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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묵상

경건: 퇴계와 깔뱅의 만남

경건이란곧 하나님이 베푸시는 온갖 유익들을 아는데서 생겨나는 바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그를 향한 사랑(love for Him)이 하나로 결합된 상태를 뜻한다. (기독교강요 I. 2. 1). 


경건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많지만항상 다른 형제들을 위해서 그 일들을 행해야 한다경건을 우리의 선의와 친절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삼자. (기독교강요 III. 7. 5). 


쟝 깔뱅 (John Calvin, 1509-1564) 《기독교강요》 



유교가 공자의 전유물인 양 인식되지만 사실 아시아에 영향을 끼친 유교는 주자의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그것은 주자의 것도 아니다. 정도전이 애써 그 명맥을 유지하려 했지만 조선 중기부터 현대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우리 나라의 유학은 퇴계 이황의 것이다퇴계 유교의 영향 아래에 있던 19세기의 어느 날, 서양의 깔뱅 복음이 서해 앞 바다를 밟는다. 그리고 깔뱅의 복음이 퇴계의 유교를 만난 지가 어느덧 150여 년이 지났다퇴계의 유학(성리학)의 토양에 뿌려진 깔뱅의 복음.


깔뱅의 복음은 150여년 전부터 교회마다 울려 퍼졌지만, 500년이상 우리의 살과 피가 된 퇴계의 유교는 그 복음을 계속 밀쳐 낸다. 한 지붕 안에 다른 둘이 살고 있는 것처럼 머리로는 깔뱅에, 몸으로는 퇴계에 익숙하다. 그리고 몹시 불편해 한다150년 간 대화 없이 지낸 이 둘을 한 테이블에 앉힐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이들에겐 공통분모가 있다. 퇴계의 세상에 대한 깊은 마음은 그의 성학십도(聖學十圖)에 나타나 있다. ‘/Piety이다. 하늘을 두려워()하고 자기를 계발()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다그는 <성학십도聖學十圖> 4대학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경이라는 것은 또한 형이상 ˙ 형이하에 다 통하는 것이니, 착공하고 수효함에 있어서 다 마땅히 종사하여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자의 말씀도 저와 같았고, 이제 이 십도(十圖)도 다 경(敬)으로써 주를 삼았습니다.”

 

퇴계는 경(敬)으로 세상을 사랑하고 사람으로 사랑한 것이다그렇다면 깔뱅에게도 경이 있는가? 그에게 경은 경건(Piety)이며, 이것은 그의 사상 중에 가장 비중이 있는 가치이다. 깔뱅은 이 경건(Piety)으로 하나님을 두려워(Piety)하고 자신을 훈련(Piety)시키고 타인을 사랑(Piety)하자고 권면하고 있.

 

퇴계와 깔뱅이 만나는 자리는 (/Piety)’이다. 하늘을 두려운 줄 알고 사람을 사랑하는 인 것이다. 한국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잃어버린 것 같다. 교회도 있고 유교적 가부장적 권위도 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자신을 훈련하는 것, 사람을 사랑하는 모습을 찾기가 힘들다. 우리의 교회에서 퇴계의 경(敬)에 바탕을 둔 깔뱅의 경(Piety)의 복음이 구현되어야 하지만, 실제적으로 경(敬)은 잘 보이지 않고 경(輕)이 넘쳐 난다. 그 값싼 가벼움(輕)을 벗어 던지고 진중하고 깊이 있는 '경(敬)의 복음'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이 교회에 바라는 '경건'의 회복일 것이다. 그곳이 바로 퇴계와 깔뱅이 만나는 자리일 것이다. / 나무잎사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