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분별이란 무엇인가 : 개념과 유형들

영성학 논문 2017.06.28 08:36

우리의 삶은 분별과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성경은 분별과 선택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을 받고서 자신들의 잘못된 욕망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여, 금지된 열매를 따먹는 치명적인 선택을 했다. 그러나 수천 년 후 예수는 사탄의 유혹과 고난에 대한 두려움에 직면했지만, 정확한 분별과 자기희생적 선택을 통해, 첫 남자와 여자의 실패로 죽음의 어둠 속에 빠진 인류에게 구원의 빛이 되었다. 그래서 분별과 선택은 성경과 기독교 역사에서 때로는 명시적으로, 때로는 암시적으로 매우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져 왔다.

     영적 분별 또는 식별(spiritual discernment)은 폭넓게 정의하면 개인이나 공동체가 자신(들)이 체험한 어떤 영적 경험이나 현상, 또는 내면의 생각과 정서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분별하는 것이다. 또는 어떤 특정한 상황 속에서 구체적인 선택을 내리기 위해 하나님의 뜻이나 인도하심을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사실 성경과 기독교 역사에서 발견되는 영적 분별에 대한 실천과 가르침들을 하나의 정의로 다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각각 매우 다양한 상황 속에서 분별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실천되는 만큼, 성경과 기독교 역사에서 발견되는 영적 분별은 다양한 모습과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영적 분별에 대한 다양한 가르침과 실천들을 각각 짝을 이루는 몇 가지 유형들로 묶어 소개하고자 한다. 그런데 한 가지 미리 언급해야 할 것은 각각의 대극들은 상반된 특징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곧 중심이 어디에 놓여 있느냐에 차이가 있을 뿐, 다양한 형태의 영적 분별들에는 각각의 특징들이 공존하는 경우가 많다.



1. 분별의 대상에 따라 : 영들을 분별함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함

시간적으로 과거에 일어난 또는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영적 경험이나 현상에 초점을 두는 유형과 미래의 선택에 초점을 두고 하나님의 뜻이나 인도하심을 분별하는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두 가지 유형이 독립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전자가 후자를 위한 과정으로 결합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먼저, 첫 번째 유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용어의 어원을 아는 것이 도움이 된다. ‘분별하다’라는 의미의 영어 동사 ‘discern’은 ‘다른 것으로부터 어떤 하나를 구별하다, 가려내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라틴어 ‘discernere’[디스케르네레]에서 왔다. 그래서 어원적으로 분별이란 섞여 있는 것들을 명확하게 구별하는 행위 또는 과정을 말한다. 그렇다면 섞여 있는 것들, 곧 분별의 대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전통적으로 영적 분별을 지칭하기 위해 ‘영분별’(discernment of spirits)[각주:1]이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어 왔다는 점을 알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이때의 분별의 대상은 영들(spirits)이다. 곧, 어떤 영적 경험, 현상, 생각 등을 일으키도록 영향을 주는 영적 실체가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예언적 전통이 발전하면서 어떤 특정한 예언자가 전하는 메시지가 진리의 영으로부터 받은 것인지 거짓의 영으로부터 나온 것인지 분별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 되었다. 구약성서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일으키실 선지자가 주님의 이름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반드시 들어야 하지만,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고 가르친다(신 18:18-22). 이렇게 단순하게 말의 성취 여부로 그 메시지의 영적 출처를 분별하는 원칙은 신약 시대에 이르게 되면 보다 세밀하게 발전된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거짓 선지자들을 경계할 것을 말하면서,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는 자연의 원리를 분별 기준으로 제시한다. 여기서 “열매”라는 결과를 보고, 그 열매를 맺은 이가 “좋은 나무”(참 선지자)인지 “못된 나무”(거짓 선지자)인지를 분별한다는 원리는 모세가 제시한 원칙과 비슷하다. 그러나 열매의 유무가 아니라 질을 보고 그 열매를 맺은 나무를 분별한다는 점에서 분별의 기준이 보다 세밀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심화된 분별의 원리가 필요한 이유는 “노략질하는 이리”가 “양의 옷”을 입고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때문이라고 예수는 설명한다(마 7:15-23). 비슷하게 사도 바울도 “사탄은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며, “사탄의 일꾼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다(고후 11:13-15)고 경고하는데 이 구절은 이후에 분별에 관한 문헌들에서 자주 인용된다.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경고는 사도 요한의 편지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요일 4:1-6). 그는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고 가르친다. 그것은 이미 많은 거짓선지자들이 세상에 나옴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나온 메시지와 “적그리스도의 영”으로부터 나온 메시지가 혼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를 “시험하라”(δοκιμάζετε)[도키마제테]고 권고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요한이 제시한 기준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가의 여부라는 점이다. 곧, 당시 영지주의(Gnosticism)와의 논쟁 속에 있던 요한 공동체를 위해, 진리로 간주되는 교리를 예언자의 참됨과 거짓됨을 분별하는 시금석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것은 영적 분별의 기준이 공인된 텍스트(성경)와 교회의 가르침(교리)에 부합해야 한다는, 최소한 그것들에 배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기본적인 전제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일반적으로 영분별에 대한 논의들의 바탕에는 인간 외부의 영적 존재들이 인간의 사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러한 견해는 매우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3세기 초의 오리게네스(Origenes Adamantius: c.184-c.254)는 『제일 원리에 대하여』(De Principiis)에서 이를 자세히 논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의 천사들) 또는 사탄(의 천사들)이 인간의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들게 하거나 유혹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그 생각들을 자동적으로 따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유 의지가 있어서 외부에서 주입되는 생각들을 거절하거나 받아들이기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제일 원리』, 3.2.4). 

