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거룩한 감정, 거룩한 실천 :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

거룩한 감정, 거룩한 실천

-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참된 신앙의 본질은 무엇일까?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신앙에 있어 진지함을 견지한다면 이 질문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는 이러한 참된 신앙의 본질을 진지하게 탐구한 목회자이자 신학자이다. 그는 1703년 10월 5일 미국 코네티컷주 이스트 윈저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도 목회자였지만, 그의 외조부인 솔로몬 스토다드(Solomon Stoddard) 목사는 당시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목회자였다. 에드워즈는 소년 시절에 아버지가 목회하시던 교회에서 회심을 경험했는데, 이것이 그가 신앙의 세계에 관심을 갖고 몰두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는 지적으로도 매우 총명해서 불과 13세에 당시 새롭게 문을 연 지역 대학(현 예일대학)에 입학해 그곳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그는 존 로크의 사상과 자연과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졸업 후 에드워즈는 외조부가 목회하는 매사추세츠 주 노스햄턴 소재 회중교회에서 부목사로 일했으며, 외조부가 사망한 1729년에는 그 교회를 담임하게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놀라운 부흥을 목격했다. 먼저 그가 목회하던 곳에서 사람들이 악습을 개선하고 청년들이 회심하면서 교회가 부흥했다. 그리고 부흥의 불길은 인근으로 번져서, 1734년에는 코네티컷에서도 부흥이 일어났다. 더 나아가 1740년에는 대각성운동이 일어나 뉴잉글랜드 지역 전체가 부흥의 불길에 휩싸였다. 에드워즈는 이러한 부흥의 경험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신앙 감정이 차지하는 위치가 어디일까를 진지하게 생각하였다. 그의 저서 《신앙감정론》(Religious Affections)은 그러한 그의 경험과 탐구에서 나온 설교들을 모은 책이다. 



부흥의 시대와 분별의 필요성

    에드워즈는 부흥의 역사가 많이 일어나는 시기에 거짓된 신앙도 함께 성행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래서 그는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 바르게 분별할 필요를 절감했다. 그가 개인의 신앙생활에서 감정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는 신앙 감정을 인간이 가진 이성의 능력과 결부시키려 노력했고, 이러한 결합을 통해 성령 체험이 진정 하나님으로부터 왔는지 아닌지를 분별하기 위한 방법들을 탐구했다. 에드워즈는 《신앙감정론》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영원한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구별해 주는 특징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참된 신앙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미덕과 거룩함을 구별해 주는 표지는 무엇인가?’라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출발한 이 책은 다음과 같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제1부는 감정의 본질과 중요성을 다룬다. 이어서 제2부는 신앙 감정과 관련하여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데 판단근거가 될 수 없는 열두 가지 표지들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제3부는 은혜롭고 거룩한 감정을 구별하고 보여주는 확실한 열두 가지 표지들을 다루고 있다. 이를 오늘날 우리의 상황에 비춰보자. 오늘날 우리는 ‘영성’이 기독교 신앙에 있어 중요한 덕목으로 많이 회자되고 있는 때를 살고 있다. 바야흐로 ‘영성이라는 말’이 부흥하고 있는 때이다. 그러므로 에드워즈가 ‘참된 신앙’을 분별하려고 노력했듯이, 지금은 ‘참된 영성’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분별할 필요가 있다. 에드워즈의 참된 신앙에 대한 가르침은 여기에 많은 도움이 된다. 



거룩한 감정

    에드워즈에게 있어 중요한 신학적 명제는 “참된 신앙은 대체로 거룩한 감정 안에 있다.”(147)이다. 그렇다면 감정이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요약하면, 에드워즈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영혼 안에 ‘지성’(understanding)과 ‘성향’(inclination)이라는 두 가지 기능을 주셨다고 이해했다. ‘지성’은 인간이 인식하고 판단하는 기능을 말하며, ‘성향’은 어떤 것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 같이 한쪽으로 기울어지게 만드는 기능을 가리킨다. 그리고 ‘성향’이 ‘행동’과 관련되면 ‘의지’(will)가 되고, ‘정신’(mind)과 관련되면 ‘마음’(heart)이 된다. 그리고 ‘마음’이 뚜렷하게 움직일 때 이를 ‘감정’(affections)이라고 부른다.(149) 


