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그 여자〉와 '위안부' 소녀들을 위한 탄원

오늘은 윤동주 시인(1917-1945)의 〈그 여자〉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시를 함께 읽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시인의 육필원고에 있는 그대로, 곧 당시의 맞춤법을 고치지 않고 인용해 보겠습니다. 



그여자


함께 핀 꽃에 처음 익은 능금은

먼저 떨어젓슴니다.


오날도 가을바람은 그냥붐니다.


길가에 떨어진 불근 능금은

지나든 손님이 집어갓슴니다.


1937. 7. 26.



겉으로만 보면 가을 풍경의 한 장면을 그린 짧고 평범한 회화적인 시입니다. 그런데 이 시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함께 읽어야 할 시가 한 편 있습니다. 《윤동주평전》을 쓴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송우혜 님은 이 시가 고대 그리스 여류시인 사포(Sappho)의 〈한 처녀〉라는 작품을 패러디한 시라는 것을 밝혀내었습니다. 사포의 작품을 직접 읽어보시지요. 



한 처녀


저 높은 가지 끝에서

불그스레 익는

아름다운 사과와도 같으니

따지 않음은 잊은 것이 아니요

높아서 손이 닿지 못함이다.


- 사포





송우혜 님은 이 두 작품을 다음과 같이 비교하였습니다. "사포의 한 처녀와 윤동주의 그여자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면 양자는 제목에서부터 기본구도까지 아주 흡사하게 닮은꼴이다. 그러나 '여자'를 노래한 시각은 정반대이다. 사포는 뭇 남성들로서는 감히 '손이 닿지 못하는,' 마치 높은 가지 끝의 붉은 사과와도 같이 고고하고 드높은 기품의 아름다운 처녀의 존재를 노래했다. 그러나 윤동주의 비평정신은 이 시에 불만을 느꼈다. …… 그는 아무리 '손에 닿지 못하는' 곳에 있다 해도 결국 익으면 저절로 떨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 처녀들의 운명임을, 제 또래보다 먼저 피어난 뛰어난 처녀가 '지나는 손님'으로 묘사될 만큼 엉뚱한 인간에게 허망하게 걸려드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살이의 실체임을, 날카롭게 피력한 것이다."[각주:1]