     또한 요한 카시아누스(Johannes Cassianus, 360-435)는 『담화집』(Conferences)에서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모든 생각들을 그 기원과 원인과 저자를 추적함으로써” 현명하게 분별하고, 누가 그 생각을 제안했는지에 따라서 그 생각을 적절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구체적으로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성령의 불로 정화된 것인지, 미신의 일부인지, 세속 철학의 교만으로부터 온 것인지 자세히 조사하고 시험해야 한다고 말한다(『담화집』, 1.20.1-2).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영적 분별의 대상이 한 사람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영적 실체들(선한 영 또는 악한 영)로만 국한되지 않고, 세상의 가치관을 포함한 모든 요소들까지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내면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움직임들에 대해 체계적인 분별 원칙을 제공한 이는 16세기의 로욜라의 이냐시오(Ignatius of Loyola: 1491-1556)다. 그는 『영신 수련』(Spiritual Exercises)의 말미에 두 가지 묶음의 식별 원칙들을 포함시키고 있는데, 첫 번째 묶음(313-327)은 수련의 첫째 주(단계)에 있는 초보자를 위한 것이고, 두 번째 묶음(328-336)은 둘째 주(단계)에 있는 보다 진보한 수련자에게 적합한 규칙이다. 이냐시오는 내면의 움직임들을 크게 영적 위로(consolación)와 영적 실망(desolación)으로 분류하는데, 위로는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가는 정서적 움직임을 말하고, 실망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정서적 움직임 지칭한다. 그는 첫째 주간을 위한 규칙에서는 영적 실망 중에 있을 때에는 이미 내린 선택을 변경하지 말고, 인내 중에 위로를 기다리라고 권면한다. 반대로 영적 위로 중에 있을 때에는 교만하지 말고 실망이 올 때를 대비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둘째 주간을 위한 규칙에서는 겉으로 보기에는 영적 위로 같으나 그 안에는 마귀의 속임수가 숨겨져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 바탕은 물론 생각의 시작과 중간과 끝을 모두 세밀히 살펴보아야 한다고 안내한다. 

     “참된 믿음은 대체로 거룩한 정서(affection) 안에 있다.”고 믿은 개신교 목회자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 또한 인간 내면의 정서에 매우 깊은 관심을 가졌다. 18세기 미국에서 일어난 대각성운동을 경험한 그는 “부흥의 역사가 많이 일어나는 시기에 거짓된 신앙도 함께 성행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래서 그는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 바르게 분별할 필요를 절감했다. 그가 개인의 신앙생활에서 감정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각주:2] 그래서 그는 『신앙감정론』(Religious Affections)에서 인간 내면의 정서들이 성령의 체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믿을 만한 표지(reliable signs) 열두 가지와 믿을 수 없는 표지 열두 가지를 상세히 설명한다. 흥미로운 것은 근대 철학자였던 에드워즈는 종교적 정서에 영향을 끼치는 영적 존재들보다는 정서 자체에 초점을 두고 상당히 이성적인 분별 원칙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영적 분별에서 이성적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이냐시오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음으로 영적 분별의 두 번째 유형, 곧 미래의 선택에 초점을 두고 하나님의 뜻이나 인도하심을 분별하는 경우들을 살펴보자. 구약성서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사사기 6장에서 기드온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보내심을 확인하기 위해 양털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 이야기다. 하나님은 사자를 통해 그를 “큰 용사”라 부르시며, 그에게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기드온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여부를 확실히 분별하기 위해서 양털을 가지고 두 번이나 “시험”(האנ)[안세]했다(사 6:38). 이때 기드온이 사용한 히브리 단어 “נסה”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순종을 시험하실 때(창 22:1), 그리고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시험할 때(왕상 10:1)와 같은 다양한 상황들에서 사용되는데, ‘실험적으로 시도해 보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기드온의 이와 같은 실험은 자신의 내면의 생각이나 움직임보다는 외적인 표징이나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자 시도하는 사례의 모델이 되었다.

     신약성서에는 다음과 같이 보다 분명한 표현이 등장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δοκιμάζειν)[도키마제인] 하라.”(롬 12:2).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 단어 “δοκιμάζω”[도키마조]도 히브리어 “נסה”와 기본적으로 비슷한 뜻을 갖고 있는데, 위에서 사도 요한이 영들을 시험하라(요일4:1)고 말했을 때 사용한 단어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이 말한 분별의 대상은 영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다. 당시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신들에게 희생제물을 드리는 “이 세대”와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고, 선택하여 실천함으로써 자신들의 몸, 곧 자신들의 삶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롬 12:1) 드릴 것이 요구되었다. 비슷하게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그들이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여(δοκιμάζειν)[도키마제인] 그리스도의 날까지 진실하고 허물이 없기를 기도한다(빌 1:10).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분별하려는 바람은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는 것이지만, 특히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삶을 급진적으로 헌신하기 위해 구체적인 길을 찾는 이들에게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13세기 초 아씨시의 프란치스코(Francis of Assisi: c.1181-1226)가 회심 후 성 다미아노(San Damiano) 교회에서 드린 “십자가상 앞에서의 기도”(The Prayer before the Crucifix)는 그가 십자가 위의 주님으로부터 들은 말씀, 곧 “프란치스코야, 가서 내 집을 재건하라.”는 명령을 올바르게 수행하기 위한 분별력(discerning heart)을 구하는 청원이다. 

