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밍엄 감옥에서 온 편지 (마틴 루터 킹, Jr.)

한 줄 묵상 2014.01.01 06:18

오늘의 교회가 초대 교회의 희생 정신을 되찾지 못한다면, 교회는 세상에서 그가 지녀왔던 권위를 잃어버릴 것이며,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충성도 또한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세상에서는 아무런 의미 없는 하찮은 사교 클럽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버밍엄 감옥에서 보내는 편지(Letter from Birmingham Jail)” The Atlantic Monthly (August 1963), The Negro is Your Brother 212, no. 2, 78-88.

 

    이번 성탄절을 지나면서 우연히 킹 목사님이 쓰신 "버밍엄 감옥에서 보내는 편지(A Letter from Birmingham Jail)"를 접하게 되었다. 그분의 글을 읽고 보니, 악의 속박에서 우리를 건져내시려고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 속에 임하신, 주님의 성탄의 깊은 뜻을 한층 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1 15일이 킹 목사님의 생일이라는 사실도 새삼 기억이 났다. 그래서 목사로서의 그분의 삶을 상기하면서 이 편지글을 꼼꼼히 곱씹어 가며 거듭 읽어 보게 되었다. 이 편지는 킹목사님이 1963년에 미국 남부의 알라바마 주의 버밍엄 시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 철폐와 투표권 보장을 위해 벌이다 체포된 후, 그 도시의 감옥에서 쓴 것이라고 한다. 이 편지는 당시 8명의 백인 목사들이 킹 목사님의 비폭력 운동을 "시의 적절치 못하고, 어리석은" 것이라고 비판한 것에 대한 대답으로 쓴 공개 서신이었다

 

     크게 크게 내 마음을 울리는 킹 목사님의 여러 말씀 중에서도 이 글 머리에 인용된 구절이 가장 날카롭게 가슴을 두드린다. 킹 목사님은 그의 편지의 말미에서, 정의를 요구하는 흑인 인권 운동에 미온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던 당시의 미국 남부의 교회들, 정의를 요구하는 킹 목사님의 시민 불복종 운동을 "복음과는 관계 없는 사회적 이슈들"이라고 평가절하하려는 그 교회의 지도자들을 향해 이러한 예언자적 선포를 했다. 지금 우리 교회가 초대 교회의 희생 정신을 되찾지 못한다면, 교회는 오늘날에는 별 의미가 없는 사교 클럽 같은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이 말은 오늘 우리들도 귀담아 들어야 할 하나님의 경고로 들린다.


 
   오늘의 교회들이 회복해야 할 초대교회의 희생 정신이란 어떤 것인가? 킹 목사님은 이 편지에서 이 점을 분명하게 적시한다. 그것은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들이라고 인정받던신앙인의 모습이다. 킹 목사님은 이런 초대 교인들에게는 "한 사회의 관행과 관습을 바꾸어 내는 변화의 능력"이 있었음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이런 희생적 신앙은] 가는 곳마다 그곳의 권력 구조를 흔들어 놓았으므로, 초대 신앙인들은 사회의 안정을 깨뜨리는 사람들이라, “외부로부터 온 낯선 선동자들이라고 고발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으로서 행동하는 사람들이었으므로, 사람의 말에 복종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희생적 신앙 실천은 결국 유아 살해의 문화에 종지부를 찍었고, 굶주린 맹수들 앞에 그들을 던졌던 잔혹한 문화도 종언을 고하도록 하였다.

 

이런 킹 목사님의 말들은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오늘의 시대 상황에서 신앙 실천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모색하는 중에 전광석화같이 번뜩이는 통찰을 선물한다. / 남기정.

posted by 새결새김

내 집을 고쳐라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한 줄 묵상 2013.11.27 07:57

"프란치스코, 가서 내 집을 고쳐라. 내 집이 완전히 폐허가 되어 가고 있단다."

 

-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Francis of Assisi, 1181-1226),  Francis and Clare: The Complete Works, Classics of Western Spirituality (New York: Paulist Press, 1982), 3.

 

유학을 와서 제일 처음 들었던 수업이 바로 프란치스코의 삶에 대한 수업이었다영성 전공으로 왔지만 기독교 영성의 역사에 문외한 이었던 나에게 그나마 들어본 이름이 프란치스코였다그러나 그의 삶그의 회심그의 영성어느 것 하나 난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 19:21)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 9:3)"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 16:24) 


프란치스코는 항상 이 세 가지 본문을 마음에 새기고끈기 있고 한결같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았다그의 영성은 단순하게 말하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었다. 프란치스코에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곧 자원하여 가난을 택하여 겸손히 교회와 이웃을 섬기는 삶이었다

 

     프란치스코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가난"을 자원한다는 그의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 가난해야 한다는 소리를 한국에서 들은 적이 있었던가? 가난은 죄의 결과이며 게으름의 결과로 듣지 않았던가! 가난함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을까점차 프란치스코를 이해하게 되면서도 여전히 남는 걱정은 과연 그의 영성이, 물질적인 축복이 곧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개신교인들에게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프란치스코가 살았던 세계는 자본주의의 태동기라 할 수 있는 시대였다봉건제도가 균열되고 화폐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신분제도도 변화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물질적인 추구가 점점 극렬해지는 시대에 교회는 점점 타락해가면서 프란치스코가 경험한대로 폐허가 되어 가고 있었다성 다미아노 성당의 십자가 아래에서 기도하던 중 프란치스코는 "내 집을 고쳐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그는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가 입던 옷과 가진 것들을 팔아 폐허가 된 교회를 수리하기 시작한다이것이 그의 수도자적 삶의 시작이었다그는 평생 '가난'을 외치며 교회를 '수리'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본받기 위해서 교회가 아닌 그에게로그가 속한 공동체로 모여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프란치스코가 외친 가난을 통해 물질과 성공과 욕심으로 폐허가 된 교회들을 수리하는 데 동참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라 하는 한 노 목사님의 헌금으로 네 믿음을 증명해보라는 식의 외침과 가난을 통해 폐허가 된 교회를 고쳐라하는 프란치스코에게 들린 하나님의 음성이 묘하게 귓가에 맴돈다. /정승구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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