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과 사랑: 기도 생활의 꽃과 열매 (에바그리우스)

한 줄 묵상 2014.04.29 15:10

수도자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떠나 있는 사람이며, 동시에 모든 사람과 함께 있는 사람이다.

-폰투스의 에바그리우스(Evagrius Ponticus: 344-399), 《기도론》, 124.

image from evagriusponticus.net

기도하기 위해서는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홀로 있을 줄 알아야 한다. 이런 기도 생활이 깊어지면, 기도자는 욕망과 정념에 흔들리지 않는 평온(apatheia)에 이르게 된다. 에바그리우스는 이러한 평온에서 참된 사랑이 시작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은 기도자로 하여금 모든 사람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하며, 그가 모든 사람과 함께 있음을 깨닫게 한다(《기도론》, 125). 그러므로 욕망과 정념에서 벗어난 기도자는 아파하는 사람과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는 사람과 함께 눈물 흘리는 사람이 되며(12;15), “세상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보다 더 효과적으로그런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된다(A. 라우스, 《서양 신비 사상의 기원》, 169). / 남기정



posted by 새결새김

고상한 욕망 (본회퍼의 옥중서신)

한 줄 묵상 2013.04.14 07:25

"인간은 신을 상실한 세계에서 하나님의 고난에 동참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이 지점이야말로 종교적인 인간이 하나님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과는 전면적으로 반대되는 지점이다. …… 크리스챤들이 예수의 고난에 동참할때 이교도들과 뚜렷이 구별된다"


- 본회퍼 지음(Dietrich Bonhoeffer, 1906-1945), 문익환 옮김, 

<옥중서신> (The Letters and Papers from Prison), 226, 


히브리 문학은 '인간(ish)'이라는 단어가 '욕망(esh)'이라는 단어에서 기원하고 있음을 말하면서, '인간(ish)'은 어원 자체에서부터 '욕망(esh)'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십계명의 열 번째 계명을 보면[각주:1], 인간의 탐욕(욕망)은 인간 내부에서부터 스물스물 올라오기 보다는 외부로 부터, 즉 타인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비로소 생기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인간의 욕망은 타인이 가진 것에 자극 받아 그것을 모방해서 생겨나고, 인간은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그것을 소유한 대상과 긴장관계를 형성해 결국 갈등이나 폭력에 이른다. 이 이론은 프랑스의 문학비평가 르네 지라드(René Girard)모방 욕구’(Mimetic Desire)이론이다.


우리는 무엇을 욕망하는가? 우리의 욕망이 무조건 외부의 자극에 의해 생긴다는 모방욕구이론을 절대적으로 지지할 수는 없지만, 많은 부분 우리는 내가 무엇을 욕망하는지도 모른 채 다른 사람들이 욕망하는 것들을 무조건 모방하며 탐욕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는가? 내 동료와 선후배가 욕망하면 나도 그러해야하고, 이 세상이 그렇게 욕망하면 나도 더이상 질문하지않고 그렇게 욕망하고, 더 좋은 직장, 더 편한 미래, 더 많은 돈벌이와 박수소리를 찾아다니는 그들의 욕망에 묻혀 나도 그렇게 욕망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도 없는 내가 그들의 허영과 함께 세상 속을 떠돌아 다니고 있지는 않는가? 작금의 신자들과 목회자들 그리고 교회들의 욕망이 그러하지는 않은가? 


본회퍼는 교회가 욕망하는 것들이 당시 독일교회처럼 자신들의 입신과 세속적 영달이라면, 그런 교회는 세상의 쓰레기가 될 것이라고 질책하고 있다. 오히려 그는 차라리 욕망하려면 좀더 고상한 것을 욕망하라고 권고한다. 신의 고난에 동참하기를 욕망을 하라!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준엄히 권고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교도들처럼 낮은 가치들을 구걸하지 말고, 하나님의 고난에 동참하려는 높은 가치를 욕망하라고 권고한다./ 나무 잎사귀 이경희

 

  1.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출 20:1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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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어두움으로 뛰어드는 잠수부 (마카리우스)

한 줄 묵상 2013.01.18 00:16
  • 자신의 욕구의 추구를 최상의 가치로 삶는 생각의 뿌리에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이것은 발달심리학에서 말하는 유아적인 상태와 통한다. 그러나 잠수부처럼 우리의 욕구 중심에 깊이 내려가면 그속에서 우주의 중심이신 하나님을 향하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영적 성숙일 것이다.

    BlogIcon 바람연필 2013.01.18 00:27 신고

신중한 사람들은 욕망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 그것에 복종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에 화를 내며 등을 돌리고, 자기 스스로를 원수처렴 여긴다.  이런 이들은 이를테면 잠수부와 같다. 잠수부들은 왕관을 장식할 진주를 얻기 위해, 혹은 임금의 옷을 자주빛으로 채색할 염료를 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바다밑까지 헤엄쳐 들어간다. 금욕의 삶을 사는 수도자들은 이런 잠수부들과 같다. 그들은 세상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깊은 어두움 속으로 내려간다. 거기에서 그리스도의 왕관과 거룩한 교회와 새 세상과 빛의 도성과 천상의 성도들에 어울리는 값진 보석들 모아 온다.  


- 마카리우스(c.300-390) 『신령한 설교』 (은성), 15. 51.

 

마카리우스는 이 설교에서, 사람들이 자기 밖의 세상에 대해서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 자신의 마음(내면)을 들여다보고 점검하는 데는 서툴고 무관심하다고 지적한다(§ 48). 우리의 소원과 욕구가 만들어지는 자리인 마음에는 무질서도 있고, 오류도 있고, 어두움도 있으며, 악에 오염된 부분도 있다 (§ 49-50). 그러므로 참된 것을 얻으려면 먼저 우리에게 어떤 욕구가 생기면 그것을 얻기 위해 바로 행동에 나서지 말고, 먼저 그것을 잠시 내려 놓고 그 욕구가 일어나는 우리의 마음을 잘 점검하고 그 속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더하여 깊은 어두움으로 들어가는 일은 세상과 그 문화, 그리고 나의 지식과 가치 체계 일체를 벗어 놓고 물러나는 일도 포함한다. 이런 자기 부정의 모험을 감행할 때 사람은 비로소 참으로 값진 것, 참되고 영원한 것, 즉 우리가 마땅히 원해야 할 것을 발견하게 된다고 이 초대의 수도자는 말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욕망의 성취에 적극적인 시대이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 ‘내가 되고 싶은 것을 향해 돌진하는 인생에 갈채를 보내며, 그런 목표를 성취한 사람들을 성공한 사람으로 높인다. 이런 만큼 우리는 우리가 가진 소원의 바탕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것을 만들어내는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순수하고 선한 동기들을 담고 있는지, 우리의 소원과 욕구의 추구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만 한다.

 

끝으로 우리들의 마음과 거기서 생겨냐는 욕구를 그냥 절대시하고 추종해서는 우리가 행복해 질수도, 성숙해 질 수도, 거룩해 질수도 없다고 말하는 이 수도자는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으로 들어가, [세상을 향해 열린] 문을 닫고서, 숨어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해야 한다” (6:5)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담긴 의미를 잘 깨달아 살아낸 지혜로운 신앙의 선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 새결새김

posted by 새결새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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