    그렇다면 이 감정이 왜 그리 중요할까? 에드워즈에 의하면, 참된 신앙은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행동의 근원이 바로 감정이다. 그러기에 참된 신앙은 이 감정 안에 존재해야 한다. 그는 사람에게 있어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속한 일들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마음에 생생하고 강력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곧, 사람의 영혼을 사로잡은 믿음에 관한 일이 감정을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성경에 나오는 성도들의 믿음은 이러한 거룩한 감정 안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그가 “대체로”라고 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드워즈는 모든 감정을 긍정하거나 반대로 부정하는 극단적인 입장을 배제하였다. 대신 그는 감정들을 잘 구별하여, 그 중에 참된 감정을 삶에서 실천으로 나타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신앙 감정을 분별하는 판단근거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그 자신이 경험한 부흥운동을 통해 거룩한 감정을 구별하는 표지들(signs)을 제시하였다.



거룩한 실천 : 표지 중의 표지

    이 짧은 글 안에 에드워즈가 말한 모든 표지들을 모두 다룰 수 없기에, 필자는 그 중에 마지막 항목인 “행위로 나타나는 신앙”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에드워즈는 앞선 열한 가지 표지들을 실천의 개념으로 재조명하면서, 그 모든 것들이 실천을 통해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다른 모든 표지들을 검증하는 최후의 기준이라는 점에서 그리스도인의 실천은 표지 중의 표지요, 최고의 표지이다. 그는 실천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그리스도인의 실천 또는 거룩한 삶은 참되고 구원을 가져다주는 은혜의 크고 확실한 표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인의 실천 또는 거룩한 삶은 은혜의 모든 표지 가운데 최상의 표지라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567) 


    에드워즈는 부흥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체험을 통해 변화를 보인 후에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목격했다. 그래서 그는 실천의 지속성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실천이 지속되어 질 때 우리는 그 마음의 동기를 보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직접 보시지만, 사람은 인간의 행위를 통해 그 사람의 마음의 중심을 간접적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에드워즈는 실천의 내용이 동기와 함께 연결되어있어야, 참된 은혜와 참된 신앙을 거짓된 것들로부터 구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어떤 사람이 단순히 실천을 했다고 해서 그의 내적인 동기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또한 실천이 내면의 성향을 모두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에드워즈는 행위로 표현되지 않는 것은 은혜롭고 거룩한 감정으로 볼 수 없다고 역설했다. 왜냐하면 그는 몸의 행동과 영혼의 행동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한 사람의 신앙이 참된지 아닌지를 분별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실천을 볼 수밖에 없다. 

    또한, 그는 당시 신앙인의 영적인 상태를 내적인 체험만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그리스도인의 실천 또한 체험이라고 주장하며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그리스도인의 체험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독특한 부분은 영적인 실천에 있다. 뿐만 아니라 은혜의 작용들에는 영적인 실천을 하고자 하는 체험적 성향이 있기 때문에, 영적인 실천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체험적 신앙생활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합지 않다. (626)



이신칭의와 영적 실천

    그렇다면 실천에 대한 강조가 이신칭의(以信稱義), 곧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교리와 부딪히지는 않을까? 개신교인들이 흔히 실천을 강조하는 것에 주저하는 이유는 이러한 강조가 이신칭의의 교리를 약화시키거나 부정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에드워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행위나 우리 안에 있는 어떤 것의 가치로움이나 아름다움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상쇄하는 것으로서 여기시지 않으시며, 죄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셔야 할 이유로 여기시지 않는다.(631)


    이처럼 실천은 은혜의 근거가 아니라 은혜를 증명하는 표지다. 이러한 점을 분명히 한다면, 실천을 강조하는 것은 이신칭의론과 모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필요한 것이 된다. 더욱이 에드워즈는 오히려 성경이 이를 증거하고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는 초청의 말씀 뒤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때, 약속된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는 배우고 본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그 외에 여러 성경 구절을 예로 들면서, 성경은 이신칭의와 실천의 필요성을 연결하고 있기에 서로 모순된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것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께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을 가장 중요하게 증거할 때 성경이 강조하는 것[실천]을 경시하고, 강조하지 않는 것은 (이런 것들을 강조하는 것은 율법적이요, 옛 언약에 속한 방식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의 신앙을 크게 해치는 것이다. 또한 실천에서 나타나는 은혜의 작용들과 효과적 역사를 무시하고, 철학이나 체험에서 얻은 명상으로 은혜와 양심의 내적 작용들을 정확하게 분별하는 능력과 바르게 구별하는 능력만 믿고 거의 전적으로 깨달음과 이런 내적 작용들의 방식과 방법만을 강조하는 것도 역시 사람들의 신앙을 크게 해치는 것이다. 경건의 표지로서 성경이 가장 명백하게 언급하고, 가장 자주 강조하는 것들 외에 어떤 더 나은 또는 더 높은 수준의 표지를 구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636) 



