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험하다

케네스 리치의 하나님 체험[각주:1]

Experiencing God: Theology as Spirituality

케네스 리치 지음 · 홍병룡 옮김 | 청림 | 2011년


영성 지도(spiritual direction) 사역에 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케네스 리치(Kenneth Leach)의 《영혼의 친구》(Soul Friend)를 꼭 읽어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케네스 리치라는 이름은 아마도 영혼의 친구》라는 책을 통해 가장 많이 알려졌을 것이다. 리치는 영성 지도에서 중요한 저작들을 남겼는데, 이 책 《하나님 체험》(Experiencing God)은 영성 지도와 관련된 삼부작으로 이루어진 시리즈 중 영혼의 친구》와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True Prayer)에 이은 시리즈의 마지막이자 세 번째 책이다. 이 삼부작을 잘 들여다보면 영성 지도에서 중요한 주제들을 잘 다루어주고 있다. 영혼의 친구》는 영성 지도의 정의, 영성 지도의 역사, 영성 지도와 기도, 영성 지도와 심리학 등의 주제들을 통해 영성 지도를 소개하는 개론서 역할을 해주고 있다.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영성 지도에 참여하는 영성 지도자나 피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기도라는 영성 훈련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체험》은 역시 영성 지도에서 나누는 대화의 주요한 소재가 되는 하나님 경험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리치는 이 세 권의 책을 통해 영성 지도라는 사역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 체험을 접근하면 이 책을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리치는 왜 영성 지도에 그토록 큰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리치는 1939년에 영국에서 출생하였고, 1965년에 서품을 받은 영국 성공회의 신부이다. 성공회 신부로서 리치는 다양한 목회활동에 참여했겠지만, 그의 이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센터포인트(Centrepoint) 사역이다. 그는 센터포인트라는 자선단체를 1969년에 창립했는데, 이 단체는 16-25세의 청소년과 청년 노숙인들에게 숙소를 제공해주는 사역을 해왔다. 센터포인트의 이전 대표 후원자가 다이애나 왕비, 현재 대표 후원자가 그녀의 아들인 윌리엄 왕자라는 사실은 이 단체가 그 사회에서 얼마나 공신력 있는 단체가 되었는가를 보여주며, 동시에 리치가 영국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끼쳤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영성지도와 관련해서 중요한 사실은 센터포인트의 사역 가운데 하나가 청소년들을 위한 멘토링이라는 점이다. 센터포인트는 신뢰할 수 있는 멘토들을 일대일로 청소년들과 연결시켜 주고, 1년 동안 서로 만남을 갖고 도움을 주도록 해왔다. 멘토링과 영성 지도는 구분되지만 비슷한 사역이므로, 청소년들을 위한 멘토링이 이 단체에서 중심적인 사역이었음을 볼 때, 이것은 리치가 영성 지도라는 사역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 뿐만 아니라, 영성 지도의 방향과 성격을 이해하고 규정하는데 틀림없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러면, 저자와 영성지도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로 하고, 하나님 체험이라는 책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제목. 이 책은 “하나님 체험”을 제목으로 뽑았는데, 미국 시카고 대학의 유명한 기독교영성학(Christian Spirituality) 학자인 버나드 맥긴(Bernard McGinn)이나, 지티유(Graduate Theological Union)의 샌드라 쉬나이더스(Sandra Schneiders)가 주장하는 것처럼, 기독교 영성이라는 학문에서 “하나님 체험”은 핵심적인 주제이다. 영성이라는 학문은 체험 (또는 경험)을 주로 다루기 때문이다. 영성은 체험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영성은 기독교인이 체험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기독교 영성학을 세 분야로 나눈다면, 성경적 영성(biblical spirituality), 교회사적 영성(historical spirituality), 그리고 목회적 영성(pastoral spirituality)이다. 성경적 영성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나오는 하나님 체험을 다룬다. 교회사적 영성은 교회사의 자료에 나오는 하나님 체험을 다룬다. 그리고, 목회적 영성은 현대 기독교인의 하나님 체험을 다룬다. 이처럼 “하나님 체험”은 기독교 영성의 핵심 주제이자, 영성지도 대화의 핵심 주제가 된다.

