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거룩한 감정, 거룩한 실천 :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

거룩한 감정, 거룩한 실천

-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참된 신앙의 본질은 무엇일까?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신앙에 있어 진지함을 견지한다면 이 질문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는 이러한 참된 신앙의 본질을 진지하게 탐구한 목회자이자 신학자이다. 그는 1703년 10월 5일 미국 코네티컷주 이스트 윈저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도 목회자였지만, 그의 외조부인 솔로몬 스토다드(Solomon Stoddard) 목사는 당시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목회자였다. 에드워즈는 소년 시절에 아버지가 목회하시던 교회에서 회심을 경험했는데, 이것이 그가 신앙의 세계에 관심을 갖고 몰두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는 지적으로도 매우 총명해서 불과 13세에 당시 새롭게 문을 연 지역 대학(현 예일대학)에 입학해 그곳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그는 존 로크의 사상과 자연과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졸업 후 에드워즈는 외조부가 목회하는 매사추세츠 주 노스햄턴 소재 회중교회에서 부목사로 일했으며, 외조부가 사망한 1729년에는 그 교회를 담임하게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놀라운 부흥을 목격했다. 먼저 그가 목회하던 곳에서 사람들이 악습을 개선하고 청년들이 회심하면서 교회가 부흥했다. 그리고 부흥의 불길은 인근으로 번져서, 1734년에는 코네티컷에서도 부흥이 일어났다. 더 나아가 1740년에는 대각성운동이 일어나 뉴잉글랜드 지역 전체가 부흥의 불길에 휩싸였다. 에드워즈는 이러한 부흥의 경험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신앙 감정이 차지하는 위치가 어디일까를 진지하게 생각하였다. 그의 저서 《신앙감정론》(Religious Affections)은 그러한 그의 경험과 탐구에서 나온 설교들을 모은 책이다. 



부흥의 시대와 분별의 필요성

    에드워즈는 부흥의 역사가 많이 일어나는 시기에 거짓된 신앙도 함께 성행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래서 그는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 바르게 분별할 필요를 절감했다. 그가 개인의 신앙생활에서 감정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는 신앙 감정을 인간이 가진 이성의 능력과 결부시키려 노력했고, 이러한 결합을 통해 성령 체험이 진정 하나님으로부터 왔는지 아닌지를 분별하기 위한 방법들을 탐구했다. 에드워즈는 《신앙감정론》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영원한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구별해 주는 특징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참된 신앙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미덕과 거룩함을 구별해 주는 표지는 무엇인가?’라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출발한 이 책은 다음과 같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제1부는 감정의 본질과 중요성을 다룬다. 이어서 제2부는 신앙 감정과 관련하여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데 판단근거가 될 수 없는 열두 가지 표지들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제3부는 은혜롭고 거룩한 감정을 구별하고 보여주는 확실한 열두 가지 표지들을 다루고 있다. 이를 오늘날 우리의 상황에 비춰보자. 오늘날 우리는 ‘영성’이 기독교 신앙에 있어 중요한 덕목으로 많이 회자되고 있는 때를 살고 있다. 바야흐로 ‘영성이라는 말’이 부흥하고 있는 때이다. 그러므로 에드워즈가 ‘참된 신앙’을 분별하려고 노력했듯이, 지금은 ‘참된 영성’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분별할 필요가 있다. 에드워즈의 참된 신앙에 대한 가르침은 여기에 많은 도움이 된다. 



거룩한 감정

    에드워즈에게 있어 중요한 신학적 명제는 “참된 신앙은 대체로 거룩한 감정 안에 있다.”(147)이다. 그렇다면 감정이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요약하면, 에드워즈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영혼 안에 ‘지성’(understanding)과 ‘성향’(inclination)이라는 두 가지 기능을 주셨다고 이해했다. ‘지성’은 인간이 인식하고 판단하는 기능을 말하며, ‘성향’은 어떤 것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 같이 한쪽으로 기울어지게 만드는 기능을 가리킨다. 그리고 ‘성향’이 ‘행동’과 관련되면 ‘의지’(will)가 되고, ‘정신’(mind)과 관련되면 ‘마음’(heart)이 된다. 그리고 ‘마음’이 뚜렷하게 움직일 때 이를 ‘감정’(affections)이라고 부른다.(149) 