     앞서 언급한 로욜라의 이냐시오가 제시한 식별 규칙 또한 그 궁극적 목표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바른 선택을 내리기 위한 것이다. 그는 『영신 수련』의 첫째 주를 시작하는 「원리와 기초」(23)에서 ‘질병과 건강’, ‘가난과 부’, ‘불명예와 명예’, ‘단명과 장수’ 중 어느 한 쪽을 더 원하지 않는 초연한 마음(indifference)을 가지는 것을 선택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그는 셋째 주간의 말미에 「선택을 위한 길라잡이」(169-188)를 구체적으로 제공하는데, 우리가 창조된 목적,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자신의 영혼 구원에 가장 도움이 되는 수단을 선택해야지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2. 분별의 주체에 따라 : 개인 분별과 공동체 분별

다음으로 영적 분별을 행하는 주체에 따라 개인 분별과 공동체 분별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개인 분별은 말 그대로 한 개인이 자신에게 일어난 영적인 경험이나, 자신을 향한 하나님을 뜻을 분별하는 것이다. 특별히 4세기 이후 사막의 수도자들을 시작으로 흘러온 수도 전통은 개인적 차원의 분별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 개인이 고립된 상태에서 분별하고 선택하는 것을 권장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교만이나 독선, 또는 뒤틀린 욕망이나 무지로 인해 분별에 실패하고 잘못된 선택을 내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담화집』, 2.5.1). 이런 점에서 영적 분별은 영적 지도자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어둠이 빛 아래에서 즉시 사라지는 것처럼, 악한 생각이 원로 앞에 드러나게 되면 그 즉시 힘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도자는 경험이 많고 덕이 높은 원로에게 자신의 마음을 겸손히 고백하고 그의 조언에 순종해야 한다. 그래서 압바 모세(Moses)는 “참된 분별은 참된 겸손이 아니면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담화집』, 2.10.1). 분별의 전제로 겸손과 순종을 강조한 것은 7세기의 수도자 요한 클리마쿠스(Johannes Climacus: c.579-649)에게서도 발견된다. 그는 『수도승의 사다리』(Ladders of Divine Ascent)에서 ‘겸손’에서 ‘분별’이 나오고, ‘분별’에서 ‘통찰’이 나오며, ‘통찰’에서 ‘예지’가 나오는데, “이렇게 자신 앞에 예비된 복들을 보고서도 이 온당한 순종의 길을 따르지 않을 이가 누가 있느냐?”라고 묻는다(『사다리』, 4.105). 

     영적 분별이 영적 지도자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질 때, 영적 분별은 고립된 개인의 영역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이 일대일의 관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대다의 관계로 확장되면 개인적 분별이 확실히 공동체의 영역 속에 자리를 잡게 된다. 오늘날 친우회(Quakers) 전통의 ‘명료화위원회’(clearness committee)가 그렇다. 이 위원회는 한 개인이 자신의 문제를 분별하기 위해 공동체 내의 신뢰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청함으로써 꾸려진다. (또는 피정 중에는 제3자에 의해서 모임이 꾸려지기도 한다.) 여기서 자신의 문제를 내어 놓는 이는 초점 인물(focus person)이 되고 그를 돕는 이들은 위원들이 된다. 이때 주의할 것은 위원들은 초점 인물이 분별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질문들을 하는 것이지, 그가 어떤 선택을 내리도록 유도하거나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명료화위원회는 분별 과정에서 공동체가 관여하기는 하지만, 분별의 주체가 개인이며, 분별의 대상도 개인적 사안이라는 점에서 엄밀한 의미에서 공동체 분별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공동체 분별은 공동체가 공동의 사안을 놓고 함께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앞서 언급한 성서의 여러 사례들은 개인적 차원에서보다 공동체적 차원에서 행해진 또는 행해져야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중에서도 로마의 교회들에 보낸 편지에서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권면할 때, 그는 확실히 공동체를 분별의 환경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 신약학자 로버트 쥬엣(Robert Jewett)은 로마서 12장 2절에서 분별의 주체가 “너희”라는 복수인 점과, “δοκιμάζειν”[도키마제인]이라는 동사가 보통 공적 영역에서 시험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 구절의 초점은 공동으로 결정 내리는 것에 놓여 있다고 주석한다. 그에 의하면, “로마서의 경우, 분별되어져야 하는 ‘하나님의 뜻’이란, 하나님께서 공동체가 어떤 특정한 상황 속에서 실천하기 원하시는 특정한 행동을 말한다.”[각주:3] 

     기독교 역사에서의 공동체 분별의 예를 들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로욜라의 이냐시오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냐시오와 여섯 명의 그의 동료들은 예수회(Society of Jesus)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정말 하나의 수도회로 결속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매우 진지하게 기도하고, 대화하고, 분별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들은 일정 기간 동안 낮에는 일상적인 사역을 행하고, 밤에는 모여 함께 분별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것은 공동체 분별의 좋은 모델을 제공해 준다. 더불어 친우회에서 공동체의 사안에 대해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월회(monthly meeting) 중에 대화와 침묵의 시간을 갖는 것 또한 공동체 분별의 좋은 사례다. 이들은 의견의 불일치가 있으면 침묵 가운데 내면의 신성한 빛을 관조하고, 만장일치를 이룰 때까지 수년이 걸리더라도 결정을 보류한다.