그러면 윤동주 시인은 왜 사포의 낭만시를 풍자적인 시로 바꾼 것일까요? 윤동주가 이 시를 쓴 날짜는 1937년 7월 26일입니다. 그가 북간도 용정의 광명학원 중학부 5학년에 재학할 때로 노구교(루거우 다리) 사건(1937년 7월 7일)으로 중일전쟁이 본격적으로 발발한 직후입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중국과 일본은 지속적으로 대립해왔습니다. 일본은 1931년 9월 만주사변을 일으켜 자신들의 괴뢰국인 만주국을 수립한 이후 전선을 상해까지 확장시켜 제1차 상해사변(1932)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이때 상해의 일본육해군이 '위안소'를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위안소는 점차 중소도시로 확장되어 갔다고 합니다.[각주:2] 또한, 여러 사람들(피해자, 가해자, 목격자)의 증언에 의하면 윤동주가 살았던 북간도 곳곳에도 위안소가 존재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참조: 지린성의 일본군 위안소) 그렇다면 1937년 당시 북간도 조선인들의 중심지인 용정에 있었던 윤동주도 '위안부'에 대한 소문을 들어 알고 있지 않았을까요?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을 고려해 본다면, 윤동주의 시 〈그 여자〉에 나오는 길가에 떨어져 버린 "붉은 능금"은 '위안부'로 끌려간 조선의 소녀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능금을 집어간 "지나던 손님"은 남의 땅을 점령하러 들어온 일본군인들이 아닐까요? 시인이 이렇게 완곡하게 표현한 이유는 아마도 당시에 이런 내용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위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그 여자〉를 읽어보면, 담담한 문체로 쓰여진 진술이 오히려 매우 슬프게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시적 화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지나가는 사람이 붉은 능금을 집어 가는 것을 그저 바라보는 것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 시인은 스무살의 젊은이였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슬픈 일을 시로 기록해 두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윤동주의 〈그 여자〉를 사포의 〈한 처녀〉와 다시 한 번 대조해보면, 2연이 다음과 같은 단 한 줄로 되어 있어 시선을 끕니다. "오늘도 가을바람은 그냥 붑니다." 시인에게 있어서 "가을바람"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람은 인간의 힘의 범위를 벗어나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의 영역, 나아가 기독교인이었던 윤동주에게 자연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섭리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인지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참고로 윤동주는 〈또 태초의 아침〉이라는 시에서 바람에 전깃줄이 잉잉 우는 것을 "하나님 말씀이 들려온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을바람이 오늘도 그냥 불고 있다고 표현한 것은 능금이 떨어지고 지나던 사람이 그것을 집어가는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별다른 관여 없이 상황을 방관하고 있는 것으로 시인이 인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에서는 능금이 무게로 인해 저절로 떨어졌는지, 바람에 떨어졌는지는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은데, 만약 바람에 떨어진 것이라면 비극적 상황은 더욱 심각해집니다. 소녀들이 '위안부'로 끌려가는 비극에 하나님도 결과적으로 거든 것이 되니까요. 어쨌든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하나님의 침묵 또는 방관은 현실에 비극이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로 제시됩니다.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이 시는 굉장히 절망적이고 무기력한 고백으로밖에 남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를 일종의 탄원시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윤동주는 시편을 즐겨 읽었습니다. 그리고 외사촌 동생인 김정우 시인에게 시편을 많이 읽을 것을 권하기도 하였습니다.[각주:3] 시편에 나오는 많은 탄원시들에는 시인(또는 공동체)가 겪고 있는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묘사들이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시편 137편 7절에서는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라고 당시 히브리인들이 당한 원통한 일을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윤동주의 〈그 여자〉도 그냥 부는 가을바람처럼 방관하시는 듯한 하나님을 향해 외친 시인의 탄원이 아닐까요? 당시의 험악한 상황 때문에 시편 기자처럼 격정적으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시인은 당시 소녀, 또는 처녀들이 일본군들에게 끌려가 당하는 비극을 "기억해주십시오,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하나님께 무언의 외침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너무나 안타깝게도 당시 '위안부'로 끌려갔던 소녀들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분들이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한일 외교부 장관이 공동기자회견문의 형식을 통해 '위안부' 관련 합의를 발표하였지만, 그것은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더 많은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번 합의를 지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합의가 잘 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이유를 들어 보면, 그들 중에는 '위안부' 관련 사안을 '문제'로 인식하는 이들이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언론과 인터넷 등에서는 "위안부 문제"라고 자주 표현해서 그런지 어떤 이들은 '위안부' 이슈가 한일 사이의 외교와 경제 협력을 가로막는 골치 아픈 '문제 거리'이고, 그래서 적당한 수준에서 빨리 풀어 해치워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위안부' 관련 사안은 결코 그런 '문제 거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비극이며, 결코 지워져서는 안 되는 역사입니다. 한일 간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군사 협력을 강화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대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회복시키는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번 합의로 더욱 상처받은 '위안부' 피해자들, 이젠 고령의 할머니가 되어버린 '소녀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다시 탄원해야 할 때입니다. 이번 일로 우리 국민들 사이에, 한일 사이에 분열의 골이 더 깊어지는 이 안타까운 상황으로 인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늘 더욱 간절하게 탄원해야 할 것입니다. 

/ 바람연필 권혁일



  1. 송우혜. 『윤동주평전』, 제3판. (서울: 서정시학, 2015), 253-54. [본문으로]
  2. 양현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 교회사적 성찰과 반성." 기독교사상 666 (June 2014): 18-29. [본문으로]
  3. 김정우, "윤동주의 소년시절," 『나라사랑』 23 (1976년): 121. [본문으로]
posted by 바람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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