    그렇다면 이 감정이 왜 그리 중요할까? 에드워즈에 의하면, 참된 신앙은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행동의 근원이 바로 감정이다. 그러기에 참된 신앙은 이 감정 안에 존재해야 한다. 그는 사람에게 있어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속한 일들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마음에 생생하고 강력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곧, 사람의 영혼을 사로잡은 믿음에 관한 일이 감정을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성경에 나오는 성도들의 믿음은 이러한 거룩한 감정 안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그가 “대체로”라고 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드워즈는 모든 감정을 긍정하거나 반대로 부정하는 극단적인 입장을 배제하였다. 대신 그는 감정들을 잘 구별하여, 그 중에 참된 감정을 삶에서 실천으로 나타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신앙 감정을 분별하는 판단근거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그 자신이 경험한 부흥운동을 통해 거룩한 감정을 구별하는 표지들(signs)을 제시하였다.



거룩한 실천 : 표지 중의 표지

    이 짧은 글 안에 에드워즈가 말한 모든 표지들을 모두 다룰 수 없기에, 필자는 그 중에 마지막 항목인 “행위로 나타나는 신앙”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에드워즈는 앞선 열한 가지 표지들을 실천의 개념으로 재조명하면서, 그 모든 것들이 실천을 통해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다른 모든 표지들을 검증하는 최후의 기준이라는 점에서 그리스도인의 실천은 표지 중의 표지요, 최고의 표지이다. 그는 실천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그리스도인의 실천 또는 거룩한 삶은 참되고 구원을 가져다주는 은혜의 크고 확실한 표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인의 실천 또는 거룩한 삶은 은혜의 모든 표지 가운데 최상의 표지라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567) 


    에드워즈는 부흥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체험을 통해 변화를 보인 후에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목격했다. 그래서 그는 실천의 지속성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실천이 지속되어 질 때 우리는 그 마음의 동기를 보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직접 보시지만, 사람은 인간의 행위를 통해 그 사람의 마음의 중심을 간접적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에드워즈는 실천의 내용이 동기와 함께 연결되어있어야, 참된 은혜와 참된 신앙을 거짓된 것들로부터 구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어떤 사람이 단순히 실천을 했다고 해서 그의 내적인 동기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또한 실천이 내면의 성향을 모두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에드워즈는 행위로 표현되지 않는 것은 은혜롭고 거룩한 감정으로 볼 수 없다고 역설했다. 왜냐하면 그는 몸의 행동과 영혼의 행동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한 사람의 신앙이 참된지 아닌지를 분별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실천을 볼 수밖에 없다. 

    또한, 그는 당시 신앙인의 영적인 상태를 내적인 체험만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그리스도인의 실천 또한 체험이라고 주장하며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그리스도인의 체험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독특한 부분은 영적인 실천에 있다. 뿐만 아니라 은혜의 작용들에는 영적인 실천을 하고자 하는 체험적 성향이 있기 때문에, 영적인 실천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체험적 신앙생활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합지 않다. (626)



이신칭의와 영적 실천

    그렇다면 실천에 대한 강조가 이신칭의(以信稱義), 곧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교리와 부딪히지는 않을까? 개신교인들이 흔히 실천을 강조하는 것에 주저하는 이유는 이러한 강조가 이신칭의의 교리를 약화시키거나 부정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에드워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행위나 우리 안에 있는 어떤 것의 가치로움이나 아름다움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상쇄하는 것으로서 여기시지 않으시며, 죄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셔야 할 이유로 여기시지 않는다.(631)