신앙 감정과 영성 목회

    오늘을 사는 우리 개신교인들에게 영성이란 무엇일까? 영성이란 단어는 이제 우리들에게 전혀 낯설지 않는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영성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선뜻 답을 내놓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은 영성이란 단어를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영성을 ‘개인적인 기도생활과 방법’을 일컫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많은 교회의 기도원들이 영성훈련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있는 것을 한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영성에 대한 이해는 영성을 극히 개인적인 신앙생활의 한 방편으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미국의 개신교 영성학자 조셉 드리스킬(Joseph Driskill)은 개신교 영성의 특징 중에 하나가 사회참여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한 개인의 영성이 자기 자신의 사적인 영적 추구에 국한된다면 그것은 성경적이고 바른 기독교 영성이라 하기 어렵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만약 지금 생존해 있다면, 참된 영성의 본질에 대해 무엇이라고 조언할까? 에드워즈에게 있어 신앙 감정은 그저 뜨겁게 찬양하고,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거룩한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구하도록 이끌고, 더 나아가 실천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참된 신앙 감정은 행동으로 실천하게 만드는 감정이며, 그러기에 참된 신앙의 요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에드워즈의 가르침을 통해 오늘 우리의 영성을 살펴보면, 영성은 그저 기도 생활의 한 방편이나 바쁘고 지친 현대의 삶에서 우리 마음의 평안을 찾기 위한 하나의 훈련이라고만 할 수 없다. 특히 개신교 영성은 이신칭의의 믿음을 작은 예수의 삶으로 살아내는 참된 신앙의 요체로 우리에게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영성 목회란 목회자가 회중 안에 한 순간의 ‘뜨거운 감정’을 부추킴으로써 교회의 외적 부흥을 만들어 내려하는 기술이 아니라, 교인들이 참된 신앙으로 세상에서 지속적인 실천의 삶을 살아가도록 목회자 자신이 먼저 ‘거룩한 감정’을 품고 함께 걷는 걸음이어야 할 것이다.




글쓴이 : 권철우. 산책길 기독교영성고전학당 연구원. Graduate Theological Union 박사과정(기독교 영성)에서 수학하였고, 현재는 미국 유마장로교회 담임목사이다. 《백투더클래식》을 공저하였다.  


'산책길'은 2015년 한 해 동안 기독교 월간지 목회와신학에 '영성 고전에서 배우는 영성 목회' 시리즈를 연재해왔습니다. 목회와신학의 양해를 얻어 이곳 산책길 팀블로그에서도 매달 글을 게재합니다. 위의 글은 2015년 12월 호에 실린 마지막 글입니다. 그동안 연재를 읽어 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posted by 바람연필

《마카리우스의 신령한 설교》

2014년 2월의 추천 고전을 2월을 넘겨서 게시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꼭 2월에 읽어야 한다는 의미로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영성 고전을 한 달에 한 번씩 소개한다는 의도로 게시하는 것이니 널리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아래의 추천글을 읽어보시고 관심이 생기신다면, 시간을 내어 고전을 직접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  편집자



마카리우스의 신령한 설교》

이후정 역, 은성(1993)


 

마카리우스는 누구인가

     필자가 이 달의 영성 고전으로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마카리우스(Pseudo-Macarius, c.300-391)의 《신령한 설교》이다. 여기엔 50 편의 <신령한 설교><대서한>이 포함되어 있다. 이 글들의 저자는 성서와 초대 교회 사막 영성에 영적 뿌리를 둔 위대한 영성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4 세기 후반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도자들로부터 탁월한 영적 지도자로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수련의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하여, 구체적인 상징과 비유들을 사용하면서 값진 조언과 통찰들을 전해 주었다. 이러한 마카리우스의 가르침은 곧 문헌화 되었고, 당대의 수도자들 뿐만 아니라, 이후 동방과 서방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속적인 감화를 주는 영성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마음과 성령

