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의 동행 (로욜라의 이냐시오)

한 줄 묵상 2014.09.18 02:50

 1544년 2월 6일. 수요일

미사 시작 전부터, 헌신과 눈물을 드릴 때, 고정된 수입 없는 공동체에 대한 (나의) 마음이 더 공고해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보다 뚜렷해지고 있는 것은, 일반적인 방식과 다르게, (예수회 공동체를 위해) 고정된 수입을 추구하는 선택은, 혼선을 일으키고, (공동체 일원) 모두에게 불명예일 수 있으며, 우리 주 하나님을 온전히 찬양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가난을 경시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로욜라의 이냐시오(Ignatius of Loyola: 1491-1556), "the Procedure of Election" in Selection from the Spiritual Diary (New York: Paulist Press, 1991), 239. 


수많은 젊은이들이 비정규직을 고용환경과 삶의 불가피한 조건으로 받아들이도록 내몰리고 있다. 신자본주의(Neo Capitalism) 혹은 세계화(Globalization)란 거창한 시대적 요구를 차치하고서라도, 이 세대는 가진자의 풍요와 그 독점을 정당화하는 반면,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더욱 가난을 피할 수 없는 삶의 현실로 받아들이길 강요하고 있다.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은 고정된 수입이 가져다주는 오늘의 안정감을 박탈당하고, 언제 올지 모를 빈곤의 삶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여, 오늘의 생존을 삶의 목표로 삼고 분투하고 있다. 내게도 그렇게 가난이 찾아왔다. 내일 당장 필요한 자식들의 먹을 거리를 걱정하고, 다음달 월세를 어떻게 내야할지, 막막한 고민을 안고, 들지도 않는 잠자리를 청한다. 전혀 원치 않는 삶의 조건이기에, 가난은 불청객이며,  피해야할 시련이다.  

기독교 영성가들은 영적 성숙을 위한 최선의 삶의 조건으로 가난을 선택해왔다. 사막교부들로부터 시작하여, 수도원 규율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삶의 형태로 가난을 사모하고, 삶의 일부분으로 선택해왔다. 로욜라의 이냐시오도 가난을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의 길을 따르는 자의 필수적 조건으로 여겼고, 예수회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공동체의 가장 주요한 계율과 가치로 세워나가려고 노력했다. 영성 분별의 전문가 답게 이냐시오는 이 문제를 놓고 오랜 기간 분별의 기도를 드렸고, 그의 일기 한 부분엔 그 영적 과정 중에 깊은 고뇌의 흔적이 남아있다. 

"가난한 삶의 형태를, 최소한의 고정된 수입으로 공동체를 운영하고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이것마저도 포기하고, 매일 공급해주시는 일용할 양식으로 공동체의 삶을 꾸리는 규율을 세울 것인가?"

예수회 최초 구성원들은 그의 분별과 그로 인한 공동의 결정에 따라 고정된 수입을 포기하고, 매일 채워주시는 은혜로 살기로 선택한다. 가난은 그렇게 삶의 필수적 조건으로 받아들여진다. 두려움과 절망의 대상에서 오직 하나님에 대한 절대 의존의 삶, 하나님만을 향한 갈망의 불길을 더욱 태우기 위한 영성적 삶의 필수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물질적 곤핍을 통해 나의 원초적 필요를 내려 놓고, 그 부족함이란 경험 속에서 오직 주님만으로 빈곤함의 공간을 채워겠다는 오늘의 영적 결단이 가난이다. 

내 삶의 조건이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그것이 사회 구조적 문제, 혹은 형평성의 문제이든, 나는 오늘 내게 이미 주어진, 가난 가운데 주님의 풍성함을 누릴 준비가 되었는가? 가난을 영적 은사로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가난을 통해, 돈과 재물에 더 갈증을 느끼고 있는가, 아니면 주님을 더 갈망하게 되었는가? / 이주형




posted by 구름위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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