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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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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속의 〈재의 수요일〉 그리고 〈흰 그림자〉 하늘이 유난히도 맑은 오늘은 우리 민족의 명절인 설날 연휴의 마지막 날이자, 기독교 전통 절기인 사순절이 시작되는 날이다.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참회하는 40일 간의 기간이며, 그 첫 날인 수요일에는 재를 이마에 바르며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유한함과 연약함을 되새기는 의식을 행한다. 그래서 이 날을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라 부른다. 그리고 재의 수요일과 관하여 아마도 가장 유명한 시는 T. S. 엘리어트(Eliot: 1888-1965)의 장편시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윤동주가 애독하던 시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작품이었다고 한다. 윤동주가 어떤 점에서 이 시를 사랑했는지는 알..
인간다움의 회복 : 한 해의 마무리와 시작을 위한 기도 안내 대림절을 시작으로 신앙력은 이미 한 해가 시작되었어요. 새해인 것이죠.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의 시간은 한 해의 끝자락을 향해 달려갑니다. 신앙력과 세상력의 사이에서, 우리는 전자에 의한 고요한 기다림과 출발보다는 후자가 주는 힘에 더 압도되는 것 같아요. 모임도 많고 마음도 분주합니다. 커다란 박스를 꺼내놓고 12월 31일까지 한 해의 모든 것을 다 쓸어 담고 테잎으로 서둘러 봉인해 버리는 듯합니다. 그리고 1월 1일을 장모가 사위 맞듯 그렇게 가슴만 두근거리는 채 일거리에 쌓여서 정신없이 맞아들입니다. 지난 한 해를 음미할 시간도, 새해를 조용히 가늠해볼 시간도 빼앗긴 채, 우리는 고속도로를 그저 질주합니다. 지나온 길에 대해 조용히 생각하며 방향과 속도를 조정하는, 즉 성찰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위협..
희망과 사랑처럼 : 대림절 그리고 윤동주의 〈사랑스런 추억〉 대림절(Advent). 기다림의 계절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일 기다린다. 버스나 지하철을 기다리고, 누군가의 전화나 편지를 기다리고, 용돈날이나 월급날을 기다리고, 학교나 직장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은 합격 통보를 기다린다. 그 외에 모든 이들은 어떤 좋은 소식을, 또는 그리운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런데 특히 한 해의 마지막이 되면 그 어느 때보다 기다림과 그리움이 깊어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성탄절이 있다. 저마다 성탄절을 기다리는 이유가 다양하겠지만,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대림절과 성탄절을 과거에 사람의 몸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장차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때로 삼아 왔다. 그러다보니 ‘오늘’은 ‘어제’와 ‘내일’ 사이에서 늘 소외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성탄 절기 속에 ..
테트리스 지금까지도 지속되는 고전 게임 중에 '테트리스(Tetris)'가 있다. 보통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블럭들을 회전시켜 블럭을 빈공간 없이 채우면 그 블럭들이 없어지도록 만들어진 게임이다. 블럭을 더 쌓을 곳이 없으면 끝나는 게임이기 때문에 블럭을 주어진 공간에 잘 회전시켜 넣어야한다. 이 게임과의 첫만남은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갔던 오락실에서였다. 그 때 테트리스를 열심히 했는데 최근 아이들이 내 스마트폰에다가 비슷한 류의 게임을 제멋대로 다운받아둔 참에 다시 몇 번 해보게 되었다. 게임을 하면서 나는 20여 년이 지났지만 놀랄 만하게도 변하지 않은 나의 습성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비어 있는 공간에 정확히 일치하는 블럭을 기다리는 내 모습이다. 만약 ㅁ자 형태의 공간이 있는데 ㄴ자 형태의 블럭이 ..
가을이 들어선 날 가을이 들어선 날 이번 가을은 예의를 갖추었다.한 걸음씩 조심스레 다가와얼굴을 붉히고 있다. 모든 변화와 변신에는 갑작스러움보다는 한 걸음 한 걸음조심스러움이 아름답다. 하루 아침에 다 바뀌었다고하루 아침에 다 바뀔거라고입에 침을 튀기며 말하는 이들이여거짓을 삼가고이 가을 앞에 침묵하라. 신앙은 기쁜 긴장감을 둘러메고 청정한 걸음걸이로 쉼 없이 걸어가는 길이거늘... 오래된 오늘 임 택 동
홀로된 너에게 여자 친구와 헤어 졌다고 금방 다른 여자로 그 자리를 채우지 말 것. 특히, 그 허전함 때문이라면 더욱 더. 연애는 쉬어서는 안 된다 거나, 그냥 한번 만나보자며 은근슬쩍 소개팅 자리로 끌려가지 말 것. 그렇게 아무 준비도 없이, 인연을 만들어 가지 말 것. 사람 사이의 관계는 까닭 없이 맺고 풀리는 것이 아니기에, 연을 맺을 때는 맺을 만한 이유를 충분히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풀렸을 때도 그 까닭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서, 앞선 관계, 즉 앞선 인연이 네게 전달해 주는 삶의 메시지를 다 들었다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어디 남녀관계의 인연만 까닭이 있겠는가?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것은 다 “까닭”이 있다. 특히, 네 존재 자체가 하나의 “까닭”이야. 네가 좀 머리 아파하고 늘 무슨 소린지 모..
오늘, 식사는 잘 하셨나요? 오늘, 식사는 잘 하셨는지요? 체중 감량해야 하는데 왕성한 식욕에 이끌려 오늘도 후회가 남는 식사를 하셨다구요? 요즘 밥맛이 통 없어서 모래알 씹듯 하시다구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해서 오랜만에 유쾌하셨다구요? 비즈니스 때문에 먹는 밥이라 가시방석이었다구요? 애들 밥 챙기느라 먹은 건지 전쟁 치른 건지 모르겠다구요? 오늘 저녁은 뭘 해 먹나 벌써 고민이라구요? 하루 두세 번의 식사, 그리고 사이사이에 먹는 음료와 간식. 우리는 참 많이 먹고 마시고, 거기에 기울이는 시간과 에너지도 상당합니다. 이 ‘먹는 것’과 영성 생활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요즘, 저는 ‘먹는 것’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느낌들, 특히 죄책감이 많이 올라오는 것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과식했을 때, 주부로서 식사를 잘 챙기지 못했을 때,..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_ 김준태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_ 김준태 1980년 7월31일 저물어가는 오후 5시 동녘 하늘 뭉게구름 위에 그 무어라고 말할 수 없이 앉아 계시는 하느님을 나는 광주의 신안동에서 보았다 몸이 아파 술을 먹지 못하고 대신 콜라로나 목을 축이면서 나는 정말 하느님을 보았다 나는 정말 하느님을 느꼈다 1980년 7월 31일 오후 5시 뭉게구름 위에 앉아 계시는 내게 충만되어 오신 하느님을 나는 광주의 신안동에서 보았다 그런 뒤로 가슴이 터질 듯 부풀었고 세상 사람들 누구나가 좋아졌다 내 몸뚱이가 능금처럼 붉어지고 사람들이 이쁘고 환장하게 좋았다 이 숨길 수 없는 환희의 순간 세상 사람들 누구나를 보듬고 첫날밤처럼 씩씩거려 주고 싶어졌다 아아 나는 절망하지 않으련다 아아 나는 미워하거나 울어버리거나 넋마저 놓고 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