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수 없다 (닛사의 그레고리우스)

한 줄 묵상 2014.06.27 04:47

하나님을 보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 하나님을 보고자 하는 욕구를 결코 만족시키거나 중단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무한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성장 과정에서 그 과정을 멈출 수 있는 한계란 없다. 


닛사의 그레고리우스 (Gregorius of Nyssenus, c.335-395), 《모세의 생애》, II 239.


우리 교회에는 다섯 분의 아주 은혜로우신 권사님들이 계시다. 그런데 그 분들이 하나님을 경험한, 혹은 회심한 경로는 각각 너무나도 다르다. 그래서 어떤 이는 통성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한 것 같지 않다고 하고, 어떤 이는 소리 질러 기도하면 하나님이 귀가 먹었냐고 하신다. 찬양을 하실 때도 그 분들이 좋아하는 특정한 곡을 하지 않으시면 금방 요청을 하신다. 그 분들에게 가장 은혜로운 예배는 자신이 경험했던 과거 어느 순간의 체험을 재현하는 것이다. 첫 사랑, 첫 은혜의 경험은 그 분들에게 그토록 강렬하다. 

 

그렇지만 난 또 그 분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또 다른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소원한다. 그리고 그 분들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또 다른 모습'을 경험하기를 기도한다. 그 분은 무한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성장과정은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소리벼리/정승구

posted by 소리벼리

영혼의 나무 (마카리우스)

한 줄 묵상 2014.02.02 02:11
  • 그래서 하나님이 가지 치기를 하시나 봅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 가지 뿐만 아니라 열매 맺는 나무 가지도 더 많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요.
    다시 한번 저를 돌아 보게 하심에 감사 드립니다.

    adaya 2014.02.02 13:01 신고

사람의 마음은, 마치 수많은 가지들과 잔가지들로 이루어진 나무와 같다. 우리 영혼의 나무에는 수많은 생각의 가지들, 계획과 의도의 가지들이 있다. 그런데 그중 어떤 가지들은 사탄에게 장악되어 있다.

- 마카리우스(Macarius of Egypt, c.300-390) 지음, 이후정 옮김, 《신령한 설교》 (서울: 은성), 26.9.


사람의 마음이 수많은 가지들을 가진 나무와 같다는 이 말이, 사람의 뇌가 서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뉴런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현대 과학의 주장과 통하는 면이 있어 보인다고 말하면 너무 지나친 주장일까? 아무, 우리 마음 혹은 영혼이 수많은 가지들을 가진 나무와 같다고 본 4세기 영적 거장의 통찰은 놀랍다.

 그 영혼의 나무 중 일부가 사탄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는 말은 더더욱 놀랍다. 마카리우스는 상당한 수도 생활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연단하고 정화한 수도자들조차, 그들의 마음속 어딘가엔 여전히 사탄의 유혹과 공격에 장악당한 부분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이 거룩한 도성에 이르기까지(26.23), 우리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랑에 빈틈없이 연결되기까지(26.16; cf.3:18), 사탄이 우리 영혼의 어딘가를 장악하는 일은 계속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런데, 마카리우스에 말에 따르면, 이렇게 우리 영혼 한 켠이 사탄에게 장악당하는 것을 주님께서도 바라신다는 것이다(26.15)! 주님은 왜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의 영혼을 사탄이 공격하도록  허용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를 훈련시키 위함이라고 마카리우스는 말한다. 처음에는 어린아이이던 우리들이 악한 영향력과의 싸움을 치르면서 점점 단련되어서 강하게 성장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26.15). 이를 위해서 주님은 우리의 고군분투를 늘 지켜보신다. 그리고 그때 그때 필요한 은총과 은사들을 더하여 주신다(26. 24). 이러한 싸움은 분명 쉬운 싸움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은사들을 가지고 사악한 영향력들의 맹렬한 공격을 이겨내고, 우리 속에서 그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고 우리 마음을 순전하게 하는 일을 이루게 될 것이다(26.24). / 남기정



posted by 새결새김

날마다 새로운 나 (토마스 머튼)

