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하나님의 임재에 참여하는 영적 대화법

하나님의 임재에 참여하는 

영적 대화법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를 도울 사람이 없고, 내가 피할 곳이 없고, 나를 지켜줄 사람이 없습니다. 주님, 내가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주님은 나의 피난처, 사람 사는 세상에서 내가 받은 분깃은 주님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시편 142:4-5, 표준새번역)



    모이기에 힘쓰라는 말씀을 근거로, 한국 개신교회는 예배, 소그룹, 심방, 성경공부, 봉사와 교제 등의 형식을 통해 다양한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목회자 또한 이런 기회들을 통해 성도들을 만나며, 그들의 영적 상황을 확인하며,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성도들은 영적인 갈급함을 해갈하지 못하고, 시편의 기도처럼 외로이 주님께 부르짖고 있는 듯하다. 성도들은 영적으로 인도해줄 사람을 찾으며, 진정한 만남을 통한 영적 교제를 갈망하지만, 우리의 목회 사역이 성도들의 다양한 영적 필요를 채우고,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답할 수 없는 상황이 한국 개신교회 현실이다.


    유태인 신학자요 철학자인 마르틴 부버(Martin Buber)의 명제, “모든 실재적 삶은 만남이며, 나와 너가 만나 소통하며 교제함으로 내가 완성되며, 실현된다.”[각주:1]는 한 영혼이 하나님과 전인적 만남을 통해 온전한 인간으로 변화되어 갈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존재와 존재의 전인적 만남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영적 만남의 그림자이며, 하나님 임재 경험의 길라잡이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목회자는 성도와의 만남, 교제와 대화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역사하심을 체험하고 안내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성도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한 영혼의 삶 한 가운데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발견하고, 그들에게 영적인 동반자가 되어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그 뜻과 말씀에 따라 살아가도록 인도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자가 목회자이며 성숙한 평신도 사역자이다. 그러므로 목회자 혹은 사역자는 본질적으로 영적 지도자(spiritual director)로서 부르심을 받은 것이며, 영적 대화는 그 소명을 완수하기 위한 필수적인 목회 돌봄 사역이다. 목회 돌봄에서 영적 교제와 대화의 중요성은 기독교 영성 전통에서 꾸준히 강조되어 왔다. 영적 교제와 대화의 필요성을 주장해온 존 카시안(John Cassian, 약365-435 AD)을 통해 영성 목회 규칙으로 세워갈 만한 건강하고 바람직한 영적 대화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존 카시안의 <담화집>

존 카시안은 서방 교회에 동방 교회의 수도 영성을 최초로 소개하고 확립시킨 성인으로 기독교 영성 전통에 알려져 있다. 동방 교회, 특히 이집트 지역에 산재해 있던 사막 교부와 수도 공동체를 탐방하여 수도자 혹은 은둔자들과 나눈 대화와 인터뷰를 기록한 ‘담화집’은, 카시안이 기독교 영성사에서 미친 결정적인 공언이 되었다. 그의 <담화집>은 두 가지 측면에서 대화와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영적 지침서가 되고 있다. 첫째, <담화집>의 기본적인 구성은 수도자 혹은 은둔자가 영성 수련과정 속에서 경험된 시행착오와 오류를 통해 깨달은 바를 수행자들에게 가르치는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단적 가르침에 빠지지 않고, 영적 독선과 교만을 미연에 예방하는 영적 기술로서 영적 교제와 대화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영적 경험을 성경의 이해와 신학적 고백 안에서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동행자들과의 영적 대화와 소통이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음을 암시한다.[각주:2] 


    둘째, 담화집의 두 번째 주제인 분별에서, 카시안은 50여 년을 수행한 한 은둔자가 사탄적 환영(satanic illusion)에 빠져 시험에 드는 예를 든다. 영적 동반자 없이 오직 독거와 은둔을 통해 영적 균형과 분별력을 잃어버린 수행의 오류를 기술하며, 영적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영적 스승과의 대화와 소통을 영적 식별의 도구로 삼아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두 번째 담화, 제 5장) 


