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꽃: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백투더클래식 2014.03.04 03:52

사막의 꽃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생의 절정의 순간이 있다.” 테이블 위에 얹힌 진분홍 장미꽃의 도드라진 자태는 마치 이런 말을 건네 오는 듯하다. 도시의 길을 가득 메우고 있는 숨 가쁜 발자국 소리들은 아마도 그런 절정을 꿈꾸며 모이고 또 모였으리라. 많은 도시인들의 가슴에는 더 많은 소유와 축적은 생을 빛나게 해준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듯하다. 이 글귀의 끝자락에 도종환의 시 한 구절은 의문부호를 하나 붙여 놓는다.


버려야 할 것이 /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 제 몸의 전부였던 것 /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 도종환, ‘단풍 드는 날일부.

 



떠나온 사람들


        버림과 떠남으로 생의 절정을 향해간 사람들이 있었다. 주후 3-6세기경, 이집트와 시리아 등지에서 일련의 사람들이 비옥한 생활 터전을 버리고 훌쩍 떠나 메마르고 황량한 사막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예수의 삶을 그대로 본받아 구현하고픈 열망으로 수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이들이 주고받은 대화와 이야기들을 모아서 담아 놓은 책이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The Sayings of the Desert Fathers)이다. 수도자들이 자신들이 숭앙했던 스승들의 금언들과 이야기들을 수집하여 보전하기 시작한 것이 이 책의 모태이다. 이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각 금언들이 보편적인 규범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시기와 상황 가운데 있는 개인이나 집단에게 주어진 교훈이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특별한 교훈들이 약 천오백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들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사막의 남녀 수도자들은 떠나온 사람들이었다. 사막 수도자의 원조 격인 이집트의 안토니우스(Antonius of Egypt, ca251-356)는 예수님의 생생한 음성,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마태 19:21)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듣고 자신의 재산을 모두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고 수도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말씀은 안토니우스의 뒤를 이어 사막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다른 사람들의 귓가에도 울렸다.


        이들의 떠남은 지금의 자리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의 자리는 정상적이지 않고 현재의 삶은 주님이 원하시는 삶이 아니다.’라는 위기의식이 그들을 움직였다. 그들 당시 기독교회는 사막화 과정 가운데 있었다.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를 통해서 기독교가 로마제국으로부터 공인을 받고 황제까지 기독교인이 되었지만, 권력과 재물의 위력 앞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이전에 만연했던 혹독한 핍박과 순교는 사람들에게 한 주인을 섬기도록 신앙의 절대성을 요구하였지만, 신앙생활이 자유로워진 이후에는 오히려 신앙이 삶의 한 조각으로 전락하면서 영적 긴장감과 절박함이 점점 사라져 갔다. 하지만 이처럼 교회가 사막같이 메말라져만 갔지만, 이 척박한 땅에서 꽃을 피워 올린 사람들이 바로 사막의 수도자들이었다이들이 삶의 터전을 떠난 것은 그들 나름의 보화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보화는 세상 가치관을 확실히 뒤집어 놓은 것이었다.

 

압바 히페레키오스가 말했다. “수도자의 보물은 자발적인 가난이다. 형제여,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자. 안식의 시간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서울: 두란노아카데미, 2011), 120.

 

세상의 가치를 거슬러 살면서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한 영적인 절박함이 이처럼 포기와 가난의 삶으로 떠나게 했다. 떠남은 말 그대로 문제점들의 나열이나 예리한 분석이 아니라, 실제로 발걸음을 옮기는 결기 있는 행동이다. 간절한 염원이 스며있어야만 일어나는 삶의 양태인 것이다. 간절한 염원은 수도자적 삶을 낳았고, 수도자적 삶은 사막의 꽃, 즉 하나님의 향기 나는 사람들을 잉태했다.

 


사막에 핀 꽃


        사막은 메마르지만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강같이 흐르는 곳이다. 모세와 엘리야가 불꽃 속에서 또는 세미한 음성 속에서 하나님과 강렬한 대면을 가졌던 곳이 광야였다. 세례 요한이 외친 곳도 광야였고,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사탄의 시험을 받은 곳도 광야였으며, 바울 역시 회심 후 곧바로 아라비아로 갔는데 그것도 광야 체험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의 광야 체험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여정(고전 10:11)의 한 형태라고 가르친다. 이들 모두가 사막에서 하나님을 만나 부대끼며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었고, 때로는 사탄과 처절한 싸움을 하면서 형성되고 꽃을 피웠다. 사막의 수도자들 역시 그와 같은 전통을 이은 사람들이다.


