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기도란 무엇인가? (사막교부들의 금언)



"순수한 기도란 무엇인가? 말은 간단하지만 행동은 풍부한 기도이다. 만일 그대의 행동이 청원을 능가하지 못한다면, 그대의 기도는 말에 불과하며, 그 안에 행동이라는 씨앗이 들어 있지 못하다."

 

-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에서. Sayings of the Desert Fathers in The Paradise or Garden of the Holy Fathers, vol. II (Chatto & Windus: London, 1970), p. 331.


posted by 새결새김

삼위일체가 지닌 다양성 내의 통일성 (닛사의 그레고리)

성부 없이 성자를 생각할 수 없고, 성자로부터 성령을 나눌 수도 없다. 세 위격 사이에는 인간의 말이나 이해를 초월하는 공유(sharing)와 구분(differentiation)이 있다. 위격들 사이의 구분은 본질의 하나니됨을 손상시키지 않으며, 공유하는 본질의 통일성 때문에 각 위격들의 특성들이 혼동되지도 않는다.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의 신성은 통일된 것인 동시에 분화된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통일성 내의 다양성과 다양성 내의 통일성이라는 이 기이하고 역설적인 것을 수수께끼를 사용하여 직시한다.

닛사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Nyssenus, c.335-395), On the Difference between Essence and Hypostasis 

그레고리는 삼위일체의 교리가 역설적이며 언어와 이해를 초월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고심한다. 그것은 우리의 이성에 의해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로는 그것을 넌지시 암시할 수는 있지만 완전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우리의 추리력은 하나님 주신 은사이며,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사용해야 하지만, 그것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삼위일체는 철학적인 이론이 아니라 우리가 예배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삼위일체에 접근함에 있어서, 논증이나 분석이 말 없는 기도에 양보해야 하는 지점에 이른다. “모든 유한한 육체여, 잠잠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서라”(The Liturgy of St, James).  (칼리스토스 웨어, 《정교회의 길》, 48).



posted by 새결새김

삼위일체의 인장 (칼리스토스 웨어)

피조된 모든 것에는 삼위일체의 인장이 찍혀 있다.

칼리스토스 웨(Kallistos Ware, 1934- , 동방정교회 감독), 《정교회의 길》(The Orthodox Way), 엄성옥 옮김(은성, 1999), 54.


성부와 성자와 성령, 이 성삼위께서는 단일한 의지와 에너지를 공유시며 늘 함께 일하신다. 성 이레니우스(St. Irenaues)는 성자와 성령을 성부 하나님의 두 손이라고 말한다(Against the Heresies, IV, xx. 1). 성부께서는 창조적이고 성화시키는 행동을 하실 때에 이 두 손을 동시에 사용하신다(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33:6). 성부 하나님은 말씀, 곧 로고스( 2 위격, 성자 그리스도), 그분의 ”, 즉 성령( 3 위격)을 통하여 천지를 창조하신다. 아버지의 두 손은 우주를 형성할 때에 함께 일한다. 로고스에 대해서는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라고 기록되었고 (1:3), 성령에 대해서는 태초에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1:2)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하여 피조된 모든 것에는 삼위일체의 인장이 찍혀 있다 (웨어, 《정교회의 길》, 53-4).

posted by 새결새김

부활을 믿는다는 것 (비트겐슈타인)

    부활을 믿는 것은 사랑이다.


-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Ludwig. Wittgenstein, 1889-1951), Culture and Value: A Selection from the Posthumous Remains, trans. Peter Wintch (Malden, MA: Blackwell, 1998),  39.


"부활은 현 세계 안에서 일어난 매우 독특한 사건이 아니다. (비록 그런 면이 있기는 하지만……) 부활은 원칙적으로 예수님과 함께 탄생하게 되는 새로운 창조 세계의 결정적 사건이다. 우리가 이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는 것은 둘째 치고 그것을 잠깐 보기만 하려해도 우리에게는 다른 종류의 앎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를 새로운 방식으로 참여시키는 앎, 객관적 자세로 연구하는 유사 과학 연구의 냉정한 평가만이 아니라 전(全)인격적으로 참여하고 개입하는 인식론이 필요하다. 그러한 인식론을 가장 잘 요약해서 표현한 말이 ‘사랑’이다. …… [이러한 새로운 앎은] 아는 자와 알려지는 대상,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대상의 부드럽고도 신비로운 공생을 통해서 얻어진다. …… 사랑은 가장 깊은 앎의 방식이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 아닌 그 실재에 완벽하게 관여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이 아닌 그 실재를 확인하고 축하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 새로운 공공 세계, 부활절에 시작된 세계, 예수님이 주이시고 카이사르가 주가 아닌 세계에서 살게 될 사람들에게 필요한 앎의 방식으로 대두되는 것이 바로 사랑의 인식론이다."(톰 라이트(N.T. Wright),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Surprise by Hope)》 (IVP,2007), 136-37). 

