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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목회

목사는 언덕 위에 서는 사람 (조지 허버트)

목사는 여가 시간에 활동에서 벗어나 언덕 위에 서야 한다. 그는 거기서 양떼를 생각하며 두 종류의 악과 두 종류의 악한 사람들을 발견한다.


- 조지 허버트 (George Herbert: 1593-1633), 《시골 목사(The Country Parson), 제24장.


많은 현대인들이 그렇지만 보통 지역 교회(교구)를 섬기는 목회자는 참 바쁘다. 특히 조지 허버트가 살던 17세기 영국의 지역 목회자들은 종종 자신의 교구에서 의사 또는 법률 대리인의 역할도 담당해야 했기에, 그들이 '해야할 일 목록'에는 참 많은 것들이 올라가 있었다. 허버트에 의하면 이런 바쁜 일상 중에도 목회자가 반드시 해야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분주한 매일의 생활 공간을 벗어나 "언덕 위에" 서는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섬기는 교인들 사이에 있는 은밀한 악을 성찰해야 했다. 


허버트는 '간음'이나 '살인'과 같은 악덕은 사람들의 눈에 명백하게 드러나지만, '탐욕'과 '식탐'은 그 시작이 불명확하고 속이는 성격이 있어서 자세히 성찰하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은 탐욕에 대한 설교를 듣고 탐욕을 정죄하면서도 실제로는 탐욕에 사로잡힌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이런 불명확한 악덕들에 대한 정확한 식별 기준을 익히고, 사람들을 지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목사가 불필요하게 넓고 사치스러운 집을 산 교인의 집에 이사 예배를 드리러 가서, 그 교인에게 좋은 집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집을 '축복' 함으로써 그 사람의 탐욕을 합리화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고 말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탐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무엇보다 목회자가 먼저 자신의 내면을 엄밀하게 성찰하고 정결한 상태를 지켜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은밀한 악덕에 지배당하는 목회자가 '양떼'를 바른 곳으로 인도할 수 없다. 심한 경우에는 에스겔 선지자가 경고한 것처럼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양떼를 잡아 먹는 거짓 목자가 되고 말 것이다(에스겔 22:23-31).


허버트가 성찰과 식별을 위해 제시한 공간은 '언덕'이다. 언덕에 오르게 되면 자연적으로 일상생활로부터의 '거리'가 형성된다. 낯익은 것으로부터의 '거리두기'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낯익은 대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하고, 이전에 깨닫지 못하던 것들도 발견하게 한다. 허버트가 말한 언덕 위는 이런 '창조적인 거리' 속에서 자기 자신과, 그리고 자연 속에 임재하신 하나님과 대면하는 공간이다. 또한, 언덕 위에 오르면 자신이 목회하는 교구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도 얻을 수 있어, 목회자가 보다 넓은 시각으로 자신이 섬기는 교인들을 깊이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언덕 위에 서는 이들에게 주님은 하늘의 구름처럼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모습을 가진 우리 내면의 생각과 움직임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실 것이다.


조지 허버트의 책 The Country Parson에서 말하는 목회자는 주로 지역의 교구를 섬기는 목사들이다. 당시 영국의 지역들은 대부분 전원적인 환경 속에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목회자들이 마을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도시에 위치하고 있고, 지역에 대한 조망을 얻을 수 있는 언덕을 찾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목사는 언덕 위에 서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허버트의 조언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의 목회자는 '각자의 언덕'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여가 시간을 게으르게 보내거나, 개인적으로 또는 동료 목회자들과 몰려 다니며 자신의 즐거움을 좇는 데에 사용하지 말고, 주기적으로 바쁜 목회 활동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의 언덕' 위에 올라야 한다. 그곳에서 자신과 교인들과 하나님을 정직하게 대면해야 한다. / 권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