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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묵상

잘 먹고 잘 입는 것보다 중요한 것 (손양원)

사랑하는 양순 씨에 회답


…… 나는 내년에 졸업해도 절대 예금이나 논밭을 살 계획은 하지 않겠습니다. 부모와 형제를 구제하기도 부족이 많을까요? 내가 지금 아무리 학비에 이같이 군속[묶여 있는 것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게 어려움]을 당하고, 집안에 아버지와 아내와 자식이 굶주려도, 하나님의 진리를 어기면서 잘 먹고 잘 입고 살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손양원 (1902~1950), "부인 정양순 사모에게 보낸 편지1" 《손양원》

(홍성사, 2009), 128-29.


이 글은 손양원 목사가 1937년 경 평양신학교에서 공부할 때에 고향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들을 키우며 살림을 꾸려나가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 중의 한 구절이다. 편지 곳곳에 아내와 가족들에 대한 애정이 묻어 있고, 어려운 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들어 있어 글을 읽을 때에 가슴이 찡해진다. 


그러면서도 손양원 목사는 공부를 마치고 난 후에서도 학력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부를 축적하거나 추구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이 굶주리더라도 자신과 자신의 가족은 하나님의 진리에 따라 바르게 살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오래 공부하다 보면,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사소한 불법이나 편법은 행해도 되지 않나'라는 유혹도 받고, 공부를 마친 후에 고생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그러나 손양원 목사는 오늘 우리에게 공부(학위)를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수단으로 삼지 말라고 말한다. 진리를 벗어나는 삶, 또는 부정직하게 사는 삶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핑계 삼지 말라고 당신의 삶으로 강력하게 말한다. / 바람연필



* 손양원 목사는 일제시대 때에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신앙을 지키다가 수년간 투옥되기도 하였고, 해방 후 여순 사건 때(1948년) 자신의 두 아들을 살해한 원수를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아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여수 애양원에서 한센병 환우들을 보살피고 섬겼으며, 1950년 한국전쟁 때에 공산군이 밀려내려오는 중에도 도망가지 않고 교회와 교인들을 지키다가 순교한 그는 한국교회의 영적 거장 중의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