    그런데, 저자는 부제를 “Theology as Spirituality” (영성으로서의 신학)라고 했다. 이 표현은 이 책의 방향을 짐작하게 해준다. 즉, 저자가 “머리말”에서도 밝힌 것처럼, 이 책은 조직신학적인 관점이 아니라 영성적 관점에서 씌어진 것이며, 따라서 신학적 논쟁을 피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준다. 동시에, 저자가 생각하는 신학이란 변화의 체험이 일어나는 신학이다. 리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참된 신학이란 참 하나님과의 만남 안에서 또 만남을 통해 인간이 변화되고 세상이 바뀌는 것을 다루는 변혁의 신학이기 때문이다.” 신학과 영성의 관계에 대한 토론 또는 논쟁은 교회사에서 무척 오래된 주제이다. 쟝 르클레르크(Jean Leclercq, 1911~1993)라는 중세사에 정통한 영성학자는 대학의 출현이 영성과 신학의 분리를 낳았다고 주장했는데, 리치는 영성과 신학을 하나님 체험 안에서 다시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신학과 영성의 통합이라는 주제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많은 신학자나 목회자의 고민과 맥을 함께 한다. 신학교 교육이 좋은 목회자를 양성하는데 있어서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하면서, 신학교마다 영성훈련의 중요성이 다시 대두되고 있는 것은 이 고민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신학과 영성의 통합이라는 리치의 화두는 오늘날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매우 적합한 주제이다.

    자, 이제 책의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리치는 1장 “하나님께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서 하나님의 안부를 묻는다. 니체나 마르크스, 프로이드가 주장하듯이, 현대 사회에서 하나님은 정말 죽은 것인가? 아니면, 마르틴 부버나 자크 엘룰이 주장하듯이, 하나님에 대해 그동안 쓰였던 개념적 언어가 죽은 것인가? 저자는 나중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다. 하나님은 죽은 것이 아니라, 침묵하고 계신다. 이제는 참된 영성을 회복하기 위해 잘못된 하나님 이미지에 기대왔던 거짓평안에 안주하지 말고, 창조적 의심을 바탕으로 무신론 너머에 현존하시는 하나님의 실재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촉구한다. 여기에서 리치는 무신론자들의 의심마저도 창조적 의심을 가능케하는 디딤돌로 겸손하게 사용하고 있다. 리치가 현 상황을 “종교적인 준거 틀, 성스러움에 대한 의식, 심지어 하나님의 관념까지” 모두 허물어졌다고 묘사하는 것은 다분히 리치가 이 책을 쓰던 20세기 중반 유럽의 상황에 바탕을 둔 인식이다. 그러나, 이 상황인식은 현재 한국 사회에도 어느 정도 적용된다.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비치고 있는 한국 교회의 모습은 진정 하나님의 현존을 증명해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한편으로 돈과 권력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것처럼 보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예언자적 목소리를 상실하고 영적분별력을 잃어버린 채 내면적 체험에만 골몰하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 리치의 조언을 우리에게 적용해보자면, 이럴 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시고 한국교회를 사랑하신다는 급급한 변명이 아니라, 우리가 체험한다고 믿고 있는 하나님이 참된 하나님인가, 우리의 믿음과 영성생활의 토대가 참된 것인가를 의심해보는 것이다.

    하나님 체험의 2장부터 13장까지 나오는 내용은 우리의 의심이 창조적 의심이 되고, 우리의 믿음을 새로운 토대 위에 세우는데 있어서 매우 도움이 되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경험들을 잘 정리해놓고 있다. 성경과 교회사를 통틀어서 신앙의 선배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모습을 열두 가지 스펙트럼으로 묘사하고 있다. 먼저, 2장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구약을 통해 만나는 하나님으로서 사막의 하나님, 거룩한 하나님, 그리고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3장 “예수의 하나님”은 복음서를 통해, 인자, 하나님나라,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라는 주제로 예수님을 살펴 본다. 4장 “하나님, 그리스도, 교회”는 복음서, 사도행전, 그리고 서신서를 바탕으로, 인류를 하나로 만드시는 하나님, 구원과 화해, 빛과 사랑의 하나님, 영이신 하나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그리고 종말론을 다룬다. 5장 “사막의 하나님”은 사막 교부들과 수도원 운동을 중심으로 고독과 관상, 단순함, 기다림, 투쟁의 영성을 강조한다. 6장 “구름과 어둠의 하나님”은 동방과 서방의 전통을 섭렵하며 하나님에 대한 “무지를 통한 앎”의 체험, 즉 부정적(apophatic) 체험을 설명해준다. 7장 “물과 불의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과의 만남을 다루는데, 특히 오순절 전통의 “성령세례”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신비주의 전통의 마음을 거룩으로 이끄는 사랑의 불에 대해 설명한다. 8장 “육신을 입은 하나님”은 성육신, 몸, 물질, 성(sexuality), 그리고 신화(deification)라는 주제를 다룬다. 9장 “성찬의 하나님”은 성찬식, 제사, 하나님의 임재, 그리고 전례의 해방적 성격 등에 대해 설명한다. 10장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은 하나님의 고통, 대속인가 화해인가, 정치적 행위로서의 십자가, 실천신학으로서의 십자가 신학, 그리고 제자도 등을 다룬다. 11장 “심연의 하나님”은 내면으로의 여정, 신비주의, 영적 여정의 삼중 단계, 영적지도, 그리고 신비주의와 정치 등에 대해 설명한다. 12장 “어머니 하나님”에서는 하나님의 여성성을 경험한 영성가들, 마리아론의 문제, 그리고 페미니즘 신학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13장 “공의의 하나님”은 개인주의를 배격하고 사회정의를 하나님의 사회적 성품에 근거한 것으로 보며, 평화 및 가난이라는 주제를 중요하게 다룬다.