3. 기타 : 분별력의 출처에 따라 그리고 오늘날의 경향

마이클 벅클리(Michael J. Buckley)는 분별력의 출처에 따라 다음의 네 가지 유형을 구별한다. (1) 성령에 의해 부여된 은사, (2) 헌신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흘러나오는 타고난 감각, (3) 학습을 통해 얻은 지식, (4) 이 세 가지의 혼합.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첫 번째 출처, 곧 성령의 은사를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현대로 올수록 세 번째 출처, 곧 학습과 훈련을 강조한다.[각주:4] 

     (1)과 (2)의 경우에는 영적 분별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성령의 은사를 받은 이들, 또는 분별 감각을 타고난 이들에게로 제한되지만, (3)에서는 예언자와 같은 신적 매개자를 의지하지 않고서도, 누구나 학습과 훈련을 통해서 영적 지도자 또는 공동체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영적 분별을 행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현대적으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소명의 발견과 같은 인생의 굵직굵직한 순간들뿐만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지속적으로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분별하도록(갈 5:16-24) 장려한다. 『영적 분별의 길』(The Way of Discernment)의 저자 엘리자베스 리버트(Elizabeth Liebert)는 “분별은 하나님이 어떻게 현존하시고, 활동하시고, 또 우리를 개인과 공동체로 부르시는 지를 의도적으로 인식해 가는 과정인데, 이를 통해 우리는 날마다 조금씩 더 신실함으로 하나님께 응답할 수 있게 된다.”라고 정의하며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가는 지속적인 과정을 강조한다.[각주:5] 이 책에서 그녀는 이성뿐만이 아니라, 기억, 통찰, 몸, 상상력, 감성, 자연 등을 활용한 다양한 분별 방법을 제시한다. 

     또한 오늘날 증대되는 사회적 의식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개인적, 공동체적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시대적 차원에서 분별을 실천할 것을 요청한다. 이천여 년 전, 날씨는 분별하면서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예수의 탄식이(눅 12:56)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시대의 징표들을 읽는 것”으로 다시 강조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사회적 차원의 분별(social discernment)은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취해야할 행동과 실천을 분별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 구조나 문화 속에 내재된 불의나 부정 등을 분별함으로써 변혁을 추구하는 것까지 목표로 삼는다.  


     지금까지 기독교 전통에서의 다양한 영적 분별의 개념과 유형들의 윤곽을 개략적으로 그려보았다. 분명한 것은 이 오래된 영적 훈련 또는 실천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에 도움이 될 뿐만이 아니라 필수적이라는 사실이다. 우리에게는 신앙의 선배들의 경험들, 곧 그들이 분별에서 실패하거나 성공한 이야기들과 값진 조언들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령께서는 당신과 함께 하는 이 소중한 과정으로 매순간 우리를 초대하고 있으실 뿐만 아니라, 안개로 뒤덮인 그 길을 우리와 함께 걸으시며 안내하시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 클리마쿠스의 말처럼 우리가 그 온당한 초대를 거절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 바람연필 권혁일


참고문헌

권철우. “거룩한 감정, 거룩한 실천: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 「목회와신학」 318 (2015년 12월), 182-185.

리버트, 엘리자베스. 『영적 분별의 길: 하나님과 함께 믿음의 결정 내리기』, 이강학 역. 서울: 좋은씨앗, 2011.

The New Dictionary of Catholic Spirituality, s.v. “Discernment of Spirits.”

Robert Jewett, Romans: A Commentary, Hermeneia-A Critical and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Bible. Minneapolis, MN: Fortress, 2007.




이 글은 '디바인영성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영성을 살다」 (통권7호, 2017년 상반기), 26-35쪽에 게재된 글입니다.

  1. 이 용어는 헬라어 ‘διακρίσεις πνευμάτων’[디아크리세이스 프뉴마톤], 라틴어 ‘discretio spirituum’[디스크레시오 스피리툼]을 번역한 것으로서, 고린도전서 12장 10절에 처음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본문으로]
  2. 권철우, “거룩한 감정, 거룩한 실천: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 「목회와신학」 318 (2015년 12월), 183. [본문으로]
  3. Robert Jewett, Romans: A Commentary, Hermeneia-A Critical and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Bible (Minneapolis, MN: Fortress, 2007), 733-734. [본문으로]
  4. The New Dictionary of Catholic Spirituality, s.v. “Discernment of Spirits.” [본문으로]
  5. 엘리자베스 리버트, 『영적 분별의 길: 하나님과 함께 믿음의 결정 내리기』, 이강학 역(서울: 좋은씨앗, 2011), 46. [본문으로]
posted by 바람연필

믿음의 선조를 통한 분별 (요한 카시아누스)

한 줄 묵상 2015.06.30 13:33

그때 모세가 말했다. "참 분별은 오직 겸손할 때 얻어진다. 겸손의 그 첫 번째 증거는, 되어진 모든 일들이나 생각들이 우리의 (신앙) 선조들의 조사에 맞춰질 때이다. … 자신의 결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앙 선조들의 모델에 의해서 사는 사람(수도자)은 결코 속임을 당하지 않는다.

- 요한 카시아누스(John Cassian: 360-435), John Cassian: Conferences(New York: Paulist Press, 1985), Conference 2 no.10, p.67.

매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찾고 따르겠다고 다짐하지만, 실존이 가진 한계를 넘어서는 분별과, 영적 자유를 향한 여정의 순수성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이럴 때 믿음의 선조들이 걸어온 길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은 숙연해지고, 영적 분별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모든 노력을 내려놓게 된다. 

〈손양원 목사님 순교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나의 분별이 얼만큼 초라하고, 자기 중심적이며, 실존의 한계에 묶여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아들을 죽인 청년을 아들로 삼으면서까지 복음을 철저히 삶속에서 살아내고자 했던 그 실행만큼 확실하고 강력한 영적 분별의 열매는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나의 한계를 인식하고, 다시금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긍휼히 여기심을 구하는 겸손의 자리로 돌아올 때, 참 분별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 이주형


posted by 구름위 햇살

영적 교제와 분별(요한 카시아누스)

한 줄 묵상 2014.12.30 13:00

사탄적 환영에 빠져 영적 숭고함에서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그 노인을 기억하라. 그는 지난 50여년 동안 사막에 기거하면서, 그 절제와 혹독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독거의 삶이 주는 은밀함을 사랑했던 사람으로 기억된다. …… 분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며, 영적 동료들과 대화와 조언을 구하기보다 자신의 생각대로 (영성 생활을) 인도하길 선호했기 때문이다.

