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고귀함 (마카리우스)

한 줄 묵상 2013.07.28 12:27

당신의 고귀함과 존엄함을 깨달아 아십시오. 그리스도의 동생이요, 온 천하를 다스리시는 왕의 친구요, 천상(天上) 신랑의 배필인 당신은 참으로 영화로운 존재입니다! 당신의 영혼이 이렇게 존귀한 것임을 절감하게 될 때, 비로소 당신은 하나님의 권능과 신비를 진정으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야 당신은 진실로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만이 그대가 영락(零落)의 존재임을 깨우쳐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그리스도께서 고난과 십자가를 지나 영화롭게 되시고 하나님의 오른편에 오르셨듯이, 십자가의 고난과 겸비를 그분과 함께 겪고, 그리스도의 몸에 합류하게 되고, 나아가 그분과 함께 영원히 통치하게 될 것입니다.

John Wesley, ed. An Extract from the Homilies of Macarius, no. 15.1, (first printed in 1750).

 

자신의 본분이 고귀한 것임을 깨달은 사람은 자신의 현실이 그에 비하면 얼마나 누추한 것인지도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애석해 할 것이다. 하지만 그냥 주저 앉아 있지는 않을 것다. 자신의 잠재력을 또한 깨달았으므로, 그 영락의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귀함을  다시금 발휘할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가려는 열망이 그 영혼에 차고 넘치게 될 것이다.

이런 사람은 밭에 감추어져 있던 보화를 발견한 사람과 같다 (13:44). 그들은 세상의 통념과 사상으로 짜여진 가치 체계와는 다른그것을 넘어서는가치관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진행시키려고 한다. 바로 이런 사람이 십자가의 고난과 영광의 소중함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들에게 그 길이 바로 자신의 존귀함을 다시 발휘하게 되는 경지로 가는 길이다. 자신의 영혼의 소중함을 깨달은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 지고찬송을 부르며 길을 간다 (458). 새결새김 /남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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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비추는 등불 (마카리우스)

한 줄 묵상 2013.06.28 14:12
  • 우리가 닮아야 할 그리스도처럼, 우리의 인성과 성령의 신성이 만나야 세상의 빛이 될 수가 있다는 배움을 얻습니다.

    BlogIcon 바람연필 2013.06.28 14:40 신고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의의 열매라는 기름으로 자기 속을 채우고 있는 등잔과 같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들 속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의 불꽃에 의해 점화되어 있지 않다면, 그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영으로 타오르고 있는 불꽃입니다. 주님 안에는 그분의 본성으로 자리잡고 계신 신성(神性)이 그분의 인성(人性)의 가슴에서 성령의 불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Macarius of Egypt 지음. John Wesley 편집. An Extract from the Homilies of Macarius, no. 18.2, (first printed in 1750).


마카리우스는 그리스도인의 고귀함은 그 외양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내면에 있다고 말한다. 즉 그리스도인은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더럽고 썪은 것들으로 가득한 회칠한 무덤 같은 존재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의미이다. 그는 그리스도인을 비록 겉은 남루한 헝겁이지만 그 속에는 가득히 진주를 가진 자루와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18.3).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내면의 가치들이 하나님의 불에 의해 점화되어 타오르면서 빛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카리우스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해서 이 세상을 비추는 구원의 등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름지기 이러한 등잔이 되어야 한다. 자신은 투명하게 가다듬고, 자기 속엔 그리스도의 말씀과 모범을 따르려는 내면의 열매로 채워야 한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열매만으로는 세상에 아무런 유익을 끼칠 수가 없다. 그것들 위에 하나님의 신성의 불이 내리기를 갈망해야 한다. 갈멜 산에서의 엘리야처럼 말이다.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열망의 불, 모든 것을 정화하고 승화시키는 성화의 불이 우리 속에 불붙고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한다. 그럴 때 그들은 어두움 속에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뒤따라 이 지상을 밝히는 빛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나와 우리 교회의 현실을 보면 주님께서 나는 세상에다가 불을 지르러 왔다.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바랄 것이 무엇이 더 있겠느냐?” (12:49)라고 말씀하시며 탄식하시는 듯하다. 그리고 그 앞에 나는 면목이 없다. / 새결새김 남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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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옷 (마카리우스)

