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두 팔 (잔느귀용)

한 줄 묵상 2015.05.28 23:19

하나님께서는 두 팔이 있어서 당신을 안고 품어 주신다. 한 손은 전능한 보호를 나타내며, 다른 손은 그 분의 완벽한 사랑이다.

 

잔느 귀용(Jeanne Guyon:  c. 1648-1717), 《아가서 강해》, 8장 3절에 대한 주석.

 

아들은 배고플 때 엄마에게 말하면 된다.

학생은 어려운 문제 생길 때 선생님께 말하면 된다.

성도는 힘들 때 목사에게 말하면 된다.

...

목사는 힘들 때 하나님께 기도하면 된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된다.

 



기도하는 데 오늘은 "하나님 아버지…" 하고 부르는데

자꾸 "아빠, 아빠" 하는 소리가 나왔다.

나이 사십에...아빠하며 부르는 기도소리가 우습기도 하지만 마음은 울었다.

"아빠, 아빠" 하는 소리만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하다가

그 품에 안겼다.

내가 기댈 수 있는 분.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분.

내가 맘 놓고 울 수 있는 분.

내가 솔직할 수 있는 분

내가

그냥 벌거벗고 다가가 내 모습 다 보여줘도 날 사랑해 주시는 분.

내 아빠,

아빠 하나님….

 

/ 소리벼리 정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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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포기 (잔느 귀용)

한 줄 묵상 2014.08.08 11:48

실제로 자기 포기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나의 뜻을 끊임없이 버리고, 아무리 선해 보여도 나의 모든 자연적인 성향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래야 오직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만을 온전히 선택하게 된다. … 과거는 완전히 잊고 미래는 섭리하심에 맡긴 채 현재는 하나님에게 내드려야 한다. 

- 잔느 귀용(Jeanne Guyon:  c. 1648-1717), 《친밀한 기도(A Short Method of Prayer), 1부. 5장.


과거의 후회나 상처를 잊기는 쉽지 않고, 미래를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는 것도 불안하다. 현재를 완전히 나의 것으로 삼고 싶은 욕망은 그 어느 것보다 크다. 이것이 나의 자연적 성향인데 잔느 귀용은 이를 포기하라고 말한다. 나의 뜻과 판단이 어느 것보다 중요한 시대를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는 수준을 넘어 나의 뜻을 버리고 나를 포기하는 것은 분명 절대적으로 어렵다.

그렇지만 이 '점잖아' 보이는 문구를 가지고 오늘 하루 동안 '실제로' 고민하고 씨름해보고 싶다. 나의 생애보다 더 긴 시간의 검증을 거쳐서 현재의 나에게 전해진 이 문구를 오늘 하루 내 안에서 되살아나게 하고 싶다. / 작은소리찾기 박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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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능력 (잔느 귀용)

한 줄 묵상 2014.07.09 16:08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하려고 듣는 능력을 주셨다. 듣는 행위는 능동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인 행위이며,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전달받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전달되어야 할 말씀이시므로 우리 영혼은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는 그분의 말씀에 온전히 귀 기울여야 한다.

- 잔느 귀용(Jeanne Guyon:  c. 1648-1717), 《친밀한 기도(A Short Method of Prayer), 2부. 11장.


일상에서 우리는 많은 '타인'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때론 그 소리가 너무 많아서 그냥 불편한 소음으로 치부해버리고 마음을 닫아버리기 쉽다. 두어 사람과의 대화에서도 우리는 듣는 능력을 쓰기 보다는 말하는 능력을 발휘하는데 익숙하다. "또 뻔한 이야기, 듣기 싫은 소리하네." 그런 마음이 든다면 하나님이 주신 듣는 능력을 소멸해가고 있는지 모른다.

자기 목소리를 강조하는 세상 속에서 수동적으로 듣고 전달받는 존재로 머무는 것은 알게 모르게 속상한 일이다. 그러나 잔느 귀용은 예수님을 전달되어야 할 말씀으로 명시하면서 우리 영혼이 그분의 말씀에는 온전히 귀 기울여야 한다고 밝힌다.