가난한 사막에서의 하루하루는 하나님을 온전히 체험하기 위한 열망으로 채워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육체적 필요를 줄여나가는 고행과 침묵, 규칙적인 기도와 자신을 성찰하는 삶에 투신하였다. 이 모든 훈련에는 절제와 분별이 밑받침 되었다.

 

한 원로가 오이가 좀 먹고 싶었다. 그는 오이를 가져다가 그걸 눈앞에 매달아 놓았다. 자신의 욕망에 지진 않았으나, 스스로 벌주면서 그 욕망을 뉘우쳤던 것이다.

-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79.

  

      수도자들은 세상을 떠나옴으로써 상대적으로 외부의 유혹에서 자유로웠지만, 위의 이야기에서처럼 절제하며, 깨어 분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문제는 외부의 유혹이 아니라 그 유혹에 흔들리는 내면의 욕망이었다. 그들은 항상 속사람을 보시는 주님의 시선 앞에서 생활한다는 경각심을 지닌 채, 삶의 모든 조각들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체험하기를 원했다사막은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기가 어렵고, 생명이 있는 존재는 항상 존립 자체를 위협받으며 살아야 하는 곳이다. 생명보다는 죽음이 더 친근한 곳이다. 더 나아가 자신들의 안팎의 연약함 때문에 거룩한 삶을 단 하루라도 지탱해 가는 일이 거의 불가능한 것임을 철저히 깨달아야만 했던 곳이 바로 사막이었다. 수도자들은 물과 빵이 아닌 겸손으로 살아야 함을 체득해야만 했다.

 

복된 신클레티케가 말했다. “쐐기가 없으면 배의 나사를 조이는 것이 불가능하듯, 겸손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다.”

-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302.

 

        유혹을 이기기 위해 수도자들은 사막에서 겸손과 자비와 인내라는 꽃들을 피워나갔다. 사막은 아프지만 치료를 제공해 주었고, 고통스러웠지만 행복을 던져다 주었다. 한낮의 뜨거운 기운은 그들이 평생 걸쳐왔던 옷가지들을 벗기기에 충분하였다. 감정과 지식에 치우친 껍데기와도 같은 하나님과의 피상적인 만남은 이글거리는 햇볕에 얼마 버티지 못하고 순식간에 녹아져 내렸다. 뜨거운 숨결을 지니신 하나님과의 대면은 영혼의 가식적인 껍데기를 완전히 벗겨 버렸다. 땅속에 깊이 박힌 단단한 바윗돌처럼 확고하게 안다고 믿어왔던 하나님과 자신에 대한 지식을 완전히 포기하고 내려놓아야 했다밤하늘이 쏟아놓은 뭇 별들보다 많은 분심들과 유혹들이 자신들의 호흡 속에 깃들어 있음을 직시하게 되었고, 또 이것들을 부추기는 사탄의 위협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자신이 얼마나 목이 뻣뻣하고 연약한 존재인지를 깨달을수록 하나님의 현존과 천상의 은혜를 향한 갈망과 회개의 삶은 더 깊어갈 수밖에 없었다.

 

원로가 말했다. “우리가 우리의 그림자를 어디든 달고 다니는 것처럼, 우리가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지 눈물과 애통이 뒤따라야 한다.”

-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61.

 

애통함과 눈물 속에 그들은 다듬어져 갔다. 사막은 이처럼 표면적인 나가 아닌 근원적인 나를 발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궁극의 존재이신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이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그로 인해 겸손과 환대, 자비와 인내가 싹터 나오면서 사막 곳곳에 꽃이 만발하였다. 이 같은 생생한 체험들이 깊어져 사막에 영적인 스승(Abba, Amma)들이 태어났다. 그리고 이들의 말 한 마디는 타들어가는 제자들의 목을 시원하게 적셔 주었다. 그리고 도시에 있는 사람들, 왕과 법관들도 그 지혜를 듣기 위해 사막으로 찾아 왔다. 결국 나일강의 넘쳐나는 물이 사람들의 타는 가슴을 해갈시켜 준 것이 아니라, 건조한 바람이 가득한 사막이 사람들과 도시에 생명수를 공급해주었다.



