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상처 (노리치의 줄리안)

한 줄 묵상 2012.12.01 13:55
  • 요즘 세상에서는 '트라우마'라는 말이 유행이지요. 상처는 트라우마를 주어서 사람이 건강하지 못하게 된다는....
    신앙 안에서는 상처가 곧 우리를 낫게하는 치유라는 것.
    신앙의 모습,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살펴보게 된 것 같아 기쁨니다. 나도 상처를 약으로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되길 소망해 봅니다.

    BlogIcon 소리벼리 2012.12.02 06:37 신고

나는 사는 동안 세 가지 상처를 받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참된 통회라는 상처, 깊은 동정이라는 상처, 그리고 하나님 향한 갈망이라는 상처. 


노리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 ca.1342 – ca.1416),

《하나님 사랑의 계시 Showings》, LT, ch. 2.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열여섯 가지 계시'를 체험하고서 평생을 잉글랜드 노리치의 한 교회 부속건물에서 은수자(anchoress)로 살았던 여인 줄리안. 그녀가 1373년 '계시'(showings)를 보기 전에 늘 하나님께 구했던 것이 있었다. 바로 "세 가지 상처"를 지니고 살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통회'(contrition)라는 상처, '동정'(compassion)이라는 상처, (하나님을 향한) '갈망'(yearning)이라는 상처. 


왜 통회와 동정과 갈망이 '상처'일까? 

아마 그것들은 모두 '아픈' 것들이기 때문이리라. 그렇다. 그것들은 모두 '마음 아픔'과 관계된 것들이다. '통회'란 자기 죄에 대해 마음 아파하는 것이며, '동정'(com-passion)이란 다른 이의 고통(passion)에 대해 같이(com) 마음 아파하는 것이며, (영적) '갈망'이란 하나님을 마음 아프도록 그리워하는 것이다. 


후에 줄리안은 그 세 가지―통회, 동정, 갈망―를 "약"이라고 부른다. "통회는 우리를 정결한(clean) 사람으로, 동정은 우리를 준비된(ready) 사람으로, 갈망은 우리를 존귀한(worthy)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이 세 가지는 죄인인 우리를 치료해주는 약들이다."


그렇다. 정말 그렇다. 그 '상처'들이 바로 '약'이다. 

통회하며, 동정하며, 갈망하며 우리 마음이 아파야 비로소 우리 마음이 낫는다. 내 죄 때문에, 타인의 고통 때문에, 하나님이 너무 보고 싶어서, 우리 마음이 아플 때, 우리 마음이 찢어질 때, 비로소 우리 마음이 낫기 시작한다. 병들었던 우리 영혼이 치유되기 시작한다. 


나는 지금 아픈가? 

하나님이 주시는 아픔을 지니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아픔이 우리를 살릴 것이다. / 산처럼


 al shal be wel

 and al shal be wel

 and al manner of thyng shal be wele

 - The Shewings, LT, 38 - 

posted by 산처럼

<이젠하임 제단화>와 <성 안토니의 생애>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hias Grünewald의 <이젠하임 제단화>에는 4세기 이집트 사막의 교부 성 안토니우스 (St. Anthony 또는 Antonius of Egypt)가 등장한다. 이처럼 서양미술에서는 기독교 고전 작품 또는 성서의 이야기를 소재로 활용하여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그림과 고전 작품에 대한 이해와 묵상을 돕기 위하여 제단화의 일부와 더글라스 버튼-크리스티 교수의 글을 일부 번역해서 싣는다. 






 "Isenheimer Altar" by Matthias Grünewald

These files are from the Wikimedia Common and http://www.aiwaz.net.





 

DOUGLAS BURTON-CHRISTIE 지음, 권혁일 옮김, "Athanasius(c.295-373): The Life of Anthony, " in Christian Spirituality: The Classics, Arthur Holder 편집 (New York: Routledge, 2010), 13-14.



인물은 수척하며 죽은 듯하다. 그의 몸무게로 인해 못이 박힌 그의 손과 발이 찢어지고, 그의 육체는 꺾쇠로 보이는 것에 갈가리 찢어졌으며, 그의 머리는 마치 몸에 붙어 있지 않은 늘어져 있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hias Grünewald 15세기 작품 이젠하임의 제단화Isenheim Altarpiece 서양 미술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가장 강렬하고 충격적인 그리스도의 이미지들 중의 하나를 담고 있다. 그것은 받아들이기에 어려운 이미지이다. 이것은 제단화에서 중심이 되는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 옆판에 보이는 매우 흉측한 인물은 육체가 썩어 들어가는 염증으로 뒤덮였고, 복부는 팽창했으며, 사지는 몸에서 모두 함께 떨어져나갈 것처럼 보인다. 그는 안토니의 이라고 알려진 무서우면서도 때론 치명적인 세균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데, 병은 오백 동안 유럽을 황폐하게 만들어왔다. 다른 인물은 이집트의 안토니St. Antony이다. 그는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확실히 낫게 하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졌던 성인이다. 그는 다수의 섬뜩하고도 악마적인 존재들에 의해 구타당하고, 할큄을 당하며, 찢겨지면서 자신의 고통을 견디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뤼네발트의 제단화에서 인물들, 그리스도, 안토니, 안토니의 의한 익명의 희생자의 융화는 너무나도 강력하게 인간의 고통을 형상화 해낸다. 인물들을 응시한다면, 어떤 이는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이 실제로 가능할까라는 불확실성의 느낌을 피할 없을 것이다. 고통은 너무 극심하고, 강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어떻게 무언가가 또는 누군가가 고통을 완전히 극복할 있었겠는가? 하지만 사실은 제단화는 희망의 상징이다. 심지어 안토니의 희생자와 같이 바로 절망의 가장자리 위에서 사는 이들에게라 할지라도 구속과 치유는 가능하다는 신호이다. 제단화는 처음에 질병으로 인한 희생자들이 치료를 받던 병원 시설의 일부로 창작되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희생자들의 병원생활을 특징짓던 고통과 불안으로부터 그리스도도 안토니도 초연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 아주 중요했다. 오히려 그들은 고통을 함께 하고 심지어 거기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여질 필요가 있었다. 이제하임 제단화에서 다수의 섬뜩한 생물들에 의해 시달리고, 가리가리 찢기는 것으로 묘사된 안토니는 [공격에] 노출되고 취약하며 무력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닌 인물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그리스도처럼, 그리고 안토니의 희생자와 마찬가지로 성자는 의심과 극심한 고통의 끔찍한 장소를 깊숙이 여행한 것으로 보일 있었다. 안토니는 이와 같이 고통 가운데 있는 외로운 영혼들을 만날 있었다. 뿐만이 아니라 아마도 그는 영혼들 또한 자신들의 고통 한가운데서 그리고 고통을 넘어서 하나님의 현존을 발견할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그들 속에 불붙일 있었다.

           안토니에 대한 중세 유럽의 다른 묘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젠하임 제단화에 묘사된 성인의 이미지는 4세기의 명작, 《안토니의 생애The Life of Antony》에서 영감을 받았다. 작품이 처음 출현한 때부터, 이집트 사막에서 하나님을 추구하고 악마들과 싸우던 은둔 수사의 이야기는 기독교 상상력 속에 깊이 공명되었다. 이와 같은 공명은 작품이 출현한 이후 오랫동안 계속되었는데, 무수한 적용과 해석을 통해서 시대는 이야기에 신선한 의미를 주려고 노력했다.


posted by 바람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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