- 요한 카시아누스 (Johannes Cassianus, 360-435)  《담화집》 Conferences II.5.


카시아누스는 동방 교회의 수도 영성을 서방 교회에 최초로 소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훌륭한 영적 전통은 받아들이되, 한계와 약점은 보완하면서 비판적으로 수용했다. 그 건설적 비판의 중심엔 영적 공동체를 통한 영적 소통과 교제가 위치해 있다. 

50여년 동안 독거하며 절제의 수도 생활을 살았던 영적 거인이 한 순간에 사탄적 환영에 빠져 시험엔 든 이야기를 카시안은 그의 《담화집》에서 여러차례 거론한다. 그러면서 이 은둔과 극한 절제의 삶으로 생긴 폐단을 영적 독단과 교만으로 규정하고, 그 이유를 '영적 분별력'의 부재로 들었다. 은둔의 삶이 영성 생활에서 중요하지만, 극단적 은둔으로 인해 그 수도자의 영적 독단이 강화되어 그가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카시아누스는 한탄했다.  

그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수도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공동체 내에서 영적인 교제와 소통을 통해 자신의 영적 경험을 돌아보고, 영적 지도자로부터 인도를 받아 건강하고 바른 영성 생활을 점검받는 것이야 말로, 영적 오류와 독단에 빠지지 않는 최선의 방법임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영성 생활에 있어서 수도 공동체의 필요성과 영적 분별력을 훈련하고 기르는 방법으로서 영적 소통과 영적 지도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영적 경험은 극히 개인적인 경험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신비한 경험은 교회 공동체의 성경 해석과 신학적 고백 아래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한 개인의 영적 경험이 교우 사이에서 나누어질 때,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는 공동의 경험 또는 공동의 영적 자산이 된다.

하나님은 삼위 가운데 친밀한 교제와 소통을 통해 일체를 이루시는 분이시다. 이처럼 우리의 영성 생활도 공동체 내의 영적인 교제와 친밀한 소통을 통해 영적 독단과 오류로부터 자유해질 수 있고, 나아가 영적 분별력을 기를 수 있게 된다. / 이주형





posted by 구름위 햇살

베네딕트의 규칙서 (Rule of St. Benedict)




블로그를 시작하며 7월의 추천 고전으로《베네딕트의 규칙서 Regula Sancti Benedicti 를 선정하였다. 6세기 초 이탈리아의 수도승 누르시아의 베네딕트(Benedict of Nursia)에 의해서 쓰여진 이 작품은 현재까지 기독교 수도원운동에 있어서 기준이 되는 가장 권위 있는 텍스트로 여겨져 오고 있다. 


오늘날 교회 안팎에서 '공동체'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지만, 사실은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많은 기독 교회들이 분열과 분쟁을 거듭하고 있으며 참된 공동체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그러므로 과거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열망으로 공동체 생활을 택한 수도자들의 규칙서가 오늘날 한국 교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과 지혜를 주고 있다고 믿는다. 최근에 새롭게 출간된 한국어 번역본을 소개하고, 그 책에 필자가 쓴 도움말로 작품에 대한 자세한 안내를 대신한다. 

 

베네딕트 저. 《베네딕트의 규칙서》 권혁일, 김재현 역. 서울: KIATS, 2011.

  


《베네딕트의 규칙서》:

천국을 향한 공동체 여정의 이정표

 

 

왜 고대의 수도원 규칙서를 읽는가?

문학에서 고전古典은 그 작품이 쓰여진 시대와 장소를 넘어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작품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베네딕트의 규칙서 Regula Sancti Benedicti》는 기독교 영성의 고전이라고 부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이 작품은 6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베네딕트Benedict of Nursia(c.480-c.547)의 지도 아래 공동생활을 하던 수도사들을 위해서 쓰여졌다. 그리고 이 규칙서는 지난 1500여 년 동안 수도원 안팎에서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 왔고, 또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쳐왔다.

《베네딕트의 규칙서》가 기독교 고전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기록 목적과 규칙의 유연성이 중심적인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규칙’을 뜻하는 라틴어 레귤라regula는 여행자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 ‘길의 울타리,’ 또는 행동과 삶의 잣대를 의미한다. 베네딕트의 규칙은 수도사들의 행동을 규제하기 위한 딱딱한 규범이 아니라, 단순하고 순수한 영성생활을 통해 천국을 향한 수도사들의 영적 여정을 안내하기 위한 이정표와 지침이다.서문 제45-50

베네딕트는 이 규칙이 문자적으로 적용될 것이 아니라, 각 수도원이 처한 기후와 환경, 그리고 수도사 개인의 영적, 육체적 조건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규칙은 수도생활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수도원장의 판단에 따라 적절하게 변경될 수 있으며, 더 나은 것으로 대치될 수도 있다. 이러한 규칙의 유연성은 오늘날 전 세계의 수도원 안에서 사는 이들은 물론 수도원 밖에서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 베네딕트 영성의 유산을 자신의 삶과 공동체의 삶에 창조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수도원주의의 발달과 《베네딕트의 규칙서》