    <담화집>에서 영적 대화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 기도에 관한 대화 (열 번째 담화, 제 8장)에서 한 수도자는 이렇게 대화를 시작하고 있다. “우리가 여기에 다시 온 이유는 지난 번 대화가 우리를 놀라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이 경이로움은 더욱 커져갔죠. 당신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우리 안에 온전한 복에 대한 열망의 불꽃을 불붙여 주셨습니다.” 영적 멘토 혹은 영적 지도자와 대화가 수도자의 마음에 성령의 뜨거운 임재와 역사하심을 불러일으켰고, 그들의 영적인 갈망이 더욱 심오해졌음을 고백하고 있다. 이 후, “골방에서 기도하는 동안 우리가 가졌던 생각들을 당신에게 말씀 드릴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첫 번째 대화를 통해 영적인 자각과 깨달음을 경험한 수도자들은 자신의 기도 시간에 떠오른 여러 마음의 정보들—기억, 내면의 상처, 아픔, 상상, 그에 대한 분별 등—을 발견하고 사막교부인 영적 지도자에게 찾아와 그 경험을 토해내기 시작한다. 그들의 영적 여정을 더욱 심화시키고 싶은 열망으로부터 영적 정보와 내적 변화를 표출해내고 있다. 이 이야기는 영적 대화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성도들이 어떻게 영적 경험과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이 영성 고전은 영적 대화법에 어떤 목회적 지혜를 선사해주고 있는가? 한 영혼을 변화와 성장으로 이끄는 영적 대화 방법은 어떤 요소들을 담고 있어야 할까? 영적 대화법의 구체적 내용을 그 목표와 기본적 전제를 확인하면서 파악해보도록 하자. 



영적 대화의 씨줄과 날줄

이 대화법의 궁극적 목표는 영혼과 영혼의 대화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선포하고 고백하는 데 있다. 이 대화의 주된 대화자, 말을 걸어오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며, 목회자/사역자는 영적 대화를 통해 단지 하나님의 임재를 한 사람의 삶의 현장에서 나타내는 도구이다.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에 대한 뚜렷한 믿음과 영적 민감성이 갖추어질 때, 목회자는 각 영혼을 주님의 임재로 인도하게 된다. 성도의 영적 갈급함과 하나님의 일하심을 확인하고, 그를 통해 치유와 회복과 분별로 이끄는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인도하는 사역이 영적 대화법 안에 전제되어 있다.


1. 경청하기 : “영적 대화의 시작이자 마지막”

경청은 기도와 대화에 임재하신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하는 첫 번째 반응이다. 성도가 대화 가운데 전달하는 정보의 영적 의미를 파악한다. 이 때, 언어적 표현뿐 아니라, 표정, 눈, 몸짓 등, 비언어적 표현에도 집중함으로 경청한다. 경청해야 할 내용은 이야기와 경험이 담고 있는 내면 정서와 영적 상태이다. 따라서, 성도와의 대화는 그들의 영적, 개인적, 내적 고민과 아픔을 토로하도록 도와주어, 성도의 영적 상태,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에 대한 감정들을 파악하고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객관적인 판단이나 심판자적 위치에서의 언행은 삼가하고, 공감, 위로, 격려의 표현을 통해 성도의 친구가 되어주길 자처한다. 영적 대화 사역에 있어 침묵 훈련은 필수적이다. 침묵 기도를 통해 주님의 임재와 인도를 수련해온 목회자는 대화 가운데 침묵을 견뎌내며, 그 침묵 속에서 주님이 성도의 영혼 가운데 일하시고 말씀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기에 경청을 훌륭하게 실천하게 된다. 

대화에서 목회자는 이성적 언어보다 감성적 언어로 반응하고 대답한다. 성도의 고민과 고통, 영적 여정에 있어서의 어려움 등을 감성의 언어로 표현해 낼 때, 성도는 안전함과 보호받고 있음을 느끼며 보다 깊은 대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청자로서 나의 역할이 소극적으로 느껴질수록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하심은 더욱 적극적으로 경험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서두르지 않기 :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요 3:30)

성도들은 대체로 처음부터 자신의 연약한 부분까지 목회자에게나누지 않는다. 작은 부분을 나눈 다음에 안전하다고 느낄 때 또 다른 근심을 나누고, 이를 통해 신뢰가 구축되면, 더 깊은 내적 상처와 수치심에 관련된 경험들을 나눈다. 이 때, 사역자의 자의적 해석과 판단에 근거한 반응은 성도의 마음에 오히려 상처를 주게 되고, 대화의 통로를 닫아버리게 된다. 기다리는 시간은 내 의도와 욕구를 내려놓는 시간이다. 대화의 주도권을 쥐려는 의도를 내려놓을 때, 주님이 일하시기 시작하신다. 또한 성도의 문제를 내 지식과 경륜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메시야 컴플렉스’도 내려놓아야 한다. 내 의도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주님의 임재와 일하심에 대한 영적 의존성과 영적 민감도가 향상된다. 


3. 나의 필요 내려놓기 : “사역자는 문제 해결사가 아니다.” 