    이처럼 실천은 은혜의 근거가 아니라 은혜를 증명하는 표지다. 이러한 점을 분명히 한다면, 실천을 강조하는 것은 이신칭의론과 모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필요한 것이 된다. 더욱이 에드워즈는 오히려 성경이 이를 증거하고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는 초청의 말씀 뒤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때, 약속된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는 배우고 본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그 외에 여러 성경 구절을 예로 들면서, 성경은 이신칭의와 실천의 필요성을 연결하고 있기에 서로 모순된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것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께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을 가장 중요하게 증거할 때 성경이 강조하는 것[실천]을 경시하고, 강조하지 않는 것은 (이런 것들을 강조하는 것은 율법적이요, 옛 언약에 속한 방식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의 신앙을 크게 해치는 것이다. 또한 실천에서 나타나는 은혜의 작용들과 효과적 역사를 무시하고, 철학이나 체험에서 얻은 명상으로 은혜와 양심의 내적 작용들을 정확하게 분별하는 능력과 바르게 구별하는 능력만 믿고 거의 전적으로 깨달음과 이런 내적 작용들의 방식과 방법만을 강조하는 것도 역시 사람들의 신앙을 크게 해치는 것이다. 경건의 표지로서 성경이 가장 명백하게 언급하고, 가장 자주 강조하는 것들 외에 어떤 더 나은 또는 더 높은 수준의 표지를 구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636) 



신앙 감정과 영성 목회

    오늘을 사는 우리 개신교인들에게 영성이란 무엇일까? 영성이란 단어는 이제 우리들에게 전혀 낯설지 않는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영성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선뜻 답을 내놓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은 영성이란 단어를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영성을 ‘개인적인 기도생활과 방법’을 일컫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많은 교회의 기도원들이 영성훈련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있는 것을 한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영성에 대한 이해는 영성을 극히 개인적인 신앙생활의 한 방편으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미국의 개신교 영성학자 조셉 드리스킬(Joseph Driskill)은 개신교 영성의 특징 중에 하나가 사회참여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한 개인의 영성이 자기 자신의 사적인 영적 추구에 국한된다면 그것은 성경적이고 바른 기독교 영성이라 하기 어렵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만약 지금 생존해 있다면, 참된 영성의 본질에 대해 무엇이라고 조언할까? 에드워즈에게 있어 신앙 감정은 그저 뜨겁게 찬양하고,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거룩한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구하도록 이끌고, 더 나아가 실천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참된 신앙 감정은 행동으로 실천하게 만드는 감정이며, 그러기에 참된 신앙의 요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에드워즈의 가르침을 통해 오늘 우리의 영성을 살펴보면, 영성은 그저 기도 생활의 한 방편이나 바쁘고 지친 현대의 삶에서 우리 마음의 평안을 찾기 위한 하나의 훈련이라고만 할 수 없다. 특히 개신교 영성은 이신칭의의 믿음을 작은 예수의 삶으로 살아내는 참된 신앙의 요체로 우리에게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영성 목회란 목회자가 회중 안에 한 순간의 ‘뜨거운 감정’을 부추킴으로써 교회의 외적 부흥을 만들어 내려하는 기술이 아니라, 교인들이 참된 신앙으로 세상에서 지속적인 실천의 삶을 살아가도록 목회자 자신이 먼저 ‘거룩한 감정’을 품고 함께 걷는 걸음이어야 할 것이다.




글쓴이 : 권철우. 산책길 기독교영성고전학당 연구원. Graduate Theological Union 박사과정(기독교 영성)에서 수학하였고, 현재는 미국 유마장로교회 담임목사이다. 《백투더클래식》을 공저하였다.  


'산책길'은 2015년 한 해 동안 기독교 월간지 목회와신학에 '영성 고전에서 배우는 영성 목회' 시리즈를 연재해왔습니다. 목회와신학의 양해를 얻어 이곳 산책길 팀블로그에서도 매달 글을 게재합니다. 위의 글은 2015년 12월 호에 실린 마지막 글입니다. 그동안 연재를 읽어 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posted by 바람연필

'체험' 이상의 것 (본회퍼)

한 줄 묵상 2015.06.06 08:48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후 12:7). 우리는 하나님 '체험'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체험'이 아니라 '은혜'로 구원 받는다.  '은혜 체험'으로 구원 받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오직 은혜'로 구원 얻는다. 은혜는 은혜 '체험' 이상의 것이다. 은혜는 우리가 '믿어야' 하는 무엇이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Spiritual Care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2), 55. 


자신에게 하나님 '체험'이 부족하다며 근심하는 이들에게 주는, 루터교 목사 본회퍼의 영적 조언이다. 


하나님의 임재/현존을 '느끼는' 것은 귀한 체험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현존이 느껴지지 않을 때에도 '말씀'에 입각해 하나님의 임재/현존을 '믿는' 이는, 

믿고 걷는 이는 

하나님의 임재/현존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 


믿음은 걷는 것이다.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 만을 가지고서 늘 걷는" 것이다.  


