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 승리의 전략 (마틴 루터 킹)

한 줄 묵상 2016.11.11 23:59

비폭력은 강력하며 공정한 무기이다. 그것은 상처 입지 않게 베고 이를 사용하는 사람을 고결하게 만드는 역사상 유일한 무기이다. 치유의 칼이다. 정의를 요구하는 흑인들의 함성에 대한 실질적이고 도덕적인 답변인 비폭력 직접 행동은 전쟁에서 지지 않고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냈으며, 그럼으로써 1963년에 일어난 흑인혁명의 승리 전략이 되었다.


- 마틴 루터 킹 주니어 (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 

《왜 우리는 기다릴 수 없는가》(서울: 간디서원, 2002), 34.


March on Washington for Jobs and Freedom (Photo from Wikipedia)


1963년은 에이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이 "노예해방선언"이라는 문서에 서명을 한 지 100년 째가 되는 해였다. 그러나 미국의 흑인들은 여전히 인종 차별 가운데서 비참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전국에서 노예 해방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번드르르하게 진행되고 있을 때, 흑인들은 "우리는 정말로 해방되기는 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마틴 루터 킹과 함께 그들은 약 1천여 개의 도시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정의와 평등을 외치며 행진하였다. 특히 킹 목사는 1963년 봄, 당시 인종 차별이 가장 심한 도시이자,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인해 가장 위험한 곳이었던 앨러배마 주의 버밍엄에서 인권운동 행진을 이끌었다. 나아가 그해 8월 28일에는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을 조직하고, 그곳에서 "나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고 알려진 명연설을 남겼다. 이러한 일련의 비폭력 운동은 이듬해 민권법 개정안(Civil Rights Act of 1964)의 통과를 이끌어 냈다. 


    마틴 루터 킹의 《왜 우리는 기다릴 수 없는가》(Why We Can't Wait)는 1963년에 일어난 흑인 인권 운동을 돌아보며 혁명의 정당성과 경과를 설명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킹은 1963년 흑인 혁명의 승리 전략으로 비폭력을 꼽는다. 그에 의하면 비폭력은 "상처를 입지 않게 베는" "강력하며 공정한 무기이다." 그는 1963년은 흑인 혁명을 향한 정당한 이유와 많은 힘들이 결집된 때였지만, 비폭력이라는 철학과 방법이 없었다면 대규모 무혈 혁명을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2016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과연 이 나라가 국가의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 국가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1963년의 워싱턴 행진 때와 같은 (어쩌면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민주 국가의 회복을 위해 행진하고 있다. 서민들의 고혈과 같은 세금으로 소수의 특권층들이 부를 누리는 사회를 바로잡자고 외치고 있다. 정의와 원칙이 비웃음을 당하고 불의와 반칙이 거만하게 웃는 세상을 치료하자고 손을 들고 있다. 이것은 혁명이다. 정치적 혁명보다 더 근원적인 가치의 혁명이다. 이 혁명의 철학과 방법은 마틴 루터 킹의 말처럼 비폭력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 주의하고 거부해야 할 세력은 '국정을 농단하는 악한 영'이라기보다는 의로운 행진에 나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시민들로 하여금 인간의 가치를 부정하는 폭력에 휘말리게 하려는 '폭력의 영'이다. 주님의 가르침을 기억하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8)/ 바람연필 권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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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신비: 우리는 이리가 아닌 양이다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

한 줄 묵상 2014.10.23 09:25

적들의 마음을 바꾸어서 그들로 하여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 그들을 죽이는 것보다 훨씬 더 좋고 놀라운 일이다. 특히 [사도들은] 오직 열두 명인데 세상은 이리들로 가득 차 있었음을 생각하면 이것은 더욱 분명하다. 사도들과는 아주 다르게 행동하고 우리의 대적들을 향해서 이리들과 같이 돌격하는 우리 자신을 우리는 수치스럽게 생각해야한다. 우리가 양이기만 하면 승리는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이리라면 우리는 패배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 목자의 도움은 우리로부터 떠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양을 먹이지 이리를 먹이지 않는다. ……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어린 양을 먹는 이리가 된다면, 양과 같이 초장으로 인도함을 받고서 노략질하는 사자처럼 행동한다면, 뭐라 변명할 수 있겠는가? 이 [성찬의] 신비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우리는 폭력으로부터만이 아니라 모든 원한으로부터, 비록 그것이 아주 가벼운 것이라할지라도, 깨끗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평화의 신비이다.

-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Johannes Chrysostomus: c.347-407), "마태복음 설교" 33장.


우리의 대적 마귀가 그리스도인들을 충동하여 폭력을 행하게 하는 것을 우리는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세상의 이리들은 양을 잡아 먹음으로써가 아니라, 양을 도발하여 이리가 되게 함으로써 승리를 쟁취한다. 그러므로 목자되신 주님의 양인 우리는 우리를 도발하는 모든 폭력에 철저히 비폭력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내적인 원한까지도 깨끗해져야 한다. 진정 사람을, 나아가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폭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 박은 비폭력이다. 비폭력의 십자가로 세상의 폭력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성찬을 받을 때마다 이 평화의 신비를 기억하자. / 권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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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함과 압박은 폭력입니다 (토마스 머튼)

한 줄 묵상 2013.02.20 08:01

현대 생활의 분주함과 압박은 타고난 폭력의 한 형태, 아마도 가장 흔한 형태이다. 상충하는 수많은 염려들에 스스로를 내어주고, 지나치게 많은 요구들에 항복하며, 너무 많은 계획들을 세워서 실천하고, 모든 사람을 모든 것에 있어서 도와 주기를 원하는 것은 폭력에 굴복하는 것이다. 아니 그것은 폭력에 협조하는 것이다. 활동주의자의 광기는 …… 자신이 하는 일이 풍성한 결실을 맺지 못하도록 파괴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일을 풍성하게 하는 내적 지혜의 뿌리를 죽이기 때문이다.


토마스 머튼 (Thomas Merton, 1915-1968) Conjectures of a Guilty Bystander (NY, Garden City: Image, 1989), 86.




매일 저녁 잠자리에 누워 하루를 돌아보면, 늘 여러가지 일로 분주하게 살고 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산책을 나가 발은 한가로이 걸어도, 마음은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압박으로 늘 총총 걸음이다. 토마스 머튼은 이렇게 현대 생활이 주는 분주함과 압박은 우리 자신을 향한 '폭력'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내면의 풍요로움과 그로 인한 삶의 풍요로움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튼에 따르면 평화를 위해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일한다 할지라도 지나치게 '활동'에 매여 있으면 그것은 폭력에 협조하는 것이다.


수도원의 수련생들을 대상으로 한 어떤 강의에서 머튼은, "만일 우리 안에 스스로를 사적인 기획(priviate projects)으로 떠미는 자아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결코 영성 생활을 발전시킬 수가 없다"고 말한다. 신기한 것은 늘 일에 쫒겨 살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거의 날마다 새로운 기획들과 아이디어들이 끊임 없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 생각들 중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것들을 분별해서 과감히 쓰레기통에 집어 넣고, 나의 계획이 아니라 그분을 좀더 깊이 생각하는 것이 올 한 해 개인적인 영성생활의 목표이다.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누가복음 11장 41-42절)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  / 바람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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