말씀까지도 자기의 뜻에 맞춰 해석하게 되는 욕망을 벗고,우리 영혼 안의 말씀이 말씀하시도록 자신을 드리고 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하여 그리스도가 '전달되어야 할 말씀'이심을 나의 영혼에게 계속 알려주어야 하며, 나의 본성이 주님의 속성에 깊이 공명할 수 있도록 오늘도 '듣는 능력'을 사용해야 한다./ 작은소리찾기, 박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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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무를 마주함(잔느 귀용)

한 줄 묵상 2014.07.04 09:36

당신이 겨울나무로 서 있다고 해서 갑자기 악해진 것이 아니다. 다만 당신의 실제 모습을 그대로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겨울나무 내부 깊숙한 곳 어딘가에는 지난 봄, 아름다운 잎들을 틔워냈던 생명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잔느 귀용(Jeanne Guyon:  c. 1648-1717),영적성장 깊이 체험하기(Final Steps in Christian Maturity), 22.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은 나무가 자신의 겉모습을 치장하기 위해 애쓰는 시기다. 그 대가로 줄기와 뿌리 깊숙한 곳의 생명 에너지를 소모한다. 겉은 화려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실상 나무의 생명력은 점점 소멸되어 간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나무는 치장한 모든 것이 떨어져 나가고 앙상한 모습이 된다. 겨울은 지난 계절 겉치장 속에 가려져 있던 나무의 참 모습을 모여주는 계절이다.  


지난 몇 달간 육체적, 정신적으로 몹시 나약해진 내 모습을 보며 실망하고 낙심하고 우울해했다. 마치 '나 답지 않은 나'를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낯설고 불편했다. 그러나 내가 겨울나무로 서 있다고 해서 갑자기 약해진 것도, 악해진 것도 아니다. 다만 나의 실제 모습을 그대로 만났을 뿐이다. 귀용 부인의 영적 안내를 통해 나는 나의 앙상한 겨울나무를 묵상한다. '진짜 나'인 겨울 나무는 오히려 위안을 주며, 머지 않은 봄을 기대하게 한다. 나의 겨울나무에도 여전히 새로운 꽃을 피워낼 생명이 존재하고 있기에.

 

작금의 한국교회도 앙상한 겨울나무다. 화려한 잎들이 벗꽃잎처럼 우수수 떨어지자 어떤 이는 탄식의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아예 얼굴을 돌려버리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귀용 부인은 "새로운 결함이 생겨난 것이 절대 아니다."라고 조언한다. 우리는 드디어 겉치장 뒤에 숨어 있던 실제 한국 교회의 모습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겨울이라는 계절은 교회라는 나무를 죽이는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생명력을 복원하는 계절이다. 겨울은 겉치장에 생명력을 쓸 필요가 없기에 나무는 그 때 가장 생생한 생명력으로 복원된다. 겨울은 생명의 원천과 원리가 나무 줄기와 뿌리 깊이까지 흘러 넘쳐, 겉으로 드러난 실제 결함들을 치유하는 계절이다.  /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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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날의 기다림 (잔느 귀용)

한 줄 묵상 2014.06.10 07:17

영적으로 메마른 시기에는 이런 방법[노력해서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 깊은 겸손함과 낮춤 가운데 지극한 사랑으로 기다려야 한다. 평온한 마음으로 겸허히 침묵하면서 사랑하는 그분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 잔느 귀용(Jeanne Guyon:  c. 1648-1717), 《친밀한 기도(A Short Method of Prayer), 1부. 4장.


잔느 귀용은 영적으로 메마른 시기에도 사랑과 성실함으로 주님을 찾을 필요를 말한다. 그러나 이 성실함은 노력해서 하나님을 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런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고 알려준다. 적어도 여기에서 영적 문제는 노력을 통해 성취해내는 과업이 아니라 연인의 사랑과 같은 관계로 그려진다.

마치 떠나려는 연인을 붙잡듯이 주님을 잡으려고 애를 쓴다면 이 메마름의 문제에는 역효과가 일어난다. 참된 사랑 대신 자기애적 욕망으로 조급해 한다면 님은 더 깊이 숨어버릴지 모른다.

영적으로 메마른 시기는 님의 사랑을 신뢰하기가 더 어려운 순간이다. 또한 사랑하면서도 겸손히 그러나 조용히 님을 기다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내가 드릴 수 있는 사랑을 겸손히 드릴 때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 



"오늘도 사랑을 드리며 주님을 기다립니다." 작은소리찾기 박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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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연애하기 (잔느 귀용)

한 줄 묵상 2014.01.24 23:32
하나님과의 깊은 연합이 이 땅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 당신의 영이 하나님의 영을 깊이 만지고 또한 연합되어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 당신의 영은 깊이 하나님과 연합되어질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은 그것을 위해 지음받았기 때문이다. 