바닥에 드러누워 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걷고' 있다면,

정말 '믿는 이'다. 


/이종태



posted by 산처럼

세리의 고백 (아빌라의 테레사)

한 줄 묵상 2015.04.09 22:05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자기를 못 믿고 두려워하는 생각이 더 큰 법입니다. 받는 은혜가 크고 보면 자기 자신의 가엾은 모습이 돋보이고, 자기의 지은 죄가 더욱 커 보이는 것, 그러기에 저 세리와 같이(누가복음 18장 13절) 감히 눈을 쳐들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  c. 1515-1582), 《영혼의 성(The Interior Castle), 일곱 번째 성채, 3장. 14절.


부활절의 노래는 너무나 부르기 쉽고 그날의 축제는 이내 '나'의 것이 되고 말때가 많다. 사순절의 기나긴 어둔 밤은 지루했고 참기 힘들었으며, 남의 것 아니면 저 예수의 것으로 생각해버리고 싶은 유혹은 매해마다 되풀이 된다. 

그러나 십자가와 그 길에서 멀어질수록 부활의 기쁨은 밋밋해지고 부활절도 그저 연례행사로 그쳐버리기 쉽다. 참된 부활은 자기 부인이라는 죽음 이후에 오는 것이며, 받은 은혜를 고백할 수 있는 죄인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적어도 가슴을 치며 괴로워하는 세리는 주님을 만나고야 만다. 십자가에 오르신 주님, 이제 부활하셔서 "평화"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다. 그 만남 안에서 용서받은 죄인, 이제 의인으로 거듭난다. 작은소리찾기 박세훈



posted by 작은소리찾기

은혜의 새겨짐 (리처드 백스터)

한 줄 묵상 2014.10.26 10:14

구원하시는 은혜의 역사가 우리의 영혼에 완전히 새기어졌는지의 여부를 먼저 살펴야겠다.

- 리처드 백스터 (Richard Baxter: 1615-1691) 《참된 목자(The Reformed Paster)》(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11), 57.


리처드 백스터는 참된 목자가 첫 번째로 해야할 일은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성찰의 첫 시작은 구원의 은혜가 내 안에 새겨져 있는지의 여부다. '적셔짐'과 '새겨짐'의 차이를 생각해 보게 한다. 은혜로 적셔지면 은혜가 충분하다 여겨지지만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말라버린다. 언제 은혜가 있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해진다. 적셔진 은혜가 내 안에 배어들어 새겨지도록 해야 한다. 새겨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피부의 변색처럼 변화도 필요하다. 살갗의 따가움과 뼈를 깎는 아픔과 고통도 있을 수 있다. 시간과 변화와 고통을 동반할 때 적셔짐은 새겨짐이 된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와 헌신과 봉사가 시간을 필요로 하고, 나 중심의 세계를 전환하도록 요청하며, 때때로 수치와 모욕과 아픔과 고통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은혜가 새겨지는 과정임을 기억해야겠다. / 유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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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자연적 은혜? (아빌라의 테레사)

한 줄 묵상 2014.02.09 02:22
여러분이 거듭거듭 들으신 것처럼, 주님은 당신이 주고 싶으신 때에, 주고 싶으신 대로, 주고 싶으신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이고, 또 그 은혜는 당신의 것이므로 누구에게도 불의를 하지 않으십니다. 
-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  c. 1515-1582), 《영혼의 성(The Interior Castle), 4궁방, 1장. 2절.


아빌라의 테레사는 영적 여정을 내면의 중심에 계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움직임으로 묘사합니다. 영혼을 여러 연결된 방으로 구성된 아름다운 궁전으로 그리면서 그 중심이 사랑하는 임이신 하나님의 자리라고 말합니다.