     이러한 마카리우스의 영적 조언의 큰 줄기는 영성 생활에서의 마음의 중요성에 대한 가르침이다. 우리 마음은 지성적 활동의 중심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일, 그리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분노하는 일, 뭔가를 갈망하고 욕망하는 일 등이 모두 마음에서 일어난다. 즉, 마음은 지성과 감성과 욕망과 의지 등의 모든 내적 활동의 중심이며, 또한 우리 신체 기관들을 총괄하는 제어탑(control tower)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음은 우리 전 인격의 중심이다. 그리고 여기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이다. 이곳을 통하여 성령이 오시고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오신다. 하지만, 사탄과 악마들 또한 이곳을 통하여 우리에게 들어와 우리의 생각을 어지럽히고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기도 한다.

 

마음 그 자체는 작은 그릇이다. 하지만 그 속에 용들이 있고, 사자들도 그곳에 있다. 그 속에 독을 가진 짐승들이 살고 있으며, 모든 악마의 비장품들이 들어 있다. 또한 그곳에는 가파른 절벽과 거친 길들도 있다. 하지만 그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천사들이 있고 그분의 나라도 있다. 그곳엔 생명이 있고 빛이 있다. 또한 그곳에 사도들이 있고 천상의 도성들이 있고 은혜의 보화들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그곳에 있다

-신령한 설교, 43:7.

 

     마카리우스는 이러한 우리의 마음의 모든 영역을 성령으로 온전히 채워가는 일을 수련의 중요한 과제로 강조한다. 신앙 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알고 깨닫는 일뿐만이 아니라, 생각을 조절하고, 감정과 욕망을 다스리는 일 등이 모두 우리가 그릇된 영의 지배에서 벗어나 성령과 연합하는 일에 관계된 것이다. 마카리우스는 이렇게 성령을 따르는 마음이 하나님과 그분의 은사를 바로 알아 보고 올바로 경험하는 데에 필수적인 것임을 소상히 밝혀준다.

 

     그러므로 영적 수련의 길은 성령과의 협력을 통한 오랜 동안의 정화의 과정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중심적 것에 대한 집착(마카리우스는, 이를 세상적인 것들이라고 칭한다)과 천상적인 것(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충만한 것)을 잘 살펴 분별하고, 세상적인 것을 떠나고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우리 속에 채우려는 지향을 가지고 언제나 살아야 한다. 이런 삶의 정점은 아파테이아(apatheia)의 상태, 즉 세상적 욕망과 감정은 모두 벗어버리고 성령과 천상의 성격으로만 순전히 채워진 상태이다. 여기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임재를 참되게 경험하며 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시작된다.

 

     마카리우스는 이렇게 성령과 협력하는 영적 수련에 있어서 겸손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한다. 자기 비움의 겸손, 자기 판단의 교만을 벗어날수록 우리 마음 속(이는 영적 전쟁의 전쟁터이다)에서 성령의 영토는 점점 넓어져가며, 이와 함께 우리의 생각과 욕망과 감정 나아가 몸의 태도와 습관까지, 한마디로 우리 전 인격체로서의 몸이 점진적으로 성화되어 간다. 이러한 변화의 궁극에서 우리는 부활하시어 영화로워지신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그분의 영광()에 동참하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마카리우스는 이러한 부활과 영생의 삶이 종말에만 있는 것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카리우스는, 주님의 제자들이 변화산에서 영화로워지신 빛나는 그리스도의 몸을 보았던 것을 거듭 거듭 상기시키면서, 부활 그리스도의 영화로운 몸을 알아보는 일은 성령의 도우심을 통하여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비전이라고 강조한다. 다시 말하면 마카리우스의 영성 생활에 대한 가르침의 핵심은 신자의 삶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 속에 임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재적 임재를 감지하며 그분과 함께 하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카리우스는 이러한 만남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또한 그러한 일에 참여할 가능성이 지닌 우리 인간이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지를 거듭해서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전에 신자들이 어떻게 신자들이 다가갈 수 있는 가에 대해, 소상히 설명하고 있다.