목회자가 성도와의 대화에서 범하기 쉬운 실수를 최소화 하는 방법은 대략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대화를 통해 성도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본인 스스로 깨닫도록 초점을 맞추는 것이 영적 대화의 핵심이다. 성도가 자신의 문제와 한계를 깨닫고 기도의 자리로 옮겨 가도록,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더욱 의지하도록 이끄는 것이 영적 대화의 목회적 목표이다. 둘째, 대화가 토론으로 바뀌지 않도록, 영적 돌봄과 영적인 환대와 격려, 치유와 회복을 위한 동행과 공감으로 채워져야 한다. 세째, 상황의 정확한 이해를 위한 질문을 필요하나, 성도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질문은 삼가해야 한다. 성도가 전달하고자 하는 영적 정보의 핵심은 대화 마지막에 기도 제목을 물어보면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때, 성경 구절을 급하게 인용하는 것 또한 신중해야 한다. 성경의 부적절한 인용은 성도에게 판단 혹은 심판받는 느낌을 줄 수 있고, 동행의 관계를 보혜사 입장이 아닌, 상하구조, 혹은 권위주의적 관계로 변질시킬 수 있다. 선생님으로부터 꾸중드는 학생들은 절대 자신의 진심을 선생님에게 표현하지 못한다. 



4. 성도의 필요 우선하기 : “대화의 수혜자는 성도이다.”

성도의 내면과 감정의 근본성을 이해하는 것은 성도의 내면과 영적 상황을 진단하는데 중요한 정보와 기술을 제공한다. 감성언어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그들의 주관적 세계안으로 들어가 그들의 경험과 그에 대한 해석을 들어주는 것이 영적 경청이다. 영적 대화에서는 성도의 상황을 객관화시키는 모든 의도를 내려놓는다. “어떤 집사님도 같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렇게 하면 괜찮아진다고 하던데요!” “인생을 살다보면, 다 거치는 경험입니다!” “나이들면 다 그렇게 되는 거죠!” 식의 일반화 혹은 객관화는 결국 성도의 영적 노력과 시도를 좌절시킬 뿐 아니라, 성도의 영적 상태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성도가 자신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다고 느낄 때, 영적 대화의 일차적 목표는 달성되었다고볼 수 있다.  


5. 열린 질문 활용하기 : “성도의 세계 안으로 한발짝 더”

열린 질문은 성도가 상황과 경험을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표현하도록 돕는 소통 장치이다. 좋은 질문은 성도가 대답하면서, 스스로 다른 시각을 얻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자신의 내면과 영적 상태를 살피고 발견하도록 돕는다. 열린 질문은 내가 얻고자 하는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도가 스스로 자신의 세계와 문제에 더욱 깊게 들어가도록 돕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때에 따라서, 열린 질문은 질문자의 의도와는 다른 반응을 성도로부터 듣게 된다. 성도가 깊은 영적 성찰을 통해 성령님의 역사하심과 임재안에 더 머물게 되었다면, 그 질문은 대답의 내용과 상관없이 훌륭한 기도와 성찰의 도구가 된. 


6. 사려깊은 조언과 영적 인도 : “주님의 임재로 안내하기”

평소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유지하고, 말씀 안에서 자신의 내면을 철저하게 살피며, 하나님앞에 자신의 연약함을 내어드리며,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영적 지도자와 목회자는 영적 조언과 충고에 있어 조심스럽고 사려깊다. 즉흥적이기보다 느리며, 사변적이기 보다 단순하다. 영적 경청과 개인 기도 시간을 통해 지속적으로 들리는 영적 깨달음과 지혜들이 떠오른다면, 성도와 나누어 보면 좋다. 그 내용이 굳이 성도의 기도제목이나 문제에 직접적으로 연관될 필요는 없다. 영적 대화의 교류는 성경과 같이 은유적이거나 역설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조언과 인도는 깊은 기도의 산물이어야 하며, 이를 통해 성도도 더욱 깊은 기도를 갈망하고, 주님의 임재안에서 기도와 성찰의 시간으로 인도받는 내용이어야 한다. 


7. 대화 후 사역 : “대화는 기도로 이어진다.”

마침 기도를 통해 대화의 내용을 요약하고, 확인된 영적 정보를 감성적 언어와 성경적 은유로 표현하여 기도하면 좋다. 이를 통해 대화가 목회자의 기도로 옮겨지게 된다는 사실을 성도에게 알린다. 대화는 철저하게 비밀로 지켜져야 한다. 영적 대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비밀보장이다. 성도를 돌보고 보호한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다음 대화를 기대하고 준비한다는 의미에서 비밀보장은 절대적이다. 