한 줄 묵상 2013.05.28 15:41

겨울이 지나면 나무들은 보이지 않는 능력에 힘입어 자기 내부로부터 밖으로 잎을 내고, 꽃을 내고, 열매 맺어 그것들로 옷입는다. …… 마찬가지로 부활의 날에 신자들이 덧입는 옷은 의의 태양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하여 성령의 영광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이 영광은 신자들이 전부터 자기들 속에, 즉 그들의 영혼 속에 간직하고 있던 것들이다. 신자들이 현재의 삶에서 자기 영혼 속에 가지고 있는 그것이 부활의 날에 영혼으로부터 밖으로 나와서 그들의 가려주는 옷이 된다.

 John Wesley, ed. An Extract from the Homilies of Macarius, no. 4.8, (first printed in 1750),

 

그러므로 부활의 날, 우리가 새로이 입을 때, 우리를 영광스럽게 할 영광의 옷은 바로, 지금 현재의 삶에서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삶을 본받아 모든 덕을 부지런히 실천하는 일이다 (4.9). 다시 말하면, 우리의 마음가짐과 언행과 실천이 곧 부활의 날 우리들이 입을 옷이다 (4.1). / 새결새김 남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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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인 사색보다는 경험적인 언어로서의 '기도'

한 줄 묵상 2013.05.14 03:29

사부교부 마카리우스는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단지 그대의 두 손을 펴고서 '주님, 당신이 잘 알고 계시오니 당신의 뜻대로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하라. 만일 갈등이 더 치열해지면, '주님, 도와 주소서'라고 하라. 주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잘 알고 계시며,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실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 The Sayings of the Desert Father: The Alphabetic Collection, trans. Benedicta Ward. 131.의 글을 <기독교 영성 I> 제 16장 638에서 재인용.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모든 몸 짓은 '영스러운 것'이다.   

이 영은 가둘 수 없다. 제한 할 수 없다. 흐르는대로 움직이게 해야한다.

기도만큼 자유로운 영의 활동이 있을까? 

언어로 전통으로 교리로 가두는 순간,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여행'이 아닌 인간을 향한 '부담'이 되어 다가온다.


기도에는 정밀한 규칙이 필요없다. 기도에는 귀를 간지럽히는 언어유희가 필요없다.

기도는 살아있는 인격을 만나기위한 내 인격의 몸부림만 필요한 것이다.


많이 말하려하지 말라.

그냥 여기 있다고..

그냥 힘들다고..

그냥 도와달라고.. 말하라.


내 영이 흐르면 그 곳에 닿는다/ 나무 잎사귀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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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와 균형 (마카리우스)

한 줄 묵상 2013.04.28 15:34

우리 속에 절제함이 없다면, 우리가 좋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타고난 것처럼 남에게 친절을 잘 베푸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주의하지 않으면, 바로 그 친절함 때문에 곁길로 빠지게 됩니다. 지혜가 출중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혜에 그들을 속지 못하도록 늘 조심해야 합니다.

마카리우스 (Macarius of Egypt, c.300-390) 저, 이후정 옮김,  신령한 설교 (은성), 16.9. 


여기서 절제로 옮긴 단어는 nepsis (영어로는 sobriety)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방탕하거나 뭔가에 취하지 않고) ‘늘 절제하며 영혼을 맑게 유지함이라는 의미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모든 잡념들, 특히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여덟 가지 나쁜 생각들 (대식, 간음, 탐욕, 비탄, 분노, 나태, 허영, 오만)이 우리 속에서 들어와 활개치지 못하도록 늘 주의를 기울여 성찰하여서 몸과 마음의 평온을 이루어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막 교부들을 포함한 많은 초대 교회의 영적 스승들은 이러한 nepsis를 올바른 기도에 들어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준비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같은 단락에서, 마카리우스는 우리가 가진 것들 때문에 시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절제(nepsis)’와 함께 두 가지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 첫째는 덕(, virtue)의 균형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면, 꿀과 같이 달콤한 것만 넣는 것이 아니라, 후추와 같이 매운 양념도 넣어 숙성해야 하듯이, 우리의 신앙도 다양한 덕목들이 조화를 이루어야 성숙해 집니다. 이를 테면, 온화함은 엄격함과 짝을 이루어야 하고, 지혜는 신중함과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말은 행동과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마카리우스는 이 모든 일을 실천함에 있어서 자기 스스로 해나갈 수 있다는 태도를 버리고 언제나 온전히 주님에게 의지해야 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마카리우스는, 신앙 생활에서 시험들을 극복하며 꾸준하게 성장하는 길은, 은사와 선물들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받았던 사실에만 만족하지 말고, 그것들에 그릇된 의도와 생각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성찰하면서 잘 가꾸어 가야 하고, 또 여러 가지 신앙의 덕목들(5:22-23)이 서로 서로 균형을 이루어 하나로 조화되도록 힘써야 하며, 무엇보다도, 모든 일에 우리들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과 그분의 성령의 도우심을 언제나 의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듯합니다. /새결새김 남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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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는 꿀벌 같이 일하신다 (마카리우스)

