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의 가장 완벽한 규칙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한 줄 묵상 2015.06.23 09:34

그리스도교의 가장 완벽한 규칙, 정확한 정의, 절정은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사람이 이웃의 구원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을 수는 없다.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Johannes Chrysostomus). 칼리스토스 웨어(Kallistos Ware, 1934- )의 《정교회의 길》(The Orthodox Way), 엄성옥 옮김(은성, 1999), 60쪽에서 재인용.


칼리스토스 웨어는, 여기에 인용한 크리소스토무스의 말이 삼위일체의 교리가 지닌 실질적인 함의(含意)이며, 이것이 삼위일체의 삶을 산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라고 말한다. 곧, 그리스도인으로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성과 일치하는 삶을 사는 것은 이웃의 구원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웨어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심을 알기 때문에, 각기 상대방을 위해서 그리고 상대방 안에서 희생적인 삶에 헌신한다. 우리 각 사람은 실질적인 봉사, 적극적인 긍휼의 삶에 헌신한다.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 때문에, 우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부터 고도로 조직화된 차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차원에서 온갖 형태의 학대와 불의와 착취에 대적하여 싸워야 할 의무를 가진다. 사회 정의와 인권을 위한 싸움에서, 우리는 특별히 성삼위일체의 이름으로 행동한다.” / 남기정

 


posted by 새결새김

긍휼의 영성에 눈뜨다 (존 울먼)

한 줄 묵상 2014.10.19 12:34

이번 여행에서 두 가지가 내 마음에 각인되었다. 첫째, 노예들의 고된 노동의 댓가로 편안함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의 집에서 기거하고, 먹고, 마실 때마다 내 마음에 불편함이 계속해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 둘째는, 노예를 수입하고 거래하는 무역이 성행하고, 그에 따라 상응하는 노동없이 여유있게 사는 백인들과 그의 자녀들에 대해 나의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는 것이다. …… 이 내적 고민은 한두 번이 아닌, 내 마음에 고정된 문제가 되었다.


- 존 울먼(John Woolman: c. 1720-1772), 《Journal of John Woolman》, chapter 2. 


    신실한 기독교인이라 자부하며 신앙 생활을 하던 학창 시절, 사회불안을 조장하고, 폭력을 일삼는 노동자들과 대학생들에 대해 나는 신앙의 이름으로 그들을 비판하고 정죄하길 일삼았다. 사회문제와 그로 인한 갈등과 긴장은 내 신앙적 세계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훌륭한 신앙인은 사회문제와 그로 인해 야기되는 갈등과 긴장으로부터 초연하고 거리감을 두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믿어왔다. 어릴적 내게 있어서 사회문제와 신앙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위의 인용문은 미국의 초기 퀘이커 교인인 존 울먼이 자신의 일기에 노예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남긴 첫 번째 기록이다. 미국 동해안 중남부 도시의 영적 공동체를 순회하면서 보게 된 사회현상이 그의 마음에 부딪혀 왔고, 이에 대한 그의 고민이 깊어져 갔다. 존 울먼은 한 평생 노예 제도라는 사회 억압 구조의 폐지를 위해 헌신했는데, 그 시작은 이와 같이 참으로 미약하고 단순한 인식과 행동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억압과 압제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고, 그들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것을 기도로 옮겼다. 고통에 대한 최초의 인식과 그에 대한 긍휼의 마음은 신학적 이해 이전에 존 울먼의 영혼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의한 사회구조에 기대어 부당한 이익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적어도 그들이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이런 억압과 폭력을 일삼아서는 안 된다는 원초적 깨달음에서 그의 기도는 시작되었다. 그의 일생의 소명은 그렇게 고통받는 자들에 대한 긍휼의 마음에서 시작하였다. 이천 년 전 억압적 사회구조에 고통당하고 있던 유대인을 긍휼히 여기셨던 예수님처럼. 

    정의, 형평성, 사회 안전망에 대한 시대적 요구와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는 이 시점에 존 울먼은 우리에게 직설적으로 묻는 듯하다이웃과 지체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방관자가 되어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의 양심은 충분히 선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추구하고 있는지, 혹 우리와 그들의 고통이 사회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어떻게 기도하고 반응할 지에 대하여 말이다. 존 울먼은 긍휼의 마음으로부터 우리의 영성 생활을 시작하자고 초대한다. 이웃과 지체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기도로 옮기자고. / 이주형









posted by 구름위 햇살

공감을 넘어서 긍휼로: 안토니우스의 생애

백투더클래식 2014.09.01 18:01

공감을 넘어서 긍휼로:

안토니우스의 생애 


고통하는 이웃

     “환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미치는 것조차 여의치 않은 내 강철 같은 신경이 싫고 창피스럽다. 그러나 미치기 위한 노력도 안 하고 어떻게 맑은 정신으로 긴긴 하루를 보낼 수 있단 말인가.” 스물여섯 살의 젊은 의사였던 아들을 잃고서 자신의 피 끓는 심경을 토해놓은 소설가 고 박완서의 에세이 《한 말씀만 하소서》의 한 구절이다. 참척을 당한 어미의 깊고도 깊은 절망과 좌절감이 그대로 뼛속 깊이 전해져 올 때는 필자의 둘째 딸이 치명적인 병으로 인해 두 번째 골수이식을 마칠 즈음이었다. 이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주 들었던 말들 중의 하나가 “하나님께서 더 크게 쓰시기 위해서” 딸에게 고통을 주셨다는 말이었다. 위로 차원에서 던져진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위로보다는 오히려 기분이 언짢아짐을 경험했다. 더 큰(?) 신앙의 인물로 쓰시기 위해 자식을 오 년이 넘도록 죽음의 그림자 아래에서 눈물과 가슴 졸임으로 지내게 하신다는 하나님을 믿고 싶지도, 또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런 분이실까?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것처럼 ‘크게’ 쓰이지 않아도 좋으니, 사랑하는 딸이 죽음의 늪에서 하루 빨리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지난 세월호 사건을 통해 참척을 당한 유족들의 눈물과 절규가 누구보다도 더 고통스럽게 내게 다가와 일상의 삶이 완전히 정지될 정도였다. 그즈음 어느 대형교회 목사가 강단에서 “하나님이 공연히 [세월호를] 이렇게 침몰시킨 게 아니다. 꽃다운 애들을 침몰시키면서 국민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설교한 것을 들었을 때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명목으로 이와 유사한 발언들이 공공연히 한국교회에서 회자되었던 것을 가슴 아프게 기억한다. 신정론이란 신학의 이해의 폭을 제쳐두고서라도, 박완서가 “주변 사람들의 아무리 사려 깊은 위로일지라도 그것이 모진 고문이요, 견디기 어려운 수모”라고 토로할 만큼 극한의 고통과 좌절감 속에 있는 부모의 심정에 조금이라도 공감을 했다면 이런 설교와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질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신음하는 이웃들의 고통을 공감하기 전 졸렬한 신학이 먼저 그들에게 손을 내 민 것이다. 조금 비약하자면,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잡아 먹어버려 공감능력이 상실되어 버린 것이다. 교회 강단에서 성육신과 십자가라는 예수의 타자를 향한 사랑의 정신은 실존적으로 거부를 당한 것이다.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이 《삶과 거룩함(Life and Holiness)》이란 책에서 “이웃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사랑’은 꾸며 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한 대목이 가슴 아리게 다가온다. ‘공감(empathy)’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주장이나 감정 그리고 생각 따위에 찬성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이웃의 고통과 필요에 대하여 견지해야 할 신앙의 태도가 단지 공감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그렇지 않다. 공감과 더불어 긍휼(compassion)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한다.


안토니우스의 긍휼의 삶

   긍휼이란 이웃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에서 출발해서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심지어 이웃을 위하여 스스로 위험까지 감수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성육신과 십자가 사건은 긍휼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서 긍휼이 시작된다는 것은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게 됨으로써 마음이 요동하고, 마침내 그들을 도와줄 방도를 찾아 움직이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긍휼은 단순히 인식된 상태만을 의미하는 공감과는 구분된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수많은 신앙의 영웅들이 ‘그리스도를 닮아감(imitatio Christi)’이란 덕 안에서 긍휼의 삶을 살았음을 보게 된다. 수도자들의 아버지라고도 일컬음을 받으며 엄격한 금욕생활을 했던 안토니우스(Antonius of Egypt, ca.251-ca.356)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비록 수도생활을 위해 이웃들을 등지고 사막으로 들어갔지만, 그는 사회와 단절되지 않았고 긍휼이 넘치는 삶을 살았음을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5-373)가 기록한 책 《안토니우스의 생애(The Life of Antony)》가 증거 해주고 있다. 그 한 예가 다음과 같이 서술되고 있다.

그들[각주:1]은 안토니우스에게 자신들을 방문해 줄 것을 간청하면서, 단지 그를 보기만 할 것이라고 하였다. 안토니우스는 그 부탁을 거절하면서 그들에게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들은 끈질기게 매달렸고 심지어 그의 마음을 움직여 산에서 내려오게 하려고 군대 감옥에 구금되어 있는 사람들을 보내기까지 하였다. 이들의 탄식과 필요를 보게 되자 안토니우스의 마음은 요동했고 마침내 그는 산에서 내려왔다. 이번에도 역시 안토니우스의 애씀은 무위로 끝나지 않았다. 그의 당도함은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과 혜택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 《안토니우스의 생애》, 84장

     안토니우스의 초미의 관심은 금욕 생활을 통한 영성 훈련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이웃들의 필요와 슬픔 앞에서는 자신을 위한 그 굳은 갈망도 눈 녹듯 녹아내렸다. 예수를 닮아가고자 하는 안토니우스의 수행은 영적인 엑스터시(ecstasy) 체험이나 사막의 수실(壽室)과 수도공동체에서만 인정받고 통용되는 갇혀버린 창백한 영성이 아니라, 이웃의 눈물 앞에서 마음이 요동하며 자기 신앙의 어젠다(agenda)를 내려놓게 되는 열리고 살아있는 영성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비록 수행의 삶을 위하여 사람들을 피해서 거처를 옮겨 다니며 홍해 인근 깊은 광야로 들어갔지만, 그 후에도 안토니우스는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했음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도움을 찾아 그를 만나러 왔고 또 자신도 간혹 도시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그의 수행의 삶이 얼마나 이웃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는지는 그의 초기 수행의 삶을 묘사한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또래 사람들에 대하여서 경쟁적이지는 않았지만, 유일한 예외가 있었는데 그것은 도덕함양에 있어서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했던 연유는 다른 사람들 아무도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그로 인해 기쁨을 누리게끔 하려는 데 있었다. 

