956년 4월 26일자)


"늘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가난처럼 모든 좋지 않은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자발적인 가난이나 참회고행 못지 않은 영적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지요."(1956년 8월 3일) 


"부인께서도 분명 아시겠지만 (고통이나 재정적 어려움 등에 직면했을 때) 삶을 하루하루 시간시간 살아 내는 것이 비결입니다. 과거나 미래를 현재에 끌어들이지 않고서 말입니다. 마치 최전선의 군인들처럼 '폭격도 그친 상태고, 비도 내리지 않고, 식량도 도착했으니 마음껏 즐기자'. 이런 자세 말이죠. 사실 우리 주님도 말씀하셨지요. '그날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으로 족하다'고요."(1957년 10월 20일자)


"[스스로를] 땅속에서 인내하며 기다리는 씨앗이라고 …… 생각해 보세요. 정원사가 정한 때에 꽃으로 피어나기를, 진짜 세상으로 올라가기를, 진짜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씨앗 말입니다. 저는 현세의 삶은 그 세상에서 돌이켜보면 비몽사몽처럼 보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꿈나라에서 사는 것이지요. 하지만 새벽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쓰기 시작한 순간보다 지금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1963년 6월 28일자) 


- C. S. 루이스, <루이스가 메리에게>(서울: 홍성사, 2009)


사순절(Lent)이다. 

'고난' '훈련' '참회' 등이 주제인 절기다. 

어찌보면, 우리 인생 자체가 사순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늘 하루치의 고난이 견딜만하다. 

오늘의 fast 뒤에는 feast가 있을 것이기에. 


그래, 믿음으로 살자. 

하루하루 살자. 


하루하루

맡겨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하루하루

베풀어주시는 일용할 행복에 감사드리며, 

하루하루

허락하시는 고난을 믿음으로 견디며


그렇게 하루하루


이 '40일' 동안

하루하루


/ 이종태


posted by 산처럼

바른 목적은 바른 수단을 통해서만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한 줄 묵상 2012.10.10 06:09
  • 효과적 수단이라도 잘못된 것이면 취하지 않는 것--이 또한 '가난의 영성'이군요.

    BlogIcon 산처럼 2012.10.14 02:40 신고

"어떤 방식으로든지 간에 당신이 볼 때에 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의 발자국과 가난을 따르는 데에 최선의 길이라고 여겨지는 일을 행하세요. 내가 순종한 것처럼 당신도 이것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입니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Francis of Assisi, c. 1182-1226), "A Letter to Brother Leo," 3.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한다'는 말이 최근 한국 사회에서 회자되었다. 그러나 이와는 다르게 프란치스코는 리오 수사에게 바른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그 수단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행하라고 권면한다. 왜냐하면 그 바른 목적이란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그리고 '그분의 발자국과 가난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짓'과 '부정의(injustice)'와 '폭력' 같은 잘못된 수단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주님의 발자국과 가난'을 따른다면 절대 자신의 욕망을 섬기며 다른 이들의 생명과 권리와 재산을 빼앗지 못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의 발자국을 따르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면 결코 잘못된 수단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이 구절은 프란치스코가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그가 어떻게 살려고 노력했는지를 핵심적으로 요약하고 있다. 아씨시의 가난한 성자의 단순한 가르침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믿음과 '바른 목적은 바른 수단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는 신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오늘 우리가 하려는 일이 정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의 발자국과 가난을 따르는 최선의 길인지 질문해보자. / 바람연필

posted by 바람연필

너의 상태를 알게 해 줄 단 한 사람 (조지 폭스)

한 줄 묵상 2012.10.04 03:15
  • 목회자의 입장에서 스스로를 성찰하게 하는 글입니다. 그런데 평신도의 입장에서 우리 영혼의 상태를 말해 줄 "단 하나의 존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라는 말은 '목회자, 또는 영성지도자가 과연 필요한가?'라는 극단적인 물음을 가지게 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이것이 퀘이커 영성의 본질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다음 기회에 이에 대해서 좀더 설명과 토론이 필요할 듯합니다.