한 줄 묵상 2013.03.28 16:02

벌통 속에 은밀하게 벌집을 짓는 꿀벌처럼, 은혜는 은밀하게 우리 마음 속에서 그의 사랑을 만들어 가신다. 쓰디쓴 것으로 가득한 마음을 달콤한 것으로 바꾸고, 거친 마음을 부드럽게 바꾸어 놓는다.


마카리우스(Macarius of Egypt, c.300-390) 저, 이후정 옮김, 『신령한 설교』 (은성), 16.7.




마카리우스는 신앙 생활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그분의 일하심에 민첩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깨어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면서, 꿀벌의 비유를 들려 준다. 그리고 뒤이어 세공 장인의 비유를 들려준다. 장인은 그의 공방 안에서 금과 은을 틀에 부어 진귀한 모양을 만들고, 거기에 아름다운 문양을 새겨 값진 물건을 만든다. 마침내 완성되면 장인은 그것을 밝은 곳으로 가지고 나와서, 그것이 찬란하게 빛나게 한다 (16.7). 


주님께서는 진정한 세공 장인이시다. 주님은 당신을 경외하고 늘 주목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오셔서 조용히 일하신다. 그래서 그 마음을 새롭게 하신다. 쓴 물을 쏟아내는 우리 마음을 달콤한 꿀을 내는 곳으로 바꾸신다. 그리고 거칠고 날카로운 마음들을 어루만지고 다듬어서 부드럽고 원만한 것으로 바꾸어 놓으신다. 설사 우리 마음이 죽은 자들의 뼈와 온갖 부정한 것들”(23:27)같은 불결한 생각들로 가득하다 해도, 주님의 은혜는 그 속에서 보석과 같이 빛나는 선한 생각들을 만들어 가신다. / 새결새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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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어두움으로 뛰어드는 잠수부 (마카리우스)

한 줄 묵상 2013.01.18 00:16
  • 자신의 욕구의 추구를 최상의 가치로 삶는 생각의 뿌리에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이것은 발달심리학에서 말하는 유아적인 상태와 통한다. 그러나 잠수부처럼 우리의 욕구 중심에 깊이 내려가면 그속에서 우주의 중심이신 하나님을 향하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영적 성숙일 것이다.

    BlogIcon 바람연필 2013.01.18 00:27 신고

신중한 사람들은 욕망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 그것에 복종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에 화를 내며 등을 돌리고, 자기 스스로를 원수처렴 여긴다.  이런 이들은 이를테면 잠수부와 같다. 잠수부들은 왕관을 장식할 진주를 얻기 위해, 혹은 임금의 옷을 자주빛으로 채색할 염료를 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바다밑까지 헤엄쳐 들어간다. 금욕의 삶을 사는 수도자들은 이런 잠수부들과 같다. 그들은 세상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깊은 어두움 속으로 내려간다. 거기에서 그리스도의 왕관과 거룩한 교회와 새 세상과 빛의 도성과 천상의 성도들에 어울리는 값진 보석들 모아 온다.  


- 마카리우스(c.300-390) 『신령한 설교』 (은성), 15. 51.