나가는 말: 영혼의 신비를 캐는 사역

영적 대화법이 목회사역과 돌봄에 주는 통찰은, 각 성도의 삶은 너무나 복잡하고 신비로와서 단순한 몇몇의 언어적 표현으로 그 깊이와 넓이를 가늠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오직 주님의 임재와 역사하심만이 한 영혼을 온전하게 치유, 회복, 변화시키신다는 진리를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사역이 영적 대화법이다.



필자소개 : 이주형은 장로교 목사이며, ‘산책길' 기독교영성고전학당의 연구원이다. 올 해 5월, 미국 클레어몬트신학교(Claremont School of Theology)에서 기독교 영성 형성학 박사 학위(Ph.D.) 수여 예정이다. 


'산책길'은 2015년 한 해 동안 기독교 월간지 <목회와신학>에 '영성 고전에서 배우는 영성 목회'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목회와신학>의 양해를 얻어 이곳 산책길 팀블로그에서도 매달 글을 게재합니다. 위의 글은 2015년 2월 호에 실린 두 번째 글입니다.



  1. Martin Buber, I and Thou, translated by Walter Kaufmann (Kindle: Amazon Digital Service Inc., 2014), 61-62. E-book. 한글 번역은 필자의 것이다. [본문으로]
  2. John Cassian 지음, John Cassian: Conferences (New York: Paulist Press, 1985), Introduction by Owen Chadwick, 5-6. 이 후에 나오는 인용문은 같은 책에서 가져 왔으며, 한글 번역은 필자의 것이다. [본문으로]
posted by 바람연필

행동의 삶과 기도의 삶 (존 카시안)

한 줄 묵상 2014.03.26 07:10

우선은 실천적인 지식, 즉 행동하는 지식이 있는데, 그 지식은 도덕적 행위를 교정하고 악을 제거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두 번째로는 이론적인 지식이 있는데 이 지식은 신성한 것들을 관상하고 성경의 가장 거룩한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있다.


- 존 카시안(John Cassian, 360-435), 《담화집》Conferences, 14.1


존 카시안은 수도자들을 지도했던 스승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이집트로 다니며 수도생활을 체험하고 유럽에 수도원을 소개했던 인물이다. 수도원의 삶과 영성을 가장 잘 담고 있는 베네딕트의 규칙 (Rule of St. Benedict)은 카시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시안의 영성의 과제는 삶의 실천과 기도(관상)의 삶의 균형과 조화였다. 그에게 균형잡힌 영적 삶은 나아가는 것(실천)과 들어오는 것(기도)의 싸이클이다. 그에게 있어 행동의 삶과 기도의 삶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었다. 많은 기독인들이 방문하고 있는 예수원 입구에 써 있다고 하는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곧 노동이다"는 말의 기원은 어쩌면 카시안에게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각주:1] 


삶이 실천되지 않는 기도는 결국 중언부언과도 같은 것이듯 기도 없는 실천은 방향을 잃은 열정일 따름일 것이다. 카시안의 시각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대개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열매로서의 실천을 말하고 있는데 반해서 카시안은 영성 생활의 시작을 행동의 세계, 실천의 영성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행동은 더 깊은 기도, 더 깊은 기도로 들어가기 위한 시작점이다. 


사순절, 그리스도의 삶과 고난을 묵상하며 고난의 시작을 알릴 수 있는 내 삶의 행동은 무엇일까, 구체적인 사순절의 행동은 무엇일까? 카시안의 영성은 기도에 앞서 고난에 동참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일까하는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정승구


  1. 카시안은 어거스틴과 동시대 인물로 처음에는 친구로서 함께 신앙을 나누었지만 점차 신앙적 노선을 달리해서 신학적 노선에 있어서 원수가 되었고 결국 화해하지 못한 채 삶을 마쳤다. 예정과 자유의지사이의 긴장에 있어서 어거스틴은 전적인 은혜와 예정을 강조한 반면 카시안은 그리스도를 닮으려면 그리스도인의 책임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어거스틴이 하나님의 절대적 주도성을 강조했다면 카시안은 하나님의 주도성을 인정하면서 인간의 반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어쩌면 이들의 대립은 기독교 역사상에서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가톨릭과 개신교, 장로교와 감리교의 교리적, 신학적 차이의 시발점일 수도 있다. 한 시대를 함께했던 두 명의 영적 거장이 결국 화해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것은 유감이다. 이런 교리적 차이, 시각의 차이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사랑을 넘어서는 일이 그 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일지도 모른다. [본문으로]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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