한 줄 묵상 2014.01.19 04:37
  • 학부시절 브레넌 매닝의 책에서 인용구절로 만났던 토마스 머튼! 오랜만에 다시 만나고 싶네요 책 한 권 사야겠어요^^

    류명균 2014.01.19 10:50 신고
    • 전 아직 브레넌 매닝을 읽어 보지 못 했는데, 기회 되면 읽어 보고 싶네요.^^

      BlogIcon 바람연필 2014.01.19 13:19 신고 DEL

1964년 1월 25일.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교정하고 성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어제의 금욕생활(renunciation)은 뒤에 남겨 둔 채, 그러면서도 자신의 모든 어제들과의 연속성 안에서 말이다. ([과거의] 일에 들러 붙는 것은 자신의 과거와의 연속성을 잃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에 들러 붙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 Dancing in the Water of Life(New York: HaperSanFrancisco, 1997), 67


지금으로부터 오십여 년 전 이맘 때, 토마스 머튼은 지속적인 자기 변화와 성장의 필요성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1964년이면 그가 수도자로서, 작가로서, 사회비평가로서 이미 상당한 수준의 성장을 '이룬'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속적으로 자신이 스스로 변화하고 성장해야 한다고 일기에 적고 있다.


이러한 변화와 성장을 위해서는 과거의 일들을 뒤에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 그것이 어떤 성취이든 실패이든, 기쁨이든 슬픔이든 간에. 그것은 어제의 나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할 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일에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참된 의미에서의 어제의 나'는 변화하는 오늘의 나 안에 있다. 그리고 그 오늘의 나는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어제의 나'에 집착해서는 안 되며 날마다 새롭게 변하고 성장해 나가야 한다. 


어제 저녁 한 노인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장례예배 순서지에 그분의 약력이 실려 있었고, 옛날 사진들이 화면 속에서 공개되었다. 하지만 약력과 사진 속의 그는 내가 알던 그분이 아니었다. 그것은 늙음으로 인한 외모의 변화 때문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분은 여든이 넘어서까지 나날이 더욱 새로워지기를(日新又日新)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 권혁일


posted by 바람연필

당신이 원하시니 (하나님 임재 연습)

한 줄 묵상 2013.09.28 15:37

오직 하나님과 끊임없이 대화하기를 연습하고 경험하는 이들만 이 교제가 얼마나 달콤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기쁨을 얻기 위해 하나님 임재를 연습하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이 연습을 통해 자기 위안을 추구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분이 이 끊임없는 대화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원해야 할 것입니다.

- 로렌스 형제 (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  c. 1614-1691), 《하나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Second Letter)



기도의 맛과 경험은 소중하다. 많은 이들에겐 '그때처럼'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시점과 경험이 있다.
 과거의 그 경험은 때론 영적 열망을 일으키는 동기가 되기도 하고 때론 현재의 영적 나태를 발견하게 만드는 하나의 기준적 경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론 그 '경험'을 내 것으로 삼고, 그 자체에 매여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는 이들도 만나게 된다. 


로렌스 형제는 그 맛을 위해 기도하지는 말라고 권면한다. 기도 안에서 초점은 대화의 자리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현존이 우리의 기도 행위를 '대화'가 되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기도의 행위 안에 하나님을 분명 모신다면, 그분이 우리의 대화를 그리고 그 모든 '나머지'를 인도하실 것이다. 작은소리찾기 박세훈

posted by 작은소리찾기

영적 성장 (그리스도를 본받아)

한 줄 묵상 2013.08.06 09:45
  • 이렇게 좋은 공간이 있었네요
    많이 읽고 은혜받게되서 감사드립니다

    BlogIcon 박선우 2014.02.01 22:37 신고
  • 우리 영성이 체험에 매달려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됨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이진원 2014.02.02 13:23 신고
  • 이진원 님, 좋은 댓글 고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체험 자체에 매일 필요도 없고 매여서도 안 됩니다. 한 영성가는 하나님과의 더 깊은 하나됨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체험에 매달리지 말고 체험을 잊으라고까지 말했지요.

    그런데 체험은 기독교 영성에서 매우 중요한 소재입니다. 그 체험을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해석해 온 교회의 전통에 비추어 바르게 해석하고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BlogIcon 바람연필 2014.02.04 02:34 신고

진정한 영적 성장은

은혜가 주는 위안을 누릴 때가 아니라, 

그런 은혜의 부재를 

겸손과 자기초월과 인내로써 견디어낼 때 일어난다. 