- 《안토니우스의 생애》 4장.

     사실 아타나시우스가 저술한 책 《안토니우스의 생애》는 안토니우스의 이웃을 향한 긍휼의 삶에 주된 초점을 둔 책은 아니다. 당시 기독교 내부에서 가장 큰 쟁점의 대상이었던 아리우스파에 대한 견제 및 대항적 요소가 곳곳에 배어있고, 또 안토니우스의 삶에 대한 소개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전형 및 수도자들의 본을 제시하려는 데 중점을 두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후일 수많은 수도자들에게 영향을 주었음은 물론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인물의 영성 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책 안에는 금욕적 삶을 기반으로 기도에 매진하는 일, 영을 분별하며 사탄을 대적하는 일, 그리고 일반 사람들의 필요와 고충을 해소시켜 눈물을 닦아주는 일 중에서 어느 편이 더 영적이고 그리스도인다운 일인지 전혀 구분하지 않는다. 고 권정생 선생은 이렇게 얘기한다. “수십만 명이 모이는 교회를 만들어도, 인간에게 따뜻한 정(사랑)이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 박사학위를 받아도, 이런 소박하고 지극히 작은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들의 하느님》, (서울: 녹색평론사, 2008), 20).



공감을 넘어서

     큰 교회를 목회한다고 해서, 신학지식이 많이 축적되어 있다고 해서, 영성 훈련을 몇 가지 알고 받았다고 해서, 영성 관련 책자들을 접하여 새로운 지식이 생겼다고 해서 이웃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긍휼이 없어도 크게 문제시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긍휼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추구해야 예수의 길이 바로 다름 아닌 긍휼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의 대표적인 영적 활동들 중의 하나인 기도의 삶과 긍휼의 삶의 연관성을 헨리 나우웬(Henri Nouwen: 1932-1996)은 다음과 같이 역설하고 있다.

기도가 우리를 긍휼 어린 그리스도와의 좀 더 깊은 연합으로 인도한다면, 그것은 항상 구체적인 섬김의 행위를 이끌어낼 수밖에 없다. …… 기도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인간 고통을 만난다. 섬김 안에서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 안에서 고난 받는 그리스도를 만난다.” 

- 《긍휼(Compassion)》(서울: IVP, 2002), 188.   

지난 세월호 사태를 겪으며, 이웃의 고통에 공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또 한 번 우리나라 교회가 수모를 당하였다. 이웃에게 공감할 줄 아는 것, 그리스도인으로서 너무나 절실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공감의 언덕을 넘어 긍휼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긍휼이야말로 성육신과 십자가란 예수의 길이요,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이다. 기도하는 일, 목회하는 일과 이웃의 눈물을 공감하며 도움의 발걸음을 내딛는 긍휼의 길은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 특히 목회자는 긍휼의 사람이어야 한다. 긍휼의 사람은 참척을 당하여 눈물 흘리는 이웃에게 소위 하나님의 섭리를 설파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눈물을 훔치며 손수건 한 장이라도 건네는 사람일 것이다. 수도자들의 아버지로, 그리스도인의 전형으로 소개되고 있는 안토니우스, 그는 예수의 길, 긍휼의 길을 옹골차게 살아내었다.

그(안토니우스)는 불의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얼마나 열심히 도와줬던지 마치 그가 제 삼자가 아닌 피해 당자자쪽인 것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안토니우스의 생애》, 87장.


임택동은 기독교 영성 고전 학당 ‘산책길’(Spirituality.co.kr)의 연구원이며, 미국 Graduate Theological Union의 박사과정에서 기독교 영성학을 공부하고 있다.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에서 신앙과 영성이 발휘되고 또 표현되어지는 것(lived religion)에 성경이 실제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산책길'은 2013년 1월부터 기독교 월간지 <복음과 상황>에 '백투더클래식'(Back to the Classics)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의 목표는 영성고전에 담긴 지혜를 통해서 현대 교회와 사회를 조명하고 필요한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위의 글은 2014년 8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1. 재판관들을 가리킨다. 당시 안토니우스를 찾는 많은 방문객들이 있었고, 이들 때문에 사실 그는 자신의 수행 생활에 지장을 받으면서도 산 바깥으로 이끌려 나가곤 했다. 그런데 심지어 재판관들까지도 안토니우스에게 그런 요청을 했다. [본문으로]
posted by 바람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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