 

후대에 끼친 영향

     이러한 마카리우스의 가르침은 이후 헤시카즘(Hesychasm)으로 대표되는 동방 교회의 영성 전통 형성에 큰 토대가 되었다. 오리게누스(Origenus)와 에바그리우스(Evagrius)에서 비롯된 지성적 영성과 마카리우스의 마음의 영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동방 교회 영성을 형성해 간 것이다. 서방 교회 전통에서도 마카리우스의 설교들과 조언들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서방 교회에서 신학과 교리가 삶과 실천으로부터 멀어지고, 그 영성이 사변적이고 현학적이지만 무미건조한 것으로 변해가려고 할 때마다, 이런 경향에 경종을 울리고 이의 위험성을 알리는 시금석의 역할을 거듭해 왔다.

 

     흥미로운 것은 개신교 영성 전통에 마카리우스의 글들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한 예로 경건주의(pietism) 운동의 지도자들은 마카리우스의 글에서 많은 통찰을 얻었다. 종교 개혁 이후 오직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는 이신칭의 교리를 법정적 용어처럼 이해하면서 믿음은 이런 교리에 대한 지적 동의로만 설명하려는 하는 개신교 스콜라주의적 성향이 나타났을 때, 경건주의자들은 이를 비판하면서 이신칭의의 진정한 의미는 거듭남이라는 생명과 삶의 덕목이라고 강조하였다. 마카리우스의 글들은 이런 경건주의 영성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주장이 초대 교회의 사도적 권위를 갖춘 것이라는 점을 지지해 주었다. 그래서 요한 아른트(Johann Arndt)는 이신칭의 교리의 진정한 의미는 마카리우스의 가르침에서 옳게 드러난다고 하는 주장을 견지하였다(G.A. Maloney, Pseudo-Macarius, 24). 또한 18세기 부흥 운동 당시에는 마카리우스의 조언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경험에 다가가는 데 중요한 권위있는 초대 교회의 가르침으로 인정되었다.


오늘날 갖는 의의 

     오늘날, 우리에게 마카리우스의 글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우선, 신앙 생활에서 교리와 실천이 분리되고, 신앙이 삶과 동떨어진 것이 되는 것은 우리에게도 여전히 큰 위험으로 남아 있다. 마카리우스의 조언은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위험을 감지하게 하고 그런 것들을 피하게 할 것이다. 이에 더하여, 마카리우스의 글은 우리 가운데 있는 경험을 중시하는 사람들, 특히 감정주의적 신앙 체험에 천착하는 이들에게 바른 신앙의 길을 제시하는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마카리우스는 기독교인의 내적 경험은 우리의 감정과 경험과 지식과 의식까지도 모두 넘어서는 어떤 것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또한 그는 하나님과 그분의 은사를 경험하는 일에 영적 규칙을 따르는 수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의 생각과 욕망과 감정을 정화하고 조절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 따라서, G. A. 말로니(Maloney)가 말하고 있듯이, “겸손과 사랑을 강조하는 마카리우스는 은사주의적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은사를 마치 자신의 권력의 근거인양 사물화하고,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처럼 여기다가 결국 그들의 영적 여정을 허망한 것을 만드는 것을 피하도록 이끌어줄 것이다” (Pseudo-Macarius, p.26).

 

     다시 말하면, 회개의 중요성, 성령의 역할, 마음의 정화, 점진적 변화와 성장, 부활 그리스도와의 만남 등을 강조하면서 마카리우스의 글들은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지성과 감성이 어우러지고, 지식과 실천이 어우러지게 하여서, 신앙이 지식이나 명제들에 대한 지적 동의에 머무는 것에서 벗어나 성령을 통하여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 되게 하고, 그 삶에서 하늘의 기쁨 맛보도록 하는 일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이런 마카리우스의 글과의 만남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  더 순결한 것으로 정화되고, 그리하여 우리의 영적 생활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더 풍성해지고, 우리의 태도는 좀 더 덕스러워지기를 소망해 본다. / 남기정.



Pseudo-Macarius (Paperback)

저자
#{for:author::2}, Pseudo-Macarius (Paperback)#{/for:author} 지음
출판사
Paulist Pr | 1992-08-01 출간
카테고리
인문/사회
책소개
The writings of Pseudo-Macarius, 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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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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