    그리고 <신학도>는 신학생의 고뇌가 잘 느껴지는 풋풋한 시입니다. 시에서 화자가 갈 길을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길을 인도하는 분을 느끼지 못하는 일종의 '어둔 밤'과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한 어둔 밤 속에서 진정 길을 인도하는 분을 만난 신학생, 목회자는 어둔 밤 속에 있는 성도들을 도울 수 있는 경험있는 지도자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BlogIcon 바람연필 2012.10.04 04:58 신고
  • 학부 때에 영문학과나 몇몇 일반학과 교수님들 중심으로 목회자 없는 교회,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없는 교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편 새로우면서도, 이단이 아닐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조지 폭스나 퀘이커 교도들이 던져주는 본질적인 질문은 너무 익숙해지고, 능력없이, 분별력없이 성도들 위에 군림해 버린 권위에 대한 저항이었겠지요. 더군다나 권위주의적 혹은 가부장제적 질서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들의 영성은 편안함보다는 불편함이나 두려움을 주기도 합니다. 저도 계속 공부해보며 한국사회에서의 이들의 영성적인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급한 글 잘 다듬어주셔서 감사합니다.

    BlogIcon 소리벼리 2012.10.04 10:10 신고

성직자들이나 그들과 구분된 경험적인 설교가들에게조차 가졌던 모든 희망이 사라져버렸다. 이제 외부적으로 나를 도와주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해 줄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그 때, 바로 그 때너의 상태를 말해 줄 단 하나의 존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 음성을 들었을 때, 내 마음은 기쁨으로 요동쳤다.

 

조지 폭스 (George Fox 1624-1691), The Journal, 1647의 일기 중 11번째 글 중에서

 



목사로서 살아가기가 적지않게 부끄럽고 부담되는 시절이다. 끊이지 않고 언론에 오르내리는 기독교, 특히 목사들의 잘못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면 낯이 뜨거워질 때가 많다. 조지 폭스의 시대 때도 많은 사람들이 성직자들을 불신하였다. 그래서 평신도 설교가들이 나왔고, 또한  다른 이들의 말보다 체험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폭스는 이와 같이 성직자들이 죄와 불신앙에 갇혀 사람들에게 아무런 영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던 시절,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은혜 가운데서믿음과 능력을 밝히시는 분임을 경험하였다.


목사는 또는 신학도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서 그분 안에서 고통을 벗어 버리고 참된 기쁨을 누리도록 돕는 자이다. 그런데 내가 누군가의 영적인 고통에 둔감하여 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목사로서의 나의 정체성과 삶의 목적들이 과연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다결국은 다시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겸손히 나아가 먼저 나의 영혼을 살펴보고, 다시 사람들을 섬길 수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예전에 썼던 글들을 정리하다가 신학교 시절에 썼던 시 한 편을 다시 읽게 되었다. 그 때의 열정과 순수함이 십 년이 훨씬 지난 오늘 내 마음에 다시금 돌맹이 하나를 던진다.

 

 

신학도

 

인생을 내어놓고 그 길을 가리라

맘 먹은 지도 수백 일.

내 하나 인생이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냥 사명을 쫓으리라 했지만

하루 하루 살아가는 삶이 버겁다.

 

뒤를 보지 말고 그저 나를 따르라는

그 말씀이 이젠 하루하루

나를 체념케하는 그런 몸부림...

 

하루에 하나씩 썩어져가는 가슴이야

시간을 기울여가며 견딘다지만

갈 길 몰라 멈추어 있는

발걸음은 어떡해야 떼어버릴 수 있을까.

 

옛날이야 썩은 가슴하고 한 달란트 상금하고

바꾸는 듯한

멋쩍음이라도 있었건만

이젠 아무리 가슴을 썩혀봐야

남는 건

또 하루의 한숨...

 

이게 정금인가, 이게 그냥 연단인가...

그냥 광야 가운데서 죽어 없어지는

숱한 먼지 중의 하나가 될까

빈 가슴은 애타건만

멀리

내 길을 인도하는 분은

인기척조차 없다.

 

/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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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한 성직자 (조지 폭스)

한 줄 묵상 2012.09.20 03:39
  • 그의 <절망>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건 그의 <갈망>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기분전환 따위로 달래질 수 없는 깊은 갈망을...

    BlogIcon 산처럼 2012.09.21 01:57 신고
  • 영혼을 대하는 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말씀이네요. 저도 타인의 '절망과 시험의 근원' 가운데 함께 머무를 수 있기를 그렇게 할 용기와 힘을 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BlogIcon 작은소리찾기 2012.09.22 14:26 신고

"나는 또 다른 성직자를 찾아가 내게 일어나는 절망과 시험의 근원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그는 내 상태에 대해 무지했고 나에게 담배와 시편을 노래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담배는 내가 사랑하지 않는 것이었고 또한 난 노래를 할 줄 몰랐다."

