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맞바꿈 : 마르틴 루터에게 듣는 믿음과 자유 이야기.

백투더클래식 2013. 12. 2. 11:18
  • 좋은내용감사합니다.우리안에참자유가넘쳐흐르길원합니다.믿음.소망.사랑우리안에그래도중요한건끝까지있을사랑이아닌가싶습니다.독일이란나라에서참으로신성한개혁을주신성직자분들께감사함을느끼게합니다^♥^

    BlogIcon cu 2014.05.16 22:30
  • 친절한 댓글 감사합니다.^^

    BlogIcon 바람연필 2014.05.17 10:00 신고

신나는 맞바꿈 : 

마르틴 루터에게 듣는 믿음과 자유 이야기



여러분은 한 백화점에서 손님이 가져온 쓰레기를 고급 의류나 최신 모델의 전자제품과 맞바꿔 준다고 하면 믿으실 수 있겠습니까? 악취가 코를 찌르고 더러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음식물 쓰레기를 값진 물건들과 바꿔 준다니요! 그런데 이것보다도 더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나는 맞바꿈’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정말 유명해서 긴 말이 필요 없는 독일의 종교 개혁가이지요. 그런데 그가 1517년에 처음 교회 개혁을 시작할 때만 해도 가톨릭교회와 갈라서서 새로운 종파를 만들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시 제도권 교회 안에서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를 원했지요. 그는 개혁자였지 분리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바람은 그가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관하여(Von der Freiheit eines Christenmenschen)”(1520)라는 편지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글이 바로 이번 호의 ‘백투더클래식’에서 여러분들께 소개하고자 하는 영성 고전입니다.


       이 글은 루터의 개혁 사상의 핵심을 담고 있는 3대 논문 중의 하나로 여겨질 만큼 매우 중요하고 뛰어난 글입니다. 그는 이 글을 라틴어와 독일어 두 가지 언어로 썼는데, 먼저 라틴어본은 교황 레오 10세에게 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이 글에서 가능한 논쟁은 피하고,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제시하여 교황을 설득하기 위해서 영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그리고 독일어본은 라틴어본을 번역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당시 독일의 교육 수준이 낮은 평신도들을 위한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따지면 라틴어본이 좀 더 정교하고 분량도 많지만, 독일어본은 중세 후기의 영적 활기를 간직한 토착어로 쓰여진 문서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제 이 고전 작품의 영적 활기가 잘 나타나는 구절을 잠시 인용해 보겠습니다. 


믿음, 하나님의 신비와의 접촉점


믿음은 영혼에게 참 많은 것을 부여해서, 영혼이 신성한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같아지도록 합니다. …… 그러나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믿음은 또한 영혼을 신부로서 그녀의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게 만듭니다. 이 결혼 후에 바울 사도가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와 영혼이 한 몸이 됩니다”(엡5:30). 

- 마르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관하여,” I. 12.[각주:1]



마르틴 루터가 ‘이신칭의(以信稱義),’ 곧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라는 교리를 강조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신부인 영혼이 하나로 연합하기 위한 “결혼반지”로 표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을 신랑과 신부의 하나됨으로 이해한 경우는 루터 이전에도 많이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과 바울의 글에 그러한 이해가 나타나는 것은 물론, 교부 오리게네스와 그레고리우스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남녀 사이의 사랑의 노래인 <아가>를 해석하면서 그리스도와 영혼의 연합을 ‘영적 결혼’의 모델을 사용해서 설명하였습니다. 


