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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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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필사를 통한 영성 훈련 올해 사순절을 시작하며 교회 성도들과 함께 영성 훈련으로서 전교인 성경필사를 시작했습니다. 성경 필사를 하기 전 몇 주에 걸쳐서 설교를 통해 성경 필사의 역사, 필사 할 때의 규율, 그 필사를 통해 전해 내려져 온 하나님의 말씀들을 먼저 나누면서 이것이 단지 '쓰고 모방'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전달하는 사명'이었다는 것을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수도원을 중심으로 필사를 통해 전해 내려왔던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손을 통해 전해 내려왔지만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거의 오류가 없이 전해 내려올 수 있었나를 함께 생각해 보았답니다. 한 글자라도 정확히 지키고자 했던 그런 엄격함과 정직함이 결국 필사자의 기본 자세라는 것이 성도님들의 입술을 통해 자연스럽게 고백되어졌습니다. "말..
하늘이 뿌연 날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었다. 대입을 앞에 두고 모든 것이 치밀하고 긴박하게 움직여 가는 고등학교 학사 일정, 거기서 뭍어나는 내신 경쟁을 피부로 실감하고 있다. 성적 일등이 아니고선 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참으로 굴욕적이고 비참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들의 소중한 아이들이 단지 성적 때문에 자기 자신과 타인의 고귀한 존엄성을 평가 절하하지 않기를 바란다. 첫 모의 고사를 마치고 “엄마, 이 학교에서 진짜 어렵겠어.”라며 눈물을 글썽이는 아이를 품에 꼭 안았다. “괜찮아. 대한민국 교육과정 시간표에 맞출 필요 없어. 하나님의 시간, 성령의 시간에 맞추자. 잘 될 거야.” 순간, 노르위치 줄리안의 “All shall be well.”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흑사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주현절 Epiphany - the blessing of the waters 성수(聖水)에 파리가 빠지면 성수가 더렵혀진다고 생각하는 건불신앙이다. 성수에 파리가 빠지면파리가 성화(聖化)된다. 거룩한 파리가 된다. 그 물에 빠지면모든 것이 거룩해진다. 만물이 성물(聖物)이 되며만인이 성도(聖徒)가 된다.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느님의 아들이 오셔서요단 강, 죽음의 강 물에 당신의 몸을 담그셨기에이제 세상에 거룩하지 않은 물은 없다. 성수는 도도히 흘러하느님의 집에서는 세례수가 되고 사람의 집에서는세숫물이 된다. 그 물로 깨끗이 씻어환히 빛나는 얼굴. 그 얼굴이 사람의 얼굴이다. 하느님의 얼굴 같은사람의 얼굴. / 이종태
힘을 다해 서로 위로합시다 '哀絶陽-남근 자른 일을 슬퍼하다'는 서글픈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 시절에 지은 것으로, 《목민심서》에는 이 시에 얽힌 사연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1803년 바닷가에 사는 가난한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채 사흘이 되지 않았습니다. 관아에서는 사흘박이 아이를 군포에 편입시키고 백성의 전 재산인 소를 빼앗아갔습니다. 악에 받힌 백성은 칼을 시퍼렇게 갈아 방으로 뛰어 들어 스스로 자신의 양근을 잘라버렸습니다. 다산은 “칼을 갈아 방으로 가 피가 자리 가득하니 자식 낳아 곤액 당함 한스러워 그랬다오.”라며 백성의 마음을 시에서 묘사했습니다."자식 낳아 곤액당함 한스러워 그랬다오."라고 울부짖는 바닷가의 한 백성과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시대’ 청춘들의 우울함은 어딘가가 닮아..
죽을 생각을 하고 살면 - 스데반의 순교 축일에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사도행전 7:59-60) 12월 26일, 초대 교회의 집사였던 스데반의 순교를 기리는 날이다. 성탄절 다음 날인 12월 26일이 초대 교회의 첫 순교자 스데반 집사의 축일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쁨이 가시지 않은 조용한 아침, 생명의 탄생과 더불어 순교자의 죽음을 묵상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듯 하지만 어찌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삶과 죽음은 똑같이 하늘의 영광을 가리킨다. 바로 전장에서 사도들을,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해 초대교회의 집사로 임명된 스데반은 뜻밖에도 사도들처럼 기사와 표적을 행하다가, 대제사장 앞에서 ..
정의를 비처럼 내리게 하라 (Roráte Caéli-대림절 찬송) 너 하늘들아, 위로부터 이슬을 내려라. 그리고 구름들이 정의를 비처럼 내리게 하라!Roráte caéli désuper, et núbes plúant jústum.- 대림절 찬송 "Rorate Caeli"에서 지금 미국 캘리포니아에는 오랜 가뭄 끝에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수 년 동안 가뭄을 겪으니 이 노래에 담긴 기다림이 얼마나 간절한지 좀 더 마음에 와닿는다. 이 노래는 아주 오래전부터 독일어권의 교회들을 중심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그레고리안 성가(Gregorian chant)이다. 주로 대림절(Advent)에 가톨릭 교회에서 불려졌으며 메시야의 오심을 대망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모두 4절로 이뤄져 있으며, 이사야 45장 8절의 라틴어 번역(Vulgata)에서 가져온 첫 구절(위의 인용구)이 후렴구..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 고통에서 건져 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라, 그 분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하나님 사랑을 위해 결연히 감당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구하십시오. - 로렌스 형제 (1605-1691) 지음, 오현미 옮김《하나님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좋은 씨앗, 2006), 114. 남들이 들으면 이상하다고 하겠지만 난 군대 생활이 좋았다. 무질서 하던 대학 새내기 생활을 뒤로하고, 규칙적인 삶과 규칙적인 식사 속에서 난 내 몸이 처음으로 건강해져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처음 몇 주간은 죽을 것처럼 힘들었다. 눈동자 하나라도 흔들리면 바로 장교들이나 고참들의 소리와 물리적인 압박이 가해져 왔다. 훈련소에서 처음 행군 나가서 몇 주만에 전혀 다른 세..
결혼하는 벗들을 위한 기도 '영성지도'를 받는 '피지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나는 참으로 긴장이 많은 사람이었다. 면담실 긴 복도를 걸어갈 때 올라오는 긴장감, 가슴이 두근거리다가 터질 것 같은 그 느낌을 인지하는 것이 30일 피정 내내 큰 과제 중의 하나였다. 그 후에도 일상에서의 삶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받는 영성지도 면담을 앞두고 우황청심환을 먹은 적도 있으니, 돌이켜 보면 빙그레 웃음이 난다. 영신수련의 특징이자, 나의 경험상 어려운 부분이 일대일 면담이다. 대다수의 일반적인 사람들은 '수련' 자체의 어려움과 '일대일 면담' 에 대한 부담 때문에, 영적 여정을 심도 있게 걸어가지 못하는 것 같다. 때가 아닐 수도 있고, 또 영성지도자와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 경험상, 이 모든 것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