 

마카리우스는 이 설교에서, 사람들이 자기 밖의 세상에 대해서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 자신의 마음(내면)을 들여다보고 점검하는 데는 서툴고 무관심하다고 지적한다(§ 48). 우리의 소원과 욕구가 만들어지는 자리인 마음에는 무질서도 있고, 오류도 있고, 어두움도 있으며, 악에 오염된 부분도 있다 (§ 49-50). 그러므로 참된 것을 얻으려면 먼저 우리에게 어떤 욕구가 생기면 그것을 얻기 위해 바로 행동에 나서지 말고, 먼저 그것을 잠시 내려 놓고 그 욕구가 일어나는 우리의 마음을 잘 점검하고 그 속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더하여 깊은 어두움으로 들어가는 일은 세상과 그 문화, 그리고 나의 지식과 가치 체계 일체를 벗어 놓고 물러나는 일도 포함한다. 이런 자기 부정의 모험을 감행할 때 사람은 비로소 참으로 값진 것, 참되고 영원한 것, 즉 우리가 마땅히 원해야 할 것을 발견하게 된다고 이 초대의 수도자는 말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욕망의 성취에 적극적인 시대이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 ‘내가 되고 싶은 것을 향해 돌진하는 인생에 갈채를 보내며, 그런 목표를 성취한 사람들을 성공한 사람으로 높인다. 이런 만큼 우리는 우리가 가진 소원의 바탕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것을 만들어내는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순수하고 선한 동기들을 담고 있는지, 우리의 소원과 욕구의 추구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만 한다.

 

끝으로 우리들의 마음과 거기서 생겨냐는 욕구를 그냥 절대시하고 추종해서는 우리가 행복해 질수도, 성숙해 질 수도, 거룩해 질수도 없다고 말하는 이 수도자는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으로 들어가, [세상을 향해 열린] 문을 닫고서, 숨어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해야 한다” (6:5)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담긴 의미를 잘 깨달아 살아낸 지혜로운 신앙의 선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 새결새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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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주님이 장사(葬事)되신 곳 (마카리우스)

한 줄 묵상 2012.12.07 05:53
  • 마음에 대한 신랄한 묘사가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이 사람을 더럽힌다'는 주님의 말씀(마태복음 15:18-20)을 생생하게 이해하도록 하네요.

    BlogIcon 바람연필 2012.12.07 06:06 신고
  • "그들이 나를 부르고 있다"-- 지옥이 되어 버린 내 마음의 신음 소리, 비명 소리를 우리가 당신을 부르는 소리로 들어주시는 주님...

    BlogIcon 산처럼 2012.12.07 13:17 신고

무덤에 관해 말하는 것을 들을 때, 눈에 보이는 무덤만을 떠올려서는 안 됩니다. 왜냐햐면 그대의 마음이 곧 무덤이요 묘지이기 때문입니다. 사탄과 그의 졸개들이 당신의 마음과 생각에 요새를 건설하고, 또 그 안에 길을 내고, 고속도로를 뚫어 여기 저기에서 활개치고 다닌다면, 그대는 지옥이며, 무덤이며, 묘지요, 하나님에 대하여 죽은 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 마음과 생각 속에서 사탄은 위조지폐을 찍어내고, 쓰디쓴 잡초의 씨를 퍼뜨리고 있으며, 옛 누룩으로 그것들을 부풀리고 있습니다. 이제 인간의 마음은 탁한 진흙탕물을 토해내는 구덩이가 되었습니다.

 

- 이집트의 마카리우스(Macarius of Egypt)c.300-390) 『신령한 설교』 (은성), 11. 11.

 

마카리우스가 여기서 그리고 있는 인간 현실, 아프고 슬프지만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나의 마음은 무덤과 같이 어둡고 불결하고 죄가 넘쳐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만들어 내는 생각들은 참으로 지옥을 방불케 할 때가 많다!


그런데 그 지옥 같은 마음의 가장 깊은 곳으로 주님께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죽음에게 명령하십니다. “네가 억류하고 있는 영혼들을 풀어 주어라, 그들이 나를 부르고 있다.” 이렇게 주님은 단단히 둘러싸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돌덩이를 뚫고 영혼에게 오십니다. 그것을 가두고 있는 무덤의 문을 열어 제치십니다. 주님은 진실로 죽은 사람을 일으켜 생명에 이르게 하시고, 어두운 감옥에 갇힌 영혼들을 이끌어내십니다 (마카리우스, 『신령한 설교』 11. 11.).