1520년에 출간된 마르틴 루터의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관하여》 속표지

     그런데 이 ‘결혼’에 있어서 믿음이 결혼반지, 또는 신부의 결혼 지참금으로 작용한다는 루터의 비유는 매우 신선하고 흥미롭습니다. 루터는 그리스도와 신자의 영적 결혼은 모든 결혼 중에 가장 완전한 결혼이며, 이 연합이야 말로 믿음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의 주장, 곧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이전의 기독교 신비주의 전통과 절연하고 이성 위주의 ‘합리적’ ― 그러나 사실은 ‘메마른’ ― 개신교 전통을 세운 것이라는 견해는 오해입니다. 그보다는 원래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자였던 루터가 기독교 전통 가운데 전해져 오는 신비를 새롭게 해석하는 관점을 제시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루터에게 있어서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교리적, 신앙고백적 명제들을 ―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나의 구세주이시다”와 같은 문장들을 ― 이성을 통해서 진실로 인정하고, 감정으로 그렇다고 느끼는 것 그 이상입니다. 루터가 말한 믿음은 영혼으로 하여금 실존적으로 진흙탕과 같은 죄의 감옥을 벗어나 자유를 얻게 하고, 그리스도인이 은혜 가운데에서 합당하게 되어 하나님이라는 거룩한 신비와 만나서 하나가 되게 하는 접촉점입니다. 


여기에서 루터의 믿음에 대한 이해는 가톨릭 수도승이자 영성 작가인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의 이해와 맞닿아 있습니다. 머튼은 그의 책 《새로운 관상의 씨앗들(New Seeds of Contemplation)》에서 ‘관상(contemplation)’의 시작은 바로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관상이란 하나님과 영혼이 기도와 활동 가운데 일치를 이룬 상태를 말합니다. 곧 일반적으로 영성 생활의 정점으로 여겨지는 하나님과의 연합도 믿음에서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믿음에 대하여 잘못된 개념을 갖고 있으면 그 사람은 결코 관상가가 될 수 없으며, 반대로 믿음이 깊어지면 하나님과의 일치도 깊어진다는 것이 머튼의 이해입니다. 그래서 그는 믿음은 “지성적인 동의(intellectual assent)” 그 이상이며, “살아계신 하나님과 생생한 접촉을 갖게 하는 단 하나의 길(the way)”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개신교를 대표하는 16세기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와 20세기의 대표적인 가톨릭 영성가 토마스 머튼이 믿음에 대하여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신나는 맞바꿈


그러면 영혼이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와의 영적 결혼, 곧 연합을 이루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이제 이 글의 제목인 ‘신나는 맞바꿈’에 대한 루터의 설명을 읽을 때입니다.


이렇게 [영혼과 그리스도가 한 몸을 이루게 되면] 좋든지 싫든지 간에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 속한 것은 믿는 영혼 그 자신의 것이 되고, 그 영혼에게 속한 것은 그리스도 그분의 소유가 됩니다. 그리스도께는 모든 소유들과 복들이 속해 있는데, 이제 그것들은 그 영혼의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 영혼에게 지워져 있던 모든 악들과 죄가 이제 바로 그리스도의 것이 됩니다. 이 시점에서 신나는 맞바꿈과 분투(der fröhliche Wechsel und Streit)가 시작됩니다. (I. 12.)


결혼을 통해서 한 몸을 이룬 부부가 자신들의 모든 소유를 공유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와 신자는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합니다. 신랑이신 그리스도는 신부인 우리의 모든 약함, 죄, 슬픔, 좌절, 고통, 정죄, 죽음을 가져가셔서 당신께서 그것을 모두 담당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자유, 생명, 기쁨, 위로, 은혜, 승리와 바꾸어 주십니다. 이것은 어린 시절 엿장수에게 빈 병을 가져다주고 달콤한 엿을 바꾸어 먹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나는 교환입니다. 악취로 가득한 쓰레기를 최고급 의류나 전자제품과 맞바꾸는 것보다도 더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믿음을 통해 일어난다는 것이 루터의 확신입니다. 이러한 그의 확신의 밑바탕에는 죄의식으로 인해 괴로워하며 씨름하다가 믿음을 통해서 자유를 경험한 그의 개인적인 체험이 깔려 있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역설적인 자유