그러므로, 은혜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기도생활이나 다른 경건생활이 시들어지지 않게 하라. 


-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c. 1380–1471), 《그리스도를 본받아》, book 4, ch. 7.


하나님의 임재와 터치를 느끼는 것은 실로 달콤한 경험이다. 기도 중에, 말씀묵상 중에, 예배 중에 그런 경험을 갖게 될 때 흔히 우리는 '은혜 받았다'고 말하곤 한다. 서구 영성사의 전통적 표현으로 말하면, (영성적) '위안'(consolation)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경험이 깊었던 영성가들은 한결같이, 그런 영성적 "위안"은 좋은 것이지만 우리 영성생활이 그런 체험에 매달려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토마스 수사는 정말 우리에게 영적 성장이 일어나는 때는 오히려 그런 '위안'이 없을 때, 흔히 하는 말로 (내적으로) '메마를' 때라고 말한다. 그런 시기, 우리가 겸손하게(humbly), 자기를 잊고서(selflessly), 인내하며(patiently) 견딜 때, 우리 영혼은 진정으로 성장한다. 우리 영혼의 근육이 자란다.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과 가장 가까울 때는, 영적으로 고양(高揚)되어 "할렐루야!"를 외칠 때가 아니라, "나의 하나님,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부르짖게 되는, 더 이상 비참할 수 없는 지경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유일한 희망으로 알아 붙들고 늘어지는 그런 영적 근기(根氣)의 시간이 아닐까? 


그런 시간에 길러지는 겸손과 자기초월과 인내야말로 우리 영혼에 새겨지는 그리스도의 형상일 것이다. / 이종태


posted by 산처럼

죽어버린 관계 (로렌스 형제)

한 줄 묵상 2013.03.05 02:08

우리는 내면을 향해 돌이켜야 합니다. (막힌) 댐들을 무너뜨리고, 은혜가 흘러들어와 잃어버렸던 시간을 보상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얼마되지 않습니다. 죽음은 우리 가까이 있으니 늘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 왜냐하면 영적인 삶에서는 진보하지 않는 것이 곧 뒤로 물러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로렌스 형제 (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  c. 1614-1691), 《하나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First Letter)



(로렌스 형제의 글에서 이런 강한 어조를 듣게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내 그가 다른 이들을 자신이 경험하고 살아내고 있는 삶으로 간절하게 초대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영혼 깊숙한 곳에 하나님께서 거하신다는 사실을 신뢰했으며, 그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 내면을 향해 헤엄쳐 들어갔다. 모든 분주한 외적인 일들 가운데에서도 (아니 그 일들을 통하여) 더 깊이 잠영해 들어갔다.  로렌스 형제에게 있어서 영적인 삶은 내면에 거하시는 하나님과 자기 영혼과의 관계였다. 그리고 그분과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지 않는 것은 그저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뒤로 물러가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우디 앨런 감독은 그의 작품 애니 홀<Annie Hall>에서 모든 관계는 상어와 같아서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죽게 된다고 말했다. 상어는 그 아가미의 구조 때문에 전진하지 않으면 호흡할 수 없다고 한다. 이 상어라는 존재의 전진은 생명과 생존을 의미한다. 비슷하게 관계는 속성상 점점 더 자라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주 어색한 일종의 죽은 상태가 되어 버린다. 영적인 삶에서도 우리는 하나님과 나 사이에 일종의 죽어버린 관계를 화석처럼 남겨두고 있지는 않을까?


로렌스 형제는 그렇기에 생애의 죽음 이전에 이 관계의 진전을 이뤄내라고, 또 그것에 집중하라고 권면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더 깊은 관계로 진보하지 않는 것은 어색한 또 하나의 죽어버린 관계를 낳는 비극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로렌스 형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지금이라도 다시 님이 계신 내면을 향해 돌이켜야 합니다. 다시금 막힌 것을 무너뜨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살아있는 그것이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습니다." 작은소리찾기

posted by 작은소리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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