《베네딕트의 규칙서》는 서방기독교 수도원 발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서이다. 기독교 수도원의 역사는 4세기 초 이집트의 사막에서 시작되었다. 304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Diocletianus 치하에서는 많은 이들이 혹독한 박해를 피해 사막으로 도망쳤다. 그런데 313년 콘스탄틴 황제Constantine the Great의 기독교 공인 이후에는 당대 기독교인들이 새로운 형태의 ‘순교’를 찾아서 이집트의 황량한 사막으로 나아갔다.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of Alexandria에 따르면 4-5세기에는 “사막에 도시를 이룰 정도로 많은 수도사들이 이집트의 사막에서 은둔형 혹은 공동체형 수도원을 만들어 수도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렇다고 당시 사막의 수도사들이 세속 도시와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박해시대의 순교자들처럼 교회에서 ‘영웅’으로 인식되며, 로마제국의 종교적 관용으로 인해 신앙이 느슨해진 교회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이 같은 이집트 사막의 수도사와 수도원 이야기는 아타나시우스의 《안토니의 생애 Vita Anthonii》와 요한 카시아누스Johannes Cassianus의 《제도집 Institutes,《담화집 Conferences》과 같은 글과 종교-문화적 접촉을 통해 서방교회의 수도원 발달을 크게 자극하였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갈리아Gaul와 팔레스타인, 로마가 지배한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수도생활의 이상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수도원 전통의 유산들이 축적되어 6세기《베네딕트의 규칙서》로 꽃피어났다. 실제로 《베네딕트의 규칙서》는 사막 교부들의 생애와 금언집Apothegmata,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암브로시우스Ambrosius of Milan,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 바실리우스Basilius of Cappadocia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특히 《베네딕트의 규칙서》보다 조금 앞서 쓰여진 《스승의 규칙서 Regula Magistri》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베네딕트는 자신의 규칙을 토대로 서구 수도원제도의 기초를 놓으려 하거나 자신만의 수도회를 창설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규칙은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융통성과 온건한 금욕적 수행, 그리고 균형 있는 생활규율 등으로 인해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후 8세기 후반과 9세기 초에 프랑크왕국의 샤를마뉴 대제Charlemagne는 베네딕트의 규칙을 자신의 카롤링거 제국에 속한 수도원의 공식적인 규범으로 채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기반 위에 10세기에는 베네딕트의 규칙을 사용하는 수도원들이 연합하여 베네딕트 수도회Benedictine Order를 창설하였다. 이후 《베네딕트의 규칙서》는 중세에 수도원이 타락하고 위기에 처했을 때는 물론 수많은 수도원개혁의 과정에서 신앙적 활력과 기준을 제공해주었다. 20세기에 들어서 베네딕트 수도원들은 영국성공회와 스웨덴 루터교 안에도 세워졌으며, 오늘날 전 세계에 약 3만 여명의 수사와 수녀가 베네딕트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고 있다.

 

베네딕트의 생애

베네딕트의 생애에 관해 현재 남아 있는 자료는 그의 사후 약 50년 경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1Gregorius the Great가 자신의《대화집Dialogues》제2권에 남겨둔 베네딕트의 생애Vita Benedicti가 전부이다. 물론 그레고리우스의 성인전聖人傳이 오늘날의 전기biography의 개념으로 베네딕트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제공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다만 “하나님의 사람” 베네딕트의 거룩한 성품과 영적인 특징을 묘사하고 이것을 통해 자신의 의도한 교훈을 교회와 이탈리아 사회에 전달하고자 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의 기록에 따르면 베네딕트는 480년 이탈리아 중부의 누르시아Nursia라는 지방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로마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당대 사회의 방탕함과 무의미한 생활을 목격한 그는 13세가 되던 493년에 로마를 떠나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처음 1년은 엔피데Enfide에서 다른 금욕주의자들과 같이, 이후에는 수비아코Subiaco의 산 위에 있는 동굴에서 약 3년 간 홀로 기도와 금욕훈련에 매진했다. 그는 악마의 유혹과 육체의 정욕을 이겨내기 위해 심지어 쐐기풀과 들장미 덤불 속에 들어가 그의 몸에 상처를 내기도 하였다.

그의 종교적 생활이 주변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그는 수비아코의 한 수도원장으로 부름을 받았다. 하지만 베네딕트의 엄격한 삶의 방식은 평이한 삶을 원하는 그곳 수도사들의 기대와 상충했고, 그는 다시 동굴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종교적인 거룩함에 대한 평판과 기적에 대한 소문 때문에 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수비아코에서 약 19년 동안 열두 개의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곧 지역 사제들의 질투를 불러 일으켰다. 이를 피해 베네딕트는 529년경에 로마와 나폴리Naples 사이에 있는 몬테카시노Monte Cassino로 옮겼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적용하여 이방신을 섬겨오던 이곳에 수도원을 세우고 수도사들을 지도하였다. 《베네딕트의 규칙서》가 기록된 것도 바로 이 시기이다. 그는 수도사들의 삶에만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가뭄이 극심할 때는 수도원의 식량을 풀어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등 수도원 밖의 사람들에게도 많은 자비를 베풀었다.