- 잔느 귀용(Jeanne Guyon: 1647-1717), 《아가서 주석》(도서출판 순전한 나드, 2006),  저자 서문에서.

 

 

어느 날엔가 기도 하는 가운데 나의 마음을 찌르는 질문이 주어졌다. "난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한가? 난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 하는가?" 물론 끊임없이 말씀을 보고, 기도도 하며, 모든 예배를 주관하고 설교하고, 성전을 지키는 자로서 살아가지만 정말 하나님과 친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하나님 중심적인, 하나님과 그저 가까이 하기 위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내 욕망의 추구로서의 예배와 기도, 의무를 완수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까 염려하는 두려움으로서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속에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사라져버린 억지로 드리는 예배, 억지로 따르는 삶, 마지 못해 행하는 그런 경건생 활을 드리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자괴감과 회의가 나에게 닥쳐 왔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기대하는 설램이, 갈망이, 목마름이 사라지고, 의무만이, 책임만이 남아버린 것이다! 


그런 화두를 가지고 고민하며 기도하다가 읽게 된 것이 잔느 귀용이 쓴 《아가서 주석》이다. 이전까지의 아가서는 "노래 중의 노래"라는 제목에 담긴 찬사에도 불구하고 에로틱한 표현 등으로 인해 교회 내에서 잘 읽히거나 가르쳐지지 않아왔다. 비록 오리겐이나 버나드, 밀턴 등에 의해서 아가서의 주석이 저술되기도 했지만, 이들은 솔로몬의 언어를 극히 비유적인 의미로 바꾸어 그 문자적인 의미들을 제거하려 했다. 이 이면에는 남녀 간의 사랑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죄로 여기고 타부시화 시키는 가치관이 깔려있다. 

마담 귀용은 여러 기존의 비유적인 해석들을 넘어서 개인적인 것으로, 즉 믿는 자와 주님 사이의 사랑 이야기로서 아가서를 해석한다. 그녀의 글을 통해 수많은 방황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왔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를 표방하는 그녀의 글은 가톨릭 당국으로부터 이교도라 정죄 당하였고, 귀용은 여러 차례 감옥에 수감 되었다. 감옥 속에서나 고통 중에서 그녀는 점점 더 깊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추구하며 깊은 영성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녀는 하나님과의,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영적 연합을 의문시하는 사람들에게 단호히 말한다. 

"우리의 영은 깊이 하나님과 연합되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은 그것을 위해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설레이는 가슴으로 그 분과 함께 연애하고 싶다. 그렇게 첫 사랑을 회복하고, 아니 날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주님을 만나고 싶다. 

/ 소리벼리 정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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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기도가 어려운 까닭 (잔느 귀용)

한 줄 묵상 2012.09.22 14:20
  • 온 힘을 다해 힘을 빼라는 말씀이군요. 은혜는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BlogIcon 산처럼 2012.09.26 02:55 신고

"우리가 한낮에 별을 볼 수 없는 건 빛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태양이 더욱 환하기 때문이다.  영적인 문제도 마찬가지다. 성령의 강력한 빛이 인간의 희미한 빛을 모두 흡수해 버리면 인간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의 노력을 구분할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의 강렬한 빛이 인간의 모든 빛을 능가하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은 완전히 희미해진다."


잔느 귀용 (Jeanne Guyon:  c. 1648-1717), 

《잔느 귀용의 친밀한 기도》(김진선 옮김, 두란노), A Short Method of Prayer




잔느 귀용은 기도 안에서 자신의 노력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생각했다. 위의 문구에 덧붙여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이 기도의 단계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노는 상태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심각한 기만에 빠진 셈이다. 그들은 단지 경험 부족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그녀는 기도의 '경험'을 통해서, 기도 중에 자신의 노력이 무력화되고 하나님의 강렬한 빛에 사로잡히는 은혜의 풍성함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인간이 드릴 수 있는 참되고도 유일한 노력은 '온 힘을 다해' 그 풍부함만을 인정해드리는 것이 아닐까?

 

그녀가 말하는 "단순하고도 아주 쉬운 이 기도"가  도리어 그 실천에서는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것은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희미한 빛으로 하나님을 보려고 하는 나 때문이다. / 작은소리찾기

posted by 작은소리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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