그 하나님께 나아가는 여정 중에 사람의 노력과 달리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이끌어 주시는 은혜가 나타나는 때가 있습니다. 테레사는 그것을 초자연적 은혜라고 말하면서 그런 경험을 가진 이들은 더 쉽게 이해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명상가들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집중의 훈련을 어떤 초자연적 경험을 위한 기술로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테레사는 초자연적인 은혜가 하나님의 것이기에 우리의 권리나 능력 밖에 있는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녀는 항상 은혜의 결과와 효과보다 은혜를 주시는 분께 초점을 두었습니다. 초자연적인 분께서 주시기 때문에 그 은혜는 초자연적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기 1:21)"라고 말한 욥과 같이 그녀는 이 모든 은혜를 통해 하나님을 봅니다. 그리고 이 은혜로 인하여 그분께로 더 나아가게 됩니다. 작은소리찾기 박세훈

posted by 작은소리찾기

은혜와 자선 (조나단 에드워즈)

한 줄 묵상 2013.04.01 15:49

자선 행위는 우리에게 영적인 은혜가 필요할 때, 이러한 영적 은혜를 추구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이 정하신 의무의 한 부분입니다. 이것은 신자에게나 불신자 모두에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추구하도록 우리에게 정해 주신 방법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의무를 준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읽고, 기도하고, 예배에 참석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신 모든 것 즉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모든 의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c. 1703-1758)   지음, 백금산 옮김,

《불우이웃돕기는 하나님의 은혜 받는 비결이다 (Much in Deed of Charity)》” (부흥과개혁사, 2005), 36쪽.



사도행전에 나오는 고넬료를 통해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에드워즈는 설교를 통해 설파하고 있다. 더 나아가 영적인 은혜를 얻기 위해 남을 도우라고 이야기 한다. 우리는 보통 주위에서 은혜가 충만하다거나,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하면 어느 기도원에 가서 산상기도를 통해 울부짖거나 아니면 어느 집회에 참석하여 은사를 체험하는 것을 연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에드워즈는 은혜가 충만하고자 한다면 이웃을 돕고 자선을 많이 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어떤 은혜를 받기를 원하는가? 혹시 기도원이나 집회를 찾아다니며 나의 의무를 다했다고 착각한 나머지 '값싼' 은혜만을 갈구하고 거기에 만족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의무, 곧 하나님 사랑 그리고 이웃 사랑을 다한 후에 받는 '값진' 은혜를 체험하며 살아 가야 하겠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때’ 비로소 성령충만한 삶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권철우



불우이웃돕기는 하나님의 은혜 받는 비결이다

저자
조나단 에드워즈 지음
출판사
부흥과개혁사 | 2005-03-30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신앙감정론』, 『의지의 자유』 등 수많은 저서와 설교로 유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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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빛으로질주

은혜는 꿀벌 같이 일하신다 (마카리우스)

한 줄 묵상 2013.03.28 16:02

벌통 속에 은밀하게 벌집을 짓는 꿀벌처럼, 은혜는 은밀하게 우리 마음 속에서 그의 사랑을 만들어 가신다. 쓰디쓴 것으로 가득한 마음을 달콤한 것으로 바꾸고, 거친 마음을 부드럽게 바꾸어 놓는다.


마카리우스(Macarius of Egypt, c.300-390) 저, 이후정 옮김, 『신령한 설교』 (은성), 16.7.




마카리우스는 신앙 생활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그분의 일하심에 민첩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깨어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면서, 꿀벌의 비유를 들려 준다. 그리고 뒤이어 세공 장인의 비유를 들려준다. 장인은 그의 공방 안에서 금과 은을 틀에 부어 진귀한 모양을 만들고, 거기에 아름다운 문양을 새겨 값진 물건을 만든다. 마침내 완성되면 장인은 그것을 밝은 곳으로 가지고 나와서, 그것이 찬란하게 빛나게 한다 (16.7). 


주님께서는 진정한 세공 장인이시다. 주님은 당신을 경외하고 늘 주목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오셔서 조용히 일하신다. 그래서 그 마음을 새롭게 하신다. 쓴 물을 쏟아내는 우리 마음을 달콤한 꿀을 내는 곳으로 바꾸신다. 그리고 거칠고 날카로운 마음들을 어루만지고 다듬어서 부드럽고 원만한 것으로 바꾸어 놓으신다. 설사 우리 마음이 죽은 자들의 뼈와 온갖 부정한 것들”(23:27)같은 불결한 생각들로 가득하다 해도, 주님의 은혜는 그 속에서 보석과 같이 빛나는 선한 생각들을 만들어 가신다. / 새결새김 

posted by 새결새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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