베네딕트의 죽음은 그의 기도하는 삶의 아름다운 절정을 보여준다. 그는 547 3 21일 몬테카시노에서 형제들의 부축을 받아 서서 기도하는 중에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져 있다. 그레고리우스 1세는 베네딕트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면서 그의 규칙서는 자신이 살았던 삶의 방법과 양식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생애와 대화[가르침]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사람은 베네딕트의 규칙을 통해 그의 삶의 방식과 훈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거룩한 사람[베네딕트]은 그가 가르친 것을 모두 삶으로 살아 내었기 때문이다(그레고리우스 1세의 《대화집》 제2권 제36)

 

《베네딕트의 규칙서》의 내용과 주요 주제

《베네딕트의 규칙서》는 규칙을 제정한 의의를 설명하는 서문과 수도원에서의 각종 제도와 생활규율 등을 설명하는 73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문에서 제7장까지는 《스승의 규칙서》와 아주 많이 일치하는 부분으로, 수도사의 종류(1)와 수도원장(2-3), 그리고 영적성장을 위한 훈련방법(4-7)을 개괄적으로 설명하며 글 전체의 도입부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에서는 이전 도입부의 정신을 강조하면서 보다 구체적인 규칙을 다루고 있다. 전체를 간략히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전례규칙과 자세(8-20), 직책과 역할(21, 31-32, 38, 47, 57, 62-66), 입회, 책벌, 파문(23-30, 42-46, 58-61), 노동과 각종 생활규칙(22, 33-37, 39-42, 48-56, 67-72), 끝맺는 말(73)로 이루어져 있다.

 

상호적인 사랑에서 솟아나는 순종

“들으라, 나의 아들아”라는 권고로 시작하는 서문은 이 글이 법률적 문서보다 구약성서의 지혜문학wisdom literature 전통잠언 1:8, 4:1 참조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베네딕트는 규칙서에 기록된 가르침들을 부모가 자녀에게 들려주는 사랑의 교훈에 비유한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이 가르침들을 주의 깊게 듣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즉각적으로 순종해야 한다서문 1.

이러한 지혜문학으로서의 글의 성격은 베네딕트회의 3대 서약 중의 하나인 ‘순종’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도와준다. 즉 베네딕트에게서 ‘순종’은 권위자의 일방적인 명령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오는 맹목적인 반응이 아니라, 영적인 부모와 자녀 사이의 상호적인 사랑과 신뢰에서 자라나는 미덕이다. 수직적인 관계에서 이렇게 형성된 순종은 나아가 수평적인 관계로 확장된다. 베네딕트는 그의 규칙서 끝부분에서 수도원장과 수도사 사이뿐만 아니라, 수도사들 사이에서도 상호순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71.1, 72.5. 이와 같이 순종은 겸손과 더불어《베네딕트의 규칙서》의 처음과 마지막을 꿰뚫으며 모든 규칙을 하나로 묶는다. 이런 점에서 베네딕트의 순종은 효를 모든 행위의 근본으로 삼는 동양의 유학儒學의 가르침과도 통한다. 예를 들면, 유학에서도 부모의 사랑에 대한 자녀의 사랑의 반응이 효라고 가르친다. 부모와 자녀의 수직적인 관계에서의 효가 형제자매와 친구와의 수평적인 관계로 확장된 것이 우정이다.

또한 순종은 발전시켜야 하는 미덕인 동시에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영성훈련의 효과적인 방법이다. ‘순종’을 뜻하는 라틴어 오보에디레oboedire는 어원적으로 ‘듣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곧 순종은 수도원장이나 다른 형제들의 말 속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훈련이다. 그래서 베네딕트는 수도사는 상급자의 명령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여기고 실행해야 하며, 상급자에게 보여준 순종은 곧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라고 말한다5.4,15. 이처럼 순종의 훈련을 통해서 수도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귀를 열어놓게 되며,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법을 배우게 된다.

 

겸손, 환대, 그리고 자비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

순종과 마찬가지로 겸손은 《베네딕트의 규칙서》의 기초를 이루는 미덕이며 동시에 영성훈련 방법이다. 7장에는 겸손의 열두 단계가 기록되어 있는데, 베네딕트는 겸손을 인간이 몸과 영혼, 즉 전인적으로 성장해가는 점진적인 과정으로 제시한다. 첫 번째 단계는 자신의 죄에 관한 욕망을 인식하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것을 극복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두 번째부터 일곱 번째 단계를 거치면서는 수도사는 자신의 비천함을 인식하고, 자신의 뜻을 버리며, 죄를 고백하고, 인내하는 가운데 순종하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여덟 번째부터 마지막 단계는 겸손을 마음으로뿐만 아니라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충실하게 나타내는 과정이다. 겸손의 단계를 모두 거치면 수도사는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는 하나님의 사랑에 도달하게 된다. 이 사랑은 또한 수도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을 연합시켜서,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것처럼 즐거이 준행하게 만든다. 이런 의미에서 겸손의 사다리는 수도사를 금욕적인 삶 또는 능동적 삶의 정점으로 인도한다. 이와 같은 하나님과의 사랑 깊은 연합이 곧 베네틱트가 추구한 수도생활의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겸손은 또한 베네딕트 영성의 또 다른 특징인 다른 이들에 대한 환대자비로 표현되어야 한다. 수도사들은 방문한 모든 손님들에게 머리를 숙이거나 몸을 완전히 엎드려 겸손히 영접하고 진심으로 대접해야 한다. 손님대접을 위해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담당자는 중요한 금욕훈련 중의 하나인 금식도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이 규칙서는 공동체의 병들거나 약한 이들에 대한 커다란 관심과 배려를 보이고 있다. 손님과 병든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와 같이 돌봄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환대를 통해 나그네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경배를 받으시기 때문이다36, 53. 이처럼 겸손과 환대, 그리고 자비는 금욕수행보다도 더 우선되는 미덕이자 훈련이며,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섬기고 그분과 연합하는 삶의 길이다.