참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이와 같이 믿음을 통해서 시작되는 ‘신나는 맞바꿈’이 가져다주는 혜택입니다. 우리를 끈질기게 옭아매는 죄의 감옥으로부터의 놓임, 무언가를 끊임없이 소유하고자 하는 탐욕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우리를 정죄하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가 그리스도와 믿음을 통해서 연합한 신자들에게 은혜로 주어집니다. 그래서 루터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 무엇에도, 누구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입니다. 그러나 루터는 이 자유를 우리의 게으름이나 악행에 대한 핑계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하게 경고합니다. 그는 우리가 의로워지기 위해서 선행을 해야 될 필요가 없다는 말이 결코 금식과 같은 육체적 훈련을 하지 않거나 선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오히려 참된 자유는 역설적으로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모든 것들과 모든 사람들을 종으로서 섬기게 합니다. 그리고 이웃을 위한 섬김의 수준 또한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과 같은 매우 높은 수준이어야 합니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관하여”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 …… 아버지는 풍성하게 흘러넘치는 자신의 소유들을 나에게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부어주셨다. 그래서 나는 그분이 아주 기뻐하실 일들을 자유롭게, 기쁘게, 그리고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이웃들과 관련하여서는 내가 그리스도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되셨던 바로 그 방식으로, 곧 내가 볼 때 내 이웃들에게 필요하고, 유용하며, 복된 것이라 여겨지는 것만을 행하겠다. 왜냐하면 난 믿음을 통해서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충분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Ⅲ. 27.)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영혼은 이제 이웃을 위해 내가 그리스도가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자신을 주셨던 그 방식으로, 나도 이웃을 위해 자신을 주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행하는 선행은 그리스도와의 일치가 삶으로 구현된 것입니다. 이 점에서 마르틴 루터가 믿음을 강조하여 선행의 중요성을 축소시켰고, 그래서 현재 개신교회가 말만 많이 하고 행함이 부족하다는 변명은 그 정당성을 상실합니다. 오히려 루터는 당시 중세 교회에서 개인의 구원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던 선행을 건져 올려, 그리스도와의 연합 가운데 살아가는 높은 수준의 삶으로 고양시켰습니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각종 부패와 악행으로 인해 사회로부터 지탄 받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개신교가 추앙하는 종교개혁자가 말한 ‘믿음’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구현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분투


이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이웃을 위해 온전히 자신을 바치는 아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자유를 누리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죄와 탐욕으로부터 참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신나는 맞바꿈’을 경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와의 연합 가운데서 ‘신나는 맞바꿈’을 경험하고 있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바른 믿음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기도 가운데, 그리고 일상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신비와 접촉하게 하는 바른 믿음을 갖고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신나는 맞바꿈’은 그리스도인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단 한 번 일어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앞서 인용한 글을 다시 떠올려 보면 루터는 “신나는 맞바꿈과 분투가 시작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연약하기에 아무리 바른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삶에서 죄의식, 우울, 슬픔, 두려움, 분노, 좌절 등을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나는 맞바꿈’이 계속해서 일어나기를 구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신나는 맞바꿈’은 “분투”이며(I. 12), 믿음은 “항상 증가되어야” 합니다(Ⅲ. 27). 그래서 루터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오,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나님! 당신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저희에게 굳건하고, 즐겁고, 감사로 가득한 믿음을 주시옵소서.

- 마르틴 루터, Luther’s Prayers (Minneapolis, MN: Augsburg, 1994), 85.


권혁일 / 미국 버클리 Graduate Theological Union에서 ‘기독교 영성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기독교 영성 고전 학당 ‘산책길’ (spirituality.co.kr)의 연구원이다. 영성과 문학, 영성과 사회정의, 수도원 영성과 현대 그리스도인의 삶 사이에서 길을 찾고 있다. Flowers of Contemplation: Peace and Social Justice를 지었고, 《제임스 게일》, 《베네딕트의 규칙서》 등을 번역하였다.



 '산책길'은 2013년 1월부터 기독교 월간지 <복음과 상황>에 '백투더클래식'(Back to the Classics)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의 목표는 영성고전에 담긴 지혜를 통해서 현대 교회와 사회를 조명하고 필요한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위의 글은 2013년 11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1. 이곳과 다음에 나오는 인용문들은 독일어본을 번역한 것입니다. 라틴어본은 참조하여 필요한 경우 해설에서 풀어내었습니다만 따로 표시하지는 않았습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바람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