 

절정에 서는 떠남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 개신교에 대한 진단과 비판이 어느 때보다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면면이 살펴보면 한결같이 교회 토양이 점점 불모지가 되어간다는 내용이다. 생명력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죽음의 증상이 만연하다는 암울한 진단이다. 사막화가 먼 나라 몽골에서만 진척되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우리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사막화되어가는 한국 교회에 생명수가 절실하다. 생명수를 얻기 위해서는 진정한 신앙을 무너뜨리는 세력에 저항해야만 한다. 그 저항은 과거 교회의 사막화에 저항하여 사막으로 떠났던 수도자들처럼 우리의 사막을 찾아 떠나는 결기 있는 행동을 요구한다. 권력과 성공과 명예와 부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힌 한국 교회는 지금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는 새 땅을 밟을 수 없다. 이스라엘의 조상이요, 또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본토를 떠남으로써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지금 한국 교회의 황폐화는 완연하다. 하지만 만약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각자의 그리고 공동체의 사막을 찾아 떠난다면, 그래서 그들이 과거 이집트 사막이 수도자들로 도시를 이루었던것처럼 많아진다면, 한국 교회는 떠남을 통해 피어나는 새로운 절정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나의 지금 이 자리는 어떤 곳인가? 지금 이 자리를 저항하며 사막을 향한 떠남이 있었던가? 나의 사막은 어디이고 무엇일까? 일상에서 나는 무슨 꽃들을 피워내고 있나? 우리야 말로 바쁜 일상에서 잠시 물러나 사막의 독방(cell)에 거하며 이런 질문들과 씨름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간구해야 할 것이다. 수도자들이 스승에게 찾아와서 절박한 심정으로 외쳤던 말, “한 말씀만 하소서라고. 그러면 우리는 침묵과 고독 속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건져 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한 원로가 말했다. “말만 하는 것은 필요치 않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말이 많다. 행동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것은 행동이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말이 아닌 까닭이다.”

-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200.

 

임택동은 기독교 영성 고전 학당 산책길’(Spirituality.co.kr)의 연구원이며, 미국 Graduate Theological Union의 박사과정에서 기독교 영성학을 공부하고 있다.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에서 신앙과 영성이 발휘되고 또 표현되어지는 것(lived religion)에 성경이 실제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산책길'은 2013년 1월부터 기독교 월간지 <복음과 상황>에 '백투더클래식'(Back to the Classics)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의 목표는 영성고전에 담긴 지혜를 통해서 현대 교회와 사회를 조명하고 필요한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위의 글은 2014년 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posted by 바람연필

눈물로 적셔진 사막(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한 줄 묵상 2013.02.13 20:46
  • "[사막의] 교부들이 기도에 대해 이야기할 때 기도의 은혜는 항상 눈물이라는 선물이었다. 양심의 가책(compunction)에서 나오는 눈물, 사랑에서 솟아나는 눈물."

    - Thomas Merton

    BlogIcon 바람연필 2013.02.14 08:53 신고

어떤 원로가 말하기를 "우리는 육체에 그림자를 어느 곳이든 달고 다닌다. 


그와같이 눈물과 슬픔을 어디서든지 지니고 다녀야 한다."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주제별>>, ch.3, 24.


신앙 수련회를 가게되면 "반드시 챙겨야 할 물품"이 있었다.

성경, 찬송, 필기도구, 세면도구 ......


기독교 신앙 생활 전반에도 비교적 널리 인정 받고있는 필수품들이 있다.

주일성수, 헌금생활, 금연, 금주 ......


제법 규모가 있는 교회들이 찾고 있는 목회자들 중에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건들 중 하나가 박사학위라고들 한다.


사막 수도자들이 그림자처럼 붙이고 다녀야 했던 필수품 무엇이었을까?

"영혼의 애통함 (penthos)"이었다. 


외로워서도, 

삶이 고생 스럽고 신세가 처량해서도 아니다. 


하나님 앞에 홀로 서 보면 그저 눈물이 났던 것이다.


끊임없는 죄스러운 모습 때문에 

죄송하여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를 만나 주신다는 사실에 

고맙기도하고 감격스럽기도 하였다.


눈물......

냄새나는 자신에 대한 눈물, 

지독한 사랑에 대한 눈물.


사막,

빗물은 말랐지만

눈물은 끊이지 않았다.

사막에 홍수가 났다면

이 눈물의 홍수였을 것이다.


나의 신앙생활에 꼭 따라다니는 것이 무엇일까?

오늘 교회에 홍수처럼 넘쳐나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을 만나자.

눈물이 저절로 나올터니......


/오래된 오늘



구글+ '산책길'

Via the Living Books


posted by 오래된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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