 

삶의 균형과 리듬

베네딕트 영성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균형과 리듬이다. 먼저 베네딕트는 하루 중 기도와 노동이, 그리고 공동체의 예배와 개인의 영성생활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도록 가르친다. 물론 우선순위는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성무일도officium divinum 또는 하나님의 일Opus Dei에 있지만, 육체적인 노동과 개인적인 독서lectio divina 역시 매일의 수도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베네딕트는 제8장부터 제20장에 걸쳐 매일 혹은 매주 드릴 성무일도의 시간과 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기도와 예배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외적인 형식이 아니라 이집트 사막의 수도사들이 추구한 “마음의 순수함과 참회의 눈물”이다20.3. 기도는 짧고 단순해야 하며20.4, 찬송은 마음과 목소리가 조화를 이루어져야 한다19.7. 그리고 하나님이 어디에나 임재하시며, 모든 곳에서 주님의 눈이 감찰하고 계시기 때문에19.1 성무일도를 비롯한 모든 일은 매 순간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는 가운데서 행해져야 한다.

그 외에도 베네딕트는 사순절을 지키는 방법49과 취침과 식사 등 일상생활에 대한 지침22, 41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전례규칙과 일상생활의 규칙은 함께 어우러져 짧게는 매일의 생활, 길게는 연간 생활의 리듬을 형성한다. 즉 《베네딕트의 규칙서》에 심겨져 있는 수도원의 이상은 단조로운 매일의 의무들로 채워져 있는 삶이 아니라, 균형 잡힌 일상생활의 반복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리듬 있는 삶이다. 그런데 이러한 반복은 발전 없이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집”을 향해 오르는 영적인 여정이며, 공동체가 사랑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규칙이라는 리듬에 맞춰 내딛는 공동의 발걸음이다72.4, 73.8.

 

라틴어 원문들

《베네딕트의 규칙서》는 그의 막강한 영향력을 보여주듯 많은 사본들이 발견된다. 현재 삼 백여 개 이상의 다양한 라틴어 사본들이 남아 있는데, 전승 과정에서 곳곳에 가필된 부분이 많아 원문을 확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규칙서》본문에 대한 비평적 연구는 19세기 후반에 들어서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고대 라틴어 사본들은 문서가 시작하는 첫 단어에 따라 아우스쿨타ausculta옵스쿨타obsculta,두 그룹으로 구분되어 명명되어왔다. 중세시대에는 이 두 그룹의 사본을 적절히 조합하여 주석을 단 공인본문textus receptus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규칙서》각 장의 구분은 모든 사본에 나타나며, 절의 구분은 17세기부터 시작되어 1947년에 안셀모 렌티니Anselmo Lentini에 의해 본격적으로 활용되었다. KIATS영성 선집도 이 기준을 따랐다. 중세 기독교 문학의 일반적인 특징을 반영하듯, 규칙서에는 약 300여 개 이상의 성서본문이 직간접적으로 인용되었다. 물론 베네딕트는 성경본문을 문자 그대로 인용하거나 출처를 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도사들이 보다 쉽게 낭독할 수 있도록 운율을 살리기도 했다.  KIATS영성 선집에서는 독자들에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경우에만 성경인용의 출처를 담았다. 우리는 이 《규칙서》의 한글 번역과 연구를 위해 지금까지 나온 많은 라틴어와 영어 번역을 참조했다. 동시에 믿을만한 비평본인 아달베르트(Adalbert de Vogüé)가 편집한 La Règle de Saint Benoît: Introduction, Traduction, et Notes par Adalbert de Vogüé: Texte Établi et Preésenté par Jean Neufville (Paris, Éditions du Cerf, 1972)과 프라이(Timothy Fry)가 편집한 RB1980: The Rule of St. Benedict in Latin and English with Notes (Collegeville, Minnesota: Liturgical Press, 1981)의 도움을 받았다.

 

주요 참고문헌

1차 문헌

Fry, Timothy . RB1980: The Rule of St. Benedict in Latin and English with Notes. Collegeville, Minnesota: Liturgical Press, 1981.

Gregory the Great. The Life of Saint Benedict. Hilary Costello, Eoin de Bhaldraithe. Petersham, Massachusetts: Bedes Publications, 1993.

Lentini, Anselmo. S. Benedetto, La regola: testo, versione e comment. 2. Montecassino: Pisani, 1980.

McCann, Justin. The Rule of Saint Benedict in Latin and English. London: Burns and Oates, 1952.

Penco, Gregorio. S. Benedicti Regula: introduzione, testo, apparati, traduzione e commento. Florence: La Nuova Italia, 1958.

de Vogüé, Adalbert . La Règle de Saint Benoît: Introduction, Traduction, et Notes par Adalbert de Vogüé: Texte Établi et Preésenté par Jean Neufville. Paris, Éditions du Cerf, 1972.

 

 

2차 문헌

강치원. 『베네딕트 규칙서』에 나타난 렉시오 디비나. 《선교와 신학》제19 (2007): 187-220.

김봉수. 『베네딕트 규칙서』에 나타난 수도원이념에 관한 연구. 《總神大論叢》제16 (1997): 249-290.

Casey, Michael. Strangers to the City: Reflections on the Beliefs and Values of the Rule of St. Benedict. Brewster, Massachusetts: Paraclete Press, 2005.

Ladrigan-Whelpley, Theresa. “Benedict of Nursia (c.480–c.547), Rule.” Christian Spirituality: The Classics. Arthur Holder . New York: Routledge, 2009: 62–73.

Merton, Thomas. The Rule of Saint Benedict: Initiation into the Monastic Tradition 4. Collegeville, Minnesota: Liturgical Press, 2009.

Stewart, Columba. Prayer and Community: The Benedictine Tradition. Maryknoll, New York: Orbis Books, 1998.

Swan, Laura. The Benedictine Tradition: Spirituality in History. Collegeville, Minnesota: Liturgical Press, 2007.

de Waal, Esther. A Life Giving Way: A Commentary on the Rule of St. Benedict. Collegeville, Minnesota: Liturgical Press, 1995.

 


posted by 바람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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