실로 놀라운 영성가의 통찰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나서 가신 곳, 그 무덤, 그 음부는 바로 지옥이 되어버린 내 마음이다이 누추하고 처참한 곳에 오시기 위해서, 이 어두운 곳에서 나를 이끌어 내시기 위해서 주님이 죽으시고 묻히셨다니……. ‘감격스럽다라든가 혹은 다른 어떤 말로 다 담아낼 수 없는 놀라움, 송구함, 감격, 감사, 이런 것들이 뒤얽힌 복잡함이 나를 덮친다.


한참이 지나서 나의 태도, 나의 이해 여부에 아랑곳 없이, 주님께서 이미 오셨다는 사실이 나를 안도하게 하고 감사의 예()를 올리게 한다. 그러고 나니 그분의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분이 기다려진다. '주님, 오셔서 나를 둘러싼 모든 어두움에 종언(焉)선고하소서이 대림의 절기에 주님 어서 오소서! 마라나타!' / 새결새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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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주님을 바라봄 1 (마카리우스)

한 줄 묵상 2012.09.19 05:25
  •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와 화가를 주목하여 바라보는 사람,
    하나님과 그분의 형상인 우리,
    기도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아주 탁월한 비유인 것 같네요.

    BlogIcon 바람연필 2012.09.19 05:31 신고
  • '나'(I)를 바라보는 '님'(Thou)을 바라보는 것이 기도라는 말씀이네요. 고개를 들어야겠습니다.

    BlogIcon 산처럼 2012.09.19 13:47 신고
  • 고개를 든다는 언급이 의미가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굽은 몸" 유비를 염두에 두신 표현이신것 같네요. 사람은 본래 똑바로 서서 앞을 보고 하늘을 보고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창조되었는데, 그만 죄로 인해 그리고 우리 잘못된 감각 사용으로 인해 우리의 몸이 "굽어져" 땅만보게 되었다고 말했지요. 이제 우리가 다시 고개를 들어 주님을 보고 하늘을 노라면 우리의 인식과 감각이 회복될 것이다. 이런 의미를 담을 수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BlogIcon 새결새김 2012.09.20 02:05 신고

"내가 잘 그려진 내 초상화를 얻고 싶다면, 나는 나를 그리고 있는 화가에게 눈길를 집중하고 그에게 주목하며 그 앞에 움직이지 않고 오래 앉아 있는 일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훌륭한 화가이신 그리스도는 그분을 믿고 끊임 없이 그분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그분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숭고한 인간을 그려주십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믿고 사랑하면서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모습을 담은 그림을 우리 영혼 속으로 보내주시도록 다른 일은 모두 내던지고 주님께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님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고 또한 이승에서도 확신과 안식을 얻을 것입니다


이집트의 마카리우스(Macarius of Egypt, ca. 300 – 391), “설교 30,” 신령한 설교, 은성. §4,


 영혼이 하나님의 모습(the image of God)과 닮은 모습(the likeness of God)을 회복하게 되는 것은 오직 기도(proseuche)를 통하여 하나님께 주목함(prosoche) 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렇게 주님을 사랑하면서 주목하는 것’ (loving attention to God)은 기독교 기도 전통의 근간이다.** 이 점은 우리의 기도 실천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 말의 기도는 빌 기()’ 빌 도()’가 합하여 된 말이다. 이는 우리가 기도를 기본적으로 ‘…에게 빌다라고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기도 이해가 한국 기독교인들의 기도 실천의 많은 부분을 좌우하고 있다.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고 그것을 이루어 주시기를 비는 기도의 중요성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도의 실천에서 기독교의 기도의 근간이 하나님/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주목함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우리의 기도 실천은 더 깊어질 것이다. / 새결새김

 

* 앤드류 라우스, 《서양 신비사상의 기원》 (분도), 181.

** 칼리스토스 웨어, “기도와 관상의 길: I. 동방,” 《기독교 영성 I》 (은성), 637-68. 

posted by 새결새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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