 

조지 폭스 (George Fox, 1624-1691), The Journal, 1646년의 글




 

청년이 된 폭스는 그의 올곧고 예민한 성격으로 많은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고 깊은 절망감과 시험을 경험하게 된다. 그의 일기에 폭스는 이렇게 그의 심정을 적어 놓았다.


"내 몸은 그야말로 슬픔과 고통과 괴로움으로 메말라 있었고, 그러한 고통들이 너무나 커서 차라리 태어나지 말거나 장님으로 태어나 사악하고 허망한 것들을 보지 않게 되거나, 벙어리로 태어나 헛되고 나쁜 말들이나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말들을 결코 듣지 않기를 바라는 게 나았을 것 같았다."

 

그는 이러한 그의 절망을 해결하기 위해서 친척들이나 많은 성직자들을 만났지만 그들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했다. 사람의 깊은 내적 고통을 모르는 성직자가 해 준말은 담배를 피우거나 시편을 노래하라는 정도의 말이었다!

 

인간의 깊은 내적 고통에 무지한 그리스도인, 성도의 깊은 시험을 이해하지 못하는  성직자……. 폭스의 아픈 기억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적 지도자로서 영적인 경험과 예민함을 가지지 못하면 사람들을 살리기는 커녕 반대로 고통을 더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내가 배우는 모든 것들이, 그리고 실천하려 애쓰는 모든 노력들이 사람들의 고통에 귀기울이고 조금이나마 위안을 줄 수 있는 그런 도구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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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꽃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한 줄 묵상 2012.09.10 02:00
  • 일반적으로 '머리가 커질수록' '겸손과 열려있음'이 반비례하는 듯 합니다. 굳이 '일반'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제가 그렇습니다.

    BlogIcon 바람연필 2012.09.11 13:48 신고
  • 과거는 (잘한 것이든 잘못한 것이든) 잊고, 몸--혀와 배--을 다스려 영을 얻으라는 말씀으로 듣습니다.

    BlogIcon 산처럼 2012.09.11 14:55 신고
  • 영성 공부는 하면 할 수록 정말 영과 육에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게 우리 모임의 취지겠지만요....

    BlogIcon 소리벼리 2012.09.12 07:31 신고

"팜보(Pambo) 교부가 안토니 교부에게 물었다. ‘제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러자 연로한 안토니가 말하기를,


그대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것에 신뢰를 두지 마시오. 지나간 과거를 염려하지 마시오. 그러나 말(tongue)과 육욕(stomach)을 통제하시오.’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주제별)Ch. 1. 2.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에 실린 이야기의 대부분은 많은 대중들을 앞에 두고서 행해진 대화나 가르침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이고도 개별적인 정황에서 펼쳐진 것이었다. 팜보교부는 안토니 교부(Saint Anthony)에게 자신의 삶에 필요한 실제적인 가르침을 청한다. 그러자 안토니는 제일 먼저, 자기 나름의 의(own righteousness)에 기대지 말라고 그에게 가르침을 준다한 마디로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잘난척 하지 말라는 것이다사막까지 와서 그토록 수행에 힘써 온 팜보 교부로서는 기분 상하기 딱 쉬운 말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자세히 알 길은 없지만, 그에게 너무나 시의적절한 말이었는지 모른다

 

주변에 소위 영적 훈련에  있어서 많은 경험과 수고를 하신 분들 가운데, 가끔씩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가 하나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더 낮아지려고 동원한 그 행위들이 오히려 '하나님' 없이 '자신'이 높아지는 일에 쓰여지게 된 것이다.

 

 팜보 교부는 후에 안토니와 더불어 다른 사막 수도자들로부터 본받을 만한 대표적 수도자로 언급되기도 한다(1). 가르침과 교훈은 일방적일 수 없다. 안토니 교부에게 사랑이 없었으면 위와 같이 아프지만 꼭 필요한 조언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젊은 팜보에게 겸손과 열려있음이 없었다면 이같은 교훈을 자신 영혼의 살과 뼈로 수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이처럼 오늘 만남의 배경에는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모두의 성숙된 영적인 토양이 있었다. 아름다운 영성의 꽃이 메마른 사막에서 피었다. / 오래된 오늘 

  

(1) The Sayings of the Desert Fathers (The Alphabetical Collection), trans. Benedicta Ward (MI, Kalamazoo: Cistercian Publications, 1987), 97.



posted by 오래된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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