/ 남기정




posted by 새결새김

위대한 영적소명은 연대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위대한 영적 소명은 남들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동일한 실체와 존재가 되는 것, 남들과 하나가 되는 것임을 나는 드디어 깨달았다. 조금이라도 튀어 보일까싶어 삶의 주변부를 헤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중심부로 들어가는 것이 나의 소명이다. 거기서 모든 인간과 연대하게 된다.

- 헨리 나우웬(Henri Nouwen, 1932-1996), 《두려움에서 사랑으로》(서울: 두란노, 2011) , 142.


   



posted by 진정한 열망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

"인생아 기억하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예배


posted by 산처럼

영적 변화와 일상적 의무 (C. S. 루이스)

 


네, 저도 동의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사람이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건 보통 자기 자신이라는 것 말이지요. 하지만 사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바꿀 수 없습니다! 주님께 간청할 수 있을 뿐이지요. 간청한 다음에는 성례, 기도, 평범한 생활규칙 준수 같은 평상시 의무들을 계속 행해 나가야 합니다.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해 너무 야단을 떨면 안 됩니다. 1955. 11. 9


C. S. 루이스,《루이스가 메리에게》 (이종태 옮김, 홍성사)

posted by 산처럼

하늘로 가득한 땅

하늘로 가득한 땅, 

떨기마다 하나님으로 불붙어 있건만. 

오직 눈 밝은 이만이 그 앞에서 자기 신을 벗나니...


Earth’s crammed with heaven,        

And every common bush afire with God;        

But only he who sees, takes off his shoes,        


- Elizabeth Barrett Browning,  'Aurora Leigh'  -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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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산처럼

영성 고전의 힘 (필립 쉘드레이크)

  • '긍정'해주고 즐겁게(entertain) 해주는 말들 홍수인 세상에서 진리주장과 헌신요구가 담긴 텍스트를 마주한다는 것은 분명 도전이다. 그 자체가 훈련/연습이다--하나님 임재 연습.

    BlogIcon 산처럼 2012.11.11 13:13 신고

영성 고전들은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 힘이 가진 중요한 측면 중의 하나는 그것들이 헌신된 글들(committed texts)이라는 점이다. 영성 고전들은 성서와 매우 비슷하게 사건들, 사람들 또는 교훈들에 대한 특별한 해석을 제공한다. 모든 영성 고전은 그것이 계승하여 발전시키는 전통에 대한 특정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영성 고전을 해석할 때에 불가피하게 이러한 헌신과 맞물리게 된다. 우리는 이와 같은 글들 속에 표현되어 있는 지혜에 대한 요구 — 사실상 ‘진리’(a vision of ‘truth’)에 대한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


Philip Sheldrake, "Interpretation" in The Blackwell Companion to Christian 

Spiritualityedited by Arthur Holder (Malden, MA: Blackwell Publishing, 2005), 465. 

권혁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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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연필

말씀의 샘

  • 성서는 하나님의 이야기,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만나는 말씀의 샘이며, 설교자, 작가, 학자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는 말씀의 샘에서 길어 올려야 영혼을 시원케 하는 살아있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BlogIcon 바람연필 2012.11.04 01:21 신고


교회 안에서 가시적인 직무를 맡은 사람들이 <거룩한 독서>로 양성되지 않거나 말씀의 샘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강론과 교도권과 사목의 분야에서 수필류의 글이나 친숙한 교과서적인 인간으로 드러나게 된다. 확신도 없을 뿐더러, "강하고 권위있는" 말 한마디 내놓지 못하면서 율사들처럼 말하기 좋아하는, 문제의 소지가 있는 인간으로 드러난다. 자기가 선포하고 있는 복음을 자주 부끄럽게 여기면서 말이다. 귀기울여 듣고 받아들이고 간직하고 묵상한 말씀만이 해방의 결단, 선구적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예언자를 창조한다. 이때에 비로소 이 세상과 인류에 충실하며 우리에게 하나님을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이 창조되는 것이다!


엔조 비앙키,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이연학 옮김, 분도출판사), p.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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