    이상의 열두 가지 하나님 체험은 저자가 인위적으로 나눈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분류라고는 할 수 없다. 내용에 있어서 “사막” 그리고 “어둠”이라는 주제의 경우처럼 겹치는 부분도 있다. 또, 독자의 경험과 지식에 따라서 저자와 달리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독자들 가운데에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하나님 이미지가 성경과 교회사의 자료를 통해 제시되는 것에 신선한 도전을 받을 수도 있다. 필자가 보기에 리치의 열두 가지 하나님 체험 분류는 기독교 영성 자료에 대한 상당한 지식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저자의 겸손한 고백에도 불구하고 평신도들의 영성생활에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목회자와 신학자들의 연구를 위해서 기독교 영성학적으로도 무척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체험에 대한 필자의 전체적인 소감 몇 가지와 함께 북리뷰를 마무리 하려고 한다.

    첫째, 다수의 영성가들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 영성사에 대한 지식이 없는 독자들은 현기증을 느낄 수도 있다. 각각의 영성가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는 존스, 와인라이트, 아놀드가 편집한 《기독교 영성학》(The Study of Spirituality)과 버나드 맥긴, 질 라이트, 루이스 두프레 등이 각각 편집한 《기독교 영성 1, 2, 3》(Christian Spirituality 1, 2, 3)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이 책에는 전적타락, 마리아론, 화체설 등과 같은 주제에 대한 저자의 견해에 독자들이 신학적으로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내용들이 다소 있다. 그 이유는 이 글의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저자가 성공회 신부이기 때문에 그의 신학적 입장이 반영된 결과이다. 그러나, 작은 몇 부분에서 신학적 논쟁에 사로잡히지 말고 이 책의 주제인 하나님 체험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유익을 얻기 바란다.

    셋째, 다른 책들도 그렇지만, 영성관련 서적은 특히 번역이 중요하다. 체험을 표현하는 표현들이 번역에 따라서 더 이해할 수 없게 되거나 전혀 다르게 오해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의 번역은 정말 훌륭하다. 진심으로 역자의 수고와 열정에 감사한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마지막으로, 책이 상당히 두꺼운 편이라서 지레 포기할 독자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을 펼치면 으레 갖기 마련인 독서를 빨리 완수하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읽어나가면, 영성가들의 글에서 인용한 부분들이 마치 맑은 우물에서 직접 길어온 샘물들과 같아서 그로 인해 하나님을 새롭게 체험하고 새 힘이 솟아나는 경험들이 일어날 것이다. / 이강학

  1. * 이글은 〈목회와신학〉 2012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바람연필

6. 귀고 2세에게 배우는, 렉시오 디비나를 통한 ‘영성 목회’

6. 귀고(Guigo) 2세에게 배우는,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를 통한 ‘영성 목회’



