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하늘에 닿아있는 일 (디트리히 본회퍼)

한 줄 묵상 2014.07.24 04:15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상에서 사랑과 자비의 일을 무시하지 않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말씀을 기쁘고도 믿을 만하게 선포할 수 있다.  


-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정지련, 손규태 옮김, 

《신도의 공동생활》 (Gemeinsames Leben),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04.


깨닫고 느끼고 새롭게 배우게 된 것이 바로 나 자신인 줄 착각할 때가 많다.

기독교를 전하며 복음을 다른 이에게 소개한다고 해서 그 일이 내가 그 복음 안에서 살고 있다라는 것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 고전의 명문을 소개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교회 강단에서 성경을 풀어 설명하는 목회자들 역시

좋은 신학 지식을 갖추고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설교문을 생각해 내는 것을 우선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항상 긴장하며 먼저 힘써야 할 일은

일상이 하늘과 맞닿아 있음을 알고, 그 일상을 향기롭게 일구어 나아가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잿빛 이론과 말에 가두어져 버리고 말것이다.     


/ 오래된 오늘 임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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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임재 연습)

한 줄 묵상 2013.05.09 10:21

영적 삶에 있어서 가장 거룩하지만 동시에 일상적인 꼭 필요한 실천은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기뻐하고, 그분과 함께 지내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모든 순간에 어떤 식으로든 그분께 겸손하게 말하며 사랑으로 대화하면서 말이다.
- 로렌스 형제(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  c. 1614-1691), 《하나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Spiritual Maxims, Chapter 2.)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 임재 연습이란 가장 거룩하지만 동시에 매우 일상적인 영적 훈련이라고 말한다. 가장 거룩하면서도 일상적이라는 말은 모순된 것 같아 보이지만 그는 어떻게 하면 그것이 가능하게 되는지도 가르쳐준다. 그저 매순간 자신의 마음 안에 일어나는 생각과 뜻 그 모든 것을 하나님과 나누는 것이다. 거기엔 특별한 기도 문구나 매개도 존재하지 않는다.

 

소소한 즐거움이나 작은 투정, 때론 넘쳐나는 기쁨이나 깊은 절망도 내 좁은 생각에 묶어 두지 않고, 그저 주님께 가져가면 그것은 거룩한 것이 된다. 그분과의 대화 안에서 우리 안의 모든 것이 거룩해질 수 있다. 작은 것 하나라도 혼자 감당하거나 다루려하지 않는 사랑과 겸손의 마음에 그분은 언제나 즐겁게 동행해 주시며 응답해 주신다. 


거룩하신 그분과의 접촉 때문에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의 평범함도 거룩함을 입게 된다. 사실 이런 낭만이 있기까지 그분은 수많은 대가를 치뤄주셨지만 (우리의 부모님처럼) 우리에겐 조금도 내색하지 않으신다. 그러니 사랑이신 그분과 오늘 조금만 더 이야기해보자. 더 자주 이야기해보자. 작은소리찾기 박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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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우리 안에 계신 주님 (하나님 임재 연습)

한 줄 묵상 2013.04.09 14:58

모든 순간 주님과 함께 이야기하고 그분의 도움을 간구하기 위해서는, 오직 주님이 우리 안에 와 계시다는 것을 (깊이) 깨닫기만 하면 됩니다.
- 로렌스 형제(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  c. 1614-1691), 《하나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Fourth Conversation)


로렌스 형제는 주님이 이미 자신 안에 계시다는 인식 속에서 살아갔다. 그것이 그의 영적 삶의 전체이자 전부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 안에 들어오신 예수님의 현존이 그가 만지고 관계맺고 경험하는 모든 일상을 거룩하게 한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경험했다.  미미 있는 일상이 가장 분명한 하나님의 자리가 있었던 것은 주님의 현존 때문이었다.

더불어 그는 예수님의 임재를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은 완전한 복종과 자아의 포기라고 알려준. 생전에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 불리셨던 예수님은 부활 후에도 죄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이들의 마음에 임하시기를 즐겨하신다. 로렌스 형제에게 있어서 자신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집이 되도록 준비하는 것은 스스로를 세리와 죄인과 같다고 고백하는 자아의 포기에 달려있었다. 그리고 주님으로만 더불어 먹고 마시기를 기뻐하는 마음에 주님은 임하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신다.

성육신하셔서 신에서 인간으로 내려오시고  가장 가난한 마음의 자리를 찾으셨던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는 이들에게 즐겨오신다. 원래 그러셨던 분이셨고 그렇게 하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를 그분에게까지 올라오라고 명하시기보다 스스로 우리의 자리까지 내려오시길 선택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성육신하신 주님은 일상을 살아가는 지금의 내 마음에라도 충분히 내려오실 있는 분이시다. 그렇게 하셔서 기도의 자리와 일상의 자리 사이의 경계를 파괴하시고 오늘도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고자 하신다.  작은소리찾기 박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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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변화와 일상적 의무 (C. S. 루이스)

 


네, 저도 동의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사람이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건 보통 자기 자신이라는 것 말이지요. 하지만 사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바꿀 수 없습니다! 주님께 간청할 수 있을 뿐이지요. 간청한 다음에는 성례, 기도, 평범한 생활규칙 준수 같은 평상시 의무들을 계속 행해 나가야 합니다.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해 너무 야단을 떨면 안 됩니다. 1955. 11. 9


C. S. 루이스,《루이스가 메리에게》 (이종태 옮김, 홍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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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외의 시간 (하나님 임재 연습)

한 줄 묵상 2012.12.13 16:40

로렌스 형제는 기도의 시간을 그외의 시간들과는 다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실수라고 말했다. 우리는 기도의 시간 동안 하나님과 가까이 연합하는 만큼 일상에서도 그분과 하나되어야 한다.  

- 로렌스 형제(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  c. 1614-1691), 

《하나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Fourth Conversation)



가까스로 시간을 내어 기도하는 영혼에게 로렌스의 요청은 너무 거대해보인다. 기도하지 않는 시간 밖에 없는 삶에서 기도를 시작하는 삶으로, 그리고 기도가 일상에 영적 자양분을 공급하는 삶에서 일상과 기도의 시간이 구별되지 않는 삶으로 바뀌어지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도 경험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로렌스 형제는 이런 '상당한' 기도의 시간을 생각하는 것이 '엄청난 실수'가 될 수 있다고 말해준다. 그는 기도할 때나 일상에서나 아무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언제나 그 자신을 주님 가까이 두었기 때문이다. 항상 주님을 가까이 하는 그의 의식 때문에 그의 일상과 기도의 경계는 사라지게 된다. 


어쩌면 '상당한' 기도를 통해 일상의 '대단한' 변화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기도의 시간과 일상의 시간을 구별짓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저 항상 주님을 가까이 하는 마음가짐 안에 살아가는 것이 기도와 일상이 하나가 되는 길이라고 로렌스 형제는 이야기해 준다.  작은소리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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