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무를 마주함(잔느 귀용)

한 줄 묵상 2014.07.04 09:36

당신이 겨울나무로 서 있다고 해서 갑자기 악해진 것이 아니다. 다만 당신의 실제 모습을 그대로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겨울나무 내부 깊숙한 곳 어딘가에는 지난 봄, 아름다운 잎들을 틔워냈던 생명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잔느 귀용(Jeanne Guyon:  c. 1648-1717),영적성장 깊이 체험하기(Final Steps in Christian Maturity), 22.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은 나무가 자신의 겉모습을 치장하기 위해 애쓰는 시기다. 그 대가로 줄기와 뿌리 깊숙한 곳의 생명 에너지를 소모한다. 겉은 화려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실상 나무의 생명력은 점점 소멸되어 간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나무는 치장한 모든 것이 떨어져 나가고 앙상한 모습이 된다. 겨울은 지난 계절 겉치장 속에 가려져 있던 나무의 참 모습을 모여주는 계절이다.  


지난 몇 달간 육체적, 정신적으로 몹시 나약해진 내 모습을 보며 실망하고 낙심하고 우울해했다. 마치 '나 답지 않은 나'를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낯설고 불편했다. 그러나 내가 겨울나무로 서 있다고 해서 갑자기 약해진 것도, 악해진 것도 아니다. 다만 나의 실제 모습을 그대로 만났을 뿐이다. 귀용 부인의 영적 안내를 통해 나는 나의 앙상한 겨울나무를 묵상한다. '진짜 나'인 겨울 나무는 오히려 위안을 주며, 머지 않은 봄을 기대하게 한다. 나의 겨울나무에도 여전히 새로운 꽃을 피워낼 생명이 존재하고 있기에.

 

작금의 한국교회도 앙상한 겨울나무다. 화려한 잎들이 벗꽃잎처럼 우수수 떨어지자 어떤 이는 탄식의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아예 얼굴을 돌려버리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귀용 부인은 "새로운 결함이 생겨난 것이 절대 아니다."라고 조언한다. 우리는 드디어 겉치장 뒤에 숨어 있던 실제 한국 교회의 모습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겨울이라는 계절은 교회라는 나무를 죽이는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생명력을 복원하는 계절이다. 겨울은 겉치장에 생명력을 쓸 필요가 없기에 나무는 그 때 가장 생생한 생명력으로 복원된다. 겨울은 생명의 원천과 원리가 나무 줄기와 뿌리 깊이까지 흘러 넘쳐, 겉으로 드러난 실제 결함들을 치유하는 계절이다.  / 김종수



posted by 바다 달팽이

조선에서의 추수감사절의 유래 (길선주)

한 줄 묵상 2012.11.22 16:06
  • 길선주 목사님은 그 시대와 삶의 배경을 텍스트로 삼아 새로운 감사의 제목을 또한 감사의 의미를 해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지금의 제 삶 가운데 감사의 끝없는 의미를 더 발견해가고자 합니다.

    BlogIcon 작은소리찾기 2012.11.29 05:48 신고
어두운 죄 가운데서 밝은 새 소망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파멸에서 건설로 우리의 살림을 개척한 이날이야 말로 감사일이라고만 하기에 저로서는 오히려 불만족한 느낌이 있습니다.  (중략)  어쨌든 우리로서 기억할 것은 우리가 받은 바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를 감사하며 은혜의 복음이 우리에게 들어온 그때를 기념함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크 기쁨입니다.


길선주 (1869-1935), "추수감사일의 조선 유래와 그 의의," 《길선주》(서울: 홍성사, 2008),  169-75.


미국은 오늘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 전야이다. 한국에서도 매년 11월 셋째 주일이면 교회마다 당연하게 '추수감사주일'로 지키고 있지만, 한국교회 초기에는 추수감사절은 낯선 서양의 풍습이었다. 1931년 10월 《종교교육》이라는 잡지에 실은 글에서 길선주 목사는 조선에서 추수감사절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그 의의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길선주에 따르면 조선에서의 감사절은 어두운 조선에 기독교 복음이 들어와서 교회가 세워진 것에 대한 감사에서 시작되었다. 길선주와 초기 한국 기독교인들은 비록 나라는 외세의 침략으로 주권을 잃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놓여 있었지만, 기독교의 전래는 우리 민족의 운명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믿었다. 그래서 길선주 목사는 단순히 '감사하는 날'이라는 용어로는 담아낼 수 있는 의미와 감격이 이날에 담겨져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조선에 선교사가 첫발을 딛은 날(1884년 9월 20일)을 감사일로 정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조선은 농업국인 만큼 추수 시기를 고려하여 11월 셋째 주일 후 3일로 날짜를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요약하면 길선주 목사는 (1) 추수감사절은 수확한 '곡식과 열매'로 인해서라기보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감사하는 날이라고 말한다. (2) 특히 우리 나라에서의 감사절은 어두운 이 나라에 하나님께서 은혜의 복음을 보내어 주신 것을 감사하는 날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두 번째의 의미는 거의 잊혀진 듯하다. 과거 20세기 초에 한국 교회가 그러했던 것처럼, 오늘날 교회가 혼탁한 한국 사회를 밝게하는 등불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다면 두 번째의 감사의 의미가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 / 바람연필


posted by 바람연필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