한국교회 안에서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는 이제 그리 생경한 단어가 아니다. 라틴어 '렉시오(lectio)'는 ‘모으다’, ‘필요한 것을 선택하다’, ‘눈으로 모아들이다’라는 뜻의 'legere'에서 온 명사형으로, ‘기록된 본문을 눈으로 훑어보아 마음에 모으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렉시오 디비나는 ‘거룩한 말씀을 눈으로 훑어 마음에 모으는 영적훈련’이다. 그러나 아직 많은 교회와 교인들은 렉시오 디비나를 QT(경건시간)의 다른 표현으로 이해하여 교회 내 대안적 프로그램으로만 이해하고 있으며, 고대 사막의 수도자들에 의해 시작되어 12세기 카르투시오 수도회에서 윤곽을 갖게 된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아, 고전에서 주는 풍성한 깊이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렉시오 디비나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귀고(Guigo) 2세의 책, 《수도승의 사다리》(The Ladder of Monks)를 근거로, 수도자들이 어떻게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를 통해 하나님과의 일치(Union with God)를 추구했는지를 살펴 볼 것이고, 이러한 렉시오 디비나를 통한 하나님 경험이 어떻게 목회 현장에 새로운 힘을 넣어줄 수 있는지 다루고자 한다. 


귀고(Guigo) 2세의 《수도승의 사다리》

엄밀히 말하면, 렉시오 디비나는 12세기 귀고(Guigo) 2세의 것도, 6세기 베네딕트 수도회의 것도, 사막의 구도자들의 것도 아닌 하나님의 것이다. 일찌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으라 이스라엘’이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셨고, 그 렉시오 디비나의 형태를 받아들인 다윗은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시 119:105)라고 고백하면서 말씀으로 삶을 조명 받으려고 노력했다. 

이런 성경읽기, 즉 머리로만 분석하고 지적 만족을 주는 접근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 ‘이 곳에서’ ‘내 것으로’ 삼는 ‘전유화’(appropriation)를 의미하는 '렉시오 디비나'라는 단어는 서방 수도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베네딕트 (Benedict of Nursia, 480-547)가 처음 사용하였다. 베네딕트는 그의 책 《베네딕트 규칙서》 48장에서, “게으름은 영혼의 적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은 영성 깊은 독서(lectio divina)뿐만 아니라 육체 노동을 위한 구체적인 시간을 배정해야 한다.”[각주:1]라고 말하며, 'lectio divina'라는 단어를 처음 소개하였다.

그 후 아직 뚜렷한 형태를 갖추지 못했던 렉시오 디비나는 카르투시오회(Carthusian Order)의 귀고 2세에 의해 전형화된 틀을 갖추게 되었다. 귀고 2세의 생애에 대해 뚜렷히 알려진 바는 없다. 프랑스 그르노블 근처에서 1084년 창설된 카르투시오회의 초기 회원 중에 한 사람이었다는 것, 1173년 공동체의 책임자의 자리에 있다가 제 9대 원장으로 선출되었다는 것, 그리고 1180년 이 소임을 끝낸 후, 1188년 소천했다는 것 정도가 그에 관해 알 수 있는 전부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렉시오 디비나의 전체적인 윤곽이 그의 책 《수도승의 사다리》에 잘 소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귀고 2세는 《수도승의 사다리》에서, 구도자들이 마치 사다리의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올라가듯, 렉시오 디비나를 통해 하나님과의 일치를 향해 어떻게 올라가야 하는지에 대해 네 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독서(lectio)- 묵상(meditatio)- 기도(oratio)- 관상(contemplatio). 이 네 단계를 자세히 뜯어보자. 그가 말하는 렉시오 디비나는 무엇인가?

먼저, 독서(lectio)는 치밀하게 성경을 연구하는 것인데 특히 자신의 에너지를 성경에 집중하는 것이다. 음식 먹는 것에 비유하자면, 이 단계는 음식을 입에 넣는 단계이다. 귀고는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경을 치밀하게 이해하기를 소망하면서, (이 독서의 단계에서는) 영혼이 달콤한 포도송이를 한 입 베어 물고 씹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마치 포도를 포도즙 짜개에 넣듯이 말이다. 이제 이 독서의 단계에서 (잠자고 있는) 지성의 모든 힘을 불러 일깨운다.”[각주:2] 이 단계는 렉시오 디비나의 첫 번째 단계로 아주 천천히, 여유롭게, 그러나 집중해서 성경을 읽는(lectio) 단계이다. 

두 번째로 묵상(meditatio)은 말씀 안에 숨겨진 진리를 찾기 위해 이성의 도움을 받아 행해지는 적극적인 단계이다. 귀고는 이 단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묵상을 치밀하게 할 경우, 묵상은 영혼 밖에만 머물지 않고, 덜 중요한 것에 묶여있지 않고, 오히려 이 묵상으로 인해 내 영혼은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며 마음 안으로 깊이 들어가서 철저히 내 마음을 식별하게 된다.”[각주:3]

성서를 통해 영성을 고취하는 해석학적 방법론을 마련한 샌드라 쉬나이더스(Sandra Schneiders)에 의하면, 이 묵상의 단계는 성경 본문을 내면화하는 단계로써 그것의 의미를 반추하거나 말그대로 묵상하는 단계라고 소개한다. 더 나아가 쉬나이더스는 중세 성서 주석들은 영적 깊이나 풍부한 상상의 폭(넓이)을 가지면서 이 묵상의 단계에 독자를 초대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 단계는 성경 본문의 연구를 넘어서 독자가 자신만의 상황(삶과 경험)속에서 본문의 깊은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소개한다.[각주:4]

세 번째로 기도(oratio)는 묵상에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반응으로서, 독자가 성경 본문 안에서, 혹은 본문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귀고는 이 단계에서 우리의 영혼은 우리 스스로 지성과 감성의 감미로움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단언하면서, 우리의 영혼은 겸손하게 그리고 철저히 기도에 의존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렉시오 디비나는 이 기도의 단계를 통해 절정으로 나아간다. 그는 이렇게 기도한다. 

“오 주님, 당신이 성경의 양식을 쪼개주셔야만, 당신이 그 속에서 당신 자신을 내게 보여주십니다. 그 때, 내가 더 당신을 보기 원할수록, 더욱 내가 당신을 보기를 사모할수록, 당신은 내게 성경의 글이 아닌, 그 껍데기의 의미가 아닌, 글 안에 숨겨있는 의미로, 그 깊은 말씀 안으로 나를 인도하십니다.”[각주:5]

마지막으로 관상(contemplatio)은 온 마음과 뜻이 하나님께 올려져서 그분에게 잠겨있게 되어 영원한 기쁨을 맛보는 것이다. 앞의 단계의 깊이있는 기도는 하나님과의 연합으로 인도하고 그것이 바로 영적 삶의 꼭짓점이자 본질의 영역인 관상의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말씀을 연구하는 식의 시도, 즉 무엇인가는 알아가는 모든 시도를 내려놓고 독서와 묵상과 기도의 단계에서 만난 하나님과의 일치를 누리는 단계이다. 귀고는 이 관상의 단계에서 하나님은, 

“아주 달콤하고 감미로운 하늘의 이슬을 흩뿌려주시고, 가장 고귀한 향수로 기름부어주시고, 지치고 지리한 영혼을 회복시켜주시고, 갈급한 심령을 만족시켜주시고, 배고픈 영혼을 먹여주시고, 이 땅의 모든 염려를 잊게하시고, 가장 좋은 방법으로 새로운 삶으로 이끄신다.”[각주:6]고 설명하고 있다. 쉬나이더스 역시 이 관상의 단계를 “완전히 만개한 꽃으로서, 어떤 그림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과의 연합의 단계”[각주:7]라고 설명한다.   

또한 귀고는 이 네 단계는 분리된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서로의 연관성을 설명하고 있다.

“독서(lectio)는 이 모든 단계의 기본이며, 묵상을 위한 자료들을 제공한다. 묵상(meditatio)은 찾아야 할 것을 더 주의 깊게 고려하면서 숨겨진 보물들을 파내는 작업이다. 그러나 이 보물을 꺼내는 것은 묵상의 힘으로는 안 되며 이것은 기도의 힘이다. 기도(oratio)는 전심으로 기도 자체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이 보물을 간구하는 것인데, 이 보물은 바로 관상의 감미로움(The sweetness of contemplation)이다. 관상(contemplatio)은 이전 세 단계의 상급으로, 하늘의 감미로움으로 갈망하는 영혼을 촉촉이 적시는 것이다.”[각주:8]

이렇게 귀고 2세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렉시오 디비나를 사다리의 이미지로 전형화해서, 각각의 단계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는지 보여주었으며, 많은 구도자들을 말씀으로 초대하여 하나님과의 연합에 이르는 길을 설명한다. 


렉시오 디비나를 통한 영성목회

그럼 우리는 어떻게 이 귀고 2세의 렉시오 디비나를 목회 현장에 적용할 것인가? 성경의 권위가 강한 한국의 개신교는 19, 20세기 유럽과 미국의 대부흥을 거치면서 검증된 다양한 성경 프로그램을 가지고있다. 그 중에 ‘QT’는 제자훈련의 입문단계로 인식되어 개 교회의 성경공부반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귀납법적 성경연구’식 프로그램은 좀더 지적 접근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그 갈급함을 해결해주고 있다. 이 얼마나 소중하고 풍성한 영적 유산이란 말인가!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훈련을 받아도 왜 우리는 변하지 않는가! 이 거대한 담론을 제한된 지면에 소개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할 수 없다. 단, 성경의 절대성이 강한 개신교가 이제까지 수많은 성경 프로그램을 해왔지만 삶에 깊은 영향을 주지 못했다면, 지금까지의 접근에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을 아닐까?

렉시오 디비나 소개는 이 지점에 방점을 찍고 한국교회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즉, 성경을 읽되 본문이 주는 의미보다는 독자의 삶의 정황에 더 큰 관심을 갖는 QT식 성경읽기가 아닌, 혹은 성경 본문이 주는 메시지를 삶에 적용하기 보다 본문 자체를 알아가는 정보적 관심에 더 큰 의미를 두는 귀납법적 성경연구식 성경 읽기가 아닌, 본문을 철저히 읽고, 묵상하고, 기도로 올려드리며, 기도 중에 하나님과의 연합을 경험해서 그 말씀이 철저히 삶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렉시오 디비나는 영성 목회에 중요한 시작이라 하겠다. 

이렇게 성경을 기반으로 한 영성을 추구하는, 앞서 이미 언급한, 샌드라 쉬나이더스는 우리에게 좀 더 많은 들을거리를 제공한다. 쉬나이더스는 어떻게 크리스찬이 성경을 통해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까를 누구보다 진지하게 고민했다. 쉬나이더스는 성경의 역사적, 문학적 방법을 통해 얻은 정보들은 변화를 가져오기가 힘들고 오히려 성경 안으로 들어가서 성경의 세계를 경험하기를 원하는 독자가 그 말씀 안에 자신을 완전히 열었을 때, 하나님과의 연합을 체험하고 그 때, 비로소 변화를 경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각주:9] 즉, 쉬나이더스 역시 귀고처럼 정보적(informative) 접근이 아닌 변화적(transformative) 접근으로 성경을 경험할 것을 부탁하고 있다.

더 이상 교회 안에서 성서읽기는 백화점식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머물면 안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렉시오 디비나는 정보 생산에 헐떡이던 모더니즘적 접근에 매여있는 한국교회에 큰 방향을 바꿀 영성 목회의 기초가 될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에 할례된 성도와 다음 세대는 더 이상 지식을 더하는 제자훈련식 프로그램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관심은 ‘변화’에 있다. 내가 변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나를 통해 다른 사람이 변하느냐? 이런 도전적 토양에서, 렉시오 디비나를 통한 영성 목회는 우리의 신앙 체질을 바꿀 수 있는 건강한 시도가 될 것이다. 말씀 안에 자신을 완전히 열어(lectio, meditatio), 말씀의 세계 안에서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고(oratio), 그분 안에서 이전에는 맛보지 못한 기쁨을 경험하는 것(contemplatio) 그래서 옛 삶을 벗고 새 삶으로 변화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영성의 진수라 하겠다. 


글쓴이 : 이경희. '산책길' 기독교영성고전학당 연구원, 새크라멘토 시온장로교회 목사, GTU 기독교 영성학 Ph.D Candidate.

'산책길'은 2015년 한 해 동안 기독교 월간지 <목회와신학>에 '영성 고전에서 배우는 영성 목회'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목회와신학>의 양해를 얻어 이곳 산책길 팀블로그에서도 매달 글을 게재합니다. 위의 글은 2015년 6월 호에 실린 여섯 번째 글입니다.


  1. 누르시아의 베네딕트 지음, 권혁일·김재현 옮김, 《베네딕트의 규칙서》(KIATS, 2011), 91. [본문으로]
  2. Guigo II, Ladder of Monks and Twelve Meditations, trans. Edmund Colledge, O.S.A. and James Walsh, S.J, (Kalamazoo, MI: Cistercian Publication, 1981), 69. [본문으로]
  3. Ibid., 70. [본문으로]
  4. Sandra Schneiders, “Biblical Spirituality,” Interpretation 56, no. 2 (April 1, 2002): 140. [본문으로]
  5. 주: Guigo II, Ladder of Monks and Twelve Meditations, 73. [본문으로]
  6. Ibid., 74. [본문으로]
  7. Schneiders, “Biblical Spirituality”: 140. [본문으로]
  8. Guigo II, Ladder of Monks and Twelve Meditations, 79. [본문으로]
  9. Schneiders, “Biblical Spirituality”: 136. [본문으로]
posted by 바람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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